마 24:36-51(42)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

 

오늘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날입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교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하면 좋을까를 기도하다 재림에 관한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재림하신다.)’는 말씀이 318번 나옵니다.(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네요.) 1년은 365일입니다. 주일은 52일이고 평일은 313일이죠. 예수님은 하루에 한번 꼴로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번만 말씀하셔도 믿을 텐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드시 재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 3절을 통해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해산의 고통에 비유하셨습니다. 여자분들 중에 아이를 낳을 때에 아프지 않았던 분이 있습니까? 모두 아프셨죠? 요즘은 무통주사가 있어 산통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지만 자연 분만하는 경우 산모는 초죽음이 되고 아기를 낳듯이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재림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30절-31절을 통해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 사람의 눈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듯이 구름을 타고 능력을 떨치고 영광에 싸여서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 사람의 귀로도 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6-17절을 통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통령이 입장할 때 팡파르가 울려 퍼지듯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 소리가 하나의 소리인지 여러 소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천사들을 보내서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 받은 백성들을 모으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신앙 생활하다가 죽은 성도들이 다시 살아나고 다시 살아난 성도들은 살아있는 성도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갑니다. 공중으로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 삽니다. 얼마나 신납니까? 주님이 어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하늘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했는데 땅에서도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소리가 들릴까요? 통곡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두 남자가 밭에서 일하다가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지게 됩니다.(40절) 두 여자가 맷돌을 갈다가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지게 됩니다.(41절) 두 사람이 똑같이 일하고 있었지만 하나는 하늘로 올라가고 하나는 버려지게 됩니다. 올라간 사람은 교인이고 버려진 사람은 비교인입니다. 버려진 사람은 그제서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만약 사랑하는 가족이 울부짖는다면 공중으로 올라가더라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 더 늦기 전에 하늘나라 리무진에 태워야겠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시각을 알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시간을 알려 주신다면 우리는 실컷 놀다가 막차를 타려고 할 겁니다. 예수님은 그럴 줄 알고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예수님 자신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십니다.(36절) 예수님도 모르시는데 사람이 안다면 뭔가 잘못된 거겠죠?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절을 통해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알기 때문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재림을 밤중에 찾아오는 도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도둑이 갑자기 들어오듯이 예수님도 갑자기 재림하시기 때문입니다. 도둑이 몇 월 며칠에 집을 털겠다고 통보하고 옵니까? 괴도 루팽도 아니고 몰래 들어오잖아요. 집주인은 언제 도둑이 들지 몰라 늘 집단속을 하듯이 예수님도 갑자기 재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42절)

 

예수님이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 재림하시기 때문에 깨어 있어라 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하면 깨어 있는 거고 어떻게 하면 자고 있는 걸까요? 깨어 있는 거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이 맡겨주신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겁니다.(45절) 맡겨주신 직분을 감당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속장을 맡겨 주셨으면 속 회원을 잘 보살핍니다. 교사를 맡겨 주셨으면 어린이들을 잘 돌보아줍니다. 찬양대원을 맡겨 주셨으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선교회 회장을 맡겨 주셨으면 교회를 내 집처럼 섬깁니다. 장로님들은 하나님께서 베드로 전서 5장 3절을 통해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장한다는 지배한다는 의미입니다. 장로님들은 교회를 지배하려 하지 말고 교인들의 모범이 돼야 합니다.

 

주님이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 다시 오셔서 깨어 있는 성도를 보시면 어떠실까요? 흐뭇해하십니다. 주님은 깨어있는 성도를 칭찬하시고 더 많은 사명을 맡겨주십니다.(47절) 여러분이 주인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참을 가지고 들에 가보니 일꾼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다음에 또 쓰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자고 있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자고 있는 거는 악하고 어리석어서 주님이 더디 오려니 생각하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지 않고 동료를 때리고 술친구들과 어울리는 겁니다.(49절) 동료를 때리는 것은 맡겨주신 사명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성도를 비난하는 겁니다.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은 직분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세상 친구들과 어울려 세월을 허송하는 겁니다. 주님은 생각지도 않은 날, 짐작도 못한 시간에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 다시 오셔서 자고 있는 성도를 꾸중하시고 벌을 내리십니다. 여러분이 주인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참을 주려고 들에 가보니 일꾼들이 농땡이를 치다가 주인이 오니 그제서 일하는 척 합니다. 주인의 마음이 탐탁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쓰고 싶지 않아집니다. 예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깨어 있습니까? 아니면 자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목이 터져라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재림불감증에 걸리지는 않았습니까? 재림불감증에 걸리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지 않고(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동료를 때리고(성도를 비난하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십니다.(세상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낭비합니다.) 청년 시절엔 열심히 봉사했는데, 재림불감증이 걸려 직분을 맡고도 쉬지는 않습니까? 과거에 아무리 열심히 일했어도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놀고 있으면 허사입니다. 과거의 수고가 감안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은 사골 곰탕이 아닙니다. 사골 곰탕도 어지간히 우려야 국물 맛이 진하지 너무 우리면 맹탕이 됩니다. 우리 과거를 더 이상 우려먹지 말고 현재에 충실 합시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맡겨주신 직분을 충성으로 감당합시다. 그리하여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서보다 더 많은 소유를 맡읍시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경각심을 갖게 하소서. 오실 때까지 직분을 감당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오실 때에 기쁘게 맞이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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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할 12가지 - 믿음의 기초를 세우는 12주성경공부교재
존 맥아더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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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별 강해설교의 대가답게 단락마다 내용이 깊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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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11(1~20) 구주가 나셨으니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죠.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성탄절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는 나오지만 날짜는 나오지 않습니다. 날짜는 나오지 않지만 힌트는 나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목자들이 밤에 양 떼를 지켰다고 나오는데 이스라엘은 10월부터 3월까지는 비가 오는 우기라 들에서 양을 치지 않았습니다. 4월부터 9월까지는 건기라 양을 쳤습니다. 예수님은 양을 칠 때 태어나셨으니 봄에서 가을 사이에 태어나신 겁니다. 이단들이 역사적인 근거를 가지고 공격하면 신실한 교인들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제가 미리 말씀드린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12월 25일이 성탄절이 되었을까요? 성탄절은 로마제국이 12월 24일부터 다음 해 1월 6일까지 지키던 동짓날 축제에서 유래했습니다. 로마제국은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지켰습니다. 로마제국이 태양을 숭배할 때는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교인들을 경기장에 모아놓고 굶주린 사자들로 위협했습니다. 교인들이 배교하면 살려두고 신앙을 지키면 사자를 풀어주었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스틸야드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듯이 관중석에서 교인들이 사자 밥이 되는 장면을 구경했습니다. 그러다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로마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되고 정황제와 부황제가 생겼는데 서로마제국의 부황제인 콘스탄티누스가 정황제의 아들인 막센티우스와 로마제국의 패권을 놓고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의 종교인 태양신에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하늘에서 ‘이 표적으로 승리를 얻으리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방패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문양을 새겼고 전쟁에서 승리해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황제가 됐다고 믿고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태양신에게 기도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응답하셨을까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신실할 교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은 콘스탄티누스를 도우셨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기도하는 어머니가 아들을 훌륭한 인물로 키우더라고요. 이처럼 기독교가 박해를 받다 공인을 받게 되자, 로마교회는 335년(354년?) 경 기독교가 이교도를 정복했다는 의미로 태양의 탄생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바꿨습니다. 로마제국의 최대의 명절이 기독교의 최대의 명절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도 서유럽과 동유럽이 날짜가 다릅니다.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서유럽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나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동유럽은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킵니다. 성탄절은 언제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무슨 날인가가 중요합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2장 1~18절과 누가복음 2장 1~20절 두 군데서 나옵니다. 마태복음은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께 경배하러 오고 헤롯왕은 다른 가문에서 왕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베들레헴 주변에 사는 2살 이하의 아기들을 무참히 학살한다는 내용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나셨지만 자기 백성이 배척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아기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지만 천사들의 찬송을 받고 목자들의 경배를 받을만한 메시야라는 내용합니다. 저는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는 이스라엘의 북부인 갈릴리 지방 나사렛 마을에서 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부인 유대지방 베들레헴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140Km 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걸어서 사나흘 정도 걸렸습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사렛에서 태어나지 않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까요? 인구조사 때문이었습니다. 유대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은 세금을 징수할 목적으로 모든 남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인구조사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황제가 시저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입니다. 요셉은 나사렛에서 살았지만 베들레헴이 고향이었습니다. 요셉은 만삭인 마리아를 나귀에 태우고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걸어갔습니다. 저도 결혼은 대구에서 했는데 혼인신고는 논산에 가서 했습니다. 이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가서 5장 2절을 통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고 예언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태어나셨다면 구약성경의 예언이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메시야는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시려고 로마제국을 사용하셔서 나사렛에 사는 요셉과 마리아를 베들레헴으로 보내셨습니다. 로마제국이 아니었다면 요셉과 마리아는 유산의 위험을 무릎 쓰고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은 악한 정부를 사용하셔서도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방에서 태어나지 않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을까요? 여관방(손님 방 또는 남는 방)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천신만고 끝에 베들레헴에 도착해 보니 인구조사를 하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여관방이 가득 찼습니다. 1월 1일이 되면 동해안에도 해돋이를 보려고 관광객이 몰려들잖아요. 설상가상으로 마리아가 산통을 시작하였습니다. 방은 없지 마리아는 몸을 풀려하지 난감하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딱한 사정을 보고 누군가 마구간을 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시골집은 방 하나를 나누어 사람과 짐승이 함께 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시골집도 부엌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은 부엌으로 한쪽은 외양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여물통)에 눕혔습니다. 이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실 때 가난한 사람들이 짐승들과 더불어 사는 마구간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셨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게 하시어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누구에게 가장 먼저 알려졌을까요?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졌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율법을 연구하는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었습니다. 목자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천한 직업이었습니다. 도둑처럼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양떼를 지키기 위해 깨어 있었습니다. 부유하고 유식하고 고귀한 종교지도자들은 자고 있었지만 가난하고 무식하고 비천한 목자들은 양떼를 지키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이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가복음 13장 33절에서 37절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깨어있어라’ 고 당부하셨습니다. 목자들이 양떼를 돌보기 위해 깨어있었듯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기 위해 깨어 있어라 고 말씀합니다. 깨어 있는 것은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겁니다. 그러면 천사들이 깨어 있는 목자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었듯이 우리에게 예수님의 재림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실 겁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일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기 위해 깨어있는 날입니다. 이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또 하나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듯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지키신다고 말씀합니다. 삯꾼 목자는 양떼를 버리지만 선한 목자는 양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는 깨끗하게 씻어졌습니다. 연약한 양떼가 목자를 의지해서 살듯이 성탄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가 예수님을 목자로 삼는 날입니다. 그러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더라도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성탄절의 참 의미가 새겨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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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1-2 산에 올라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합니다.(김정은이 BC카드 광고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 라고 한 이후 달라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福)을 좋아합니다. 복을 좋아해서 숟가락에도 젓가락에도 밥그릇에도 국그릇에도 그리고 밥상에도 복자를 새겼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쌀을 이는 용기를 복조리라고 불렀지요. 우리가 성경을 외우기 위해 성경구절을 여기저기에 붙여놓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에 복자를 새겼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 중에서 오복을 좋아했습니다. 오복을 좋아해 오복 치약까지 나왔잖아요. 오복은 중국의 고전인 [서경]에 나오는 다섯 가지 복인데 수(壽) 오래 사는 복과 부(富) 부유한 복과 강녕(康寧) 건강하게 사는 복과 유호덕(攸好德) 덕을 좋아하고 베푸는 복과 고종명(考終命)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는 복을 말합니다. 여러분도 오복을 좋아하십니까? 오복은 ‘사람’이 ‘현세’에서 누리는 ‘물질’적인 복입니다. 성경에도 복이 나옵니다. 성경의 복은 오복과 다릅니다. 성경의 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옵니다.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까지를 포함합니다. 물질이 아니라 ‘신앙’적인 복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복은 팔복입니다.

 

팔복은 산상수훈(마 5~7장)의 서두(마 5:1~12)에 나옵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 팔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을 산으로 비유한다면 산상수훈은 산봉우리요 팔복은 정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부터 마태복음의 엑기스인 팔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5장 1~2절입니다. 1~2절은 산상수훈이라는 산봉우리와 팔복이라는 정상에 오르기 위한 매표소입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입장할 수 있듯이 1~2절을 이해해야 팔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전후문맥을 살펴봐야 하는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23절을 통해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백성들의 병과 약함을 고치셨습니다. 그러자 각종 병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습니다. 병자들이 예수님께 왔듯이 우리도 문제가 있으면 예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어디에)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산상수훈(팔복)은 산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산이 공간적인 배경이죠. 여러분은 산을 좋아하십니까? 저도 산을 좋아합니다.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리심 산을 보고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을 보고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갈보리 산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한 장소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바로 그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숫양을 예비하셔서 그것으로 번제를 삼으셨지만 예수님은 어린양이 되시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살리셨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죽이셨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는데 천정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는 그림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내주셨습니다. 아들도 아끼지 않으셨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이 반드시 해결해 주십니다. 세월이 흘러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시온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 성전 중에서 다윗의 문 밖에 있는 산인데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던 마가의 다락방이 시온 산에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다윗의 무덤이 있고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시온 산으로 온다고 생각해 시온 산 방향으로 시신을 묻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시온 산을 거룩한 장소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산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생각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유랑할 때 ‘성막’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는 ‘성전’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계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기도하는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지만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강력한 장소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 자리에서 기도하면 기도가 잘 됩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축복 기도하고 이 자리에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옥상에서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십니까? 어디에서 기도해야 기도가 잘 됩니까? 그곳이 여러분의 ‘산’입니다. 그곳이 성막이고 그곳이 성전입니다. 사람은 공기를 마셔야 살 수 있듯이 교인은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휴대폰도 충전해야 통화할 수 있듯이 교인도 신앙을 충전해야 교회 다닐 수 있습니다. 휴대폰도 충전하고 신앙도 충전하십시오.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를 가지십시오.

 

(어떻게) 예수님은 산에서 앉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랍비는 앉아서 가르치고 학생은 서서 들었습니다. 랍비가 앉았다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입을 열어 가르치셨습니다. 입을 열었다는 중요한 말씀을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가르치다는 동사는 미완료 시제로 예수님은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입을 연다는 표현이 4번 나옵니다. 예수님이 입을 열어 산상수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입을 열어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 집사는 입을 열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입을 열어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게 설교했습니다.)

 

(누구에게)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12 제자들입니다. 제자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무리는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리가 되기보다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십자가를 구경하기보다 십자가를 지고 가길 바라십니다. (이단들은 이단숫자가 144,000명이 되면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말하는데 144,000은 실제숫자가 아니라 상징숫자입니다. 구약 12지파에 신약 12 제자를 곱하면 144가 나옵니다. 여기에 완전수인 1,000을 곱하면 144,000이 됩니다. 144,000은 하나님의 완전한 백성들의 수입니다.)

 

(무엇을) 예수님은 천국을 가르치셨습니다. 팔복의 첫 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라고 말씀하셨고 여덟 번째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 고 말씀하셨습니다. 팔복의 처음도 끝도 천국을 말씀합니다. 이것을 수미상관이라고 하는데 천국이 팔복의 핵심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의 핵심은 천국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팔복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천국의 왕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마2:2) 고 물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유대인의 왕 예수’(마27:37) 란 죄패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왕으로서 천국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천국처럼 살려면 팔복을 알아야 합니다. 팔복에는 천국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팔복의 세계로 들어오십시오. 우리 팔복을 배워 이 땅을 천국처럼 살아가십시다. 진정한 행복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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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공과 12-1 : 청.장년부 인도자용
프리셉트성경연구원 & 한국어린이전도협회 엮음 / 프리셉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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