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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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다.
신학을 공부해서 남들처럼 안정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양치기의 길로 들어선다. 별이 빛나는 칠흑같은 밤하늘을 지붕 삼아 잠을 자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바람처럼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안달루시아 지방은 어딘지 모르게 좁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는 양털깎는 가게 주인의 예쁘장한 딸과 결혼해서 안주하고, 정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이 정도로 자유롭게 살아봤으면 됐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안주하지 않는다. 늙은 왕을 만난 그에게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는 더 큰 꿈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연금술사란 꿈을 이루는 이들을 뜻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는 모든 이들이야 말로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사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그만큼 꿈을 이루기란 쉽지 않고, 많은 희생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그 꿈은 이루어진다고...하지만 과연 그럴까? 코엘료의 책이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은 내가 너무나 일상에 찌들어 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꿈을 이루기 위해 겪어야 할 희생과 고통은 책에서 피상적으로 접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일이다. 그 때문에 작가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이 선뜻 수긍이 가진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코엘료의 낙천성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느낌은 좋았다. 비록 실제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고, 꿈을 이루려면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해도 한번쯤 산티아고와 같은 꿈을 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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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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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도로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다가 눈이 먼다. 증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이는 이 시력상실 증상은 이 남자를 시작으로 꽤 흥미진진한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도통 소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탓에 질질 끌면서 읽어야 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전염병처럼 눈이 멀면 어떻게 될까? 우선 정부는 전염병처럼 번지는 이 백색의 공포를 막기 위해 환자들을 수용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눈이 먼 사람들은 음식을 할 수도 없고, 씻을 수도 없고, 일상의 사소한 일조차 제대로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단순히 눈이 먼 것 뿐이지만 그들을 짓누르는 공포는 인간의 기본적인 인성을 서서히 파괴해 간다. 인간이 이룩한 소위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작가는 침착하게 파고들고 있다. 그 과정은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라는 캐릭터를 통해 낱낱이 보여진다.

의사의 아내를 둘러싼 캐릭터들은 그녀 덕택에 어느 정도 질서와 침착함을 유지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유랑민처럼 떠돌며 작은 음식에도 아귀다툼을 하고, 눈이 보일 때는 상상도 못할 동물들을 잡아 먹는다.

인간이 인간답지 않을 때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이 문명이 어쩌면 위선은 아닐까?
과연 인간은 선한 존재일까? 악한 존재일까?

영화 <엑스페리먼트>를 보면서 느꼈던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나는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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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스티븐 런치만 경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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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에 함락되면서 1100년을 지켜온 비잔틴 제국은 멸망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콘스탄티노플 함락>이 베네치아의 군의관 바르바로의 관점을 빌린 "소설"이라면, 이 책은 보다 객관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1453년 전후의 콘스탄티노플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유럽뿐 아니라 투르크까지 아우르며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시선은 마누엘 2세의 영국 방문에서부터 시작한다. 강대해지는 투르크에 맞설 힘이 없던 비잔틴 제국은 서유럽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황제가 직접 도움을 구걸하는 처지까지 된 것이다. 하지만 국내 문제에 바빠 멀리 동방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던 서유럽 국가들에게 그의 방문도 효과가 없었다. 그나마 도움이 될만한 로마의 교황은 예전의 권위를 잃은데다가 교회 통합을 해야만 원조를 약속했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은 최후까지도 교회 통합으로 내분을 겪어야 했다.

저자는 공방전의 상황을 하루 하루 자세히 서술하고 있어서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체념적인 비관론자들인가 하면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싸우는 그리스인들의 모습과 제노바와 베네치아 사이의 해묵은 반목, 콘스탄티노스 황제의 분투, 성인의 유물을 들고 도시를 축성하는 성직자들과 성 소피아 성당에서 마지막으로 예배 드리는 시민들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성벽 안 뿐만 아니라 도시를 공략하기 위해 준비하는 투르크군의 모습도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포효하는 우르반의 대포와 질서정연한 예니체리 부대의 모습, 할릴 파샤와 메메드 2세의 갈등, 언덕으로 배를 끌어올리는 투르크 해군의 모습등 방어하는 쪽과 공격하는 쪽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있어 마치 종군 기자의 리포트를 보는 것 같다.

삼중성벽과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인 콘스탄티노플이지만 투르크군을 엄청난 물량 공세를 버텨내기에는 힘에 부칠 수 밖에 없었고... 결국5월 29일, 그리스 로마 문화의 마지막 보루였던 아름다운 이 도시는 투르크군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 이후 투르크는 로도스섬, 크레타섬, 세르비아, 헝가리로 파죽지세로 세력을 넓혀나가며 지중해의 새로운 패자로 부상하게 된다.

만약 베네치아 함대가 조금만 일찍 출발했다면, 서유럽 국가들의 십자군이 결성되었다면, 주스티니아니가 성벽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대포 기술자 우르반이 메메드 2세에게 가지 않았더라면...그랬다면 1453년 5월 29일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다행히 그때 함락되지 않았다 하라도 이미 쇠퇴의 길로 접어든 콘스탄티노플의 운명은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다. 메메드 2세의 공격은 그저 콘스탄티노플의 수명을 조금 단축시켰을 뿐이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의 멸망이 아무리 예정된 것이었을지라도 비잔틴의 찬란한 문화가 처참하게 짓밟히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가슴아프게 한다. 어느 도시, 어느 나라의 멸망이 슬프지 않을까마는 1100년을 이어온 로마 제국의 숨통이 기어코 끊어지는 그 순간은 500년 후에 책으로 보는 나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온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서유럽 중심의 역사 연구와 교육으로 인해 비잔틴의 찬란한 문화와 가치가 오랫동안 잊혀져왔다는 사실이다. 에드워드 기번을 비롯한 주류 학자들에 의해 무시당하고 잊혀졌던 비잔틴 문명이 근래에 재평가되고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관련 서적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1960년대에 쓰여진 이 책이 지금이라도 번역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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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앨버트 칸 지음, 김병화 옮김, 파블로 카잘스 구술 / 한길아트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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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 카잘스. 파블로 카잘스의 카탈루냐식 이름이다. 웬지 이 이름이 더 친근해서 계속 이렇게만 부르고 싶어진다. 카잘스 자신도 '파우'라는 이름에 더 애착이 간다고 하니...
카잘스는 카탈루냐의 시골마을에서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인생의 첫 스승은 어머니였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현명하고 자애로웠던 그녀는 파우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그를 교육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만난 데 모르피 백작. 그는 첼로 교육 뿐 아니라 카잘스가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자질을 키워준 사람이었다. 비록 1,2차 세계대전과 에스파냐 내전으로 얼룩진 그의 인생이지만 그가 맺었던 많은 인연들은 천재적이지만 겸손했던 그의 삶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그가 열거하는 수많은 친구들의 이름만으로도 당시 음악가들의 인명사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그의 교제 범위는 광범위했다.

이 위대한 첼리스트는 우리가 생각하는 '천재'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괴팍하거나 오만하지도 않고, 자신의 재능을 자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남들보다 나은 재능을 가진 사람은 사회를 위해 그만큼 더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만고만한 위인전이겠거니 하고 집어든 책이었는데, 단순한 위인전이 아니라 카잘스의 위대한 정신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누구보다 인류를 사랑했고, 평화를 사랑하는 공화주의자였던 그가 인류에게 가장 극악했던 시기인 양대전과 에스파냐 내전을 겪었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 때문에 그의 인류애가 더 고양되고 빛을 발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의 아름다움은 그의 천재적인 연주 솜씨 뿐 아니라 이토록 아름다운 그의 영혼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저자인 앨버트 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철저히 카잘스의 고백만을 전달하려고 애쓴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옆집 할아버지가 자신이 살아온 긴 세월을 조곤조곤 얘기해주는 듯 친근하게 느껴진다. 오랜 세월 살아온 연륜을 바탕으로 그 속에 녹아난 삶의 지혜와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그의 애정이 이야기 곳곳에 묻어난다. 카탈루냐인, 공화주의자, 첼리스트, 지휘자로서의 인생을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여기에 더해진 앨버트 칸의 사진은 비록 흑백이지만 파우 카잘스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가끔 인류에 대해 지나치게 감상적인 카잘스의 태도에 놀라곤 했다. 하지만 평생을 연주하고, 가르치고, 폭압에 항거하던 이 거장의 정신을 누구도 감상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신은 피로 얼룩졌던 20세기의 인류를 위로하기 위해 첼로의 성자 카잘스를 우리에게 선물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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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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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나는 거리로 나선다. 특색없이 꼬불꼬불한 주택가 골목을 지나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에 시달리다 지하철 역을 나서면 나를 반기는 건 싸구려 간판들과 넓은 길은 차도에 내주고 인색하게 뻗어있는 복잡한 인도이다.

우리나라 어딜가도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이런 풍경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이런 거리에 짜증이 나면서도 정당하게 분노하지 못했다. 산업개발이란 미명하에 거리는 사람이 다니는 곳이 아니라 개발의 대상이 되어 왔고, 그런 사고 방식은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었나보다.
저자는 외친다. 이 거리에 분노하라고! 이 거리가 정상이 아니라고! 왜 시민들이 가만히 있느냐고 서글프게 다그친다.

일제침략, 한국전쟁, 산업개발의 틈바구니 속에 역사는 실종되고 사람들의 숨결은 사라져 버린 거리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건축가들이나 행정 공무원들의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거리를 만드는 그들을 무관심하게 방치해온 우리의 책임을 이제는 느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거리를 멍들게 하는 건 어설픈 전통의 복원이다. 공공건물을 지을 때면 꼭 나타나는 기와 형식이나 전통문양들. 조선 시대에 고려 시대를 모방하기만 했다면 문화의 발전이 있었을까?
기와를 얹어야만 전통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기와가 아름다운 건 그를 지탱하고 있는 나무 기둥이 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건물에 기와 지붕을 끼워 맞춘 건물들은 기형적일 뿐이다. 우리가 콘크리트 건물에 기와를 얹고 있을 때 루브르 박물관에는 유리피라미드가 세워지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지는 말이 필요 없다.
저자는 말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21세기의 건축은 21세기의 이야기를 하게 하자고....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의 저자가 쓴 또다른 건축 인문서이다. 신문에 연재되던 글을 모았기 때문인지 전작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사진과 함께 실린 저자의 풍자적인 거리 스케치가 인상적이다.

저자는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말을 인용한다.
"모든 시대의 건축가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파리시에 남길 권리가 있다"
우리네 대통령 중에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지금 우리의 거리가 이렇게까지 만신창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은 안목을 가진 정치인의 부재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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