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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앨버트 칸 지음, 김병화 옮김, 파블로 카잘스 구술 / 한길아트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파우 카잘스. 파블로 카잘스의 카탈루냐식 이름이다. 웬지 이 이름이 더 친근해서 계속 이렇게만 부르고 싶어진다. 카잘스 자신도 '파우'라는 이름에 더 애착이 간다고 하니...
카잘스는 카탈루냐의 시골마을에서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인생의 첫 스승은 어머니였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현명하고 자애로웠던 그녀는 파우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그를 교육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만난 데 모르피 백작. 그는 첼로 교육 뿐 아니라 카잘스가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자질을 키워준 사람이었다. 비록 1,2차 세계대전과 에스파냐 내전으로 얼룩진 그의 인생이지만 그가 맺었던 많은 인연들은 천재적이지만 겸손했던 그의 삶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그가 열거하는 수많은 친구들의 이름만으로도 당시 음악가들의 인명사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그의 교제 범위는 광범위했다.
이 위대한 첼리스트는 우리가 생각하는 '천재'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괴팍하거나 오만하지도 않고, 자신의 재능을 자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남들보다 나은 재능을 가진 사람은 사회를 위해 그만큼 더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만고만한 위인전이겠거니 하고 집어든 책이었는데, 단순한 위인전이 아니라 카잘스의 위대한 정신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누구보다 인류를 사랑했고, 평화를 사랑하는 공화주의자였던 그가 인류에게 가장 극악했던 시기인 양대전과 에스파냐 내전을 겪었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 때문에 그의 인류애가 더 고양되고 빛을 발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의 아름다움은 그의 천재적인 연주 솜씨 뿐 아니라 이토록 아름다운 그의 영혼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저자인 앨버트 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철저히 카잘스의 고백만을 전달하려고 애쓴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옆집 할아버지가 자신이 살아온 긴 세월을 조곤조곤 얘기해주는 듯 친근하게 느껴진다. 오랜 세월 살아온 연륜을 바탕으로 그 속에 녹아난 삶의 지혜와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그의 애정이 이야기 곳곳에 묻어난다. 카탈루냐인, 공화주의자, 첼리스트, 지휘자로서의 인생을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여기에 더해진 앨버트 칸의 사진은 비록 흑백이지만 파우 카잘스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가끔 인류에 대해 지나치게 감상적인 카잘스의 태도에 놀라곤 했다. 하지만 평생을 연주하고, 가르치고, 폭압에 항거하던 이 거장의 정신을 누구도 감상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신은 피로 얼룩졌던 20세기의 인류를 위로하기 위해 첼로의 성자 카잘스를 우리에게 선물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