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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윤성옥 옮김 / 중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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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국의 무적함대 격파, 프랑스 대혁명, 아일랜드 대기근,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이 모든 역사적 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수의 스페인 함대가 폭풍으로 침몰했기 때문이었고,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은 기후 변화에 따라 대구 어장이 이동하면서 이를 찾아 좀 더 먼 곳까지 항해 했기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흉작과 낙후된 농업기술로 인한 기아가 다른 사회적 불만과 함께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이 되었고, 오랫동안 계속된 아일랜드의 흉작은 급격한 인구감소와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 아메리카로의 대규모 이주의 원인이 되었다.
물론 기후가 역사를 바꾸는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기후는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촉매역할을 한다. 때문에 역사 연구에 있어서 기후 변화를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20세기 초의 추운 여름과 급작스러운 기후 변화에 주목하고 이 시기를 소빙하기라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빙하기는 추운 겨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추운 여름에 의한 것이다. 여름에 이상저온 현상이 계속되면 겨울에 쌓인 눈과 얼음이 녹지 않고 계속해서 쌓이기 때문이다. 소빙하기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이 추운 시대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시기는 추운 날씨 뿐만 아니라 극한과 혹서, 폭풍이 자주 일어서 기후 변화가 급격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현대 농업의 눈부신 발전 덕택에 잊고 있었지만 불과 100년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현재의 아프리카와 다를바 없이 취약한 농업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기후가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고,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기후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학자들이 과거의 기후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단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과거를 알고, 현재를 알아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기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기후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체계적인 기후 측정이 이루어진지 얼마되지 않아서 객관적인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빙하에서 추출한 시료를 사용하거나 나무의 나이테를 조사하거나 아마추어 작가들의 연대기를 참조하면서 어렵게 당시의 기후 상황을 추측해 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유래없이 긴 온난화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유럽을 강타한 소빙하기가 아니라 지금의 이 온난한 시대이다. 온난화가 인간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무자비한 환경 파괴는 어느 형태로든 대가를 치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역사의 변화를 기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역사를 보는 또다른 시각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