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궁궐 이야기
홍순민 지음 / 청년사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일제에 의한 우리 역사의 왜곡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조선의 궁궐이 그토록 심하게 수탈당하고, 왜곡되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비교적 잘 보존되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창덕궁마저도 원래 건물의 20 퍼센트 정도만이 남아있는 것이라니......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궁궐에 대해 모를 수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예를 들어, 궁궐의 잔디밭을 생각해보자. 난 그 잔디밭들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인 줄 알고 있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심히 지나쳤었다. 하지만 그 잔디들이 있었던 곳이 본래는 모두 건물로 빽빽히 채워졌던 곳이라는 것을, 그 잔디들이 사실은 건물들의 무덤이라는 것을 책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법궁은 경복궁이지만 500년 역사동안 실질적으로 경복궁이 법궁이었던 시기는 창덕궁보다 짧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탄 이후 흥선대원군이 중건할 때까지 창덕궁이 법궁의 역할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궁궐은 그저 우리가 가서 산책이나 하는 공원이 아니다. 한때 이 나라를 다스리던 왕족들이 살았던 생활터전이며 정치의 중심지이다. 그런 궁궐이 지금처럼 휑하고 텅빈 듯한 인상이었을리가 없는데,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인데도 나는 너무나 무심히 지나쳐왔다.
저자는 왕이 살았던 시절의 궁궐을 상상해보라고 권한다. 정부관청들인 궐내각사가 빽빽하게 들어선 외전과 왕과 왕비의 주거공간이자 정치가 이루어지던 내전들을. 그리고 그 속에 살았던 수많은 궁궐 가족들의 삶을..... 하지만 한 나라의 통치를 이뤄냈던 궁궐들은 이제 그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 고단하고 슬픈 역사를 읽고 있자면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아파온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경복궁, 광해군의 몰락과 함께 창덕궁 중건의 재료로 사용된 인경궁, 대한제국 시기에 처참하게 파괴된 경희궁, 생뚱맞은 석조건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운궁(덕수궁), 동물원으로 전락했던 창경궁에 이르기까지 어느 궁궐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일제에 의한 왜곡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들의 무관심이라고 생각한다.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제대로 된 고증조차 거치지 않은 채 본래 모습과 다르게 복원되는 건물들에 무관심한 우리들. 왜곡을 바로 잡을 세월이 50년이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손을 놓고만 있었다. 저자의 말투가 권위적인 점이 약간 거슬리긴 했지만, 단순히 문화재나 공원으로서 궁궐을 바라보던 내가 지금이나마 조선의 역사와 정신이 담긴 궁궐 본연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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