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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전쟁
돈 클래드스트럽.페티 클래드스트럽 지음, 이충호 옮김 / 한길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막대한 전쟁배상금에 시달리던 독일에 히틀러라는 지도자가 나타난다. 그의 나치즘은 독일을 급속도로 우경화시키고 급기야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한다. 이에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 동안 독일로부터 프랑스 와인을 지키기 위해 싸운 프랑스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독일에 안이하게 대처하던 프랑스는 결국 독일에 점령당하면서 와인제조업자들의 와인 사수를 위한 눈물겨운 투쟁이 시작된다. '눈물겨운' 이라고는 하지만 책의 분위기 자체가 유쾌한 편이라서 전쟁의 참상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저자는 보르도, 부르고뉴, 샹파뉴, 루아르 계곡, 알자스 지방들의 와인 가문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생생하고 맛깔스럽게 재구성해내고 있다. 딱딱해질 수 있는 역사서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히틀러는 프랑스 와인 약탈을 위해 포도주 총통이라는 직위까지 만들어 조직적인 약탈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와인을 프랑스의 정신이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이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들의 "숨기고, 거짓말하고, 속이기"가 시작된 것이다. 저급 와인에 최고급 라벨을 붙이고, 벽을 쌓아 최상급 와인을 숨기고, 비참한 포로수용소에서 조차 와인 축제를 개최한다. 프랑스 와인을 사수하기 위해 벌이는 이들의 재치있는 행동들은 전쟁의 참상을 잊게 할 정도이다. 이들의 유쾌한 행동을 보고 있자면 폭격으로 포도밭이 쑥대밭이 되고,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이들의 모습 조차도 낭만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가장 인상적인 건 독일과 프랑스 와인 상인들의 마인드였다. "이 전쟁은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거래를 계속해야 한다"고 믿는 독일과 프랑스의 상인들의 현실감각은 권력과 전쟁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정치가들과 너무나 비교된다. 실제로 보르도의 포도주 총통이었던 뵈메르스는 점령군으로서의 모습보다는 프랑스 와인업자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상인들의 이러한 노력은 전후에도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 전과 마찬가지로 와인 무역을 계속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정치가들의 상인들의 절반만큼의 현실감각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없지 않았을까?
책은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농부들과 와인 상인들의 정신까지 담아내고 있다. 와인이 인생이 전부인 그들의 우직하고 용감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에서 깊은 존경심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와인을 음미하면서 마셔야 한다. 깊고 향긋한 향기와 진한 붉은 색의 와인 한잔 속에 그들의 인생과 철학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