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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 AG건축기행 1, 옛절에서 만나는 건축과 역사 ㅣ 김봉렬 교수와 찾아가는 옛절 기행 2
김봉렬 글, 관조스님 사진 / 안그라픽스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짧지만 길고 굽었으되 곧은 길. 범어사로 들어가는 길이 그토록 매혹적인지 예전엔 몰랐다. 그 길의 고즈넉함과 새벽같이 단아한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세속적인 인간 세상이 아닌 듯한 공간. 글과 사진은 각기 다른 사람이 담당했지만 마치 한 사람의 작품인듯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저자의 한국 가람에 대한 애정이 이 책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의 정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진정으로 건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마당에 있는 작은 나무 한그루까지도 그 자리에 배치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찰로 들어가는 길부터가 불국토로 들어가기 위해 속세와 조금씩 단절되도록 정교하게 배치되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저 길이니 걸어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건축가의 눈으로 건축을 바라볼 때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비단 건축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건물만 있고, 건축은 없는 우리의 현실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산신각이나 칠성각 등에서는 토속신앙을 수용했던 불교의 포용력을 읽을 수 있고, 유명한 스님들을 모신 전각에선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단순히 건물이라고 생각했던 전각들이 부처님의 불국토를 지상에 표현한 것이라고 하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그들을 피상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이해하게 되고, 아는 만큼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