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 여덟 가지 테마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앙투안 콩파뇽 외 지음, 길혜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다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사람을 다르게 우러러 볼 수 있는 책, 프루스트의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는 수많은 작가들의 불면증 치료제(?)로 활용되어 온, 책을 펴고 한페이지를 다 읽기전에 잠들어버린다는 악명 높은 책이다. 금정연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에는 이 책에 대한 서평에 이 소설이 왜 읽다 잠들수 밖에 없는지 다양한 변명(?)과 예시들이 들어있다. 소설가 김연수는 신년 계획을 세우고 매일 자기 전에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페이지를 읽겠다고 다짐했지만 1월 1일 부터 3월 4일까지 그가 읽은 건 고작 1권 47페이지 였다고 고백하면서 이런 탄식을 한다. "빌어먹을 저녁식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 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는 이런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때?"
"당신은 읽었어요?"
"아니, 나는 교도소에도 간 적이 없고, 어딘가에 오래 은신할 일도 없었어. 그런 기회라도 갖지 않는 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들 하더군."


이렇게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힘들만큼 어려운 책이니 내가 이 책을 사놓기만 하고 안 읽었다는 것에 그렇게 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진 않아도 되겠지? 나도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1권의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조용히 그대로 덮어두고 아직까지 안펴봤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 팔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꼼짝없이 갖혀있어야 한다거나, 교도소에 갈 일이 생긴다면 완독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을 펴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 좀 더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덕분에 책꽂이에 고이 꽃혀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꺼내들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으니 이 책의 효용이 있긴 한 셈이다.  

프루스트와 함께한 여름 은 8명의 전문가들이 시간, 등장인물, 프루스트와 사교계, 사랑, 상상의 세계, 장소들, 프루스트와 철학자들, 예술 등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난해한 책이 어떻게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는지, 프루스트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책에 자세히 나와있다. 


"긴 세월, 나는 일찍 잠에 들었다." 

이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문장이다. 이 문장의 그 첫 번째 단어와 첫 번째 음절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집약하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사실 3,000페이지에 가까운 '긴' 소설이다... 시간이 우리의 인생 위로 어떻게 지나가는지, 우리를 어떻게 변모시키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는지 보여주기를 희망했던 프루스트에게는 이만한 길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p.25>



프루스트는 '시간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글로 옮기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있지만 과거 어느 때를 기억하며 그 기억을 따라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두 소설로 나타낸 것일까?
현재와 과거의 충돌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현재도 과거도 아니지만 일종의 시간성의 본질이 되는 어떤 시간 속에서 길을 찾게 한다<p.54>

책에는 수많은 영화나 책에서 등장하는 그 유명한 마들렌에 관한 구절도 나온다. 


침울한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날도 울적하리라는 생각에 짓눌려 있던 나는 곧 기계적으로 차 한 숟가락에 마들렌 한 조각을 얹어 부드럽게 만든 뒤 입술에 가져다 댔다. 케이크 부스러기가 섞인 차 한 모금이 입천장을 건드린 순간 나는 전율했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뭔가 경이로운 일에 주의를 기울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감미로운 희열이 나를 엄습하며 고립시켰다. 그것은 이내 사랑이 작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소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인생의 부침은 무심하게, 실패는 대수롭지 않게, 그 인생의 짧은 시간은 허망하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아니, 오히려 이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 자신이 보잘것없고 사소하며 언젠가는 죽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p. 186 >


맛있는 마들렌 한 조각에 대한 희열을 이런 수많은 단어를 써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하지만, 마들렌으로 인해 인생의 침울함, 인생에 대한 허망함 조차 쫓아버릴 수 있는 화자를 보며 나도 마들렌 한 조각 먹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 잡혔다. 차 한잔에 동그란 마들렌 한개를 먹으면 지금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고통이 훅하고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을 읽더라도 여전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려운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의 다양한 관점과 숨어있던 매력을 알게 되니 좀 더 강한 적극성을 가지고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토록 긴 소설이 짧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장 콕토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 읽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거기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프루스트의 문장 안에서 헤매이면서 거기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매혹되고 싶다. 어디 한번 도전해볼까?

프루스트의 매력을 알려주는 이 책과 함께 용기를 가지고 당신도 잃어버린 시간을 한번 찾아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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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9-2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소장하고 있는 것만으로
다림냥님은 대단하신겁니다.^^

다림냥 2017-09-24 23:06   좋아요 1 | URL
ㅋㅋ 사실은 1,2권만 가지고 있어요ㅋ 다 읽고 나면 그 다음권도 사야지 하고선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어요ㅋㅋ 이제 한번 진짜로 읽어봐야겠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