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파이트 클럽 - 여성들의 오피스 서바이벌 매뉴얼
제시카 베넷 지음, 노지양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농구화 가격과 의자가격을 비교하며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왜 좋은 의자에 돈 투자를 망설이냐는 메시지로 광고를 진행했던 S브랜드의 의자를 구매했다가 반품한 적이 있다. 왜 그 광고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무조건 남성이라는 전제를 두고 광고를 만들었을까.(실제로 광고에서도 남자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광고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세심한 조절이 가능한 편안한 의자라는 말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매했었다. 의자를 배송받고 앉아보는 순간, 이 의자는 '남성의 체형에만 맞춰서 만들어진 의자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히 평균에 가까운 체형의 여성인 내가 앉았는데 그렇게 다양한 조절기능에도 불구하고 내 체형에는 처음부터 안맞는 크기로 제작된 것이었다. 도저히 허리가 아파 오래 앉을수가 없었다. 결국엔 몇 일만에 반품을 하고 말았다. 정말로 사무실에서 일하는게 실제로 남성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만든건가 싶어 생각할수록 화가났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이렇게 활발한 시대에 아직도 이런 광고가 성공하고, 또 아무도 이상한 걸 못 느낀다는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페미니스트 파이트 클럽 이 필요한 것인가. 동등하게 입사한 회사 내에서도 여성을 마치 남성들의 보조 정도로 생각하는 문화가 아직도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왜 회사 내에서 여성들은 은연 중에 남성의 보조역할을 강요받거나, 혹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하게되는 것일까. 왜 여성이 하는 말은 남성의 같은 어조에 비해 감정적으로 들리며, 같은 성과를 내도 더 작아보일까. 책을 읽으며 예전의 회사생활을 떠올려봤다. 지금 생각해도 분하거나 어이없는 일도 있고, 통쾌하게 한방먹인 일도 생각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성과 여성은 같은 일을 하고서도 그 일을 포장하거나 드러내는 방식이 다른 듯 하다. 여성은 분명 자신이 잘해서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해도 과도한 겸손으로 기어이 그것이 별것 아닌 일처럼 만들어버린다. 반면에 남성은 자신이 한 일을 최대한 남들 앞에 잘 포장해서 내놓는 일을 더 능숙하게 해내는 것 같다. 물론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가 회사 내에서 겪은 남성들의 일부는 이런 면이 매우 심했다. 

몇 년 전 마케팅 회사의 기획자로 일할 시절, 같은 부서 남자 직원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던 적이 있다. 회사 내 직급 없이 서로 "ㅇㅇ님" 이라는 호칭으로 모든 직원이 평등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일의 특성상 기획자가 모든 일을 기획하여 실행팀에게 일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아 미묘한 상하관계 같은 느낌이 없진 않았다. 공교롭게도 실행팀 직원들은 모두 여성, 기획팀은 나를 제외하곤 모두 남성이었다. 그들은 여성인 내가 자기들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어떻게 해서든 나를 자기들 밑에 두려고 안달인 경우가 많았다. 혹은 일부러 다른 직원들 앞에서 "그때 ㅇㅇ님이 잘못해서 혼냈던거 미안해요. 너무 마음쓰지 말아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난 그에게 잘못해서 혼난적도 없었으며, 혼날만한 위치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망칠뻔한 미팅에 동석하여 1시간 넘게 클라이언트 설득을 도와줬더니 돌아오는 길에 고맙다고 까지 해놓고선 다른 사람들 앞에선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자신이 나보다 위에 있다고 다른 직원들에게 인식시키고 싶었으리라. 

한번은, 다른 기획자 A가 너무 바쁘다고 하길래 그렇다면 내가 세부적인 부분을 돕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이것이 기회다 싶었는지 분명히 자신이 해야되는 부분까지 넘기면서 마치 내가 자신의 비서라도 되는양 굴었다. 나는 정색하며 "그 부분은 저에게 맡길 부분이 아니라 직접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그런 부분까지 돕겠다고 한 것이 아니에요." 라고 말했더니, 그때부터 이상하게 비꼬며 나에게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빡빡하게 구는군요." 라며 각종 인신공격을 했다. 다행히 그 대화는 메신저로 이어지고 있었고, 난 끝까지 고분고분 듣고 있다가 팀 회의시간에 그 안건을 꺼내들었다. 
"제가 A 님을 도우려고 했던 건 그의 비서가 되고싶어서가 아니었어요. A님이 저에게 자신의 일을 다 맡기면서 뭐라고 했는지 다 같이 메신저 대화내용을 보면서 의견을 들어보고 싶네요." 라고 했더니 그 사람 갑자기 당황하더니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모두가 있는 앞에서 자신의 이상한 성격이 드러나는 건 싫었나보다. 그렇게 통쾌한 복수를 했지만, 이 일은 다른 남자직원에게는 내가 당돌하고 감정적인 여자로  기억되는 계기가 되었나보다. 난 그 회의시간에 한번도 목소리를 높인 적도, 흥분한 적도 없었지만, 그 직원은 마치 내가 그 상황에서 소리지르고 흥분했던 것처럼 기억하고 있어 놀란 기억이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이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페미니스트 파이트 클럽 에 잘 나와있다. 이런 모든 상황들은 대부분은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일부는 여성이 스스로 자초하는 것도 있는 듯하다. 칭찬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여성은 칭찬을 받으면 뿌듯하게 드러내는 대신, 어쩔 줄 몰라하며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겸손의 의미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만, 회사 내에서는 어느새 그게 사실이 되어버린다. "그렇군, 그녀는 그냥 보조만 했던거군." 하고 말이다. 



누군가 칭찬을 하면 모든 사족을 다 빼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것. 자신이 잘한 것을 과장되게 자랑할 필요도 없지만, 일부러 숨길 필요도 없다. 그리고 책을 보며 너무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서 놀랐는데 바로 가면증후군 증상 이란 거였다. 여성들은 자신이 이룬 업적에 대해 언젠가 벗겨질 가면이라고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훌륭하고 유명한 여성들조차 '자신이 지금껏 이룬 업적들이 사실은 사람들이 속은것이고 언젠가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날까 무섭다고 느끼는' 가면증후군 증상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도 내가 어떤 부분을 잘해서 칭찬을 받으면, 그것이 사실은 내 실력이 아닌 것 같고, 언젠가 벗겨질 가면같이 느껴져서 불안할 때가 있다. 거기다 스스로 생각할 때 완벽하지 않으면 드러내기 힘들어하는 부분도 많다. 그래서 여성의 경우, 자신이 잘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겸손 때문에, 혹은 스스로의 불안 때문에 다른사람에게 묻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내가 느끼는 불안이 사실은 여성 모두의 불안이었다니, 안타깝기도 하면서도 이제는 좀 더 자신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스트 파이트 클럽 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더이상은 바보같이 굴지말자! 라고 말하는 책이다. 이 책은 여성들이 받는 억울한 차별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여성들이 자주하는 실수나 고쳐야 할 말투, 직장 내 차별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해나가는 것이 좋을지 요목조목 지적해주고, 고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남성과 싸워 이기자는 내용의 책은 아니다. 오히려 남자들의 사회생활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잘하는 부분은 따라해보고, 직접 적용해봄 으로써 여성들이 살아갈 방향을 찾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남성들의 페미니스트 파이트 클럽 가입을 촉구하기도 한다. 여성이 사회에서 좀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제대로 일할 수 있으면 남성들도 유일한 가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유로워져서 길게 보면 서로서로 윈윈 이라고 말이다. 

세계의 반은 여성이다. 남성만의 뛰어난 부분이 있듯, 여성만이 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서로가 현명한 처신을 해서 각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녀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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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7-09-17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보조자라는 인식이 제일 힘들어요...

다림냥 2017-09-17 13:07   좋아요 0 | URL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죠ㅠ 여성은 뒤치닥거리 하러 회사에 들어간게 아닌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