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단식 중인 샤말대표의 편지호소글

* 때로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한 예로> 이런 글을 읽을 때가 그렇습니다.([원문그대로])

 

(손으로 정성것 빼꼭이 쓴 편지를 보기 쉽게 워드로 적어봅니다.)

영원히 사랑하는 동지들
뜨거운 투쟁으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동지들, 여수 보호소에서 제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투쟁하는 노동자입니다.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또 평등
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투쟁하는 철의 노동자입니다.

오늘 2004년 2월 18일 단식 이틀째입니다. 어제부터 출발하는 단식투쟁 마지막까지 계
속 할 것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마다 ‘철의 노동자’, ‘Stop
Crackdown’ 노래와 우리의 요구를 힘차게 외치고 있습니다. 여수 보호소에서 제가 단
식하고, 화성 보호소에서 케이비와 헉 동지, 그리고 명동 농성단에서 4명의 동지들이
단식투쟁에 나섰습니다.

인간사냥 ‘단속추방’ 때문에 8명의 이주노동자들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코리안 드림 안고 한국에 와서, 가족들한테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살자는 약속,
단 1분 만에 무너졌습니다. 그 가족들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들 잃어버린 엄마, 사랑
하는 남편 잃어버린 아내,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아빠 잃어버린 아이들...이들은 어떻
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한국에서 17년 전부터 우리 이주노동자들 많이 탄압, 차별 받고, 노예처럼 살았습니
다. 그런데 동지들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억울해서 죽으면 안 됩
니다. 우리의 권리쟁취를 위해서 당당하게 앞서서 싸워야합니다. 우리도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고 있는 차별, 탄압, 그리고 잘못된 제도에 대해 비판할 권리가
있습니다. 한국 산업 시장에서 우리들은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노동 힘입니다.
우리 모두 노동자입니다.

오래 동안 우리는 ‘불법 체류자’라는 딱치가 붙어 왔습니다. 바로 ”불법 체류자
“라는 이유로 많이 이용당했습니다. 많이, 이주 여성 노동자들 성폭행 피해 받아왔습
니다. 법무부와 노동부 직원들 이렇게 말합니다. “열심히 일이나 하지, 왜 집회는 하
느냐? 집회 하는 거 불법이다.” 그 사람들도 임금체불 당하고, 일하다가 다칠 때 산
재 못 받고, 똑같이 일하면서 차별받고, 그리고 성폭행당하면, 마음이 어떻게 될까
요? 이런 식으로 우리를 언제까지 써먹을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목소리로 집회하고, 조직하고, 한국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선전해서 우리들의 현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 땅에서 노예가 아닙니다. 이 나라의 노동 힘입니다.
더 이상 노예처럼 일시키는 ‘산업연수생 제도’,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고용
허가제’, 우리들을 보호하고 노동권 보장할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겁주고 탄압했던 제도, 법안에 맞서 단결하면서 투쟁합시다. 이제 우리 이주
노동자들도 노동자라는 인정, 노동 권리 받고 살 수 있는 노동비자(노동허가제) 내줘
야합니다. 명동성당에서 오랫동안 투쟁하고 있는 자랑스런 동지들의 희망을 버리지 맙
시다. 질긴 놈이 승리합니다. 우리 투쟁 벌써 3달 넘지만, 시간이 문제 아닙니다. 우
리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모든 힘과 생각 뭉치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40만 이주노동자의 해방, 또 우리처럼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한국 노동자 동지들의 노동해방을 위해서 포기하지 맙시다. 동지들 우리가 앞에 있어
야 만이 모든 연대 동지들 같이 있는 겁니다. 17일 18일 출입국 집회 아주 성공적인
집회였습니다. 우리 동지들 모두 두려워하는 마음 버리고 끝까지 했습니다. 여기서 확
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의 권리 쟁취 위해 끝까지 할 거라는 것! 한국 동지들은 언제나 우
리와 함께 있습니다. 어제도 목숨 걸고 우리 동지들 보호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많이
다쳤다고 소식 들어서 마음 아프지만, 동지들의 영원한 연대가 항상 있어서 우리가 여
기까지 투쟁할 수 있는 거 사실입니다. 그런 동지들이 계셔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동
지들과 함께 평등한 세상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여기 여수 보호소에서 우리 한국 동지들한테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힘내고 열심히 투쟁합시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랑스러운 명동투쟁단 동지들 절대 포기
하지 맙시다. 절대 흩어지지 맙시다. 끝까지 투쟁합시다. 또 같이 연대해주시는 인권
단체들, 사회단체들, 문화 동지들, 그리고 성직자 동지들, 민주노총 동지들, 한국 노
동자 동지들, 학생 동지들, 많이많이 보고 싶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좋은 시간 보내
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날까지 투쟁하겠습니다.
투쟁, 투쟁, 투쟁
여수 보호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killjoy 2004-02-24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대 투쟁합시다.

killjoy 2004-03-13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말 타파씨 후원 계좌:
“최근 단속이 강화돼 명동성당 출입이 어려워요. 한 번 이동할 때마다 차를 대절해야 합니다. 그 비용이 일주일치 농성 비용과 비슷해요. 농성 자금이 많이 부족합니다.”(후원계좌_농협386-12-095004 예금주 김선희)
 

제국에 맞선 세계적 저항

 

[편집자]  개막식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특히 인도와 아시아에서 세계화와 전쟁, 가난과 억압에 반대해 모여든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축제의 장을 열었다. 그리고 수만 명이 넓은 광장에 빼곡히 모여 앉아 아룬다티 로이나 제러미 코빈 같은 연사들의 발언을 들었다. 다음은 아룬다티 로이의 개막 연설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아룬다티 로이

 

지난해 1월, 전 세계에서 온 우리 수천 명은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 모여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 하고 거듭거듭 외쳤습니다. 북쪽으로 몇 만 킬로미터 떨어진 워싱턴에서 조지 부시와 그 측근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세계사회포럼이었습니다. 그들의 프로젝트는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들에서 이런 말들은 몰래 속삭이기만 했었는데, 이제 사람들은 제국주의의 좋은 측면이나 어지러운 세계를 다스릴 강력한 제국의 필요성에 대해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새로운 전도사들은 정의를 희생시켜 질서를 얻고 싶어합니다. 존엄을 희생시켜 복종을 얻고 싶어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배력을 얻고 싶어합니다. 가끔 우리 중 몇몇은 상업 언론이 제공한 “중립적” 자리에서 그 쟁점을 “토론”해 달라고 초청을 받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토론하는 것은 강간에 대해 찬반 토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로 제국주의가 그립다고 말해야 합니까?

어쨌든, ‘새로운 제국주의’는 이미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것은 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을 개조하고 변형시킨 것입니다. 역사상 최초로,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를 없애버릴 수 있는 무기를 가진 하나의 제국이 철저하고 단일한 경제적·군사적 패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 제국은 서로 다른 시장들을 개방시키기 위해 서로 다른 무기들을 사용합니다. 미국 크루즈 미사일의 십자선[망원경 등의 초점에 새겨진 선]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수표책에 오르지 않은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신자유주의의 총아가 되고 싶다면 아르헨티나가 그 모델이며, [여러분이 신자유주의의] 말썽쟁이라면 이라크처럼 될 것입니다.

 

새로운 제국주의

 

지정학적으로 제국에 전략적 가치가 있거나, 일정 규모의 “시장”이나 사유화될 수 있는 사회기반시설이 있거나, 아니면 불행히도 석유·금·다이아몬드·코발트·석탄 같은 귀중한 천연 자원을 가진 가난한 나라들은 [제국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지, 그렇지 않으면 군사적 표적이 됩니다. 가장 많은 천연 자원을 보유한 나라들이 가장 위험합니다. 만약 그들이 자원을 상업 기구에 자발적으로 내놓지 않으면 국내에서 사회 불안이 조성되거나 대외적 전쟁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이 새로운 제국의 시대, 겉 다르고 속 다른 때에, 관련 회사 중역들은 해외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워싱턴의 ‘공공 정직성 센터’는 미국 정부 산하 국방정책위원회 위원 30명 중 9명이 2001년과 2002년에 7백60억 달러 상당의 군수 계약을 수주한 회사들과 연계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는 이라크해방위원회 의장이었습니다. 그는 벡텔 그룹의 이사이기도 합니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은 슐츠는 “나는 벡텔이 그[이라크 전쟁]로부터 특별히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면, 벡텔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회사다. 그러나 거기서 뭔가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전쟁 뒤에 벡텔은 6억 8천만 달러짜리 이라크 재건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야만적인 계획은 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거듭거듭 이용됐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당연히, 제국이 벌이는 전쟁은 모두 정의로운 전쟁으로 둔갑합니다. 이것은 대체로 상업 언론의 구실입니다. 상업 언론이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그저 지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입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가 선택한 도덕적 입장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대중 매체의 경제적 작동 방식에 고유한 것입니다.

대다수 국가는 적당히 무서운 가족 비밀[일부 또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가지고 있거나 공유하는,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서로 비밀로 하는 신념과 지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언론이 거짓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강조되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정당한 전쟁의 표적으로 인도가 선택됐다고 합시다. 그러면, 1989년 이후 카슈미르에서 약 8만 명이 살해당했으며 그들은 대부분 무슬림이고 인도보안군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해마다 약 6천 명씩 사망한 것입니다), 아직 1년도 채 안 지난 2003년 3월 구자라트 거리에서 2천 명 넘는 무슬림이 살해당하고 여성들이 집단 강간당하며 아이들이 산 채로 불에 타 죽고 15만 명이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동안 경찰과 정부는 이를 지켜보기만 하거나 가끔은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 이런 범죄들 때문에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오히려 이를 감독한 정부가 다시 선출됐다는 사실,…이 모든 것이 전쟁 직전에 전 세계 신문에 대서특필됐을 겁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 도시들이 크루즈 미사일의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고 우리 마을들을 날카로운 철조망이 빙 둘러싸며 미군 병사들이 우리 거리를 순찰하고 나렌드라 모디[구자라트 주 총리로 광적인 힌두교 배타주의자]나 프라빈 토가디아[힌두교 배타주의 단체인 세계힌두교협회(VHP) 지도자] 또는 인기 있는 보수적 지도자 중 어느 누가 사담 후세인처럼 미국에 붙잡혀 머리에 이가 있는지 금니가 있는지 검사당하는 장면을 황금 시간대 TV 화면에서 보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장”이 개방돼 있는 한, 엔론·벡텔·핼리버튼·아서앤더슨 같은 기업들이 자유를 누리는 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우리 지도자들은 민주주의, 다수결주의, 파시즘 사이의 차이를 과감하게 흐릴 수 있습니다.

 

‘태생적 동맹’

 

우리 정부가 ‘비동맹’이라는 인도의 자랑스런 전통을 비겁하게 포기하고 ‘완벽한 동맹’(유행어로는 “태생적 동맹”인데, 인도·이스라엘·미국이 “태생적 동맹”이라는 겁니다) 대열의 맨 앞에서 싸우러 달려갔기 때문에 그 적법성을 훼손하지 않은 채 억압적 정권으로 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습니다.

정부가 살해하고 투옥한 사람들만이 정부의 피해자가 아닙니다. 쫓겨나고 빼앗기고 기아와 빈곤이라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람들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개발” 프로젝트 때문에 [생계 수단을] 빼앗겼습니다. 지난 55년 동안 대형 댐 때문에 쫓겨난 인도 사람만 해도 3천3백만 명에서 5천5백만 명이나 됩니다. 그들은 법에 호소할 수 없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경찰이 평화적 시위대에 총을 쏜 일련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시위대는 대부분 아디바시[Adivasi : 소수부족]와 달릿이었습니다. 삼림지 침입 때문에, 그리고 댐·광산·철강공장·기타 “개발” 프로젝트에 맞서 삼림지를 보호하려다가, 빈민들이, 특히 달릿과 아디바시 사람들이 죽거나 살해당했습니다. 경찰이 발포한 경우 거의 언제나 정부의 전략은 폭력 행위 때문에 경찰이 발포하게 됐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총을 맞은 사람들은 즉시 호전적인 사람들로 몰렸습니다.

인도 전역에서 미성년자들을 포함해 무고한 사람 수천 명이 테러방지법(POTA : Prevention of Terrorism Act)에 따라 체포됐고 재판도 없이 무기한 구금 상태에 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 시기에 빈곤은 테러리즘과 교묘하게 결부되고 있습니다. 기업 세계화의 시기에 빈곤은 범죄입니다. 빈곤의 심화에 반대해 항의하는 것은 테러리즘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대법원은 파업에 돌입하는 것도 범죄라고 말합니다. 법원을 비판하는 것도 물론 범죄입니다. 그들은 출구를 봉쇄하고 있습니다.

‘옛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제국주의’도 그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대리인들, 즉 제국에 봉사하는 부패한 토착 엘리트들의 연결망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도와 관련된 엔론의 더러운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당시 마하라슈트라 주정부가 엔론과 체결한 전력 구매 계약에 따르면, 인도 농촌 개발 예산 전체의 60퍼센트나 되는 금액이 엔론의 이윤으로 가게 돼 있었습니다. 미국 회사 하나가 약 5억 명을 위한 사회기반시설 개발 자금과 맞먹는 이윤을 보장받은 것입니다!

옛날과 달리, 새로운 제국주의는 말라리아나 설사, 조기 사망의 위험을 무릅쓰고 열대 지방을 터벅터벅 돌아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새로운 제국주의는 이메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직접 발로 뛰는 옛 제국주의의 저속한 인종차별은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새로운 제국주의의 기초는 새로운 인종차별입니다.

미국의 “칠면조 사면” 전통은 새로운 인종차별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1947년 이후 해마다 미국칠면조연맹(National Turkey Federation)은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한 마리를 대통령에게 선물합니다. 해마다 대통령은 관대함을 보여 주는 의식 뒤에 그 특별한 새는 살려 주고 다른 새를 잡아먹습니다. 대통령의 사면을 받은 ‘선택된 한 마리’는 버지니아 주의 프라잉 팬 파크(Frying Pan Park)로 보내져 천수를 누리게 됩니다. 추수감사절을 위해 사육된 나머지 5천만 마리는 추수감사절에 도살돼 잡아먹힙니다. 대통령 칠면조 계약을 따낸 회사 콘아그라 푸즈(ConAgra Foods)는 그 행운의 새들에게 사교성을 훈련시켜 고관대작, 어린 학생들, 언론과도 교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머지않아 그 새들은 영어로 말도 할 겁니다!)

 

“칠면조 사면”

 

그것이 바로 기업의 시대에 새로운 인종차별이 작용하는 방식입니다. 잘 키운 칠면조들―여러 나라의 토착 엘리트들, 부유한 이주민 공동체, 투자 은행가들, 가끔은 콜린 파월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몇몇 가수들, 몇몇 작가들(저 같은)―은 사면을 받고 프라잉 팬 파크에 갈 수 있습니다. 그 나머지 수백만 마리는 일자리를 잃고 집에서 쫓겨나며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에이즈로 죽습니다. 원래 그들은 잡아먹기 위해 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라잉 팬 파크에 있는 행운의 칠면조들은 잘 지냅니다. 그들 중 일부는 IMF와 WTO를 위해 일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 중 누가 과연 그런 기구들을 칠면조를 잡아먹는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일부는 칠면조선택위원회 위원들로 근무합니다. 그렇다면 그들 중 누가 과연 칠면조들이 추수감사절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 자신이 추수감사절에 참가하면서 말입니다! 누가 과연 빈민들이 기업 세계화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프라잉 팬 파크에 가기 위해 난리들입니다. 그 와중에 대부분 죽어나간들 뭐가 어떻겠습니까?

새로운 인종차별 프로젝트의 일부는 ‘새로운 대량학살’입니다. 경제적 상호의존의 이 새 시대에 경제 제재는 새로운 대량학살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현장에서 사람들을 직접 살해하지 않고도 대량 살상이 가능한 상황을 조성한다는 뜻입니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유엔의 이라크 인도주의 조정관이었던(그 뒤 넌더리가 나서 사임한) 데니스 핼리데이는 이라크 경제 제재를 대량학살이라는 용어로 묘사합니다. 경제 제재는 이라크에서 어린이 5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감으로써 사담 후세인의 악행을 능가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아파르트헤이트를 공식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은 구시대적이고 불필요한 일입니다.

국제 무역·금융 기구들이 감독하는 다자간 무역법과 금융 협정의 복잡한 체계는 빈민들이 그들의 반투스탄[남아공의 흑인 격리 지역]에서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 전반적 목적은 불공정을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방글라데시 의류 제품에 미국산 의류보다 20배나 높은 세금을 매기는 데 다른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세계 카카오 열매의 90퍼센트를 생산하는 나라들이 세계 초콜릿의 겨우 5퍼센트만을 생산하는 데 다른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아이보리 코스트[코트디부아르의 옛 이름]나 가나 같은 카카오 열매 생산국들이 초콜릿 생산을 시도했다가 엄청난 관세 부과로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데 다른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자국 농부들에게 하루 10억 달러씩 보조금을 지급하는 부국들이 인도 같은 빈국들에게 전기 보조금을 포함한 모든 농업 보조금을 폐지하라고 요구하는 데 다른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50년 넘게 식민주의 정권들한테 약탈당했던 옛 식민지들이 바로 그 정권들에 대한 외채의 늪에 빠져 해마다 약 3천8백20억 달러씩 상환하는 데 다른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 모든 이유 때문에, 칸쿤에서 무역 협정이 무산된 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했습니다. 비록 우리 정부들이 신뢰를 회복하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주 많은 나라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몇 년 동안 투쟁한 결과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칸쿤에서 배운 것은 진정한 타격을 가하고 급진적 변화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국내의 저항 운동들이 국제적 동맹을 결성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칸쿤에서 우리는 저항을 세계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어떤 개별 국가도 혼자서 기업 세계화 프로젝트에 맞설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관한 한, 우리 시대의 영웅들이 갑자기 찌그러지는 것을 우리는 몇 번이나 목격했습니다.

비범하고 카리스마적인 사람들, 저항 운동의 거인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국가 수반이 되면 세계 무대에서 무기력해집니다. 저는 브라질 대통령 룰라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룰라는 지난해 세계사회포럼의 영웅이었습니다. 올해 그는 IMF 지침들을 이행하고 연금 혜택을 축소하며 노동자당에서 급진파를 쫓아내기에 바쁩니다. 전 남아공 대통령 넬슨 만델라도 생각납니다. 1994년에 집권한 지 2년도 채 안 돼 만델라 정부는 ‘시장의 신’ 앞에 거의 무조건 무릎을 꿇었습니다. 만델라 정부는 대규모 사유화와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제도화해 수많은 사람들한테서 집, 일자리, 물과 전기를 빼앗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배신감에 우리 가슴을 치면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찌그러진 영웅인가 민중의 힘인가

 

어떻게 보더라도 룰라와 만델라는 걸출한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저항 운동에서 반대편으로 넘어가 정부에 들어가게 되는 순간 그들은 갖가지 위협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것은 자본 도피 위협인데, 이것은 어떤 정부라도 하룻밤 사이에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카리스마나 투쟁 경력이 기업 카르텔을 약화시킬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모르거나, 그 문제에 관한 한, 권력의 작동 방식을 모르는 것입니다. 급진적 변화는 정부들끼리 협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민중의 힘으로 강요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세계 최고의 지성 몇몇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것입니다. 이런 논쟁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쟁취하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훼손돼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정치 행동을 희생시킨 채 이 과정에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면, 세계 정의 운동에서 그토록 중요한 구실을 해 왔던 세계사회포럼이 우리 적들의 자산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긴급히 토론해야 하는 것은 저항의 전략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표적을 겨냥해야 하고, 진정한 전투를 벌여야 하며, 진정한 타격을 가해야 합니다. 간디의 ‘소금 행진’은 단순한 정치적 연극이 아니었습니다. 간단한 저항 행위로 바다까지 행진해서 스스로 소금을 만든 수천 명의 인도인은 소금세법을 깨뜨렸습니다. 그것은 영국 제국의 경제적 토대를 겨냥한 직접적 타격이었습니다. 그것은 실질적이었습니다. 우리 운동이 몇몇 중요한 승리를 얻었지만, 우리는 비폭력 저항이 무기력하고 자족적인 정치적 연극으로 전락하도록 놔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갈고 다듬어야 할 매우 소중한 무기입니다. 그것이 단순한 볼거리, 언론의 사진 촬영 기회로 변하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지난해 2월 15일, 5대륙에서 1천만 명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 시위를 벌인 것은 대중의 도덕성이 분출한 경이로운 광경이었습니다. 그것은 경이로웠지만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2월 15일은 주말이었습니다. 하루 일을 관두고 나와야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휴일 시위는 전쟁을 막지 못합니다. 조지 부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압도적 여론을 무시하고 오만하게 행동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교훈이 돼야 합니다. 부시는 이라크를 정복하고 식민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프가니스탄, 티벳이 그랬고, 지금 체첸이 그러하며, 한때 동티모르가 그랬고, 팔레스타인이 아직도 그렇듯이 말입니다.

부시는 위기를 쫓아다니는 언론― 그러나 위기로 먹고사는 언론 ―이 이제 그것을 포기하고 다른 데로 이동할 때까지 자신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머지않아 [병사들의] 시체는 언론에서 사라질 것이고 격분했던 우리는 모두 흥미를 잃게 될 것입니다. 부시는 바로 그걸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 운동에는 중요한 세계적 승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옳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결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뭔가 쟁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뭔가를 쟁취하려면 우리는 뭔가에 동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마 최소한의 의제일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정말로 반대한다면, 우리의 시선을 이라크로 돌립시다. 이라크는 이 둘 다의 필연적인 절정입니다. 사담 후세인이 체포되자 많은 반전 운동가들이 혼란에 빠져 후퇴했습니다. 그들은 사담 후세인이 없어졌으니 세계가 더 나아진 것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묻습니다.

 

세계적 승리

 

하지만, 이 문제를 정확히 살펴봅시다. 사담 후세인을 체포한 미군에 박수를 보내고 거슬러 올라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을 정당화하는 것은 칼잡이 잭[Jack the Ripper : 19세기 말 영국의 연쇄 살인범]이 보스턴 교살자[Boston Strangler : 1960년대 미국의 연쇄 살인범]를 할복 살해한 것을 신성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25년 동안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합작 사업을 해 오던 둘이 그렇게 했는데 말입니다. 그들은 더러운 거래를 둘러싸고 사이가 틀어진 사업 파트너들입니다. 잭이 최고경영자(CEO)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제국주의를 반대한다면, 우리는 미국 점령에 반대한다는 것과 미국은 이라크에서 철수해야 하고 이라크 민중에게 전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의 저항을 고조시킬 수 있을까요? 정말 작은 것에서 시작해 봅시다. 점령에 반대하는 이라크 저항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나 저항 세력의 정체(옛 살인자 바트당 세력인가, 아니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가?)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쟁점이 아닙니다. 우리는 점령에 반대하는 세계적 저항이 돼야 합니다.

우리의 저항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제국이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실제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행동을 뜻합니다. 그것은 병사들이 전투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 예비군들이 복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 노동자들이 배와 비행기에 무기 싣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인도와 파키스탄 병사들을 이라크로 보내 뒤처리를 맡기려는 미국 정부의 계획을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들에 사는 우리가 저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심지어 세계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부당함을 영속시키고 미국의 패권을 확립하려 합니다. 세계사회포럼은 정의와 생존을 요구합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전쟁중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함께 23호 (2004년 2월 1-13일) 세계사회포럼 특집호 8-9면

http://www.alltogether.or.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감방을 한번 죽 돌아다닌 신부는 내 감방문을 열고 들어와 대충 만들어 놓은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대화하였다. 나는 신부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말하였다.

"당신 같은 여자들이 감옥에 들어오는 거예요. 가정이나 아이들을 믿지 않고 공부나 믿는 여자들 말이오."

- 아그네스 스메들리 [대지의 딸] 31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 관광객이 어떤 목가적인 장면을 찍기 위해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박하게 차려입은 한 사람이 해변가 모래 위로 밀려오는 파도에 흔들거리는 낚싯배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었다. 카메라 셔터를 찰칵 누르자 그 어부가 잠에서 깨어났다. 관광객은 그에게 담배 한개비를 건네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날씨도 좋고, 바다에는 고기도 많은데 왜 당신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더 잡아오지 않고 여기 이렇게 빈둥거리며 누워있소?"

  어부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오늘 아침에 필요한 만큼 충분히 고기를 잡았기 때문이죠."

  그러자 관광객이 말했다. "그러나 이걸 한번 상상해보시오. 만약 당신이 하루에 서너 차례 바다에 출항한다면 서너배는 더 많은 고기를 잡아올 수 있소.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고 있소?" 어부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한 일년쯤 지나면 당신은 통통배 한척을 살 수 있게 될 겁니다. 2년만 고생하면 통통배를 하나 더 살 수 있게 되겠지요. 그리고 3년이 지나면 작은 선박 한두척을 살 수 있게 될 테고,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시오. 언젠가는 당신 소유의 냉동공장이나 훈제가공공장을 지을 수 있게 될 테고, 결국에는 당신이 소유한 여러 척의 어선들을 진두 지휘하여 물고기떼를 추적할 헬기도 한대 장만할 수 있게 되거나 아니면 당신이 잡은 고기를 대도시까지 싣고 갈 트럭을 여러 대 살 수 있게 되겠지요. 그러고 나면 …"

  "그러고 나면?" 어부가 물었다.

  관광객은 의기양양하게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고 나면, 당신은 조용히 멋진 해변가에 앉아서 햇볕을 받으며 졸면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게 될 겁니다!" 그러자 어부가 관광객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바로 당신이 여기 오기 전까지 내가 하고 있었던 거잖소!"

하인리히 뵐

- 볼프강 작스, "물질적으론 부자, 시간적으론 가난뱅이" ([녹색평론] 제73호 2003년 11-12월호)에서 재인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국과 맞서기

아룬다티 로이

 

나는 “제국과 맞서는 법”에 대해 발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질문이며 내겐 쉽게 내놓을 답이 없습니다.

“제국”과 맞서기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리는 “제국”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미국 정부(와 그것의 유럽 위성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 그리고 다국적기업들을 의미할까요? 아니면 그 이상의 것일까요?

많은 나라에서 제국은 기타 종속적 우두머리들과 몇몇 위험한 부산물들 즉 민족주의, 종교적 편협성, 파시즘, 그리고 당연히 테러리즘을 싹틔웠습니다. 이 모든 것은 기업의 세계화 기획과 팔짱을 끼고 나란히 나아갑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국이라는 인도는 현재 기업의 세계화 기획의 선두에 서있습니다. WTO는 인구 십억의 인도 “시장”을 억지로 개방시켰습니다. 정부와 인도 엘리트 집단은 기업화와 사유화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수상, 내무장관, 해외투자장관, 즉 인도에서 엔론사와의 거래를 승인했던 사람들, 나라의 하부구조를 다국적기업들에게 팔아 넘기고 있는 사람들, 물, 전기, 석유, 철강, 보건, 교육, 원거리통신을 사유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두 RSS의 멤버들이거나 숭배자라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RSS는 히틀러와 그의 방법들을 공공연히 숭배해온 힌두교 극우단체입니다.

인도에서 민주주의의 파괴가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능률과 속도에 발맞추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업의 세계화 기획이 인도 민중의 삶 속으로 거세게 질주해 들어오는 동안 대규모 사유화와 노동 “개혁들”이 사람들을 자기 땅과 자기 일에서 쫓아내고 있습니다. 수백명의 피폐해진 농부들이 살충제를 먹고 자살하고 있습니다. 굶어죽는 사람들에 대한 보고가 나라 전역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엘리트 집단이 세계 정상 부근의 어딘가에 있는 상상의 목적지로 여행해 가는 동안 땅과 집을 빼앗긴 사람들은 범죄와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 같은 좌절과 국가적 환멸의 분위기는 역사가 보여주듯 파시즘의 완벽한 온상입니다.

인도 정부의 두 팔은 완벽한 협공 작전을 전개해오고 있습니다. 한 팔로는 인도를 통째로 헐값에 팔아치우고 있고 다른 팔로는 주의를 딴 데로 돌리며 힌두민족주의와 종교파시즘을 들짐승의 울부짖음 소리 같은 무시무시한 합창곡으로 배합하고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핵실험을 실시하고 역사책을 다시 쓰고 교회를 불태우고 이슬람사원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검열, 감시, 시민의 자유와 인권의 정지, (특히 종교적 소수자들인 무슬림 민중과 관련하여) 누구는 인도 시민이고 누구는 아닌지에 대한 규정이 지금 흔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구자라트 주에서 이천명의 무슬림들이 주정부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계획적인 학살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특히 무슬림 여성들이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발가벗겨지고 집단 강간을 당한 후 산 채로 불태워졌습니다. 방화범들이 상점과 가정집, 직물공장, 이슬람사원을 불태우고 약탈했습니다. 십오만명 이상의 무슬림들이 자기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무슬림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이 황폐화되었습니다. 

구자라트가 불타는 동안 인도 수상은 MTV에서 자기의 신작시들을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학살을 조성한 정부가 올해 1월 충분한 다수표를 얻고 선출되어 정권을 다시 잡았습니다. 아무도 학살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학살의 설계자이자 자랑스런 RSS 멤버인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는 구자라트의 주수상으로서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만일 그가 사담 후세인이었다면 당연히 모든 잔학 행위가 CNN에 나왔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담 후세인이 아니며 인도 “시장”은 전지구적 투자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므로 대학살은 난처한 문제거리조차 되지 않습니다. 

인도에는 일억 이상의 무슬림이 삽니다. 우리들의 오래된 땅에 시한폭탄이 째각거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뜻하는 바는 자유 시장이 국가의 경계를 허문다는 것이 하나의 신화라는 사실입니다. 자유 시장은 국가의 통치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합니다. 

빈부격차가 커져갈수록 자원을 매점하려는 싸움이 거세집니다. “결탁에 의한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키우는 작물과 우리가 마시는 물과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우리가 꾸는 꿈을 기업화하기 위해서 기업의 세계화는 가난한 나라들에서 인기 없는 개혁들을 강행하고 반란을 진압할 충직한 권위주의적 부패 정부들의 국제 동맹을 필요로 합니다.

기업의 세계화 ― 또는 그것을 제 이름으로 불러볼까요? 제국주의 ― 는 자유로운 척하는 언론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정의를 시행하는 척하는 법정을 필요로 합니다. 

한편으로 북반구의 나라들은 자신들의 국경선과 대량 살상용 무기 저장고를 강화합니다. 결국에 그들이 세계화하려는 것은 돈, 재화, 특허, 서비스일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시인해야만 할겁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도 아니고 인권에 대한 존중도 아닙니다. 인종차별이나 화학무기와 핵무기나 온실가스방출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 조약도 아니고 (신이시여 이것만은 예외로 해주시기를!) 정의에 대한 국제 조약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이상이 모두 “제국”인 것입니다. 이 충직한 동맹, 이 외설적인 권력의 축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과 그것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사이의 이 크게 멀어져 가는 간격.

우리의 투쟁, 우리의 목표, 다른 세계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그 간격을 제거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제국”에 저항해야 할까요?

좋은 소식은 사정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큰 승리들이 있었습니다. 이곳 라틴 아메리카에서 여러분은 매우 많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볼리비아에는 코참밤바가 있습니다. 페루의 아레퀴파에서 봉기가 있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아르헨티나 민중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IMF가 야기한 참혹한 파괴의 잿더미에서 나라를 고쳐 짓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도 기업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운동이 힘을 모으고 있으며 이는 종교적 파시즘에 반대하는 진정한 유일 정치 세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업의 세계화의 빛나는 저 대사들, 엔론, 벡텔, 월드컴, 아서 앤더슨에 대해 말하자면 지난 해 그들은 어디에 있었고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당연히 이곳 브라질에서 우리가 물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작년에는 누가 대통령이었으며 지금은 누가 대통령이 되었습니까?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무력하고 절망적인 어두운 순간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전쟁이라는 차양을 쳐놓고 그 아래에서 양복 입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폭탄 비가 우리 위로 내리고 크루즈미사일이 하늘을 가로질러 미끄러져 가는 동안 계약서에 서명이 되고 특허가 등록되며 석유수송관이 설치되고 천연자원이 약탈되고 물이 사유화되고 조지 부시가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이 갈등 상태를 “제국”과 그것에 저항하는 우리들 사이의 직접 정면 대결로 본다면 우리가 지고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보는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들,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제국”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당장 막을 수는 없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발가벗겼습니다. 우리가 그것의 가면을 벗겼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열린 장소로 끌어내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세계를 무대로 그 잔인하고 부정한 나신을 드러낸 채 우리 앞에 서있습니다.

제국은 분명 전쟁으로 치닫겠지만 그것은 이제 그 그림자를 보는 것마저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한 모습을 공공연히 드러냈습니다. 자기편의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추악한 그 모습을. 오래지 않아 미국 민중 대다수가 우리의 동맹이 될 것입니다. 불과 며칠 전 워싱턴에서 25만명의 사람들이 이라크전에 반대하며 행진을 했습니다. 매달 그 항의는 힘을 더해 가고 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이전에 미국은 하나의 은밀한 역사였습니다. 특히 자기 민중들에게 비밀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의 비밀은 역사가 되었으며 미국의 역사는 공개적인 지식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거리의 이야깃거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모든 주장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 중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은 미국 정부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가져다주기 위해 깊이 헌신한다는 소리입니다. 독재와 이데올로기적 타락에서 구원하기 위한 민중 죽이기는 물론 미국 정부의 오랜 농담입니다. 이곳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분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사담 후세인이 무자비한 독재자이고 살인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의 최악의 만행들은 미국 정부와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지요.) 그가 없어지면 이라크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되리란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본다면 미스터 부시라는 사람이 없어지면 전 세계가 한결 더 나은 상태가 될 것입니다. 사실상 그는 사담 후세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백악관의 부시를 폭격해야 할까요?

부시가 사실도 국제 여론도 개의치 않고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벌이기로 결심했음은 더없이 명백합니다. 동맹을 구하는 모병 공세 속에서 미국은 사실들을 날조해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무기사찰이라는 제스처게임은 국제 에티켓의 어떤 왜곡된 형태에 대해 미국 정부가 내놓는 공격적이고 모욕적인 양보물입니다. 그것은 마치 최종 순간의 “동맹들”이나 어쩌면 국제 연합이 기어 들어갈 수 있게 “애완견용 출입문”을 남겨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새 이라크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기억의 날을 세울 수 있고 우리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귀를 멀게 하는 굉음이 되기 전에 계속해서 여론을 형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라크전쟁을 유리어항으로 바꾸어 미국 정부의 만행들을 사방에서 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지 부시와 토니 블레어(그리고 그들의 동맹들)를 그들 자신으로 즉 비겁한 아기 살해자들, 물에 독을 푸는 자들, 겁 많은 장거리 폭격수들이라고 폭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민불복종을 백만 가지 다른 방법으로 재창안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집단적인 골칫거리가 되는 백만 가지 방법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조지 부시가 “우리와 한편이 아니면 테러리스트 편이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사양하겠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세계 민중은 심술쟁이 미키마우스와 미친 율법학자들 중에서 한쪽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략은 제국과 맞서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포위 공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의 숨구멍을 막기. 창피주기. 조롱하기. 우리의 예술과 우리의 음악과 우리의 문학과 우리의 완강함과 우리의 기쁨과 우리의 슬기와 우리의 더없는 가차없음으로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가 세뇌 당해 믿게 된 그런 이야기들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기업 혁명은 그들이 팔고 있는 것인 그들의 생각, 그들 판 역사, 그들의 전쟁, 그들의 무기, 그들의 불가피성 개념을 우리가 거부할 때 붕괴할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많고 그들은 적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그들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합니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금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 고요한 날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녀의 숨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2003년 1월 27일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제3회 세계사회포럼 연설문

(번역 김유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