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마녀 영덜트 시리즈 2
거트루드 크라운필드 지음, 온(On) 그림, 조현희 옮김 / 희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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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어른들에게 필요한 단순한 이야기

- 왕자와 마녀가 말해주는 것



거트루드 크라운필드의 '그림자 마녀'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영덜트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읽게 되었다. 어른들은 가끔 동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어른을 위한 동화라거나,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몇 번이나 잊었다.

누군가를 구하러 가는 왕자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전개였다.

그리고 당연한 듯 찾아오는 정의의 승리까지 말이다. 모든 것이 뻔하고 단순해서 좋았다.

지나치게 복잡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요즘, 이렇게 유치하리만큼 맑고, 명료한 이야기가 오히려 마음에 오래 남는 법이다.


이야기는 전형적이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따뜻한 요정들이 가득한 빛의 왕국과 어둡고 컴컴한 그림자 나라

그 속에서 빛의 왕자에게 선의를 베풀었다가 자신의 오빠인 사악한 마법사의 꾀임에 빠져 갇혀버린 그림자 마녀

어둠에 갇힌 그림자 마녀를 구하기 위해서 모험을 떠나는 불잉걸 왕자.



어릴 때 읽었던 수많은 동화들이 떠오른다.

왕자와 공주가 나오던 이야기들 속에서 공주만 마녀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전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자 마녀는 그 전형적인 이야기에서도 조금 더 다른 점을 보여준다.

무조건적인 도움과 마녀를 향한 충신들의 애정이다.


보통의 마녀들은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목적이라서 자신의 곁에 있는 부하들까지도 이용할 뿐 애정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책 속의 마녀는 자신의 충복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주고 있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마녀가 위험에 빠지자마자 충복인 일렁이는 그림자는 자신의 사랑하는 주인을 구하기 위해서 홀로 마법사와 대면하고 마법사에게 마녀의 행방을 들은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 불의 왕국까지 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맹목적인 충신이라더라도 자신의 주인이 제대로 애정을 주지 않았다면 결코 그런 행동을 했을 리는 없다 특히나 그림자 나라에서 말이다.



거기다 불의 왕국 사람들과 왕자는 어떤 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선한 사람들이다.

불잉걸 왕자가 마녀를 구하러 떠나기 시작하자 앞다투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언제나 왕자 혼자서 공주를 구하러 가야 하는 동화의 이야기와 다르게 이 이야기에는 조력자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까지 읽은 동화들보다도 동화가 품을 수 있는 감정의 순도가 짙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단순한 선악 구조로 그려지지만, 그 단순함 안에는 두려움을 마주하는 용기,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 스며들어 있다. 왕자의 결정, 마녀의 존재, 용기를 이용해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는 복잡한 철학인 아닌 순수한 감정의 언어로 전해진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가 동화에서 멀어지는 건 동화가 아이들의 책이라거나 단순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자 마녀는 단지 이야기만 좋은 것이 아니다. 페이지마다 들어찬 단순하지만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들은 한 장면 한 장면을 오래 지켜보게 만든다. 특히 많은 색상을 사용하지 않고 검은색, 회색, 노란색 정도로만 표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둠을 표현한 장면조차도 무겁지 않게 느껴졌다. 노란색을 사용한 부분은 오히려 따뜻함과 포근함이 극대화되는 효과를 주어서 이야기 전체를 감싸안는 분이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마녀의 실루엣, 왕자의 빛, 국경지대의 단순한 묘사들까지 모두가 너무 잘 어울렸고, 이 책과 참 잘 어울리는 삽화 일러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책이란 그림만 튀어서도 안되고 글과 어우러져야 한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지만 그림이 어두워서도 안된다. 이 책은 그 원형을 잊지 않았다.


그림자 마녀는 누군가에겐 너무 유치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해서 만들긴 했지만 단순한 이야기로 만들어진 동화책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단순함과 유치함이야말로 동화의 본질이고, 그렇게 해야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 맹목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에서 얻는 감정은 더 진하다.


277페이지로 짧지 않은 내용이지만, 단순하고도 묵직하다. 무겁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동화를 보고 듣고 읽으며 자랐다. 그 이야기들은 해피엔딩을 약속했고, 진심과 용기가 언제나 악을 이긴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어지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오랜만에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조용히 두드렸다. 내 안의 동심이 세상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생각을 깨웠다. 눈부시게 반짝이진 않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이야기.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함께 끌어안아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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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라이언 - 스스로를 찾아가는 라이언의 모험
카카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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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꿈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포기하려 했던 꿈, 꿈을 지켜주려는 사랑, 그리고 라이언의 작고 단단한 용기


'그래도 라이언'은 카카오 프렌즈의 프리퀄 웹툰으로 3월부터 연재되고 있었던 웹툰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이다.

웹툰이지만, 대사가 없이 일러스트만으로 연출을 시도한 작품인데, 서양의 그래픽 노블과 비슷하게 통 일러스트를 사용했다는 점이 재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대부분 대사가 없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몇 장의 짧은 설명을 제외하면 오롯이 그림만으로 감정을 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말 없는 이야기들이 더 마음에 깊이 스며든다. 라이언이라는 캐릭터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일까?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 깊고 다정한 사자, 라이언의 이야기는 목소리가 없어도 온기가 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 라이언의 일상을 그려낸 것이 아니다. 처음엔 꽤 엉뚱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에 많은 감정과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생각보다 라이언이라는 캐릭터는 더 무겁고 묵직한 존재였다.


언제나 둥둥섬을 탈출해서 떠나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왕위 계승을 결심한 라이언과 그런 손주의 마음을 이해하고  기꺼이 대신 왕관을 쓴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가는 갈기 없는 사자 라이언의 이야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세계 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라이언이 자신의 꿈을 사진으로 만들어 벽에 액자로 걸어둔 장면이었다. 액자 속엔 라이언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상상 속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귀엽기보다는 먹먹함이 먼저 밀려왔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렇게라도 꿈을 품고 싶었을까?

너무 오래 바라기만 하면, 꿈은 점점 현실과 멀어지고 결국 벽 속에만 남는 환상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라이언은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위해서 달리고 또 달렸겠지 결국 실패로 남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끝내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하나 모았던 보물들을 버리는 장면에서는 이제는 꿈도, 욕망도, 기대도 내려놓겠다는

쓸쓸한 결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렸다. 그렇게 왕위를 계승하고 나면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그래도 라이언이라는 책의 제목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해 보려는 라이언의 작고 단단한 용기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카카오 프렌즈가 이제는 단순한 캐릭터 브랜드가 아니라, 캐릭터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담긴 거대한 세계관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카카오 프렌즈들이 어느새 우리에게 자신들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은 만화책과 일러스트북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작은 동화, 한 편의 짧은 애니메이션 같은 감동을 준다.

단순히 귀여움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잔잔한 진심이 담긴 주인공들.​


카카오 프렌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충분히 소장용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림 한 장 한 장의 완성도가 높고 그림 속에 감정도 깊게 들어 있어서 보면 볼수록 오래 그 장면에 머무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카카오 프렌즈 중에서 무지와 콘의 서사를 좋아하는 편인데, 둘의 이야기도 꼭 책으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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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의 바다 - 백은별 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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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사랑,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뜨겁게

– 풋풋함을 넘어서 진심을 담아낸 순수한 로맨스 판타지



'윤슬의 바다' 이름처럼 예쁜 표지를 가진 이 책은 내 기준 아주 어린 작가님의 손끝에서 태어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다.

2009년생 아직 고등학생 작가님의 이력을 접하게 되면 놀라움과 동시에 얼마나 잘 썼을까? 하는 의문부터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그런 선입견은 빠르게 무너진다. 물론 아직 가능성이 높은 작가님의 작품이다 보니까 성장의 길을 열어놔야겠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진솔하고, 더 오래 남는 소설이었다.


​소설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이 너무 진하고, 그 서사의 방식은 생각보다 더 단단하다.

고등학생, 그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감정의 깊이와 감정의 표현에 무척이나 감탄했다.

유명 작가분들의 정제된 문장과는 사뭇 다른 날 것의 솔직함,

그리고 그 솔직함에서 오는 진심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무기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초능력이 존재하는 사회다. 하지만 그 능력은 존중의 대상이 아닌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사회는 초능력자들을 위험 요소로 분류하고, 이들을 수용하거나 제거해야 할 존재로 규정한다.

이런 세계에서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진 소녀 '윤슬'과 초능력 연수소 소장의 아들이자 일반인인 '바다'는

여느 10대들처럼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게 끌리며 풋풋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시스템적으로 금지되고, 억압된 상황에서 그들의 감정은 순수하지만, 그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한 현실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특히나 둘은 아직까지 어린 학생들이라서 자신들이 놓인 상황에서 많은 사유에 의해 흔들리고 흔들린다.


책은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 부딪히는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풀어낸다.

소년과 소녀가 서로를 향해 천천히 스며들고, 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감정의 수위를 높여가는 장면들에서는

10대만이 가질 수 있는 날것의 정서가 느껴졌다. 낭만적인 로맨스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 그 자체가 얼마나 순수하면서도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를 절절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쉽게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나는 책에 줄을 긋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 플래그를 주로 사용하는데 정말 여기저기 다 붙여서 표시하고 적어놓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서 참느라고 꽤 고생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 청소년인 작가님의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문장들은 어른들의 소설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던 감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너라도 밝게 남아줄 수 있어서. 빛보다 어둠이 익숙한 나에게 빛 같은 네가 있어서.

아마도 우린 함께할 것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내 빛으로.


조금은 오글거리지만 예쁜 저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서 문장이 되었다. 저 감성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이 소설의 제목인 '윤슬의 바다'는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사실 요즘 SNS에서는 '윤슬'이나 '안온' 같은 단어들을 두고 과도하게 감성에 취한 언어고 남용되는 언어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 책만큼은 그 비판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슬'이라는 단어는 책 속의 인물의 이름이자,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감정의 결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쁜 소녀의 마음이 윤슬처럼 일렁이고, 우리의 마음에 조용히 파문을 남긴다.

작위적인 느낌이 아니라 제목과 작가님과 작품 모두가 하나의 톤으로 어우러져 있다는 인상을 주고

주인공들의 이름과 상관없이 이 책은 저 제목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작품의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겠지만 다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소설은 단순히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랑을 지킬 것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를 질문한다.

그 질문의 대상이 성인이 아닌 오히려 가장 순수한 감정을 가진 10대들이기에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마치 바다의 파도가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 듯,

아득한 감정의 바다에서 빠져 있다가 조용히 떠밀려 나오는 기분이다.


이 책은 완성형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안에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님의 감정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젊은 작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분명 가능성 그 자체로 나에게 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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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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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을 잊고, 자연은 우리를 기억한다

-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온 존재에게 배운다는 것



엔리크 살라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자연에 대한 본질적인 생각을 조금 더 바꿔 보고자였던 것 같다.

자연 과학을 좋아하면서도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이 상태를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단순한 자연을 사랑합시다라는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단순한 생태 에세이를 넘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태롭게 이 지구의 균형을 흔들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다소 전문적인 용어나 실험 이야기들이 많아서 처음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설명은 매우 친절하고도 따뜻하다.

이 책을 옮긴 양병찬님이 각주까지 세심하게 챙긴 덕분에

나처럼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충분히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다.


이 책 속에서는 모든 내용이 흥미롭지만 유독 흥미를 느낀 것은 생명체들을 통한 다양한 실험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보고 직접 하라고 하면 겁이 날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겠지만,

누군가의 손끝에서 이루어진 그 실험들이 자연의 신비를 증명해낼 때의 경이로움은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율과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였다.


생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체계적이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영향을....

그 과정을 따라 읽는 동안에 문득, 우리는 자연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라는 종이 이 지구에 있어서 정말로 필요한 존재인가를 자문하게 되는데,

우리는 누구보다 자연을 이용하면서도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고 애쓴다.

자연은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은 빠르게 진행되지만, 자연 보전에는 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뒤로 미뤄진다.

인간의 이런 이기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숱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데 대체 언제 자연을 보전한단 말인가?

이런 속도라면 우리가 개발을 다 끝내기도 전에 생태계가 파괴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우리는 후회만 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산불 이후의 생태계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지역 근처에서 큰 산불이 자주 발생했던 터라, 이 주제는 더욱 깊게 와닿았다.

인간은 불을 끄는 것에 나름 능숙해졌지만, 여전히 완벽하진 못하고 결국 자연을 까맣게 소실하고 말았다.

이 이후의 회복은 결국 전적으로 자연에게 의존해야 한다.

씨앗 하나가 불타버린 산을 다시 푸르게 만드는 그 기적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과학이나 기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이 이 지구를 다시 살리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연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질서 있고, 정의롭다는 사실도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생태계에도 경쟁이 존재하고, 약한 종은 도태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이 등장하기 전까지 자연은 나름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반면,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고 난 이후로 너무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사라져버렸다.

멸종된 동물, 파괴된 숲, 바닷속의 플라스틱...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나 역시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자연을 완벽히 지키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연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환경보호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내가 쓰는 전기와 내가 버리는 쓰레기를 한 번쯤 더 생각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환경보호자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들의 폭력적인 환경 시위에 대해서

규탄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멀쩡한 환경보호 운동이 그렇게 힘든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긍정적인 태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책의 마지막에는 코로나와 생태계의 연결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전염병의 근원이 야생에서 비롯되었다는 과학적인 사실은,

인간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자연을 침범하고 선을 넘고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이는 단순히 위기 상황이 아니라, 자연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경청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솔직히 그렇게 쉽지는 않은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남는 감정은 아주 또렷하다.

흥미로움, 아픔, 미안함, 고마움과 경의로움 그리고 조금은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감각을 되찾는다면, 세상은 조금 더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작될 수 있는 아주 조용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환경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한 번쯤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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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갈까마귀 캐드펠 수사 시리즈 12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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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스터리」가 침묵이 가진 무게를 다루었다면,

「어둠 속의 갈까마귀」는 신념이 가진 위험성을 다룬다.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념은 때때로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배제하고 결국엔 파국으로 향하게 만든다.

이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눈 덮인 겨울, 조용한 수도원 저수지에서 한 사람의 시신이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망한 사람은 에일노스 신부로 신념이 너무나 엄격했고, 타인의 고통이나 사정엔 귀를 닫은 채

정의만을 외쳤기에 살아있는 동안에도 원성을 산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래서 나에겐 그다지 놀랍지 않게 다가왔던 것 같다. 모두가 언젠가 오고야 말 비극을 맞이한 느낌이랄까?



사건은 일어났지만, 캐드펠 시리즈가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도 단순한 범인 찾기 추리극이 아니다.

그래서 누가 죽였냐보다는 왜 죽였냐가 더 중요했고, 나 역시 그저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 어둠을 함께 걸으며 들여다 보며, 그 이유에 대해서 찾아보려고 애썼다.



캐드펠은 언제나처럼 차분한 시선으로 공동체 내부의 긴장과 인물들이 품고 있는 갈등과 비밀을 들여다 봤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리서 냉정하게 모든 상황을 들여다 보는 그 모습이 늘 감탄스럽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 역시 단순하지 않다.
중세 수도원의 삶은 외견상 평온하지만, 그 내부는 결코 조용하지 않다.

후계자 경쟁, 상처받은 과거, 용서받지 못한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물들이 모두 에일노스 신부와 얽힌 갈등을 품고 있고, 그 갈등은 어떤 경우엔 사랑이었고,

또 어떤 경우엔 복수였으며, 결국은 인간의 고독한 선택으로 귀결된다.

비밀스러우면서도 어두운 인간들의 이면들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것들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들과 다를까?

정의란 누군가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진실을, 어떤 상처를 끝까지 껴안고 갈 수 있는가에 따라

그 무게부터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 이야기는 단지 범인을 찾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오래 기억하게 되고 누군가의 모습에 감탄을 남기게 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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