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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잊고, 자연은 우리를 기억한다
-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온 존재에게 배운다는 것

엔리크 살라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자연에 대한 본질적인 생각을 조금 더 바꿔 보고자였던 것 같다.
자연 과학을 좋아하면서도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이 상태를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단순한 자연을 사랑합시다라는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단순한 생태 에세이를 넘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태롭게 이 지구의 균형을 흔들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다소 전문적인 용어나 실험 이야기들이 많아서 처음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설명은 매우 친절하고도 따뜻하다.
이 책을 옮긴 양병찬님이 각주까지 세심하게 챙긴 덕분에
나처럼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충분히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다.

이 책 속에서는 모든 내용이 흥미롭지만 유독 흥미를 느낀 것은 생명체들을 통한 다양한 실험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보고 직접 하라고 하면 겁이 날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겠지만,
누군가의 손끝에서 이루어진 그 실험들이 자연의 신비를 증명해낼 때의 경이로움은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율과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였다.
생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체계적이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영향을....
그 과정을 따라 읽는 동안에 문득, 우리는 자연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라는 종이 이 지구에 있어서 정말로 필요한 존재인가를 자문하게 되는데,
우리는 누구보다 자연을 이용하면서도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고 애쓴다.
자연은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은 빠르게 진행되지만, 자연 보전에는 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뒤로 미뤄진다.
인간의 이런 이기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숱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데 대체 언제 자연을 보전한단 말인가?
이런 속도라면 우리가 개발을 다 끝내기도 전에 생태계가 파괴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우리는 후회만 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산불 이후의 생태계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지역 근처에서 큰 산불이 자주 발생했던 터라, 이 주제는 더욱 깊게 와닿았다.
인간은 불을 끄는 것에 나름 능숙해졌지만, 여전히 완벽하진 못하고 결국 자연을 까맣게 소실하고 말았다.
이 이후의 회복은 결국 전적으로 자연에게 의존해야 한다.
씨앗 하나가 불타버린 산을 다시 푸르게 만드는 그 기적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과학이나 기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이 이 지구를 다시 살리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연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질서 있고, 정의롭다는 사실도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생태계에도 경쟁이 존재하고, 약한 종은 도태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이 등장하기 전까지 자연은 나름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반면,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고 난 이후로 너무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사라져버렸다.
멸종된 동물, 파괴된 숲, 바닷속의 플라스틱...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나 역시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자연을 완벽히 지키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연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환경보호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내가 쓰는 전기와 내가 버리는 쓰레기를 한 번쯤 더 생각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환경보호자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들의 폭력적인 환경 시위에 대해서
규탄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멀쩡한 환경보호 운동이 그렇게 힘든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긍정적인 태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책의 마지막에는 코로나와 생태계의 연결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전염병의 근원이 야생에서 비롯되었다는 과학적인 사실은,
인간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자연을 침범하고 선을 넘고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이는 단순히 위기 상황이 아니라, 자연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경청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솔직히 그렇게 쉽지는 않은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남는 감정은 아주 또렷하다.
흥미로움, 아픔, 미안함, 고마움과 경의로움 그리고 조금은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감각을 되찾는다면, 세상은 조금 더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작될 수 있는 아주 조용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환경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한 번쯤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