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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의 바다 - 백은별 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5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0대의 사랑,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뜨겁게
– 풋풋함을 넘어서 진심을 담아낸 순수한 로맨스 판타지

'윤슬의 바다' 이름처럼 예쁜 표지를 가진 이 책은 내 기준 아주 어린 작가님의 손끝에서 태어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다.
2009년생 아직 고등학생 작가님의 이력을 접하게 되면 놀라움과 동시에 얼마나 잘 썼을까? 하는 의문부터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그런 선입견은 빠르게 무너진다. 물론 아직 가능성이 높은 작가님의 작품이다 보니까 성장의 길을 열어놔야겠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진솔하고, 더 오래 남는 소설이었다.
소설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이 너무 진하고, 그 서사의 방식은 생각보다 더 단단하다.
고등학생, 그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감정의 깊이와 감정의 표현에 무척이나 감탄했다.
유명 작가분들의 정제된 문장과는 사뭇 다른 날 것의 솔직함,
그리고 그 솔직함에서 오는 진심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무기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초능력이 존재하는 사회다. 하지만 그 능력은 존중의 대상이 아닌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사회는 초능력자들을 위험 요소로 분류하고, 이들을 수용하거나 제거해야 할 존재로 규정한다.
이런 세계에서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진 소녀 '윤슬'과 초능력 연수소 소장의 아들이자 일반인인 '바다'는
여느 10대들처럼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게 끌리며 풋풋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시스템적으로 금지되고, 억압된 상황에서 그들의 감정은 순수하지만, 그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한 현실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특히나 둘은 아직까지 어린 학생들이라서 자신들이 놓인 상황에서 많은 사유에 의해 흔들리고 흔들린다.
책은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 부딪히는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풀어낸다.
소년과 소녀가 서로를 향해 천천히 스며들고, 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감정의 수위를 높여가는 장면들에서는
10대만이 가질 수 있는 날것의 정서가 느껴졌다. 낭만적인 로맨스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 그 자체가 얼마나 순수하면서도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를 절절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쉽게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나는 책에 줄을 긋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 플래그를 주로 사용하는데 정말 여기저기 다 붙여서 표시하고 적어놓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서 참느라고 꽤 고생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 청소년인 작가님의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문장들은 어른들의 소설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던 감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너라도 밝게 남아줄 수 있어서. 빛보다 어둠이 익숙한 나에게 빛 같은 네가 있어서.
아마도 우린 함께할 것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내 빛으로.
조금은 오글거리지만 예쁜 저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서 문장이 되었다. 저 감성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이 소설의 제목인 '윤슬의 바다'는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사실 요즘 SNS에서는 '윤슬'이나 '안온' 같은 단어들을 두고 과도하게 감성에 취한 언어고 남용되는 언어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 책만큼은 그 비판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슬'이라는 단어는 책 속의 인물의 이름이자,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감정의 결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쁜 소녀의 마음이 윤슬처럼 일렁이고, 우리의 마음에 조용히 파문을 남긴다.
작위적인 느낌이 아니라 제목과 작가님과 작품 모두가 하나의 톤으로 어우러져 있다는 인상을 주고
주인공들의 이름과 상관없이 이 책은 저 제목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작품의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겠지만 다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소설은 단순히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랑을 지킬 것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를 질문한다.
그 질문의 대상이 성인이 아닌 오히려 가장 순수한 감정을 가진 10대들이기에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마치 바다의 파도가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 듯,
아득한 감정의 바다에서 빠져 있다가 조용히 떠밀려 나오는 기분이다.
이 책은 완성형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안에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님의 감정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젊은 작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분명 가능성 그 자체로 나에게 꽤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