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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갈까마귀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2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위대한 미스터리」가 침묵이 가진 무게를 다루었다면,
「어둠 속의 갈까마귀」는 신념이 가진 위험성을 다룬다.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념은 때때로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배제하고 결국엔 파국으로 향하게 만든다.
이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눈 덮인 겨울, 조용한 수도원 저수지에서 한 사람의 시신이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망한 사람은 에일노스 신부로 신념이 너무나 엄격했고, 타인의 고통이나 사정엔 귀를 닫은 채
정의만을 외쳤기에 살아있는 동안에도 원성을 산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래서 나에겐 그다지 놀랍지 않게 다가왔던 것 같다. 모두가 언젠가 오고야 말 비극을 맞이한 느낌이랄까?

사건은 일어났지만, 캐드펠 시리즈가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도 단순한 범인 찾기 추리극이 아니다.
그래서 누가 죽였냐보다는 왜 죽였냐가 더 중요했고, 나 역시 그저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 어둠을 함께 걸으며 들여다 보며, 그 이유에 대해서 찾아보려고 애썼다.

캐드펠은 언제나처럼 차분한 시선으로 공동체 내부의 긴장과 인물들이 품고 있는 갈등과 비밀을 들여다 봤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리서 냉정하게 모든 상황을 들여다 보는 그 모습이 늘 감탄스럽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 역시 단순하지 않다.
중세 수도원의 삶은 외견상 평온하지만, 그 내부는 결코 조용하지 않다.
후계자 경쟁, 상처받은 과거, 용서받지 못한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물들이 모두 에일노스 신부와 얽힌 갈등을 품고 있고, 그 갈등은 어떤 경우엔 사랑이었고,
또 어떤 경우엔 복수였으며, 결국은 인간의 고독한 선택으로 귀결된다.
비밀스러우면서도 어두운 인간들의 이면들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것들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들과 다를까?
정의란 누군가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진실을, 어떤 상처를 끝까지 껴안고 갈 수 있는가에 따라
그 무게부터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 이야기는 단지 범인을 찾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오래 기억하게 되고 누군가의 모습에 감탄을 남기게 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