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퐁듀를 먹으러 왔는데요
성보미 지음, 성효진 그림 / 라이크북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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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여행에 대한 꿈은 가지고 있다.

나 역시도 여행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있지만, 사실 여행을 갈 상황도 아닌 데다가

여행을 가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피곤해지기 때문에 여행을 피하게 된다. 가고 싶지만 가기 싫은 너무나 아이러니한 감정이다.


​이건 내가 집순이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건강 문제 탓이 크다.

차나 의자에 30분만 앉아 있어도 다리가 붓고, 골반과 허리, 꼬리뼈까지 전해지는 통증이 너무 아프다.

앉아도, 서 있어도, 누워도 계속되는 고통은 여행의 낭만보다 고통을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6월엔 가족 모임이라며 2시간 거리로 떠났다가, 후유증으로 일주일 동안 앓은 적도 있다.

몸과 마음이 같이 무너지며, 여행은 내게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여행기를 통해 다녀온 듯한 감정을 대신 채우곤 했다.

미디어의 힘 덕분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곳의 공기와 이야기를 내가 마치 경험한 것처럼 얻어낼 수 있다.

여행 준비를 하는 친구들에게 정보를 전해줬을 때, 여행 많이 다닌 사람보다 정보가 많다는 말을 들으면, 지식이란 참 고마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 또한 새로운 여행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펼쳐들었다.


성보미 작가의 진짜 퐁듀를 먹으러 왔는데요는 표지부터 내면에 따뜻한 빛이 감도는 듯했다.

일러스트는 몽글몽글한 감성을 최대한 끌어올렸고, 표지에도 귀엽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입혔다.

책 곳곳에 그리고 사진 속에 등장한 일러스트들은 책을 감상하는 재미를 더했다.


​여행의 첫 시작은 프랑스의 몽블랑이었다. "익스큐즈미"라는 대사로 시작된 에피소드는, 내 마음에 꼭 박힌 웃음 버튼을 눌렀다. 스무 살, 비행기도 제주도 한 번 타본 게 전부였던 작가님은 첫 해외여행부터 실수가 많았다.

호텔 방 열쇠를 방 안에 두고 나와 난장판을 만들고, 메뉴 주문 하나 못 해 식은땀을 흘리며 주문한 퐁듀 앞에서 당황한다.

퐁듀를 시키고 등장한 낡은 버너, 찌그러진 냄비, 꼬치에 꽂힌 생고기. "이게 진짜 퐁듀 맞아?"라는 질문에 종업원은 싸늘한 태도로 "맞다"라고 답하고, 그 서늘한 순간이 긴장과 웃음으로 남는다. 하지만 여행이란, 이렇게 엉망이 된 순간까지도 지나고 나면 즐겁고 친근한 기억으로 남는다.

참고로 작가님이 시켰던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치즈 퐁듀가 아니라 오일 퐁듀라고 한다. 퐁듀에도 종류가 참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대만 타이베이에서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해 질 무렵 한 사찰에 올라가던 길, 비는 내리고 어둠은 깊고, 땅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때 나타난 낯선 할아버지.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작된 장면에서 할아버지는 중국어로 뭔가 말하면서도 곁을 떠나지 않는데,

어쩐지 그 존재는 무섭기도 하고 동시에 웃기기도 하다. 여행이란 이런 순간들이 있어 줘야 완성된다.

미리 예측할 수 없는 감정, 불안과 위안이 함께하는 순간들 말이다.



이 책은 프랑스, 대만, 일본, 중국, 독일, 영국, 캐나다, 몽골, 베트남, 크로아티아까지

이어지는 열 개의 나라 여행기를 담고 있다.

특히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서 '빨간 머리 앤'을 떠올리는 장면은, 소녀 감성과 상상을 현실로 불러오는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그 이야기 속 섬을, 실제로 마주한 순간의 떨림이 글에 깃들어 있었다. 말 그대로 성덕의 모습이었다.

그런 장면들은 단순한 장소의 기록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감정까지 공유 받는 일이 되었다.



나는 여행지의 풍경보다 책 속 일러스트에 더 크게 웃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마주한 그림들에 "너무 귀엽다"라고 웃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보여줬다.

다들 여행기라면 진짜 그대로의 사진만 생각하는데 일러스트 하나하나가 주는 따뜻함에 공감하며 좋아했다.

역시 사람들의 보는 눈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의 이야기는 따뜻하다. 작가님이 따뜻한 사람이라서 일까?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쁘고 따뜻하고 감성적이라서 좋았던 것 같다. 여행 에세이인데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감성 에세이가 곁들여진 것 같은 느낌이 많았다.

작가님의 상황 묘사도 예뻤고, 꼼꼼했고, '꺄르르 웃었다' 같은 표현이 너무 좋았다.

단순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것 같아서... 잘 꾸며진 문장이 아니라 정말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미있게 따라갈 수 있었다.


이 책이 내게 준 건, 혼자 조용히 여행을 다니고 싶은 마음에 힘이 실렸다는 것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것은 누군가와 함께 가는 여행보다,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그저 나 혼자만의 여정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혼자서 여행하는 작가님의 모습에서 조심스러운 용기가 스며들었고,

나도 언젠가 준비가 된다면 조용히 떠날 수 있겠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봐도 나는 역시 대문자 I인 것 같다.


이 책은 풍경보다 확실히 이야기 중심이다.

여행의 순간들이 작가님의 내면과 맞닿아 표현되는 방식은, 화려한 장면보다 공감과 웃음으로 가득하다.

엉뚱한 장면에서 피식 웃고,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하며, 중간중간 나를 돌아보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내가 편하게 떠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이 책 속 작은 장면들이 떠오를 것이다.

진짜 퐁듀 한입, 낯선 할아버지와의 어색한 동행, 엄마 여행을 챙기며 흘린 눈물 같은 기억들.

진짜 여행의 이야기는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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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희 최광희입니다
최광희 지음 / CRETA(크레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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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 의외의 호감

매불쇼도, 최광희도, 처음이었습니다



'미치광희 최광희입니다'는 책은 이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사실 자기 이름 앞에 '미치광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것이 단순한 자학이나 유머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선언문처럼 느껴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미치광희'라는 단어 안에는 익살과 도발이 섞여 있지만, 그걸 그냥 장난으로만 넘길 수 없는 무게가 있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건, 이 제목이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말장난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과 태도의 압축이라는 사실이었다.


​최광희는 스스로를 미치광이처럼 보일지언정, 적어도 자신이 믿는 가치와 이야기를 향해 한 치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 과정에서 온갖 부침과 굴곡을 겪으면서도 '나'라는 존재를 버리지 않았다. 그게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크게 와닿은 부분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그가 매주 금요일 '매불쇼'라는 채널의  '시네마 지옥'이란 코너에서 활동하는 코믹 평론가라는 사실과,

그 채널이 유튜브와 팟캐스트로 운영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코믹 평론가라는 말 때문에 코미디를 평론하는 사람인가?라는 오해를 했지만,

그저 영화를 재미있고 날카롭게, 때로는 통렬하게 평론하고 추천하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영화평론가였다.

솔직히 조금 당황하기도 했고, 나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호기심만으로 책을 들었다는 생각에 자기반성도 하게 되었다.


​물론 매불쇼라는 프로그램이나 최광희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해서 책의 이해에 문제가 되는 건 전혀 아니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프로그램이나 취향이 다르고,

나 같은 경우는 공포, 미스터리, 흉가 다큐나 게임, 애니메이션, 공예, 그림 등

시청하는 콘텐츠가 편향되어 있으니 자연스레 매불쇼는 내 알고리즘에 들어올 일이 없던 채널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채널도 최광희라는 사람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찾아보니 이 매불쇼라는 채널은 '본격 루저 갱생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연애 관련 토크가 주 내용이라

나처럼 연애 예능을 전혀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채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연히 만난 최광희라는 사람은 매우 유쾌하고 솔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매불쇼에서 그가 진행하는 부분만 따로 볼 수 있다면 한 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책은 에세이 형식을 가진 일대기? 자서전 느낌이다.

전형적인 회고록이 아니라, 각 시기마다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과 기억, 그리고 그에 얽힌 사람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그래서 단락마다 분위기가 바뀌고, 톤도 농담에서 진지함으로, 또다시 자조적인 유머로 훅훅 전환된다.

어떤 순간에는 라디오 진행자 특유의 입담이 느껴지고, 어떤 순간에는 영화평론가로서의 비평적 시선이 번뜩인다.

그런데 이런 변화무쌍한 문장들이 오히려 이 사람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미치광희'라는 별명은 이렇게나 다층적인 한 사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울리는 절묘한 단어였다.


나는 특히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외부 세계와의 부딪힘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방송계, 영화계, 언론계 등등 작가님이 발을 디딘 곳마다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은 때로는 명예와 커리어를 갉아먹었지만 동시에 단단하게 만들었다.

남들이 외면하거나 타협하는 순간에 오히려 더 세게 부딪히는 모습은, 읽는 내내 이건 용감한 건가?

아니면 그냥 무모하고 열정적인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곧 그 둘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기 확신을 밀어붙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용기이고 무모한 열정을 가진다는 거니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이 책이 단순히 성공담을 그려낸 에세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패, 좌절, 우울, 심지어 자기혐오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일반적인 자서전은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많이 강조하고 사람들에게 교훈처럼 알리려고 하지만, 이 책은 그 반대다.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시간, 모든 게 무너져버린 순간, 사람들에게 잊히거나 버려진 경험들을 낱낱이 꺼내놓는다.

그런데 그 어두움이 지루하거나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그 안에 여전히 유머와 자기 풍자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아마도 최광희라는 사람의 생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웃으면서 버티고, 비틀면서 전진하는 것.


​읽다 보면,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나 역시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고집을 부리고, 때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 하고,

때로는 웃음으로 가린 절망을 안고 살아가니까.

그래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던지는 말들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는 여전히 싸우고 있고, 여전히 버티고 있고, 여전히 자신을 미치광희라 부르며 살아간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패배의 선언이 아니라,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그게 조금은 부러웠다는 나는 여전히 버티고는 있지만 싸움에서는 벗어나고 싶어서 도망쳐 버린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미치광희라는 별명이 단순한 캐릭터 설정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하나의 언어였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미치광이 기질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숨기거나 다듬어서 보일 뿐.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기꺼이 꺼내 보이고,

그 기질로 세상과 싸우고, 그 싸움을 기록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록이다. 웃기면서도 진지하고,

가벼우면서도 묵직하며, 무엇보다 솔직하다. 그 솔직함이 나를 끝까지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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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그리즈만 선수 시리즈 23
선수 에디터스.한준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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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나만의 레전드'가 있다.

나에게 있어서 그런 선수는 해외에도 1년 동안 잠깐 다녀오긴 했지만

늘 국내 리그, 그것도 13시즌 동안 우리 팀에서만 뛰었고, 원클럽맨으로 은퇴를 했다.

지금의 내 팀을 응원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 축구, 즉 K리그는 수준이 떨어지고 재미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매력을 잘 안다.

경기장에서 직접 느끼는 긴장감, 선수들의 땀과 의지,

팬들과 함께 만드는 분위기는 어떤 화려한 해외 리그보다도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고 응원을 하면 할 수록 내 팀 선수들에 대한 애정은 더 깊어진다.


​그렇다고 해외 축구를 보지 않는 건 아니다. 나는 첼시를 좋아했고, 존 테리와 프랭크 램파드를 무척 좋아했다.

그들은 은퇴한 지금도 여전히 '레전드'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선수들이다.

그리고 해외 축구 선수 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몇몇 인물이 있다.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라리가의 간판이자 프랑스의 어린왕자라 불리는 '앙투안 그리즈만'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라는 점도 그렇지만, 그가 데뷔하던 시기는

마침 내가 국내 축구뿐 아니라 해외 리그에도 한참 보면서 관심을 넓히던 때였다.

라리가 리그는 잘 몰랐지만, 예전에 이천수선수가 뛰었던 팀 소속 선수라는 이유로 그의 이름을 외워두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단순한 한 명의 선수가 아닌,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지킨 진정한 스타로 성장했다.

아니 단지 자리를 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육각형 축구 천재'라는 찬사까지 들으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노력과 재능을 동시에 증명한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 앙투안 그리즈만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오 꼭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실 '선수選手' 시리즈라는 시리즈 자체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한 명의 선수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해 '보는 책'을 넘어 '소장하고 싶은 책'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선수들의 단순한 전기나 이력서식 글만 가득한 일반적인 책이 아니라,

팬들이 진심으로 '가지고 싶은 책'을 만들겠다는 출판사의 의지가 느껴졌다.



책 속에는 그리즈만의 커리어, 플레이 스타일, 그리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세세하게 담겨 있다.

단순히 경기 기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올랐는지,

경기장 안팎에서 어떤 매력을 보여주는지 꼼꼼히 다룬다.

물론 그의 열렬한 팬이라면 알고 있는 내용도 있겠지만, 이렇게 한 권으로 정리된 이야기를 읽으면 느낌이 새로울 것이다.

나 역시 마치 그의 커리어를 함께 걸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이런 방식으로 한 권의 책이 되는 경험은, 팬으로서 특별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시리즈가 23권이나 나왔음에도 아직 국내 선수에 대한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세계 무대에서 빛난 선수들도 있고, 국내에서만 뛰었어도 훌륭한 커리어를 가진 선수들이 많은데,

이런 기획물에는 여전히 해외 선수 위주로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해외 스타를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점은 좋지만, 국내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으로서는,

꼭 우리 선수들의 이야기도 이 멋진 형식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국내 스포츠 경기의 주인공들도 해외 선수들처럼 기록될 가치가 충분하다.


​'선수 에디터스' 시리즈는 스포츠 팬이라면 한 번쯤 꼭 소장해보고 싶은 퀄리티를 갖췄다.

앙투안 그리즈만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평소 잘 알지 못했던 해외 선수의 매력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나 역시 앞으로 더 다양한 종목과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

특히 국내 선수들을 다룬 책이 나온다면 망설임 없이 사서 책장에 꽂아둘 것 같다.

이번 앙투안 그리즈만 편을 통해 선수에 대한 많은 정보와

좋은 시리즈에 대한 정보를 동시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축구팬 나아가서 스포츠팬으로서 무척 기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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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
오조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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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히어로가 슈퍼스타처럼 사람들의 사랑과 응원을 한몸에 받는 세상.

이능력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타고나는 말 그대로 기본 옵션이 된 시대다.

거리를 지키는 히어로의 이름은 매일 뉴스에 오르고, 신인 히어로의 데뷔는 대형 콘서트처럼 화려하게 치러진다.

그러나 그 무대 뒤에는 스포트라이트 없이 묵묵히 시스템을 굴리는 사람들이 있다.

오조 작가님의 소설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바로 그 찬란한 무대 밖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조영은 샤이닝 컴퍼니 지하 사무실에서 10년째 '조 대리'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서른한 살이 된 새해, 마침내 퇴사를 결심한 순간, 회사는 신인 히어로 '써리원'의 데뷔 프로젝트를 맡긴다.

정들지 않은 자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은 직장에서의 마지막 미션. 그녀의 새해 계획은 이렇게 마지막 프로젝트라는 예외 조항과 함께 연장된다.


이 책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그만둬야 하는 순간이 온다', '누구에게나 붙잡아야 하는 것이 있다', '누구에게나 함께여야 하는 시기가 온다'라는 세 개의 부제로 나뉜다.

이 소설이 신선한 이유는 분명하다. 히어로물이지만, 주인공은 히어로가 아니다. 이능력은커녕 아무런 초능력도 없는, 말 그대로 무능력자인 조영이 중심에 선다.



대부분의 히어로물에서 무능력자는 조연이거나 관객 역할에 머무르지만, 여기서는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이끈다.

화려한 전투 장면보다 중요한 건 '써리원'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무대 위로 올릴 것인가다.

이 과정에서 히어로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마치 연예 기획사의 매니저나 신인 육성팀을 떠올리게 한다.

스타를 만드는 과정, 이미지 관리, 데뷔 준비, 사건 수습까지, 다만 그 대상이 가수가 아니라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라는 점만 다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이 세계관의 히어로 분배 시스템이다. 이능력이 넘쳐나는 시대, 한 사람이 모든 걸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능력과 성향, 수요에 맞춰 파이를 잘게 쪼개 여러 히어로에게 역할을 나눈다.

이 설정 덕분에 소설 속 히어로들은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인간적인 결점과 한계를 지닌 존재로 다가온다.

마치 실제 연예계나 스포츠계의 생태계를 보는 듯한 현실감도 있다.


​조영이라는 캐릭터도 매우 현실적이다. 퇴사를 결심하고도 마지막 제안을 덥석 수락하는 모습에서 답답함과 동시에 깊은 공감이 든다.

10년을 바친 직장을 단숨에 떠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그곳엔 처음 품었던 열정과 꿈이 남아 있고, 완전히 끝내기 전 한 번쯤 마무리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나라도 저 상황이면 비슷하게 선택했을 것 같네라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제목이나 초반의 이야기만 봐서는 단순히 히어로 세계의 이야기 같지만, 결국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보편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화려한 전투보다, 무대 위의 영웅보다, 그 옆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맞닥뜨리는 모습과 진실과 현실들의 무게가 더 오래 남는다.


책 속의 문장 P.15-16 💬 


'나는 잘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인생이 편합니다.'

정말 그런가?

정말, 그런가.

남들 그러듯이 천천히 편해지지가 않았다. 서른이 넘도록 욱신거리고, 허무하고, 또 아프기만 했다.


책 속의 문장 P.16 💬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영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오로지 주제 파악이라는 무능력자의 덕목이 조영의 사지를 동여매고 있을 뿐이었다.

조영은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주기적으로 시큰거림을 느꼈다.

잊을만하면 심장 가까운 곳에서 회전하는 별 모양의 돌. 그 돌의 이름은 꿈이었다, 아마도.


​책 속의 문장 P.120-121 💬 


'누구든 웬만하면 가질 수 있는 이능력이든, 그걸 못 가져서 발버둥 쳐 얻는 후천적인 능력이든.

다시 태어나면 둘 중에 하나만 주지 말고 둘 다 줘라. 조물주씩이나 되면서 쩨쩨하고 난리야.'



이 책에 인상 깊었던 문장들은 대부분 조영이 속으로 남기거나 생각한 이야기들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모두가 능력을 갖춘 세상에서 홀로 무능력자로 살아야 하는 억울함, 그리고 그것을 속으로 삼키는 서글픔이 절절히 전해졌다.

생일날 '나는 잘난 것이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말로 주제 파악을 해야 하는 그 순간 얼마나 아팠을지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괜찮은 건 아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해도 그 멍이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다.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히어로물의 틀을 빌려왔지만, 그 속에 담긴 건 히어로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이야기다.

무대 위의 영웅이 아니라, 무대 밖에서 그들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가치와 의미를 묻는다.

조영은 세상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영이 있었기에 한 명의 히어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어쩌면 '히어로'라는 단어의 정의가 조금 바뀌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초능력보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름 없이 빛을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운다.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특색이 있는 책이라서 추천하고 싶다.

아니면 한국적인 히어로물의 세계관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한 번쯤 추천하고 싶은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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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사랑이 없다면, 그 무엇이 의미 있으랴 - 에리히 프롬편 세계철학전집 4
에리히 프롬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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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보통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함께 그려진다.

철학이라는 단어랑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그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요즘 사회에서는 너무 가볍게 쓰이고, 때로는 많이 왜곡된 감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연애, 집착, 폭력까지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지,

누군가와 건강하게 마음을 나누며 사는 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번 책은 모티브에서 출간된 세계철학전집의 4번째 권인데

이전에 정약용의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를 읽으면서

좋은 가르침과 기억이 생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에리히 프롬편을 읽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단순히 감정이나 로맨스의 영역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능력이라고 말한다.

즉,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나 자신을 존중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랑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훈련과 노력, 의지가 필요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현실 속 인간관계와 연애에서 얼마나 자주 잊히는 원칙인지 모른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책이 사랑을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사랑 한다고 말하면서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집착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의 자유를 빼앗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겐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프롬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과 불안이 만들어낸 가짜 사랑이라고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 스토킹, 지나친 집착을 떠올리면, 그의 말은 결코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다.

좋아한다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상대방도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지 단순히 나만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될 수는 없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좀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행동을 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변화를 가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사랑을 건강하게 하고 싶고,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존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그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렀던 여러 실수들을 떠올렸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해 한 행동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던 말들

상대의 집착에도 억지에도 그저 나혼자서 참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억지도 참았던 것들

그 모든 감정들과 행동들이 진짜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고 서로 재밌으면 그냥 누구 한 명이라도 좋으면 그게 괜찮은 사랑인 줄 알았다.

가짜 사랑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프롬은 사랑을 네 가지 요소를 '배려, 책임, 존경, 이해'라고 설명한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때 비로소 성숙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에서 단 한 가지라도 빠지면, 사랑은 쉽게 변질된다고 한다.

나는 이 네 가지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지금까지의 내 사랑에서 제대로 이루어졌던 건 없었다. 참 큰 실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위에서도 그렇게 말렸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관계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계속 점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책 속 문장 중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제목처럼 단호하면서도 묵직한 그 질문이다. 

'삶에 사랑이 없다면, 그 무엇이 의미 있을까?'

이것은 단순히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거나 연애를 하라는 권장의 말이 아니다.

나의 하루, 나의 관계, 나의 일에 사랑이 없다면 즉, 애정과 열정

그리고 타인에 대한 진심이 없다면 과연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을 덮고 나서, 사랑이란 단어가 훨씬 무겁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열렬하게 좋아하는 마음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사랑이란 나와 타인을 함께 성장시키는 행위라는 것을 조금은 더 알 것 같다.

이 책은 사랑을 감정에서 능력으로 끌어올리고, 그 능력을 어떻게 단련해야 하는지 조용히, 그러나 명확하게 알려준다.


나는 이제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말이 무게를 가질 수 있도록 나 자신부터 단단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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