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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희 최광희입니다
최광희 지음 / CRETA(크레타) / 2025년 8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 의외의 호감
매불쇼도, 최광희도, 처음이었습니다

'미치광희 최광희입니다'는 책은 이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사실 자기 이름 앞에 '미치광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것이 단순한 자학이나 유머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선언문처럼 느껴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미치광희'라는 단어 안에는 익살과 도발이 섞여 있지만, 그걸 그냥 장난으로만 넘길 수 없는 무게가 있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건, 이 제목이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말장난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과 태도의 압축이라는 사실이었다.
최광희는 스스로를 미치광이처럼 보일지언정, 적어도 자신이 믿는 가치와 이야기를 향해 한 치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 과정에서 온갖 부침과 굴곡을 겪으면서도 '나'라는 존재를 버리지 않았다. 그게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크게 와닿은 부분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그가 매주 금요일 '매불쇼'라는 채널의 '시네마 지옥'이란 코너에서 활동하는 코믹 평론가라는 사실과,
그 채널이 유튜브와 팟캐스트로 운영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코믹 평론가라는 말 때문에 코미디를 평론하는 사람인가?라는 오해를 했지만,
그저 영화를 재미있고 날카롭게, 때로는 통렬하게 평론하고 추천하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영화평론가였다.
솔직히 조금 당황하기도 했고, 나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호기심만으로 책을 들었다는 생각에 자기반성도 하게 되었다.
물론 매불쇼라는 프로그램이나 최광희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해서 책의 이해에 문제가 되는 건 전혀 아니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프로그램이나 취향이 다르고,
나 같은 경우는 공포, 미스터리, 흉가 다큐나 게임, 애니메이션, 공예, 그림 등
시청하는 콘텐츠가 편향되어 있으니 자연스레 매불쇼는 내 알고리즘에 들어올 일이 없던 채널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채널도 최광희라는 사람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찾아보니 이 매불쇼라는 채널은 '본격 루저 갱생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연애 관련 토크가 주 내용이라
나처럼 연애 예능을 전혀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채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연히 만난 최광희라는 사람은 매우 유쾌하고 솔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매불쇼에서 그가 진행하는 부분만 따로 볼 수 있다면 한 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책은 에세이 형식을 가진 일대기? 자서전 느낌이다.
전형적인 회고록이 아니라, 각 시기마다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과 기억, 그리고 그에 얽힌 사람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그래서 단락마다 분위기가 바뀌고, 톤도 농담에서 진지함으로, 또다시 자조적인 유머로 훅훅 전환된다.
어떤 순간에는 라디오 진행자 특유의 입담이 느껴지고, 어떤 순간에는 영화평론가로서의 비평적 시선이 번뜩인다.
그런데 이런 변화무쌍한 문장들이 오히려 이 사람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미치광희'라는 별명은 이렇게나 다층적인 한 사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울리는 절묘한 단어였다.
나는 특히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외부 세계와의 부딪힘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방송계, 영화계, 언론계 등등 작가님이 발을 디딘 곳마다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은 때로는 명예와 커리어를 갉아먹었지만 동시에 단단하게 만들었다.
남들이 외면하거나 타협하는 순간에 오히려 더 세게 부딪히는 모습은, 읽는 내내 이건 용감한 건가?
아니면 그냥 무모하고 열정적인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곧 그 둘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기 확신을 밀어붙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용기이고 무모한 열정을 가진다는 거니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이 책이 단순히 성공담을 그려낸 에세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패, 좌절, 우울, 심지어 자기혐오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일반적인 자서전은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많이 강조하고 사람들에게 교훈처럼 알리려고 하지만, 이 책은 그 반대다.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시간, 모든 게 무너져버린 순간, 사람들에게 잊히거나 버려진 경험들을 낱낱이 꺼내놓는다.
그런데 그 어두움이 지루하거나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그 안에 여전히 유머와 자기 풍자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아마도 최광희라는 사람의 생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웃으면서 버티고, 비틀면서 전진하는 것.
읽다 보면,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나 역시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고집을 부리고, 때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 하고,
때로는 웃음으로 가린 절망을 안고 살아가니까.
그래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던지는 말들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는 여전히 싸우고 있고, 여전히 버티고 있고, 여전히 자신을 미치광희라 부르며 살아간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패배의 선언이 아니라,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그게 조금은 부러웠다는 나는 여전히 버티고는 있지만 싸움에서는 벗어나고 싶어서 도망쳐 버린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미치광희라는 별명이 단순한 캐릭터 설정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하나의 언어였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미치광이 기질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숨기거나 다듬어서 보일 뿐.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기꺼이 꺼내 보이고,
그 기질로 세상과 싸우고, 그 싸움을 기록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록이다. 웃기면서도 진지하고,
가벼우면서도 묵직하며, 무엇보다 솔직하다. 그 솔직함이 나를 끝까지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