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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 범죄 실화, 살인자의 얼굴을 읽는 법
박진규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9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지켜야 할 것들

평소 사건, 사고나 범죄에 관한 책을 꽤 많이 읽는 편이기도 하고, 당연히 관련 유튜브나 다큐멘터리도 워낙 자주 보는 편이라
이 책 역시 처음에는 다른 책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책은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책에서 다루는 사건들의 경중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문체가 무겁지 않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무거운 분위기로 끌고 가지 않으면서도 사건을 따라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평소 이런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읽다 보니 사건 자체보다 조금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가님은 오랫동안 형사분들을 직접 만나고 사건과 수사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해온 기자분이다.
사건을 직접 해결하는 형사는 아니지만, 나처럼 뉴스나 책, 영상을 통해 이미 정리된 사건을 접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가까운 자리에서 사건을 바라봐 온 사람인 것이다.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다.
몇 줄의 기사나 잘 정리된 영상으로 접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는 아주 작은 단서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수없이 확인하고 의심하며 오랜 시간 사건을 붙잡고 있다는 것.
우리에게는 이미 결말을 알고 읽는 하나의 ‘사건’일지 모르지만, 그 당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결말을 알 수 없는 어두운 길이었고, '현실'이었다.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나는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니 어째서 다양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PD와 작가들이 이 책을 찾게 되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감히 짐작해 보자면 그분들 역시 나와 비슷한 지점에서 이 책을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사건을 더 깊이 알고 싶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찾고 싶고, 그 안에서 무엇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사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하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사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 여러 사건, 사고가 이어지면서 유가족들이 겪는 또 다른 고통에 대한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사건을 취재하거나 컨텐츠로 만들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 원하지 않는 인터뷰를 요구하는 사람들,
심지어 사적인 공간에 허락 없이 들어가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 고통받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나 역시 사건사고나 공포에 관련된 영상 컨텐츠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스스로 경계하려고 하는 것이 있었다.
'사건을 이용하지 말자.' '피해자를 이용하지 말자.'
국내외의 다양한 사건 사고를 다루는 컨텐츠를 좋아하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어쩌면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유명한 사건 이름과 피해자의 이름을 쓰는 것이 조회수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하지만 사건에 관심을 갖는 것과 누군가의 고통을 이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형사가 아니고 사건을 해결해 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단지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가 애써 견디고 있는 고통을 다시 끄집어내도 되는 걸까?
내가 무슨 권리로?
사람들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책 속에서 사건을 집요하게 좇는 형사분들의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인지, 이런 질문은 평소보다 더 무겁게 다가왔다.
물론 사건을 취재하고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는 일은 필요하다.
때로는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다시 주목받는 사건도 있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건 선을 지키기가 더 어려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 다가가야 하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거리’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재미있는 것은 책 제목이 '사건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의 ‘가까이’와 책을 덮고 난 뒤 내가 느끼는 ‘가까이’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사건을 가까이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조심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말자, 사건을 너무 쉽게 이용하지 말자.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누군가의 고통을 한 번쯤 더 생각해 보자.
평소 좋아하던 분야의 책이라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고, 실제로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생각이 남았다.
다른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운 사건이나 수사 과정에 더 주목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사건을 얼마나 가까이 볼 수 있는가보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어떤 태도로 바라봐야 하는가.
평소에도 몇 번이나 고민했던 그 질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감사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