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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마녀 ㅣ 영덜트 시리즈 2
거트루드 크라운필드 지음, 온(On) 그림, 조현희 옮김 / 희유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복잡한 어른들에게 필요한 단순한 이야기
- 왕자와 마녀가 말해주는 것

거트루드 크라운필드의 '그림자 마녀'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영덜트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읽게 되었다. 어른들은 가끔 동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어른을 위한 동화라거나,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몇 번이나 잊었다.
누군가를 구하러 가는 왕자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전개였다.
그리고 당연한 듯 찾아오는 정의의 승리까지 말이다. 모든 것이 뻔하고 단순해서 좋았다.
지나치게 복잡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요즘, 이렇게 유치하리만큼 맑고, 명료한 이야기가 오히려 마음에 오래 남는 법이다.
이야기는 전형적이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따뜻한 요정들이 가득한 빛의 왕국과 어둡고 컴컴한 그림자 나라
그 속에서 빛의 왕자에게 선의를 베풀었다가 자신의 오빠인 사악한 마법사의 꾀임에 빠져 갇혀버린 그림자 마녀
어둠에 갇힌 그림자 마녀를 구하기 위해서 모험을 떠나는 불잉걸 왕자.

어릴 때 읽었던 수많은 동화들이 떠오른다.
왕자와 공주가 나오던 이야기들 속에서 공주만 마녀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전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자 마녀는 그 전형적인 이야기에서도 조금 더 다른 점을 보여준다.
무조건적인 도움과 마녀를 향한 충신들의 애정이다.
보통의 마녀들은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목적이라서 자신의 곁에 있는 부하들까지도 이용할 뿐 애정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책 속의 마녀는 자신의 충복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주고 있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마녀가 위험에 빠지자마자 충복인 일렁이는 그림자는 자신의 사랑하는 주인을 구하기 위해서 홀로 마법사와 대면하고 마법사에게 마녀의 행방을 들은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 불의 왕국까지 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맹목적인 충신이라더라도 자신의 주인이 제대로 애정을 주지 않았다면 결코 그런 행동을 했을 리는 없다 특히나 그림자 나라에서 말이다.

거기다 불의 왕국 사람들과 왕자는 어떤 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선한 사람들이다.
불잉걸 왕자가 마녀를 구하러 떠나기 시작하자 앞다투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언제나 왕자 혼자서 공주를 구하러 가야 하는 동화의 이야기와 다르게 이 이야기에는 조력자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까지 읽은 동화들보다도 동화가 품을 수 있는 감정의 순도가 짙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단순한 선악 구조로 그려지지만, 그 단순함 안에는 두려움을 마주하는 용기,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 스며들어 있다. 왕자의 결정, 마녀의 존재, 용기를 이용해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는 복잡한 철학인 아닌 순수한 감정의 언어로 전해진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가 동화에서 멀어지는 건 동화가 아이들의 책이라거나 단순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자 마녀는 단지 이야기만 좋은 것이 아니다. 페이지마다 들어찬 단순하지만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들은 한 장면 한 장면을 오래 지켜보게 만든다. 특히 많은 색상을 사용하지 않고 검은색, 회색, 노란색 정도로만 표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둠을 표현한 장면조차도 무겁지 않게 느껴졌다. 노란색을 사용한 부분은 오히려 따뜻함과 포근함이 극대화되는 효과를 주어서 이야기 전체를 감싸안는 분이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마녀의 실루엣, 왕자의 빛, 국경지대의 단순한 묘사들까지 모두가 너무 잘 어울렸고, 이 책과 참 잘 어울리는 삽화 일러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책이란 그림만 튀어서도 안되고 글과 어우러져야 한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지만 그림이 어두워서도 안된다. 이 책은 그 원형을 잊지 않았다.
그림자 마녀는 누군가에겐 너무 유치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해서 만들긴 했지만 단순한 이야기로 만들어진 동화책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단순함과 유치함이야말로 동화의 본질이고, 그렇게 해야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 맹목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에서 얻는 감정은 더 진하다.
277페이지로 짧지 않은 내용이지만, 단순하고도 묵직하다. 무겁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동화를 보고 듣고 읽으며 자랐다. 그 이야기들은 해피엔딩을 약속했고, 진심과 용기가 언제나 악을 이긴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어지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오랜만에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조용히 두드렸다. 내 안의 동심이 세상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생각을 깨웠다. 눈부시게 반짝이진 않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이야기.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함께 끌어안아주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