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계 관리 본부 수사 일지 : 천해 편
신유수 지음 / 네오오리지널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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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신수와 수호령이 공존하는 영계 수사 기록



이 책은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흥미를 끌었다.

영계와 수사 일지라는 단어들이 나란히 놓인 조합은 평소 내가 좋아하던 장르적 요소들을 정확히 건드리고 있었다.

오컬트적 세계관에 수사물의 구조를 얹은 이야기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쉽게 보지 못한 설정이라 자연스럽게 기대가 생겼다.


영계 관리 본부 수사 일지는 영계라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다루면서도 그 세계를 지나치게 신비화하지 않는다.

영계 역시 관리되고, 기록되고, 조사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판타지를 읽고 있으면서도 사건 기록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좋았던 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신수와 수호령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으로 등장한다.

각각의 존재가 가진 의미와 역할이나 다양한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들이 체계적으로 설명되고 있어서

정말 잘 짜여진 이야기란 생각도 들었고, 조금 어려워할 사람들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물론 평소 신수나 수호령, 인간과는 다른 질서를 가진 존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오컬트 매니아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굉장히 즐거웠다. 새로운 걸 배우고 공부하는 기분!


이 세계에는 이런 존재도 있겠구나, 이 영계는 이런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겠구나 하는

상상 역시도 계속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욱 재밌었다.


천해편이라는 부제처럼 번 이야기는 거대한 세계관의 시작점에 가까운 느낌이다.

하나의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천계 관리 본부라는 조직의 성격과 역할,

그리고 인간 세계와 영계가 맞닿아 있는 방식이 조금씩 드러난다.

오컬트적인 요소가 있지만 공포를 앞세우기보다는

기묘함과 질서, 그리고 그 안의 균형에 더 초점을 맞춘다.



글의 분위기 또한 전반적으로 담담하다.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기보다는 사건을 차분히 기록하듯 풀어내서

설정과 세계관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신수와 수호령 같은 존재들도 막연히 무섭거나 신비로운 대상이 아니라

이 세계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강한 자극이나 화려한 판타지를 기대하는 사람들보다는

오컬트, 미스터리, 세계관 중심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잘 맞을 것 같다.

나처럼 이런 장르적 요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상상력을 발휘하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하나의 사건 기록이자 신수와 수호령이 살아 있는 영계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은 이야기다.

다음 편이 있다면 이 세계가 어떻게 더 확장될지 계속 지켜보고 싶어진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어딘가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묵묵히 영계의 질서를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상상을 조용히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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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의 아이들
변윤하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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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식물이 마법이 되는 학교에서

- 한국 판타지가 보여준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


나는 국내 판타지 소설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아직 한국 판타지는 성장 중인 장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뻗어나가면 정말 멋진 세계관을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감들 그 설렘 때문에 자연스럽게 찾아 읽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아벨의 아이들'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한국 작가가 쓴 마법 학교물’이라는 단순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가면서 느낀 건 이것이었다. 이건 내가 아는 판타지물이면서 뭔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특히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식물과 마법이 결합된 독특한 설정이었다.

식물을 기반으로 한 마법 학교라니, 이런 상상은 해외 판타지에서도 흔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한국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요소다.



평소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나처럼 정원, 식물, 자연 관련 콘텐츠에

눈길이 많이 가는 사람들은 이 세계관 자체만으로도 이미 상상력이 펼쳐진다.


​"만약 내가 저 학교에 다닌다면 어떤 마법을 쓸 수 있을까?"

"식물의 성질과 마법 능력이 연결된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식물을 이용해서 공격 마법을 한다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마법을 쓸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즐거운 상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게 바로 식물 기반 판타지 세계관의 강점이다.

화려한 주문이나 거대한 전투가 아니라 자연과 생명에서 비롯된 마법이라는 설정이 주는 신선함.

다정하면서도 강한 마법이라는 느낌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아벨의 아이들'은 마법 학교라는 익숙한 틀을 쓰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다.

서양식 마법 세계관의 구조를 따라가지만 감정 표현, 관계의 밀도, 세계가 흘러가는 방식 등

곳곳에서 한국 작가가 쓴 판타지라는 정체성이 분명하게 느껴졌고, 그 점이 너무 좋았다.


한국 판타지가 꾸준히 다양해지고 있다는 걸 이 작품을 읽으며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한국 판타지가 특정 장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최근 작품들은 감정선도 훨씬 섬세하고 세계관의 폭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 책은 그 흐름 속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물론 읽다 보면 세계관을 조금 더 확장시키면 더 풍부해지겠다는 생각도 들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더 깊어질 여지도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 이어질 시리즈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연결된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국 판타지가 앞으로 더 다양한 세계관으로 뻗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마법 학교물도, 고전적인 서사도 한국 작가의 손을 거치면

이렇게 새롭고 살아 있는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국내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또는 기존 마법 학교물에 익숙해 지루함을 느낀 사람이라면,

아벨의 아이들은 충분히 새로운 즐거움을 줄 것이다.


​식물 기반 세계관의 매력은 생각보다 강력하고,

한국 판타지의 가능성은 여전히 확장 중이라는 걸 느낀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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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 - 개정판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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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맛엔 별로지만, 역사엔 너무 중요했던 생선들

- 청어와 대구가 바꾼 세계의 숨은 이야기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물고기가 세계사를 바꿀 정도의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식량으로써의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려나?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점 진지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청어가 북유럽의 경제를 움직이고, 대구가 유럽 식민지 확장의 핵심 식량이었다는 사실.

어느 순간부터 생선이 단순히 식탁 위의 반찬이 아니라 전쟁, 정치, 종교, 무역의 한가운데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역사는 생각보다 비린내가 났다 는 말이 떠오를 정도였다.

(물론 예술적인 부분에서도 일정부분 기여를 했고 말이다.)​


책을 읽으며 제일 신기했던 건,

이 작고 평범한 생선들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바꾸고, 사람들의 삶의 방향까지 결정했다는 사실이었다.

청어 하나로 도시가 흥했고, 대구 한 마리로 전쟁이 지속되었으며,

심지어 ‘금식’이라는 종교적 제약이 생선 산업을 성장시켰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는 청어 과메기를 제외하고 청어를 이용한 요리를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흔한 생선이 아니기도 하고, 솔직히 대구 쪽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대구탕, 대구전, 대구지리.... 맛있다는 사람도 많지만, 내 입맛엔 뭔가 맞질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세계사를 뒤흔든 물고기인데, 그래도 난 대구는 별로야.라고


​하지만 한편으론 좀 충격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역사를, 음식이라는 익숙한 형태 속에서 그냥 지나치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말이다.



특히 이 책은 단순히 생선의 생태나 요리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생존, 탐욕과 신앙, 전쟁과 무역이 모두 물고기라는 자원을 중심으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읽는 내내 느꼈다. 우리가 식탁 위에서 먹는 한 조각의 생선이

누군가의 노동, 시대의 흐름, 그리고 인간의 생존 본능의 결실이라는 것을.

단순한 요리 재료가 아니라 역사를 이끈 힘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책의 구성도 흥미롭다.

생선을 중심으로 시대별 사건을 짚어주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한 몰입감이 있다.

세계사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이 작고 비린 존재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졌는지를 하나씩 보여준다.


​읽고 나서 나는 냉장고를 열어 생선을 보며 잠시 멈췄다.

이 녀석이 혹시 내 인생을 바꿀 수도 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아무리 그래도 대구는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제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역사 한 페이지가 같이 떠오를 것 같다.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는 단순한 물고기의 이야기도 식량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미세한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 균형을 움직이는 힘이 때로는 청어 한 마리, 대구 한 마리였다는 걸 일깨워주는 책이다.


​읽고 나면 생선을 다시는 예전처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이제 시장에서 대구를 볼 때, 살까 말까 고민하는 대신 이렇게 중얼거릴 것 같다.

그래, 넌 내 입맛엔 안 맞지만… 세상은 네 덕에 굴러갔으니까. 정말 훌륭한 생선이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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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살고 있습니다 - 달콤쫄깃 시골 라이프 쌩리얼 생존기
원진주 지음 / 해뜰서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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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선택한 용기에 대하여

- 자연을 동경하지만, 쉽게 가지 못하는 이유



솔직히 말해, 나는 시골살이를 동경하지 않는다.

자연은 좋다. 조용함도 좋다. 그러나 그 좋음이 곧 삶의 방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도시는 분명 피곤하고, 시끄럽고, 복잡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 많은 편리함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편리함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불편함을 선택한 작가님이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건 단순히 결심만 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도시의 삶보다 훨씬 더 많은 인내와 꾸준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시외곽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곳은 완전한 시골은 아니었지만, 밤이면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새벽의 정적, 차가운 밤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함도 너무나 많았다.

음식 배달도 안되고, 대중교통이 뜸하고, 마트를 가기 위해서도 차가 필요한 그런 곳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자연 속의 여유로운 삶은 결코 낭만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릴 적에는 그런 걸 몰랐다.

시외곽에서 살던 어린 시절엔 모든 게 신기했다.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그저 모든 게 행복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같은 환경에 놓이자, 모든 게 달라졌다.

아침부터 일어나야 하는 일상, 정리해야 할 일, 도시와 이어진 업무들,

그 모든 걸 안고 시골에 산다는 건 단순한 로망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정말 용기의 문제구나.


편리한 도시의 삶을 포기한다는 건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리듬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들리는 차 소리 대신 바람 소리를 듣고, 밤의 불빛 대신 별빛을 보는 건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힘이 필요하다.


이 책 속에서 작가님은 그 불편함을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현실적인 무게를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그 점이 가장 좋았다.

시골에서의 삶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시작한 사람의 글이라서 그 고백이 더욱 진실하게 다가왔다.


도심의 삶은 피곤하지만,

도심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운전면허를 뒤늦게 딴 이유도 결국 그런 불편함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도시의 리듬 속에 익숙해진 사람이고, 아마 다시 그 느린 시간으로 돌아가기엔 용기가 부족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나에게 어떤 판타지나 힐링이 아니라, 현실 속의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시골살이는 단순히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이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결국,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아직 도시를 떠나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그 길을 선택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 용기 하나만으로도 그 삶은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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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인생을 살아라 세계철학전집 6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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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가 건네는 가장 단단한 조언



모티브에서 나오는 세계철학전집을 어쩌다보니 자주 읽게 되는 것 같은데
이번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번 주인공이 바로 '디오게네스'였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술독에서 살았던 괴짜 철학자'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말했다. 철학자와 지식인들을 상대로 일진 역할을 했던 사람.
진짜 천재인데, 동시에 정말 미친 사람. 

그가 했던 행동을 보면 지금의 기준으로도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은 맞긴 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자유롭고, 가장 두려움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에 대해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개처럼 인생을 살아라"라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정곡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실소가 나왔다. 나한테 지금 당장 너무 필요한 말 같았다.
애써 감추고, 포장하고, 숨기고, 꾸미는 모든 것들에서 한 번에 껍질을 벗겨내버리는 말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디오게네스의 생애를 칭송하거나 단순히 재밌는 괴담처럼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 시대에 다시 꺼내졌을 때 의미가 생기는 인물이다.
우리는 너무 예의 바르고, 너무 체면을 중시하고, 너무 알고 있는 척 하느라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리곤 한다.

반면 디오게네스는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단 한 번도 중요하게 여겨준 적이 없다.

그는 밥을 구걸해 먹고, 광장에서 자고, 남들이 부끄러워하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게 비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감추어야 한다는 기준 자체가 허망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다가온 건
개처럼이라는 말이 '본능적으로, 솔직하게, 꾸밈 없이' 라는 뜻이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무시하며 지나치는 존재들이 사실은 가장 본질적인 삶을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디오게네스는 그걸 끝까지 지킨 사람이다.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절대로 꾸미지 않고, 절대로 자신을 속이지 않은 사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나도 절대적으로 아니다.
너무 많은 관계, 책임, 감정, 어른의 무게 속에서 거짓으로라도 그렇게 살겠다고 말하는 것조차 벅찰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라고 말이다.

나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도 참아야 하고,
억울해도 예의 있게 말해야 하고,
상처받아도 괜찮은 척 해야 하는 이 시대에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내 마음이다.

개처럼 살라는 말은 질주하라는 말이 아니다.
무너뜨리거나 어기라는 말도 아니다.

그저 네가 네 마음을 숨기지 말라는 말.
세상이 웃어도, 비웃어도, 못 알아봐도
너는 너의 본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나를 다시 잡아야겠구나...
바로 그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는 너무 두려움이 많고, 너무 조심스럽다.

그런데 어쩌면 조금은 무례하고, 조금은 예측 불가능하고,
조금은 솔직해져야 비로소 살아있는 느낌을 되찾을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읽고 나면 행동이 바뀌진 않더라도 내가 살아 있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디오게네스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생각은 해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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