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무지개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용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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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죽음을 결심했던 이의 삶에, 과잉된 빛이 스며들다



이 책을 처음 만나게 된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의 설명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밀스럽게 이루어진 계약, 죽음을 향한 백 일의 카운트다운" 이 얼마나 흥미로운 설명인가?

살짝 장르 소설틱한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 란 상상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내 생각과 다르게 이 책은 조금 더 말랑하면서도 울컥거리는 감정을 끌어올리는 책이었다.


​소나기가 그친 후 문득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보면, 우리는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이 단순한 기상현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찰나의 순간을 통해 사람들은 희망과 기다림을 떠올린다.

이 책 '과잉 무지개'는 이처럼 짧고 아름다운 순간, 그 뒤편에 숨겨진 감정과 서사를 정교하게 풀어낸다. 그것도 삶을 끝내기로 결심한 한 인물의 시선을 통해서 말이다.


이야기는 부모님을 연달아 잃고, 보험 사기까지 당하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청년 준재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이미 삶의 의미도, 의지도 모두 잃어버린 준재는 하루하루를 무력하게 견디며 살아간다.

죽음을 생각하지만, 죽을 용기조차 없다는 자조감에 빠져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한 게시글이 눈에 들어온다.

"죽음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단, 헛된 죽음은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앞세운 단체의 메시지는 어쩐지 마지막 희망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게 찾아간 낯선 동네, 재개발이 예정된 이 회색빛 장소에서 준재는 단체와의 계약서를 쓰게 된다.

준재에게는 백일의 시간이 주어지고, 의문의 단체는 준재의 모든 빚을 정리해 주고 생활비까지 지원해 주지만, 결국 정해진 기한이 끝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의 죽음 역시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라 장기기증이라는 이름 아래 의미 있는 죽음처럼 보이게끔 만든다.

하지만 진짜 그것이 의미 있는 죽음이 맞을까? 어차피 모든 게 만들어진 판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죽음이 아니게 되는 것인데.......


​죽음보다는 확실히 백일이라는 죽음을 앞둔 시간이 전해준,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님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설정을 빌려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하여금 삶의 현실을 더 또렷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준재는 백 일 동안 정해진 규칙을 따르며 살아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사람을 만나고, 봉사하고, 식사를 챙기고, 운동을 한다. 처음엔 불편했던 그 시간이, 아주 천천히 준재의 생활을 변하게 만들고 결국엔 그의 감정까지 바꿔놓는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고, 의외의 유대감을 느끼게 되고, 간만에 크게 웃게 된다.

자신을 기억해 줄 사람도, 자신이 다시 보고 싶은 얼굴도 생기게 된다.

죽음을 선택했던 사람이 어느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다양한 이유를 만들게 되는 이 과정들은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생각과 울림을 전한다.


​사실 나 역시 그랬다. 죽음을 여러 번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에 그저 공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뼈저리게 느껴졌다.

나는 왜 죽지 못하고 사는 걸까. 겁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아주 희미하게나마 삶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결국 그 애매한 경계, 그 아이러니야말로 나를 오늘 하루도 살게 한 힘이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직면하게 됐다.



삶은 늘 무겁지만, 그 끝에 깃드는 무지개처럼 여러 색으로 빛나고 있다. 지금은 힘든 빛이라도 그 이면에 새로운 빛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책은 굳이 삶과 죽음을 무겁게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외롭고 어두운 자리에서 피어나는 작은 온기와 소소한 변화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누구나 인생의 끝자락에 설 수 있다. 그때 누군가 곁에 있어 주고, 너의 삶은 의미 있었다고 말해줄 수 있다면, 믿어 준다면,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중간 정도 지나면 우리는 문득 궁금해진다. 준재는 정말 백 일 뒤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아니면, 그 안에서 피어난 삶의 온기를 붙잡고 어떻게든 다시 걸어가게 될까? 그 약속은 어떻게 깨버릴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 결말은 이 책의 핵심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준재가 다시 살아가고 싶다는 그 마음 자체를 갖게 된 그 과정 그 자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삶을 돌아봤다. 무너진 사람을 일으키는 건 거창한 성공이나 감동적인 한 방이 아니라,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의 손길, 의미 있는 하루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불안한 시대에도, 여전히 그런 무지개 같은 순간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싶어졌다.


이 책은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수많은 사람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진짜 죽음을 원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저 위로받고 싶었던 건가요?"

그리고 이 책은 그에 대한 작은 해답이 되어준다. 우리는 죽음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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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북투어
김미쇼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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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이야기의 순환을 따라가다

- 책 한 권이 건넨 위로, 그 너머의 사람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불편한 편의점 북투어'가 단순히 말 그대로 북투어의 이야기나 독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팬북 같은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몇 장 넘기고 나서부터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건 단지 어떤 책의 인기를 조명하거나,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 김미쇼님은 북 프로모터이자 김호연 작가님의 배우자이기도 한데, 그래서일까?

한 사람의 독자가 한 권의 책과 만나고, 그 책을 많은 사람들과 연결하고, 다시 그것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너무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처음엔 몰랐던 이 관계와 배경을 알고 나니, 이 책 속에 담긴 문장 하나하나가 훨씬 더 진심으로 다가왔다.


​사실 나는 불편한 편의점도 1권만 읽고 이후 시리즈나 비슷한 책들에는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다.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땐 소소한데 따뜻하네, 이런 이야기 참 좋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따뜻함이 너무 많은 곳에서 반복되기 시작했고, 거의 공식처럼 등장하는 힐링 소설들이 넘쳐나면서 조금은 피로함이 밀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편의점, 작은 서점, 동네 식당, 오래된 목욕탕 등, 공간은 다르지만 느낌은 다 비슷해졌고

어느새 내가 좋아하던 달팽이 식당조차 몇몇 사람들에겐 이런 힐링 소설의 아류작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류의 책들을 조금씩 피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편한 편의점 북투어를 읽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째서 이 책이, 그리고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들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만큼 세상이 각박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정말로 따뜻한 이야기 하나가 귀한 시대다.

선행이나 미담 같은 게 뉴스나 유튜브로도 소개될 만큼 그런 장면이 귀한 것이다.

그런 내용의 영상이 올라오면 '세상 아직 살만하다' '인류애가 충전된다'는 반응이 먼저 올라올 정도니까.....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이처럼 작은 친절과 소소한 온기를 품은 책이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걸 알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반복되는 게 싫은 건 약간의 고집이려나...



불편한 편의점 북투어는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 어떤 많은 일이 있었는지, 이 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고,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책이 각자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었는지가 잔잔하게 담겨 있다.

어떤 이는 책 덕분에 오랜 시간 가슴에 묻어두었던 감정을 털어놓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현실에서 마주한 외로움을 이 책 한 권으로 위로받았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불편한 편의점이 단지 밀리언셀러여서가 아니라 정말로 누군가에게 중요한 책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책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고, 이 책은 그 사람들로부터 다시 또 이야기를 되돌려받는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건, 저자인 김미쇼 님이 북투어라는 형식을 통해 단순히 책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책이 한 공간에서만 읽히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새로운 경험과 감정을 만들며 살아 있는 무언가로 계속 순환하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단지 글자가 인쇄된 종이가 아니라, 그 글자가 누군가에게 닿아 어떤 위로가 되었는지를 함께 보여주는 책.

나는 불편한 편의점 북투어를 통해 그런 과정을 처음으로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거기다 이 책을 통해서 북 프로모터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아마도 엔터나 스포츠 업계의 프로모터의 활동에 더하여 출판 쪽의 업무가 복합적으로 들어간 직업 같은데 꽤 인상 깊었다.

특히나 프로모터이자 가족으로 얽힌 관계이기 때문에 조금 더 복잡한 사정들이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부분도 많았고 말이다.

일할 때 가족과 엮인 다는 건 장점인지 단점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결국 이 책은 어떤 작가의 배우자이기 이전에, 정말 책을 사랑하고 사람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 완성된 기록이었다.

단순한 책 소개도, 단순한 팬북도 아닌,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사람을 움직이고, 살아 있는 여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는 책.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작품이 좋았던 사람이라면 당연하고, 한때는 좋아했지만 그 따뜻함에 익숙해져 멀어졌던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다시 그 감정을 떠올리게 해주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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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로망스
김진성 지음 / 델피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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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문래동의 낡고 따뜻한 로망

- 가보지 않았지만 함께 있었던 듯한 그 감정



나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에 가본 횟수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문래동이란 지명이 낯설었고 사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저 서울 어딘가에 있는 동네겠거니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치 내가 한때 그곳에서 살았던 것 같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직접 가본 적 없는데도, 철공소의 기계 소리와 녹슨 간판, 오래된 찻집의 창문, 그 안에 스며든 사람들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로컬 감성이 깃든 느린 로맨스다. 요즘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낯선 공간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감정과 관계를 그린다. 문래동이라는 낡은 철의 동네에서 만난 두 사람은 특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들의 하루하루는 묘하게 진하다. 물론 대학원생과 지도교수라는 둘의 관계성은 조금 특별한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문래동 로망스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공간'에 있는 것 같다. 문래동이라는 곳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등장한다. 철을 깎는 소리, 기계의 열기, 오래된 골목, 한때의 영광을 뒤로한 공장가. 이런 공간에 쌓인 시간들이 이야기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낸 인물들은 서툴지만 진심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눈빛과 손짓으로 나눈다.


​문래동을 잘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작가님이 건네는 이 공간의 정서를 따라가는 것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직접 걷지도 않은 거리인데도, 골목 어귀에 들어선 듯한 생생함. 등장인물들이 마주 앉아 나누는 조용한 대화가 마치 내 옆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다른 분들의 댓글에서 문래동에 대한 추억을 말하는 분들이 꽤 많았는데, 나는 이곳을 몰라서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있길래 그 추억을 논하는 걸까? 했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님의 묘사나 이야기를 따라 걸으면서 왜 다들 이곳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이라고 하면 늘 두근거림이나 설렘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 책의 로맨스는 조금 다르다.

누구나 꿈꾸는 열정적이고 강렬한 드라마 속의 사랑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사랑이었다.

서로의 무게를 감싸안고, 함께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내주는 과정들이 진짜 어른들의 사랑이란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어른이지만 이렇게 상처를 보듬고,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사랑이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진짜' 어른들의 사랑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했던 사랑은 한낱 어린아이들의 불장난 같은 사랑을 어른들의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철부지처럼 따라 걸었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이 주는 연애의 모습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라 더 깊고 오래 남는다.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감정들, 스쳐 지나가듯 주고받는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 그리고 묵묵히 함께하는 일상의 무게들. 작가님은 이를 과장 없이 그려내면서 그 감정에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한다.


그리고 문래동이라는 공간이, 단지 철공소의 동네가 아니라 ‘사람 냄새나는 동네’로 다가오는 순간, 이 책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을 넘어선다. 그곳에는 한때를 살아낸 사람들의 기억이 있고, 잊히지 않을 마음의 풍경이 있었다. 나처럼 문래동에 가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그 골목의 공기와 소리를 전해준다. 낯선 장소에 마음을 두고, 가보지 않은 곳에 이상한 그리움을 품게 만든다. 어쩐지 나도 문래동에서 한 계절쯤 살아본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이 소설은 빠르게 지나치는 하루 속에서 문득 멈추게 만들었다. 관계와 사랑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조용히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알려준다. 이 따뜻한 이야기는 과거를 회상할 때 느껴지는 진한 향수처럼 마음속에 조용히, 오래 남는다.


​사랑이란 감정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다 부질없고,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나에게

그래도 언젠가는 모든 걸 이해하고,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아 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잠깐 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불타오르진 않지만 풋풋함과 현실적인 부분들이 마주하는 어른들의 사랑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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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캔버스
김영호 지음 / 군자출판사(교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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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예술은 결국 사람을 치유한다



치유의 캔버스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아주 섬세하고 조용한 책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명화 속의 의학을 간단히 소개하고 감상하는 미술 교양서일 줄 알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 생각보다 깊고 진지한 책인 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인간의 고통, 삶, 질병, 감정이라는 복잡한 결을 명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달하는

꽤 흥미롭고 따뜻한 내면이 있는 책이었다.

막상 의학이라는 단어를 보면 꽤 어려울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이 책은 그림을 통해 많은 걸 진단하고 해석하며, 마치 병을 보듯, 혹은 마음을 쓰다듬듯 그림과 인간의 내면을 함께 살핀다.

고흐의 그림을 단순히 광기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붓질 안에 담긴 정서적 고통과 불안의 결을 따라가고,

젠틸레스키의 작품에서는 시대적 억압 속에 놓인 여성 화가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읽어냈다.

단지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 인물을 통해 시대와 인간, 그리고 그 안의 아픔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책이 단순한 해설을 넘어서, 그림을 매개로 한 인간의 정서적 이해의 시선까지 건넨다는 점이다. 질병을 겪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그림 속에 투영해 보는 이 작업은, 의사로서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작가로서의 따뜻한 문장이 함께 만든 결과였다. 이 책을 읽으며 그림이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고통과 회복의 여정을 담고 있기에 위로가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작가님의 문장은 복잡하지 않지만 깊이가 있었고, 읽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당기기보다는 그림 앞에 서서 조용히 함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또 하나 감탄했던 건 책 자체의 질이었다. 최근 들어 미술 서적의 인쇄 품질이 확연히 좋아졌다는 걸 체감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책 속에 수록된 명화들은 색감과 해상도가 탁월해서, 마치 미술관에서 직접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죽하면 내가 쇼파에서 이 책을 읽을 때 옆에 있던 엄마가 흘낏 보더니 평소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던 미술 작품들의 색감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평소 보던 책들과 종이부터 다르다며 내 손에서 책을 가져가서는 직접 몇 장을 읽어보시기까지 한 것이다.


​일반인들도 느낄 만큼 책을 구성한 종이의 두께나 질감도 고급스럽고, 페이지마다 그림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생동감이 있었다.

예전에도 명화가 실린 책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원본과 큰 차이 없이 색과 선, 질감을 구현한 경우는 드물었다.

디지털 복원과 인쇄 기술의 발전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이렇게 훌륭한 예술 서적을 손안에 펼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감동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색채의 미묘한 농담 하나에도 반응하는 나에겐 이 책이 더없이 귀하고 반가운 선물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며 그림은 더 이상 예술관의 벽에 걸린 먼 존재가 아니라, 삶을 이해하고 마음을 위로하는 언어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건 거창한 미술 지식이 아니라, 그림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을 찾아보려는 마음이었다.


'치유의 캔버스'는 단순한 미술책이 아니다. 병든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의사의 눈으로 그림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통해 마음에 조용히 손을 얹는 위로의 기록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상처받고 살아간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말없이 건네는 한 장의 캔버스이자,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마음이 지친 어느 날, 이 책 한 권이 아주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곁에 남는다. 치유는 어쩌면 이렇게 한 장의 그림 앞에서, 천천히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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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자개장
박주원 지음 / 그롱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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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장 안의 시간, 기억, 사랑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마음은 전할 수 있다


SF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외계 행성, 우주선, 사이보그, 초능력 같은 이미지가 가장 강하고,

최근 들어서는 인공지능이나 Cli-fi (기후 재난 SF, 클라이 파이) 쪽이  먼저 떠오르는 나에게 '판타스틱 자개장'은 무척 신기하게 다가왔다.


반지하와 노후 아파트, 자개장 같은 정겨운 한국적 소재들이 SF의 외피를 두르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자개장이 타임머신의 용도로 사용되는 게 특이했다. 이 책은 전형적인 SF의 형태를 따르면서도, 한국적인 정서, 가족적인 부분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반짝이는 자개장 안에 담긴 세계, 그 안에 숨어 있는 가족의 이야기.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써야 할, 그리고 우리만이 쓸 수 있는 한국형 SF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서른아홉 살의 소설가 지망생 자연이 공모전을 기다리던 중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는 데서 시작된다. 병원에서 마주한 아버지는 췌장암 말기, 그것도 이미 혼수상태에 접어든 상태였다. 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무심하고, 때로는 폭력적으로 대했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응어리진 채 남아 있던 자연은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서 혼란스럽고 억울하기만 하다. 그런 자연이 자신의 방에 있는 오래된 자개장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시간은 하루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 뒤로도 자개장은 계속해서 과거의 시간으로 자연을 데려간다. 하루 전, 이틀 전, 8일 전, 그리고 2주 전...

시간은 계속 거꾸로 흐르고, 자연은 그 안에서 아버지를 살릴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연은 자신이 아버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을 하려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 곧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판타스틱 자개장이란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 여행이라는 전형적인 SF 장르의 틀 안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와 감정을 풀어낸다는 거다. 작가는 SF를 스펙터클이 아닌 감정의 장치로 사용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미래보다 과거에 닿아 있고, 과학보다는 사람에 가깝다. 자개장은 단순한 판타지적 장치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드나드는 포탈이며, 한 가족의 침묵과 단절, 그리고 치유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표현된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의 핵심인 '자개장'이라는 소재가 가지는 한국적 정서는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반지하 방의 오래된 자개장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성장과 상처, 추억이 켜켜이 쌓인 기억의 상자 같다.

문을 열면 반짝이는 은빛 자개 무늬가 보이고,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미안함과 전하지 못한 사랑이 숨 쉬고 있다.

작가님은 이 익숙하고 오래된 오브제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하고, 그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난 이 책에서 기억을 다루는 방식이 꽤 인상적이었다. SF에서는 종종 기억이 삭제되거나 조작되는 일이 클리셰처럼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기억이라는 것은 회피하거나 지우려고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시 마주하고 어루만져야 하는 대상이다. 기억은 간단한 데이터가 아니라 누군가의 감정이고 서사이며, 누군가를 향한 미련과 사랑의 증표다. 그래서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공감한 건, 바로 자연의 위치였다.

나도 나름 독립을 했다가 다시 돌아온 캥거루족으로서, 자연의 불안과 복잡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독립하지 못한 나약함에 대한 자책,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

이 시대는 나 같은 사람에겐 너무나 버겁고, 그 버거움을 버티다 보면 결국 마음 어딘가가 고장 나 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나름의 위로이자 또 하나의 경고였다. 지금이라도, 아주 늦기 전에 마음을 표현하라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이해해 주길 바라고, 남보다 쉽게 상처를 주고, 너무 늦게 후회하는 존재들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절대 후회하지 말라고 이 이야기가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가족이란, 어떻게든 시간을 돌려서라도 다시 붙들고 싶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결국 '애도'에 관한 이야기다.

미처 표현하지 못했고, 후회는 남았지만 기회는 지나간 되돌릴 수 없는 그 관계에 대한 아프고도 따뜻한 애도.


'판타스틱 자개장'은 그저 신선한 SF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SF라는 장르를 빌려, 한국적인 정서와 감정,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따뜻하게 담아낸 하나의 정서적 시간 여행을 그린 한 편의 성장 소설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누군가에게 문득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내가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 지금 이 순간 너무나 보고 싶은 사람들. 이 이야기는 시간을 되돌리는 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전하는 법을 알려주는 소설이었다. 언제쯤 나도 이 미안함을 보고픈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수많은 기억이 스치고,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수많은 말이 입안에 머물렀으며, 수많은 다짐과 후회를 하게 된 소설이었다.


​한국적인 SF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고, SF보다도 간단한 시간 여행과 가족의 이야기,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가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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