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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캔버스
김영호 지음 / 군자출판사(교재)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예술은 결국 사람을 치유한다

치유의 캔버스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아주 섬세하고 조용한 책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명화 속의 의학을 간단히 소개하고 감상하는 미술 교양서일 줄 알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 생각보다 깊고 진지한 책인 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인간의 고통, 삶, 질병, 감정이라는 복잡한 결을 명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달하는
꽤 흥미롭고 따뜻한 내면이 있는 책이었다.
막상 의학이라는 단어를 보면 꽤 어려울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이 책은 그림을 통해 많은 걸 진단하고 해석하며, 마치 병을 보듯, 혹은 마음을 쓰다듬듯 그림과 인간의 내면을 함께 살핀다.
고흐의 그림을 단순히 광기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붓질 안에 담긴 정서적 고통과 불안의 결을 따라가고,
젠틸레스키의 작품에서는 시대적 억압 속에 놓인 여성 화가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읽어냈다.
단지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 인물을 통해 시대와 인간, 그리고 그 안의 아픔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책이 단순한 해설을 넘어서, 그림을 매개로 한 인간의 정서적 이해의 시선까지 건넨다는 점이다. 질병을 겪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그림 속에 투영해 보는 이 작업은, 의사로서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작가로서의 따뜻한 문장이 함께 만든 결과였다. 이 책을 읽으며 그림이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고통과 회복의 여정을 담고 있기에 위로가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작가님의 문장은 복잡하지 않지만 깊이가 있었고, 읽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당기기보다는 그림 앞에 서서 조용히 함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또 하나 감탄했던 건 책 자체의 질이었다. 최근 들어 미술 서적의 인쇄 품질이 확연히 좋아졌다는 걸 체감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책 속에 수록된 명화들은 색감과 해상도가 탁월해서, 마치 미술관에서 직접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죽하면 내가 쇼파에서 이 책을 읽을 때 옆에 있던 엄마가 흘낏 보더니 평소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던 미술 작품들의 색감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평소 보던 책들과 종이부터 다르다며 내 손에서 책을 가져가서는 직접 몇 장을 읽어보시기까지 한 것이다.
일반인들도 느낄 만큼 책을 구성한 종이의 두께나 질감도 고급스럽고, 페이지마다 그림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생동감이 있었다.
예전에도 명화가 실린 책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원본과 큰 차이 없이 색과 선, 질감을 구현한 경우는 드물었다.
디지털 복원과 인쇄 기술의 발전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이렇게 훌륭한 예술 서적을 손안에 펼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감동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색채의 미묘한 농담 하나에도 반응하는 나에겐 이 책이 더없이 귀하고 반가운 선물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며 그림은 더 이상 예술관의 벽에 걸린 먼 존재가 아니라, 삶을 이해하고 마음을 위로하는 언어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건 거창한 미술 지식이 아니라, 그림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을 찾아보려는 마음이었다.
'치유의 캔버스'는 단순한 미술책이 아니다. 병든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의사의 눈으로 그림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통해 마음에 조용히 손을 얹는 위로의 기록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상처받고 살아간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말없이 건네는 한 장의 캔버스이자,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마음이 지친 어느 날, 이 책 한 권이 아주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곁에 남는다. 치유는 어쩌면 이렇게 한 장의 그림 앞에서, 천천히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