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로망스
김진성 지음 / 델피노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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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문래동의 낡고 따뜻한 로망

- 가보지 않았지만 함께 있었던 듯한 그 감정



나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에 가본 횟수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문래동이란 지명이 낯설었고 사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저 서울 어딘가에 있는 동네겠거니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치 내가 한때 그곳에서 살았던 것 같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직접 가본 적 없는데도, 철공소의 기계 소리와 녹슨 간판, 오래된 찻집의 창문, 그 안에 스며든 사람들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로컬 감성이 깃든 느린 로맨스다. 요즘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낯선 공간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감정과 관계를 그린다. 문래동이라는 낡은 철의 동네에서 만난 두 사람은 특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들의 하루하루는 묘하게 진하다. 물론 대학원생과 지도교수라는 둘의 관계성은 조금 특별한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문래동 로망스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공간'에 있는 것 같다. 문래동이라는 곳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등장한다. 철을 깎는 소리, 기계의 열기, 오래된 골목, 한때의 영광을 뒤로한 공장가. 이런 공간에 쌓인 시간들이 이야기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낸 인물들은 서툴지만 진심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눈빛과 손짓으로 나눈다.


​문래동을 잘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작가님이 건네는 이 공간의 정서를 따라가는 것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직접 걷지도 않은 거리인데도, 골목 어귀에 들어선 듯한 생생함. 등장인물들이 마주 앉아 나누는 조용한 대화가 마치 내 옆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다른 분들의 댓글에서 문래동에 대한 추억을 말하는 분들이 꽤 많았는데, 나는 이곳을 몰라서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있길래 그 추억을 논하는 걸까? 했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님의 묘사나 이야기를 따라 걸으면서 왜 다들 이곳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이라고 하면 늘 두근거림이나 설렘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 책의 로맨스는 조금 다르다.

누구나 꿈꾸는 열정적이고 강렬한 드라마 속의 사랑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사랑이었다.

서로의 무게를 감싸안고, 함께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내주는 과정들이 진짜 어른들의 사랑이란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어른이지만 이렇게 상처를 보듬고,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사랑이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진짜' 어른들의 사랑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했던 사랑은 한낱 어린아이들의 불장난 같은 사랑을 어른들의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철부지처럼 따라 걸었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이 주는 연애의 모습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라 더 깊고 오래 남는다.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감정들, 스쳐 지나가듯 주고받는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 그리고 묵묵히 함께하는 일상의 무게들. 작가님은 이를 과장 없이 그려내면서 그 감정에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한다.


그리고 문래동이라는 공간이, 단지 철공소의 동네가 아니라 ‘사람 냄새나는 동네’로 다가오는 순간, 이 책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을 넘어선다. 그곳에는 한때를 살아낸 사람들의 기억이 있고, 잊히지 않을 마음의 풍경이 있었다. 나처럼 문래동에 가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그 골목의 공기와 소리를 전해준다. 낯선 장소에 마음을 두고, 가보지 않은 곳에 이상한 그리움을 품게 만든다. 어쩐지 나도 문래동에서 한 계절쯤 살아본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이 소설은 빠르게 지나치는 하루 속에서 문득 멈추게 만들었다. 관계와 사랑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조용히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알려준다. 이 따뜻한 이야기는 과거를 회상할 때 느껴지는 진한 향수처럼 마음속에 조용히, 오래 남는다.


​사랑이란 감정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다 부질없고,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나에게

그래도 언젠가는 모든 걸 이해하고,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아 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잠깐 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불타오르진 않지만 풋풋함과 현실적인 부분들이 마주하는 어른들의 사랑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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