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살인
카라 헌터 지음, 장선하 옮김 / 청미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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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진실은 우리가 믿는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 추리를 넘어 심리와 미디어를 이용한 새로운 형식의 소설



가끔, 소설이 아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카라 헌터의 '가족 살인'이 딱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잘 만든 추리소설이라고 표현하기엔 그 틀을 한참이나 넘어섰다고 느꼈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나는 문득문득 "진짜 있었던 일인가?" 하고 착각했다.

그만큼 현실적인 구성과 리얼한 연출, 그리고 정교한 몰입도는 지금껏 경험해 본 어떤 추리소설과도 달랐다.



'가족 살인'은 다큐멘터리 감독인 가이 하워드가 20년 전 자신의 의붓아버지인 '루크 라이더'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서

리얼 크라임쇼 '인퍼머스'를 제작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나는 청미래 까치 북클럽을 통해 이 책을 함께 읽고 추리를 해보는 추리단 활동을 했는데, 실제 범죄 다큐멘터리를 보고 사람들과 추리하고 분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용의자를 추측하고, 중간중간 드러나는 단서들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고, 진실에 다가가는 그 과정 자체가 이 책의 큰 재미 중 하나였다. 마케터님이 던져주는 다양한 질문들도 이 책을 더 꼼꼼하게 읽을 수 있게 도움을 준 것 같다.





책은 전통적인 소설 문체가 아닌, 다양한 형식의 문서와 미디어 조각들로 구성된다.

인터뷰 스크립트, 이메일 내용, 경찰 보고서, 제작 노트, 커뮤니티 포럼의 댓글, SNS 피드백 등등

그야말로 지금 우리가 실제로 접하는 콘텐츠의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아니 오히려 더 꼼꼼하고 자세하게 자료들이 정리되어 보여진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마치 한 편의 리얼 크라임 쇼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듯한 기분에 빠져드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계속해서 의심하게 된다. 가족들은 과연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저 사람의 말은 진실인가? 다큐 제작자는 중립적인가?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인가?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서사와 진실을 품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100% 신뢰할 수 없다. 모두가 너무 의심스럽다.


게다가 이야기 중반을 넘어가면서 드러나는 충격적인 반전들은, 그야말로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진짜 계속해서 '헐' 소리를 내뱉게 되고, 가끔은 어이가 없기도 했고, 다시 한번 책을 앞으로 넘기면서 단서를 되짚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의 묘미는 단순히 범인을 찾는 데 있지 않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거짓과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끝없이 되묻고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이 미디어화가 된다면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페이크 다큐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 영상이 그려졌다. 단순한 스릴러 영화가 아니라, 넷플릭스나 HBO에서 방영되는 고퀄리티 페이크 다큐.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 화면, 관계자의 목소리, 당시 사건 현장을 재현한 영상.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퍼즐을 조립하게끔 만드는 이 구조는 오히려 전통적인 드라마보다도 훨씬 강력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이건 진짜 미디어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물론, 책이 주는 특유의 몰입감은 영상과는 또 다른 맛이겠지만, 이 설정과 구성이라면

충분히 넷플릭스식 다큐 시리즈로 제작해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는 순간, 진실은 또 다른 얼굴을 한다 '가족 살인'은 단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소설이 아니었다. 이 책은 미디어가 진실을 어떻게 비추는지, 우리는 어떤 프레임으로 그것을 소비하는지, 그리고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진실은 늘 하나일까? 아니면 보는 사람의 시선과 믿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까?


책을 덮고 나서도 머릿속을 맴도는 이 질문이야말로, '가족 살인'이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선 이유다.

지금 이순간에도 이 작품은 나에게 "당신이 믿는 진실은 정말 진실인가요?"라고 되묻는다.


만약 정통 추리소설의 형식을 벗어난 새로운 형식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넷플릭스의 실제 범죄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처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추리하고 이야기하며 함께 읽기를 하는 것도 권하고 싶다. 그 경험은 정말 특별하니까...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날 책이 아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단서가 보이고, 사람들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새로운 진실들이 보일 테니까 말이다. 나 역시 아마도 몇 번이고 이 책을 다시 들춰보게 될 것 같다. 마지막의 충격적인 결말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들을 되짚으며 내가 놓쳤던 부분을 다시 바라보고 추리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땐 또 어떤 감정이 들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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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나무 아래의 죽음 캐드펠 수사 시리즈 13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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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기억하고 있었다
– 사라진 사람과 꺾인 장미, 그리고 남겨진 진실



장미나무 아래의 죽음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열세 번째 이야기이지만,

숫자는 이 이야기의 무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마치 독립적인 작은 세계 같아서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사람의 삶을 따라 걷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앞선 시리즈를 읽지 않아도 이해하는데에 어려움은 없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는 '주디스'라는 여성이 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도, 그와의 추억이 깃든 집을

수도원에 기부한 젊은 미망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집에 완전히 등을 돌리지 않았다.

수도원에 집을 기부하는 대신에 매년 성 위니프리드의 축일에

정원에서 자란 장미 한 송이를 받는 조건을 걸었다.

그 한 송이의 장미가 주디스에게는 사랑과 기억, 그리고 삶의 의지였던 것 같다.

그래서 단지 그것만으로 집을 기부하고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누군가 장미나무를 훼손하려고 했고,

그 장면을 목격한 수사가 장미나무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잔잔하게 시작되던 이야기가 이 장면을 기점으로 서서히 긴장을 끌어올린다.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주디스가 사라지고,

곧이어 또 다른 시신이 강가에서 발견된다.

죽음과 실종,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혼란.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에도

캐드펠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사건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다.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조용하게 진행되는 수사는 있지만

캐드펠을 중심으로 깊게 관여하는 추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감정,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집중해서 보여주면서,

이 이야기와 사람들이 진짜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사건을 마주한 캐드펠은 주디스를 돕기 위해,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만의 방식으로 마을을 누비고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살인의 동기가 아니라,

오래 묻혀 있던 감정의 파편들이다. 사랑, 시기, 외로움, 그리고 회한.


특히 주디스라는 인물은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상처 입은 여인이지만 연약하지 않고, 고통을 품고 있지만 당당해보였다.

그녀를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들은 마치 

그녀의 마음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결말에 다다랐을 때, 나는 범인이 누구였는가보다

주디스가 마지막 선택이 더 눈에 보였다.

매번 이 시리즈가 단순한 추리 소설이 아니라고 느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추리 소설과 다르게 범인이 아니라 다른 인물의 선택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장미 한 송이처럼 아름답지만 가시를 품은 이야기.

그 아래엔 때로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캐드펠은 이번에도 그런 진실을, 침묵 속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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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마녀 영덜트 시리즈 2
거트루드 크라운필드 지음, 온(On) 그림, 조현희 옮김 / 희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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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어른들에게 필요한 단순한 이야기

- 왕자와 마녀가 말해주는 것



거트루드 크라운필드의 '그림자 마녀'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영덜트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읽게 되었다. 어른들은 가끔 동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어른을 위한 동화라거나,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몇 번이나 잊었다.

누군가를 구하러 가는 왕자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전개였다.

그리고 당연한 듯 찾아오는 정의의 승리까지 말이다. 모든 것이 뻔하고 단순해서 좋았다.

지나치게 복잡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요즘, 이렇게 유치하리만큼 맑고, 명료한 이야기가 오히려 마음에 오래 남는 법이다.


이야기는 전형적이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따뜻한 요정들이 가득한 빛의 왕국과 어둡고 컴컴한 그림자 나라

그 속에서 빛의 왕자에게 선의를 베풀었다가 자신의 오빠인 사악한 마법사의 꾀임에 빠져 갇혀버린 그림자 마녀

어둠에 갇힌 그림자 마녀를 구하기 위해서 모험을 떠나는 불잉걸 왕자.



어릴 때 읽었던 수많은 동화들이 떠오른다.

왕자와 공주가 나오던 이야기들 속에서 공주만 마녀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전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자 마녀는 그 전형적인 이야기에서도 조금 더 다른 점을 보여준다.

무조건적인 도움과 마녀를 향한 충신들의 애정이다.


보통의 마녀들은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목적이라서 자신의 곁에 있는 부하들까지도 이용할 뿐 애정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책 속의 마녀는 자신의 충복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주고 있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마녀가 위험에 빠지자마자 충복인 일렁이는 그림자는 자신의 사랑하는 주인을 구하기 위해서 홀로 마법사와 대면하고 마법사에게 마녀의 행방을 들은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 불의 왕국까지 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맹목적인 충신이라더라도 자신의 주인이 제대로 애정을 주지 않았다면 결코 그런 행동을 했을 리는 없다 특히나 그림자 나라에서 말이다.



거기다 불의 왕국 사람들과 왕자는 어떤 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선한 사람들이다.

불잉걸 왕자가 마녀를 구하러 떠나기 시작하자 앞다투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언제나 왕자 혼자서 공주를 구하러 가야 하는 동화의 이야기와 다르게 이 이야기에는 조력자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까지 읽은 동화들보다도 동화가 품을 수 있는 감정의 순도가 짙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단순한 선악 구조로 그려지지만, 그 단순함 안에는 두려움을 마주하는 용기,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 스며들어 있다. 왕자의 결정, 마녀의 존재, 용기를 이용해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는 복잡한 철학인 아닌 순수한 감정의 언어로 전해진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가 동화에서 멀어지는 건 동화가 아이들의 책이라거나 단순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자 마녀는 단지 이야기만 좋은 것이 아니다. 페이지마다 들어찬 단순하지만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들은 한 장면 한 장면을 오래 지켜보게 만든다. 특히 많은 색상을 사용하지 않고 검은색, 회색, 노란색 정도로만 표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둠을 표현한 장면조차도 무겁지 않게 느껴졌다. 노란색을 사용한 부분은 오히려 따뜻함과 포근함이 극대화되는 효과를 주어서 이야기 전체를 감싸안는 분이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마녀의 실루엣, 왕자의 빛, 국경지대의 단순한 묘사들까지 모두가 너무 잘 어울렸고, 이 책과 참 잘 어울리는 삽화 일러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책이란 그림만 튀어서도 안되고 글과 어우러져야 한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지만 그림이 어두워서도 안된다. 이 책은 그 원형을 잊지 않았다.


그림자 마녀는 누군가에겐 너무 유치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해서 만들긴 했지만 단순한 이야기로 만들어진 동화책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단순함과 유치함이야말로 동화의 본질이고, 그렇게 해야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 맹목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에서 얻는 감정은 더 진하다.


277페이지로 짧지 않은 내용이지만, 단순하고도 묵직하다. 무겁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동화를 보고 듣고 읽으며 자랐다. 그 이야기들은 해피엔딩을 약속했고, 진심과 용기가 언제나 악을 이긴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어지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오랜만에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조용히 두드렸다. 내 안의 동심이 세상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생각을 깨웠다. 눈부시게 반짝이진 않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이야기.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함께 끌어안아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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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라이언 - 스스로를 찾아가는 라이언의 모험
카카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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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꿈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포기하려 했던 꿈, 꿈을 지켜주려는 사랑, 그리고 라이언의 작고 단단한 용기


'그래도 라이언'은 카카오 프렌즈의 프리퀄 웹툰으로 3월부터 연재되고 있었던 웹툰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이다.

웹툰이지만, 대사가 없이 일러스트만으로 연출을 시도한 작품인데, 서양의 그래픽 노블과 비슷하게 통 일러스트를 사용했다는 점이 재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대부분 대사가 없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몇 장의 짧은 설명을 제외하면 오롯이 그림만으로 감정을 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말 없는 이야기들이 더 마음에 깊이 스며든다. 라이언이라는 캐릭터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일까?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 깊고 다정한 사자, 라이언의 이야기는 목소리가 없어도 온기가 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 라이언의 일상을 그려낸 것이 아니다. 처음엔 꽤 엉뚱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에 많은 감정과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생각보다 라이언이라는 캐릭터는 더 무겁고 묵직한 존재였다.


언제나 둥둥섬을 탈출해서 떠나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왕위 계승을 결심한 라이언과 그런 손주의 마음을 이해하고  기꺼이 대신 왕관을 쓴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가는 갈기 없는 사자 라이언의 이야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세계 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라이언이 자신의 꿈을 사진으로 만들어 벽에 액자로 걸어둔 장면이었다. 액자 속엔 라이언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상상 속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귀엽기보다는 먹먹함이 먼저 밀려왔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렇게라도 꿈을 품고 싶었을까?

너무 오래 바라기만 하면, 꿈은 점점 현실과 멀어지고 결국 벽 속에만 남는 환상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라이언은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위해서 달리고 또 달렸겠지 결국 실패로 남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끝내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하나 모았던 보물들을 버리는 장면에서는 이제는 꿈도, 욕망도, 기대도 내려놓겠다는

쓸쓸한 결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렸다. 그렇게 왕위를 계승하고 나면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그래도 라이언이라는 책의 제목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해 보려는 라이언의 작고 단단한 용기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카카오 프렌즈가 이제는 단순한 캐릭터 브랜드가 아니라, 캐릭터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담긴 거대한 세계관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카카오 프렌즈들이 어느새 우리에게 자신들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은 만화책과 일러스트북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작은 동화, 한 편의 짧은 애니메이션 같은 감동을 준다.

단순히 귀여움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잔잔한 진심이 담긴 주인공들.​


카카오 프렌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충분히 소장용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림 한 장 한 장의 완성도가 높고 그림 속에 감정도 깊게 들어 있어서 보면 볼수록 오래 그 장면에 머무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카카오 프렌즈 중에서 무지와 콘의 서사를 좋아하는 편인데, 둘의 이야기도 꼭 책으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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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의 바다 - 백은별 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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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사랑,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뜨겁게

– 풋풋함을 넘어서 진심을 담아낸 순수한 로맨스 판타지



'윤슬의 바다' 이름처럼 예쁜 표지를 가진 이 책은 내 기준 아주 어린 작가님의 손끝에서 태어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다.

2009년생 아직 고등학생 작가님의 이력을 접하게 되면 놀라움과 동시에 얼마나 잘 썼을까? 하는 의문부터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그런 선입견은 빠르게 무너진다. 물론 아직 가능성이 높은 작가님의 작품이다 보니까 성장의 길을 열어놔야겠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진솔하고, 더 오래 남는 소설이었다.


​소설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이 너무 진하고, 그 서사의 방식은 생각보다 더 단단하다.

고등학생, 그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감정의 깊이와 감정의 표현에 무척이나 감탄했다.

유명 작가분들의 정제된 문장과는 사뭇 다른 날 것의 솔직함,

그리고 그 솔직함에서 오는 진심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무기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초능력이 존재하는 사회다. 하지만 그 능력은 존중의 대상이 아닌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사회는 초능력자들을 위험 요소로 분류하고, 이들을 수용하거나 제거해야 할 존재로 규정한다.

이런 세계에서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진 소녀 '윤슬'과 초능력 연수소 소장의 아들이자 일반인인 '바다'는

여느 10대들처럼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게 끌리며 풋풋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시스템적으로 금지되고, 억압된 상황에서 그들의 감정은 순수하지만, 그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한 현실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특히나 둘은 아직까지 어린 학생들이라서 자신들이 놓인 상황에서 많은 사유에 의해 흔들리고 흔들린다.


책은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 부딪히는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풀어낸다.

소년과 소녀가 서로를 향해 천천히 스며들고, 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감정의 수위를 높여가는 장면들에서는

10대만이 가질 수 있는 날것의 정서가 느껴졌다. 낭만적인 로맨스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 그 자체가 얼마나 순수하면서도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를 절절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쉽게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나는 책에 줄을 긋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 플래그를 주로 사용하는데 정말 여기저기 다 붙여서 표시하고 적어놓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서 참느라고 꽤 고생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 청소년인 작가님의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문장들은 어른들의 소설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던 감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너라도 밝게 남아줄 수 있어서. 빛보다 어둠이 익숙한 나에게 빛 같은 네가 있어서.

아마도 우린 함께할 것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내 빛으로.


조금은 오글거리지만 예쁜 저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서 문장이 되었다. 저 감성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이 소설의 제목인 '윤슬의 바다'는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사실 요즘 SNS에서는 '윤슬'이나 '안온' 같은 단어들을 두고 과도하게 감성에 취한 언어고 남용되는 언어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 책만큼은 그 비판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슬'이라는 단어는 책 속의 인물의 이름이자,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감정의 결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쁜 소녀의 마음이 윤슬처럼 일렁이고, 우리의 마음에 조용히 파문을 남긴다.

작위적인 느낌이 아니라 제목과 작가님과 작품 모두가 하나의 톤으로 어우러져 있다는 인상을 주고

주인공들의 이름과 상관없이 이 책은 저 제목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작품의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겠지만 다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소설은 단순히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랑을 지킬 것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를 질문한다.

그 질문의 대상이 성인이 아닌 오히려 가장 순수한 감정을 가진 10대들이기에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마치 바다의 파도가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 듯,

아득한 감정의 바다에서 빠져 있다가 조용히 떠밀려 나오는 기분이다.


이 책은 완성형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안에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님의 감정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젊은 작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분명 가능성 그 자체로 나에게 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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