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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인생을 살아라 ㅣ 세계철학전집 6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10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디오게네스가 건네는 가장 단단한 조언

모티브에서 나오는 세계철학전집을 어쩌다보니 자주 읽게 되는 것 같은데
이번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번 주인공이 바로 '디오게네스'였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술독에서 살았던 괴짜 철학자'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말했다. 철학자와 지식인들을 상대로 일진 역할을 했던 사람.
진짜 천재인데, 동시에 정말 미친 사람.
그가 했던 행동을 보면 지금의 기준으로도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은 맞긴 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자유롭고, 가장 두려움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에 대해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개처럼 인생을 살아라"라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정곡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실소가 나왔다. 나한테 지금 당장 너무 필요한 말 같았다.
애써 감추고, 포장하고, 숨기고, 꾸미는 모든 것들에서 한 번에 껍질을 벗겨내버리는 말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디오게네스의 생애를 칭송하거나 단순히 재밌는 괴담처럼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 시대에 다시 꺼내졌을 때 의미가 생기는 인물이다.
우리는 너무 예의 바르고, 너무 체면을 중시하고, 너무 알고 있는 척 하느라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리곤 한다.
반면 디오게네스는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단 한 번도 중요하게 여겨준 적이 없다.
그는 밥을 구걸해 먹고, 광장에서 자고, 남들이 부끄러워하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게 비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감추어야 한다는 기준 자체가 허망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다가온 건
개처럼이라는 말이 '본능적으로, 솔직하게, 꾸밈 없이' 라는 뜻이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무시하며 지나치는 존재들이 사실은 가장 본질적인 삶을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디오게네스는 그걸 끝까지 지킨 사람이다.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절대로 꾸미지 않고, 절대로 자신을 속이지 않은 사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나도 절대적으로 아니다.
너무 많은 관계, 책임, 감정, 어른의 무게 속에서 거짓으로라도 그렇게 살겠다고 말하는 것조차 벅찰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라고 말이다.
나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도 참아야 하고,
억울해도 예의 있게 말해야 하고,
상처받아도 괜찮은 척 해야 하는 이 시대에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내 마음이다.
개처럼 살라는 말은 질주하라는 말이 아니다.
무너뜨리거나 어기라는 말도 아니다.
그저 네가 네 마음을 숨기지 말라는 말.
세상이 웃어도, 비웃어도, 못 알아봐도
너는 너의 본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나를 다시 잡아야겠구나...
바로 그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는 너무 두려움이 많고, 너무 조심스럽다.
그런데 어쩌면 조금은 무례하고, 조금은 예측 불가능하고,
조금은 솔직해져야 비로소 살아있는 느낌을 되찾을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읽고 나면 행동이 바뀌진 않더라도 내가 살아 있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디오게네스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생각은 해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