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투나 트리플 33
전하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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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멈추어 있던 시간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이 책을 신청하게 된 건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책 소개에서 본 문장 한 줄 때문이었다.

"찬란한 꿈, 변질된 꿈, 파괴된 꿈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지연된 꿈에 대하여."


이 문장이 내 마음에 정확히 닿았다.

누군가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부르겠지만, 나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마음들.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들은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은 그걸 붙잡고 있는 내가 서글플 때도 있고

놓아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아플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의 꿈이 머물고, 미루어지고, 꺾이고, 다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나의 마음도 함께 비춰볼 수 있을까 싶었다.


시그투나는 세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 첫 번째 이야기, 표제와 똑같은 '시그투나'의 이야기는 1927년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거기에는 식민지의 조국을 떠나온 한 여성 지식인이 있고, 그녀가 바라보는 세계는 너무 멀고, 너무 넓고, 너무 고독하다.


하지만 그 고독이 낯설지 않았다. 꿈은 언제나 가장 외로운 자리에서 자란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읽는 내내 나는 ‘내가 품었던 꿈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그걸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한때는 너무 선명하고 뜨거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모습이 달라지고

결국엔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로 밀려난 꿈들.

나는 그 꿈들을 여전히 품고 있다. 놓지 못해서가 아니라, 차마 놓을 수 없어서.


​책 속 인물들도 나처럼 비슷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기대, 시대의 압박, 사회의 무게, 자신이 스스로에게 걸어둔 굳은 약속 속에서

꿈을 조정하고, 포기하고, 미루고, 다시 붙잡는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영웅적이지 않다.

화려하지 않고, 눈부시지 않다.

그저 숨 쉬고 버티고 다음을 생각하는, 아주 인간적인 무게로 서 있다.


나는 그게 좋았다.

꿈을 이야기하면서도 꿈을 찬양하지 않는 태도.

꿈을 포기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시선.

그리고 언젠가 다시 손을 뻗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남겨두는 여백.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울컥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화려한 문장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이미 그 언저리에 오래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꿈을 되살려주지도 않고, 잊게 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현실을 그 속의 꿈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했다.


​나는 아직 내 꿈을 끝내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건 아주 천천히, 아주 작게,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지연된 꿈이라고 해서 사라진 꿈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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