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 - 개정판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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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내 입맛엔 별로지만, 역사엔 너무 중요했던 생선들

- 청어와 대구가 바꾼 세계의 숨은 이야기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물고기가 세계사를 바꿀 정도의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식량으로써의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려나?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점 진지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청어가 북유럽의 경제를 움직이고, 대구가 유럽 식민지 확장의 핵심 식량이었다는 사실.

어느 순간부터 생선이 단순히 식탁 위의 반찬이 아니라 전쟁, 정치, 종교, 무역의 한가운데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역사는 생각보다 비린내가 났다 는 말이 떠오를 정도였다.

(물론 예술적인 부분에서도 일정부분 기여를 했고 말이다.)​


책을 읽으며 제일 신기했던 건,

이 작고 평범한 생선들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바꾸고, 사람들의 삶의 방향까지 결정했다는 사실이었다.

청어 하나로 도시가 흥했고, 대구 한 마리로 전쟁이 지속되었으며,

심지어 ‘금식’이라는 종교적 제약이 생선 산업을 성장시켰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는 청어 과메기를 제외하고 청어를 이용한 요리를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흔한 생선이 아니기도 하고, 솔직히 대구 쪽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대구탕, 대구전, 대구지리.... 맛있다는 사람도 많지만, 내 입맛엔 뭔가 맞질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세계사를 뒤흔든 물고기인데, 그래도 난 대구는 별로야.라고


​하지만 한편으론 좀 충격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역사를, 음식이라는 익숙한 형태 속에서 그냥 지나치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말이다.



특히 이 책은 단순히 생선의 생태나 요리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생존, 탐욕과 신앙, 전쟁과 무역이 모두 물고기라는 자원을 중심으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읽는 내내 느꼈다. 우리가 식탁 위에서 먹는 한 조각의 생선이

누군가의 노동, 시대의 흐름, 그리고 인간의 생존 본능의 결실이라는 것을.

단순한 요리 재료가 아니라 역사를 이끈 힘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책의 구성도 흥미롭다.

생선을 중심으로 시대별 사건을 짚어주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한 몰입감이 있다.

세계사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이 작고 비린 존재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졌는지를 하나씩 보여준다.


​읽고 나서 나는 냉장고를 열어 생선을 보며 잠시 멈췄다.

이 녀석이 혹시 내 인생을 바꿀 수도 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아무리 그래도 대구는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제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역사 한 페이지가 같이 떠오를 것 같다.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는 단순한 물고기의 이야기도 식량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미세한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 균형을 움직이는 힘이 때로는 청어 한 마리, 대구 한 마리였다는 걸 일깨워주는 책이다.


​읽고 나면 생선을 다시는 예전처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이제 시장에서 대구를 볼 때, 살까 말까 고민하는 대신 이렇게 중얼거릴 것 같다.

그래, 넌 내 입맛엔 안 맞지만… 세상은 네 덕에 굴러갔으니까. 정말 훌륭한 생선이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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