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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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러브,좀비'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조예은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에 한껏 기대가 되었다. 여름에 맞는 괴이한 주제를 가지고 쓰여진 단편모음집. 최근들어 SF나 호러와 같은 장르문학이 많이 출간되는데, 어떤 작품은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게 느껴지거나 몇 %아쉬운 부분이 있어 책을 읽으며 한창 고조되던 몰입도가 방해되는 일이 잦아 안타깝기도 했었다. 하지만 조예은 작가의 신작은 역시 믿고 본달까...이번에도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책은 전반적으로 틈, 부재, 실존과 상실과 관련한 공포 혹은 그냥 이야기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같다. 존재하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새로운 형식의 표현이랄까?



하지만 가끔 생각이 납니다. 어른들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순간들이  있잖아요. 아이들이라고 다를까요. 왜, 늘 집에 가고 싶다고 울잖아요. 그게 그 말이죠.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 나를 상처주지 않는 곳에 가고싶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사라진 재이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할로우키즈 p.12



최근의 내 상황이 비슷해서였을까, 저 문단에서 시선을 멈추고 옮길 수 없었다. 유치원 행사에서 유령처럼 사라진 아이 재이, 말 그대로 유령처럼 사라졌을 수도 아님 무관심속에 유령처럼 취급받는 아이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것일수도 있다. 가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유령같이 느껴질 떄가 있다. 우주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다거나 아님 내 존재가 볼품없어 이 자리에 있지만, 유령처럼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같은 느낌. 공포에 가까운 공허란 이런 것일까 싶을 때가 있다.




세상엔 왜 사람을 거르는 시스템은 많으면서 걱정거리를 걸러주는 건 없는지.나는 왜 늘 걸러지는 쪽이고, 내 안의  아무것도 뜻대로 걸러낼 수 없는지.한편으로는 정말 이상했다.공기청정기 이름이 왜 먼지의 신일까


가장 작은 신 p.177




심각한 먼지 바람이 세상을 덮어버리고, 숨을 쉬는 행위로 생명이 위협받는 세상에서 수안은 더 깊숙이 집 안으로, 그리고 자기 안으로 숨어들었다. 단단히 걸어잠근 빗장을 오월의 산들바람처럼 미주가 산산이 조각내고 파고들어 왔다. 이용하려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곁을 내주었던 사람. 처음 시작은 거짓이었으나 결국 각자의 외로움의 틈을 서로가 메워주고 있었던 것.  공기 중 노폐물을 걸러내주는 공기청정기가 그 둘을 잇는 매개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둘 사이의 갭을 채워주는 물건이기도 했다.  




할로우 키즈


고기와 석류


릴리의 손


새해엔 쿠스쿠스


가장 작은 신


나쁜 꿈과 함께


유니버설 캣숍의 비밀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각 단편마다 매력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특히 마지막 이야기인 푸른머리칼의 살인마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푸른수염이라는 동화를 모티브로 각색한 것같은데, 주인공 메리 블루의 끝없는 시간 여행...문을 한번 열 때마다 시간이 바뀌고, 그녀와 주변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 살인마 영주를 죽여도, 썸머와 도망쳐도 자살을 해봐도 어느 하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주라고밖에 보이지 않는 메리블루의 삶이지만 그녀는 억울하게 죽어간 여자들, 주변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끝없는 시간여행을 지속한다. 종국에는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 썸머와 재회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전반적으로 외롭고 고독하고 텅빈 사람들, 그 외로움 속에 곰팡이처럼 피어난 관심과 사랑이 종국에는 너는 혼자가 아닌 서로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메세지가 숨어있는 듯하다. 


이 세상에서 일어날법하지만 결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 독특한 이야기로 여름밤을 지새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하니포터 4기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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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얼굴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20
이종수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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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덕후인 내 눈에 들어온 책. 부여는 그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이지만, 고조선에 비해 학계와 사람들의 관심을 주로 받지 못한 나라이기도 하다. 부여의 얼굴이라는 가면이 발견된 것을 언급하며 흥미를 부여하고 저자가 부여에 대해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축약하여 담은 책이다. 그렇기에 역사에 관심이 없거나, 전공자가 아니면 검색을 동반한 독서를 해야할 것같다. 목차만봐도 가슴이 설렌다.

제1장 부여의 얼굴

제2장 부여는 어떤 나라인가

제3장 부여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제4장 부여 왕성은 어디에

제5장 부여는 누구의 역사인가


부여금동가면

부여의 얼굴 가면은 고조선의 인물상과 유사하다. 주술적인 의미로 만든 것이라 추정하는데, 이런 부분은 어느 정도 고조선의 문화를 계승했음을 설명해준다고 한다. 고조선, 부여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물상은 동북 지역 예맥계 집단 대부분 영향을 받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부여 금동 가면은 청동에 금을 입혀 제작했는데, 금을 사용하는 기원은 북방초원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당시 중원 지역은 대부분 옥으로 제작한 가면을 사용했는데, 흉노 등 북방초원집단은 황금을 주로 활용했다는 것! 북방초원 민족에게 황금은 변치않는 영원불멸의 영험한 재료였다. 이것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무덤 부작용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황금이 북방민족의 특징 중 하나라니! 흥미롭기 그지없다. 이것으로 중원 문화와 구분이 가능하다니! 다만 제작방법이 북방초원지역의 금제 가면과 부여의 가면이 다르다. 북방초원 지역의 가면은 타출기법인반면, 부여는 거푸집을 이용한 주조방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부여의 현지 기술과 외래문화가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여와 고조선

저자는 고조선과 부여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 정세나 각 나라의 신화의 차이를 통해서도 그 뿌리를 유추해볼 수 있다. 북방초원지역에서는 주로 하늘의 빛, 천둥, 번개, 우박 등에 감응해 아이를 낳는 감응신화가 유행했다. 이것의 예시로 고구려 주몽신화, 신라의 박혁거세신화, 가야의 김수로왕신화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부여의 동명신화처럼 하늘의 감응을 바로 받아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아닌, 난생신화의 형태를 차용한다. 이것으로 미루어볼때 단군신화처럼 천손강림신화가 이른시기 시작되었고, 후에 동명신화같은 감응신화, 그 다음 난생신화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저자는 보고있다. 신화를 놓고 봤을 때 고조선과 부여의 건국신화는 그 계통이 다르다. 또한 예맥, 조선이 동이족으로 지칭되지만 부여의 시작인 색리국은 북이로 불리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그 계통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모두 夷로 불리는 점에서 범汎동이계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고조선과 부여 모두 상투를 틈)

부여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인식의 시작

고려 후기 이승휴의 제왕운기, 일연의 삼국유사에 이런 내용이 처음 나타났다. 이승휴는 동부여,북부여, 남옥저,북옥저까지 모두 단군의 후손이라 인식했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기를 인용해서 부여의 왕 해부루는 단군의 아들이라고 기록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부여의 풍습

부여인들은 자리를 양보할 때 읍을 하는 예절이 있었다고 한다. (두 손을 잡고 허리를 앞으로 구부렸다가 펴면서 경의를 표함) 부여인의 복장은 삼국지에 잘 나와있다. 부여인들은 흰 베로 저고리,도포,바지 등을 만들어 입고 가죽신을 신었다. 나라밖으로 나갈 땐 비단에 수를 놓아 입었고 대인은 여우, 살쾡이, 흑담비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금은으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고 한다. 우리 민족을 백의 민족이라고 부르는 그 시작은 어쩌면 부여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동북공정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필연적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다민족통일국가론의 입장에서 부여의 영역이 현재 중국 영토 범위에 포함된다는 것을 강조하여 중국의 변방사로 부여사를 기술한다. 즉 일개 소수민족이 건립한 중원 왕조의 지방 노예 정권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는 소리. 서구에서는 부여의 독자성을 강조하여 중국, 한국에 예속된 고대 국가가 아니라는 인식하에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한국에서의 부여 연구와 논문은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다. 국수주의에 빠져 연구하는 역사는 진정한 학문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특히 고대사에서는 그것이 부질없다생각한다. 다만, 21세기 자신들의 땅에 몇 천년전 국가의 도읍이 자리잡았었다하여 현재 자신들의 역사라고 이용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있다. 학문을 하나의 이데올로기와 국가간의 이익에 이용하는 세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얇은 한 권의 책이지만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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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환담 - 아홉 작가의 한국 설화 앤솔러지
곽재식 외 지음 / 달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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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었다가 신박한 소재와 재치있는 내용구성에 감탄하게된 책. 한국 설화 또는 역사적 인물을 작가들 만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모든 이야기가 다 재미있지만, 특히 단군신화와 선녀와 나무꾼을 모티브로 한 SF단편인 '파종선단', 단종과 세조의 이야기를 고양이 세계로 풀어낸 '단동이'(처음에 읽을 때 상상도 못했었다.) 권율과 이항복,장영실 그리고 신립의 민담 등을 섞어 만든 '구서담', 죽령 산신 다자구 할머니 설화를 바탕으로 풀어낸 '내가 만난 신의 모습은' 이라는 단편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특히 전혜진 작가의 '내가 만난 신의 모습은' 작품은 소재나 내용구성이 특히나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 관군을 도와 산적을 물리쳤던 다자구 할머니가 한국전쟁때에 나타났다면?'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단순히 설화만 반영한 것이 아닌 국가로부터 자행된 폭력, 식민지배와 해방 그리고 분단의 아픔, 격변기 속에서의 소시민들,주목받지 못한 죽음들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짚어주는 이야기였다. 다자구 할머니라는 산신을 통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역사 속에 휘말려 고통받던 이 땅의 생명들을 이야기 속에서나마 위로를 해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360페이지 남짓한 소설은 매우 흡입력이 있어 앉은자리에서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민화와 전설을 좋아하고, 새로운 이야기에 목마른 사람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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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
김금숙 지음, 정철훈 원작 / 서해문집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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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알렉산드라에 대해서는 얼핏 한줄 정도로만 듣고 넘어간 기억이 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지 않은 것도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 되는 속칭 빨갱이 운동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철훈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래픽 노블로 거친 그림선이 그녀의 치열했던 투쟁의 역사를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행한 모든 것의 시작은 아버지 김두서로부터 시작된다. 중국어와 러시아를 익힌 김두서는 시넬리코보에 정착하며 러시아로 귀화한다. 동청철도 현장에 파견된 러시아 군대 통역으로 징집되어 임금체불을당하며 차별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힘쓰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고만다. 아버지의 뒤에서 그가 행한 일을 봤던 그녀는 노동자들의 편에서 평생을 바치기로 다짐한다.


모든 이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불나방처럼 삶을 불살랐던 그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투쟁할 수있다는 것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 수록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렇기에 민족해방, 계급해방을 위한 그녀의 발걸음은 더욱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사랑을 속삭이던 남자들은 모두 그녀의 생각이 틀렸다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변하지 않은 내편이라는 것이 있었던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가진것이 없지만, 동시에 가장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자이자 볼쉐비키였던 김 알렉산드라. 독립운동사에서 공산주의 활동은 때려야 뗄수 없다. 특히 무장투쟁 독립운동쪽에서는 공산주의를 독립을 이루는 한 방법으로 이용했다. 그녀는 그녀의 삶 속에서, 조국을 떠나 핍박받는 동포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의 독립과 계급해방이라는 주제에 관심갖게된다. 단순히 현 시대와 맞지 않는 이념을 지지했다는 것만으로 터부시되기엔 그녀의 행보는 재조명될만하다. 인류의 절반은 여자고, 독립운동에서 피흘려쓰러져간 많은 독립운동가의 절반도 여성이었다.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모두의 노력이 현재를 만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래픽노블로 무거운 주제를 다 담기에 힘들지 않았을까, 다소 가볍게 표현된 것은 아닌가 우려했지만 생각보다 임팩트있게 김 알렉산드라의 삶을 그려냈다. 정철훈 작가의 원작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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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 시대의 강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고민들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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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대에 대한 여러가지 이슈와 생각들이 한데 뭉쳐진, 어려움 없이 금방 읽히는 책이었다. 금방 읽히지만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도 되는 그런 책.


나도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문해력이 낮은 것에 대한 이유 중 하나로 이분법적인 사고가 창궐한 현 세태를 꼬집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문해력=글을 읽고 쓰는 능력+나와 타자가 속한 맥락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문해력 또는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타인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뇌가 그럴 '용기'를 학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르시즘적으로 계속 자기 이해, 자기 입장에 익숙한 방식에만 


길들여져서 그에 갇혀버리는 폐쇄성에 머무는 것이다


p.54-55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저격하고, 나의 의도만 관철시키려는 태도... 이런 나르시즘적인 행위의 반복은 결국 문해력의 저하를 초래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전 챕터인 '인간으로 지켜야 할 하한선'의 내용과도 어느정도 일맥상통한다. 스스로에게 더 이상 금기를 허용하지 않고 타인을 매도하거나 혐오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도 한몫하지 않나 싶다.


작가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 일도 하고 있는데, 그가 법을 공부하며 느꼈던 아이러니함과 거북함을 나 또한 학부시절 느꼈기에 공감이 갔다. 특히 형법을 공부하며 '고의'에 대해 고민하고 혼란스러웠던 저자의 마음이 이해된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형법의 세계에서 인간은 명확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작가가 불명확해도 허용되는 인문학의 세계에 젖어있다가 확실함을 요하는 법의 세계에서 헤맸던 것은 아주 당연하다.


부러움은 갖고 싶지만 지금 나에게 없는 것과 관련있는 반면,


질투는 갖고 있지만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것과 관련있다.


p.120


부러움과 질투라는 것은 때로는 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불사를 수 있지만, 자칫 대상과 본인의 파멸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최근 이런 경향이 극대화되어 인플루언서가 넘치고 이를 시기 질투하는 세태, 과도한 허영과 사치를 쫓는 세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자책감 또한 중독적인 쾌감을 불러올 수 있다. 


스스로를 꾸짖는 일은 그 자체로 자신이 보다 나은 삶에 대해


알고 있다는 '앎의 쾌감'을 준다.


자책감이 일종의 피학적인 쾌감을 동반하는 이유는


'꾸짖는 자'와 '꾸짖음을 당하는 자'가 


결론은 모두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p.122


나는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다.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관점이기에 나를 다시 한번 더 돌아보게 된다. 나는 '자책감+더 나아지는 나+객관적으로 나의 단점을 알아차리는 쿨한 나'에 중독된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이 자책감도 불쾌한 나의 잘못을 털어버리고 싶다는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빼앗긴 시간은 어디로 갔는가'파트는 서글프게 느끼면서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가성비로 통하는 세상. '시간'이라는 것은 새로운 계급의 격차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극적인 몇 초 광고, '세 줄 요약 좀'이 넘치는 인터넷 세계... 여유는 사치라 생각하고 숨 쉴 틈 없이 쌓는 스펙. 모두 불안함을 내 시간을 써서 무언가로 채우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위 '있는 사람들'은 나를 돌보고 사유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 시간은 곧 돈이다. 하나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세상에서 내가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곧 자본으로 연결된다.


...시간 여유가 없는 삶 자체가 우리의 정신구조를 바꾸고


 결국 인생 전체를 지배하는 단계까지 가는 것이다. 


그 근원에는 어렸을 적부터 시달려왔던


무한 경쟁, 인생의 모든 걸 스펙으로 평가받는 문화,


촉각을 다투며 성장하고 쉬어야 하는 '습성'이 있다.


p.135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은 생존에 시간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그 어떤 계층에게 간 것일까? 문득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과 맞서는 모모가 떠오른다. 나는 모모처럼 나의 시간을 지킬 수 있을까?


'집단주의라는 압박' 편에서 든 예시(혼밥,혼카페...)는 조금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주의와 익명성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맞지만, 내가 자주가는 가게 주인이 나를 아는 척해서 불편한 감정은 나의 경우 그저 조용히 '나 혼자'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홀로 있음'에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전혀 아니올시다인 사람도 많으니...집단주의의 단면, 단점에 대한 저자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초반부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시작 예시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이 외에도 요즘 시대에 유행하는 사상, 아이템 등을 살펴보며 진짜 그것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작가의 생각이 흥미롭다. 어떤 부분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싶고, 또 어떤 부분은 '아 이건 좀...' 혹은 '맞다! 공감한다!'하며 간만에 즐거운 독서를 한 것같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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