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얼굴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20
이종수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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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덕후인 내 눈에 들어온 책. 부여는 그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이지만, 고조선에 비해 학계와 사람들의 관심을 주로 받지 못한 나라이기도 하다. 부여의 얼굴이라는 가면이 발견된 것을 언급하며 흥미를 부여하고 저자가 부여에 대해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축약하여 담은 책이다. 그렇기에 역사에 관심이 없거나, 전공자가 아니면 검색을 동반한 독서를 해야할 것같다. 목차만봐도 가슴이 설렌다.

제1장 부여의 얼굴

제2장 부여는 어떤 나라인가

제3장 부여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제4장 부여 왕성은 어디에

제5장 부여는 누구의 역사인가


부여금동가면

부여의 얼굴 가면은 고조선의 인물상과 유사하다. 주술적인 의미로 만든 것이라 추정하는데, 이런 부분은 어느 정도 고조선의 문화를 계승했음을 설명해준다고 한다. 고조선, 부여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물상은 동북 지역 예맥계 집단 대부분 영향을 받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부여 금동 가면은 청동에 금을 입혀 제작했는데, 금을 사용하는 기원은 북방초원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당시 중원 지역은 대부분 옥으로 제작한 가면을 사용했는데, 흉노 등 북방초원집단은 황금을 주로 활용했다는 것! 북방초원 민족에게 황금은 변치않는 영원불멸의 영험한 재료였다. 이것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무덤 부작용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황금이 북방민족의 특징 중 하나라니! 흥미롭기 그지없다. 이것으로 중원 문화와 구분이 가능하다니! 다만 제작방법이 북방초원지역의 금제 가면과 부여의 가면이 다르다. 북방초원 지역의 가면은 타출기법인반면, 부여는 거푸집을 이용한 주조방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부여의 현지 기술과 외래문화가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여와 고조선

저자는 고조선과 부여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 정세나 각 나라의 신화의 차이를 통해서도 그 뿌리를 유추해볼 수 있다. 북방초원지역에서는 주로 하늘의 빛, 천둥, 번개, 우박 등에 감응해 아이를 낳는 감응신화가 유행했다. 이것의 예시로 고구려 주몽신화, 신라의 박혁거세신화, 가야의 김수로왕신화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부여의 동명신화처럼 하늘의 감응을 바로 받아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아닌, 난생신화의 형태를 차용한다. 이것으로 미루어볼때 단군신화처럼 천손강림신화가 이른시기 시작되었고, 후에 동명신화같은 감응신화, 그 다음 난생신화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저자는 보고있다. 신화를 놓고 봤을 때 고조선과 부여의 건국신화는 그 계통이 다르다. 또한 예맥, 조선이 동이족으로 지칭되지만 부여의 시작인 색리국은 북이로 불리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그 계통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모두 夷로 불리는 점에서 범汎동이계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고조선과 부여 모두 상투를 틈)

부여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인식의 시작

고려 후기 이승휴의 제왕운기, 일연의 삼국유사에 이런 내용이 처음 나타났다. 이승휴는 동부여,북부여, 남옥저,북옥저까지 모두 단군의 후손이라 인식했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기를 인용해서 부여의 왕 해부루는 단군의 아들이라고 기록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부여의 풍습

부여인들은 자리를 양보할 때 읍을 하는 예절이 있었다고 한다. (두 손을 잡고 허리를 앞으로 구부렸다가 펴면서 경의를 표함) 부여인의 복장은 삼국지에 잘 나와있다. 부여인들은 흰 베로 저고리,도포,바지 등을 만들어 입고 가죽신을 신었다. 나라밖으로 나갈 땐 비단에 수를 놓아 입었고 대인은 여우, 살쾡이, 흑담비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금은으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고 한다. 우리 민족을 백의 민족이라고 부르는 그 시작은 어쩌면 부여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동북공정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필연적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다민족통일국가론의 입장에서 부여의 영역이 현재 중국 영토 범위에 포함된다는 것을 강조하여 중국의 변방사로 부여사를 기술한다. 즉 일개 소수민족이 건립한 중원 왕조의 지방 노예 정권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는 소리. 서구에서는 부여의 독자성을 강조하여 중국, 한국에 예속된 고대 국가가 아니라는 인식하에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한국에서의 부여 연구와 논문은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다. 국수주의에 빠져 연구하는 역사는 진정한 학문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특히 고대사에서는 그것이 부질없다생각한다. 다만, 21세기 자신들의 땅에 몇 천년전 국가의 도읍이 자리잡았었다하여 현재 자신들의 역사라고 이용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있다. 학문을 하나의 이데올로기와 국가간의 이익에 이용하는 세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얇은 한 권의 책이지만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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