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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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집어든 책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천진 시절이라니.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에 관련된 이야기일까?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할 수 없었다. 책 표지를 봐도 도무지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었다. 200페이지 남짓한 이 소설은 굉장히 흡입력 있고, 재미있었고, 그리고 가슴 아팠다.

 

소설은 1998년 중국을 배경으로 조선족 사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주제는 평소 접할 수 없는 부분이라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격변기의 조선족 청년의 시선으로 당대 중국사회의 변동 속에서 조선족 농촌사회, 젊은이들이 직면했던 문제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생동감 있게 반영하였다. 주인공 상아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1998년도 중국 천진으로 떠나 생활하게 된 젊은 시절 추억과 이야기는 흡사 얼마 전 유행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의 소설 버전 같기도 하고, 70~80년대 우리나라 노동자들에 대한 소설도 떠올리게 했다. 또한 중국 대륙을 떠나 홍콩으로 돈을 벌러 떠났던 청춘들의 군상을 그린 영화 첨밀밀같기도 했다. 그만큼 부담 없고 재미있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이 소설은 90년대 중국 산업화 시기, 도시 이주 노동자의 정체성 상실과 소외 문제라는 무거우면 무겁다 할 수 있는 주제를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어 돋보이는 작가의 역량을 엿볼 수 있었다.

 

주인공 상아는 천진에서 살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정숙이라는 인물과 우연히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면서 잊고 지냈던, 어쩌면 잊고 싶었던 젊은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고향을 떠나 펼쳐질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고향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조선족 처녀 상아는 어릴 적 친구인 무군과 어찌하다 보니 엮여서 같이 천진으로 떠나게 된다.

 

상아와 무군이 천진으로 떠났던 1998년이란 시절을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다가오는 2000년대에 대한 기대와 우려와 함께 IMF 직전으로 경제가 흔들리고, 사회적으로도 불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도 TV를 틀면 나오는 부도 소식과 가계부를 작성하며 깊은 한숨이 늘어가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모든 것이 무너져가던 우리나라와 달리 그 당시 중국은 자고 일어나면 고층빌딩이 우후죽순 대나무처럼 세워지고, 경제가 발전하며 이촌 향도 현상이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활기찬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혼돈의 시기 속에서 무군은 상아를 구슬처럼 아껴주며 천진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상아는 얼떨결에 무군과 사귀게 되고, 떠밀리듯 무군의 약혼자 신분으로 천진에서 일하면서 이런 게 사랑인지, 원래 다 이런 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나름 천진 생활에 즐겁게 적응한다. 그러다 어릴 적 친구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미스 신을 만나게 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삶의 어떤 변화, 질적으로 더 나은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내 욕망이 정당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욕망은 꿈이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때는

두 가지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오히려 춘란이나

미스 신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녀들은 욕망 앞에서 정직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상아는 다른 이들이 '평소 여자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부모님 세대가 바라던 모습과 다른, 욕망과 성공을 위해 기존의 도덕 관념을 저버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 나름의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야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약혼자를 보며, 그리고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영원히 이 자리에서 밑바닥 노동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한다.

 

황금만능주의가 극을 향해 치닫는 시절, 일해도일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과 지긋지긋한 가족들, 나아질 게 없는 살림살이는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그녀들의 욕망에 불을 지핀다. 성공하고자 해도 받을 수 있는 교육은 소수만을 위해 존재하고, 여자라는 존재는 도시에 나가려면 남자와 결혼을 하거나 약혼을 해야만 가능했던 시절. 억압받던 시절 그녀들 나름의 성공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선택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아는 혼자 육아를 하며, 한국에서 일하는 남편을 기다리고 정숙은 도박과 여자 문제를 일으켰던 남편과 이혼하고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더 나아질 것 없는 삶의 결과를 맞이했지만, 다시 젊은 시절의 상아와 정숙으로 돌아간다 해도 언제라도 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한다.



 

"언니, 언니는 후회 같은 거 해본 적 있어요? 만약이라는 게 없다는 거 아는데,

그래도 다시 한번 그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떨 것 같아요?"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얼굴이 좀 붉어졌다. 정숙은 잠깐 내 손을 바라보았다.

 

"글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아니, 후회하지 않을 거 같아.

다시 한 번 선택하라고 해도 그렇게 살았을 거야.“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소박한 고향 마을을 떠나 처음으로 시작한 개방 도시의 현란한 삶 속에서 사랑하는 희철을, 무군을 떠나기로 결단한 그녀들이 바로 정숙이었고 나였다.

다른 구실을 필요 없었다.

 

"언니, 그냥 그렇게 된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도시로의 이동은 여자의 몸으로는 자유롭지 못했던 고향에서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롭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나 현실은 도시에서 살아내기 위해 자신을 그저 상품으로 전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상아와 같은 청년들은 꿈을 가지고 도시로 이주했으나, 모든 노동자들이 그러하듯 기계의 부품과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천진에서의 생활은 상아와 같은 시골 출신의 노동자들의 자아정체성이 상실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도시인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성립하는 과정이었다. 각각의 유형에 속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시도는 처절하고 지독해서 돈을 위해서라면 사랑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상품과 같이 제물로 내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을 위한 선택은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지 못했다. 밑바닥에서 발버둥 치지만 정작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못한다. 쳇바퀴 돌 듯 계속 끊임없이 그 자리에서 맴돌며 겨우 생계만 유지하게 될 뿐이다.


누군가의 두 번째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 모습을 보면서 상황이 절박하고 간절할수록 근로 빈곤층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요구는 야비하고 강압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성적인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밑바닥에 몰린 여성들은 여자의 몸이 다른 자본재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처음에는 비참하고 슬프지만, 자신의 몸과 젊음이 상품으로 팔릴 수 있을 때 최대한 수익을 올려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쁘지 않다 위로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성은 상실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서도 변함없이 진행된다. 신자유주의하에서 모든 것은 상품이 되어 팔리고, 이윤 추구를 위해 점유된다. 이러한 논리는 평등, 정의, 사랑과 같은 이념을 무능력한 것으로 만들면서 구조적 불평등에 의해 초래되는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축소, 환원시킨다.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유일하게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방파제 같던 상아에 대한 무군의 사랑도, 순수하게 희망을 품었던 정숙을 향한 희철의 사랑도 거대한 신자유주의 앞에서는 모두 일장춘몽으로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부()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힘든 현실 속에서도 꿈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 다양한 인생의 목적이 존재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성실히 살아가면 그런 인생의 목적이 어느 정도 충족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신자유주의 체제가 중요한 경제적 관념으로 받아들여지고 경쟁이 더욱더 치열해지면서, ()가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되었다. 노동의 상품화를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파괴되고 도덕성은 상실되었다. 사회에서 가장 낮은 집단에 속한,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상아나 정숙의 입장이었으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90년대 도시라는 공간이 과연 상아와 다른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공간이었을까?‘하는 의문이 문득 든다. 주류 사회로의 편입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것이다. 해방 후 어느 날 갑자기 중국 조선족으로 편입된 그들의 조상이 빠르고 민첩하게 중국 공산당 정책에 반응하며 적응했던 것처럼 새로운 자본주의 물결에 휩쓸린 상아와 청년들 또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해야 했다. 여성, 그리고 소수민족, 노동자라는 지위를 가진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그것은 그들의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그들 삶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한 표현이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말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니까하는 체념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라는 껍질을 뒤집어쓴 강압이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선택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그녀들 스스로 결정한, 자신의 인생을 위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천진으로의 이동도 얼떨결에 휩쓸려 이루어진 것이므로 상아의 생각대로, 온전한 한 주체로서의 선택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존의 상식이 더 이상 상식이 되지 못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알려줄 길잡이의 부재 속에서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던져진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 그 시절, 그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천진 시절, 그들의 그 시절은 말 그대로 천진(天眞)했던 시절이며, 젊고 무모했고 배신과 아픔으로 얼룩졌던 시절인 반면 가장 찬란하고, 가슴 뜨거웠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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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1-07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LilacWine 2021-11-07 13:0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