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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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의 부제는 그림 속 권력 이야기이다. '권력' 이라함은 부자, 남성, 백인으로 대표적으로 그룹 지어볼 수 있는 현 시대의 주류인 사람들이 갖는 것이다. 저자는 권력에 따라 같은 그림도 다르게 해석되는, 결코 평등하지 못할 해석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존에 출간되는 여러 그림과 관련한 인문학 도서와 달리 이 책에서는 그림과 관련한 작가의 기존의 통념과 다르게 생각하는 인간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인다.



자궁혐오, 성녀vs창녀, 공간의 제약 등 뿌리깊은 여성차별의 역사는 그림을 통해서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눈먼 소녀라는 그림에서부터 미국의 어글리법, 장애인 차별 그 중에서도 여성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어떤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었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헬렌켈러는 예쁘니까 괜찮아', 장애와 순결함의 조합은 대중에게 환영받을 수 있었다. 혹자는 21세기인데 이제는 이런 야만적인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얼마 전 있었던 지하철 장애인 시위를 바라보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통해 주눅 들고 불쌍한 존재, 동정 받는 존재여야만 하는  장애인들이 자신의 소리를 내고 행동하자 '니가 감히?' 라는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어글리 법이 없다고 할 수 없는가 다시 고민하게 된다. 



얀 스테인의 의사의 왕진, 헨드릭 혼디위스의 몰렌베이크의 무도병 여자들 그림을 통해 여성의 몸에 대한 혐오의 역사는 그 형태는 달리하지만, 아주 오래전 옛 사람들이 가졌던 그릇된 인식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여성의 안에는 이성을 잃게 만드는 증기가 가득 차있어 차가운 강물에 처넣어야 병을 고칠 수 있다던 어처구니 없던 처방부터 현재 '저 사람은 생리때문에 예민해'같은 호르몬에 장악되어 컨트롤을 못하는 여성이라는  그릇된 관념으로 그동안 여성들은 사회가 규정한 박스안에 스스로 갇혀야만 했다. 여성의 몸은 안과 바깥 모두 통제당하고 오해받아야 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은 1920년 주세죽이 잡지 신여성에 기고한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단발을 주장하는 것이 하등 새 사상이나 주의를


표방함이 아니오. 또한 일시 신유행에 감염되어


기분으로나 양풍, 중독으로서 주장함이 아니외다.


실생활에 임하여 편리하고 또한 위생에


적합한 여러가지 이점을 발견한 까닭입니다.


남자들이 양복을 입은 것은 편리한 점이 있기 때문이외다.


여자의 단발도 역시 그렇습니다. 나는 이러한 의미에서


단발을 주장합니다. 또 단발로써 많은 편리를


얻는다는 것을 더욱 말하여 둡니다.



p.128


백년 전 모던걸들은 남성들이 원하는 모습이 되지 않는다하여, 단발을 했다는 것으로 마녀사냥을 당해야 했다. 백년 전 그녀들이 단발을 주장하는 이유가 편하기 때문에 숏컷을 했다는 그녀들의 이유와 같다는 것을 보면 여성의 시간은 백년 전 그 자리에 멈춘것일까하여 서글퍼진다.  숏컷을 했다는 이유로 조리돌림을 당하는 현 시대의 모습이 백년 전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에 통탄할 따름이다.



하워드 밀러의  우리는 할 수있다! 그림은 여러 매체에서도 나왔었고, 디자인으로도 많이 활용되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 세계2차대전 당시 남성들의 빈 자리를 대신하여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하게 되었고, 그때 이것을 독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스터, 전쟁이 끝나자 여성들은 '너희들은 임시노동자였으니 이제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가부장제 사회의 메세지를 받고 내쳐지게 된다. 이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는 '왜 여성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라는 책도 함께 읽어보면 좋다.

https://blog.naver.com/peach0605/222558870284



에두아르 마네의 버찌를 든 소년 그림에 대한 뒷이야기가 특히 충격적이었다. 마네에게 심하게 혼난 소년은 자책을 하다가 자살했다는 이야기, 그러나 가난했던 가족은 아이가 목을 맨 밧줄을 팔아서 돈을 벌 궁리만 했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어린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역사속에서 얼마나 무시받았는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를 강요당한다. 부족한 인간이라며 나중에 크면 알게된다. 너는 가만히 있어라 라는 요구를 받다가 특수한 상황에서는 어른다움을 강요받는다. 어린 나이에 데뷔했던 보아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는 표현을 썼다는 것으로 어린이답지 않다며 질타를 받았던 것만 봐도 어린이는 독자적 정체성을 부정당한다.  아동혐오는 유독 요즘 시대에 더 심해지는 것같다. 특히 노키즈존. 지금은 노키즈존이지만 이것은 앞으로 세분화되어 차별의 세분화를 불러올 것이다. 우리도 어린이였다. 어른의 기분권때문에 아이들이 제한당하지 않는 세상이길 소망한다.


이 외에도 뒤틀린 권력에 복종했던 화가들과 그림부터 선전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까지 차별과 저항이라는 기울기를 왔다갔다하며 그림에 담긴 진짜이야기를 보라고 말한다.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하니포터 4기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기울어진미술관 #이유리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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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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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교수가 출간하는 책들은 나의 관심분야라 새로운 책이 출간되면 꼭 읽어보고는 한다. 이번 책은 고고학 여행이라는 제목답게 역사에 문외한이라도 흥미를 붙이고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기초안내서같은 느낌이다. 고고학이라고 하면 먼 옛날, 캐캐묵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고고학은 오랜 시간 공들여 과거를 관찰하고 또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1. 죽은 이를 위한 사랑의 흔적


2. 불에 깃든 황홀과 허무


3. 술, 신이 허락한 음료


4.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5. 마음을 울리는 소리 없는 음악


6. 빛바랜 유물에 숨어 있는 화려함


7. 지난 세월의 향기


8. 발해인들도 돼지고기를 좋아했을까


9. 중국 황제도 반한 고조선의 젓갈


10. 몸에 새겨진 시간의 기억


11. 파괴와 복원, 고고학 발굴의 패러독스


12. 고고학을 꽃피우게 한 제국주의


13. 전쟁 속의 고고학


14. 문명은 짧고 인생은 길다


15. 그들은 왜 유물을 위조했는가


16. 고고학자의 시행착오와 해프닝


17. 황금 유물을 둘러싼 운명들


18. 고고학이 밝히는 미래


에필로그. 어디에도 없는 혹은 어디에나 있는




목차만 봐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향한다. 저자는 삶과 죽음 전반에 걸친 고고학 유적과 유물을 음악, 음식, 무덤 등 세부 주제를 통해 쉽게 설명한다. 죽음은 이야기하는 것이 터부시 되었지만, 우리 삶의 여정의 한 부분이므로 필연적으로 언급할 수밖에 없다. 옛 사람들의 무덤 양식을 살펴보면 떠나보내는 이에 대한 살아남은 자들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물관에서 그냥 스치듯 보고 지나가는 무덤출토 유물등에도 애틋한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p. 30


그런 의미에서 무덤은 죽은 자가 다시 태어나는 제2의 자궁과 같은 곳이다.(중략)독무덤은 전 세계적으로 어린아이가 죽으면 넣어서 묻는 풍습으로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의 관을 항아리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항아리는 곧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죽어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듯 몸을 구부려서 넣는 독무덤만큼 무덤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는 유물도 없다.



평소 박물관에가서 넋놓고 유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독무덤을 보고는 왜 하필 항아리일까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렇게 풀이될 수 있다니! 예전 사람들은 새는 하늘의 정령이라고 믿었으니 항아리를 곧 알이라고 봐도 될 것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시 알 속으로 들어가 하늘로 올라가 재생하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긴 무덤형태가 아닐까? 




P. 105


역사 기록에 따르면 발해의 음악은 당시 일본과 중국에도 널리 퍼졌다. 발해의 사신이 전한 음악은 일본 도다이지에서 공연할 정도이고,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송나라에서는 발해의 음악이 너무 유행해 이를 강제로 금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도대체 발해의 음악에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이렇게 주변 나라의 사람들을 매혹시켰을까 궁금했다. 구금이 등장한 것을 보니 발해는 초원, 중국 그리고 고구려의 여러 음악을 조화시켰던 건 아니었을까. 비록 과거의 음악은 복원하여 듣기 어렵지만, 그들이 이루었던 문화의 힘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음악, 맛, 향기는 시간에 취약하다. 때문에 고고학에서 밝히기 가장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고고학에서 빛바랜 유물과 지금은 알수 없는 소리를 추적해가는 과정은 흥미롭기도하고 영겁의 시간을 읽어내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매력적이다.




P. 210


우리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문화재 침탈과 그 영향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 주변의 유적과 문화재에는 그들이 남긴 흔적이 너무나 크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에 동조한 학자들을 비판하면 ‘그들의 연구 성과는 좋다’ 혹은 ‘인격적으로는 훌륭하다’는 식의 일본 측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비판해야 할 것은 개개인 학자의 성격이나 인격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바로 국가 권력에 앞장서서 다른 사람을 억압할 때에 그에 암묵적인 동조를 하고 따라갔던 그 모습을 비판해야 한다.



고고학은 아이러니하게도 발굴과 동시에 파괴하는 학문이다. 제국주의가 세계를 재패했을 때 특히 고고학은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신라시대 유물이나 백제 유물 등이 제대로 소중하게 발굴되지 못한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특히 일본은 고고학을 통해 한국은 미개한 국가로 왜곡하는 것에 꽤 공을 들여 작업했다. 이 때문에 현재 한국의 고고학자들은 일제강점기때 잘못 정리된 유물과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재정리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바뀌는 것들이 더 많아지리라 기대한다.



P. 9


고고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



고고학은 과거를 살펴보지만 미래를 지향하는 학문이다. 고고학을 통해 우리의 미래가 한층 더 나아가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고리타분한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재미있고 친근하게 만나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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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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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러브,좀비'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조예은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에 한껏 기대가 되었다. 여름에 맞는 괴이한 주제를 가지고 쓰여진 단편모음집. 최근들어 SF나 호러와 같은 장르문학이 많이 출간되는데, 어떤 작품은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게 느껴지거나 몇 %아쉬운 부분이 있어 책을 읽으며 한창 고조되던 몰입도가 방해되는 일이 잦아 안타깝기도 했었다. 하지만 조예은 작가의 신작은 역시 믿고 본달까...이번에도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책은 전반적으로 틈, 부재, 실존과 상실과 관련한 공포 혹은 그냥 이야기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같다. 존재하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새로운 형식의 표현이랄까?



하지만 가끔 생각이 납니다. 어른들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순간들이  있잖아요. 아이들이라고 다를까요. 왜, 늘 집에 가고 싶다고 울잖아요. 그게 그 말이죠.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 나를 상처주지 않는 곳에 가고싶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사라진 재이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할로우키즈 p.12



최근의 내 상황이 비슷해서였을까, 저 문단에서 시선을 멈추고 옮길 수 없었다. 유치원 행사에서 유령처럼 사라진 아이 재이, 말 그대로 유령처럼 사라졌을 수도 아님 무관심속에 유령처럼 취급받는 아이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것일수도 있다. 가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유령같이 느껴질 떄가 있다. 우주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다거나 아님 내 존재가 볼품없어 이 자리에 있지만, 유령처럼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같은 느낌. 공포에 가까운 공허란 이런 것일까 싶을 때가 있다.




세상엔 왜 사람을 거르는 시스템은 많으면서 걱정거리를 걸러주는 건 없는지.나는 왜 늘 걸러지는 쪽이고, 내 안의  아무것도 뜻대로 걸러낼 수 없는지.한편으로는 정말 이상했다.공기청정기 이름이 왜 먼지의 신일까


가장 작은 신 p.177




심각한 먼지 바람이 세상을 덮어버리고, 숨을 쉬는 행위로 생명이 위협받는 세상에서 수안은 더 깊숙이 집 안으로, 그리고 자기 안으로 숨어들었다. 단단히 걸어잠근 빗장을 오월의 산들바람처럼 미주가 산산이 조각내고 파고들어 왔다. 이용하려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곁을 내주었던 사람. 처음 시작은 거짓이었으나 결국 각자의 외로움의 틈을 서로가 메워주고 있었던 것.  공기 중 노폐물을 걸러내주는 공기청정기가 그 둘을 잇는 매개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둘 사이의 갭을 채워주는 물건이기도 했다.  




할로우 키즈


고기와 석류


릴리의 손


새해엔 쿠스쿠스


가장 작은 신


나쁜 꿈과 함께


유니버설 캣숍의 비밀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각 단편마다 매력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특히 마지막 이야기인 푸른머리칼의 살인마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푸른수염이라는 동화를 모티브로 각색한 것같은데, 주인공 메리 블루의 끝없는 시간 여행...문을 한번 열 때마다 시간이 바뀌고, 그녀와 주변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 살인마 영주를 죽여도, 썸머와 도망쳐도 자살을 해봐도 어느 하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주라고밖에 보이지 않는 메리블루의 삶이지만 그녀는 억울하게 죽어간 여자들, 주변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끝없는 시간여행을 지속한다. 종국에는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 썸머와 재회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전반적으로 외롭고 고독하고 텅빈 사람들, 그 외로움 속에 곰팡이처럼 피어난 관심과 사랑이 종국에는 너는 혼자가 아닌 서로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메세지가 숨어있는 듯하다. 


이 세상에서 일어날법하지만 결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 독특한 이야기로 여름밤을 지새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하니포터 4기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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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얼굴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20
이종수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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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덕후인 내 눈에 들어온 책. 부여는 그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이지만, 고조선에 비해 학계와 사람들의 관심을 주로 받지 못한 나라이기도 하다. 부여의 얼굴이라는 가면이 발견된 것을 언급하며 흥미를 부여하고 저자가 부여에 대해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축약하여 담은 책이다. 그렇기에 역사에 관심이 없거나, 전공자가 아니면 검색을 동반한 독서를 해야할 것같다. 목차만봐도 가슴이 설렌다.

제1장 부여의 얼굴

제2장 부여는 어떤 나라인가

제3장 부여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제4장 부여 왕성은 어디에

제5장 부여는 누구의 역사인가


부여금동가면

부여의 얼굴 가면은 고조선의 인물상과 유사하다. 주술적인 의미로 만든 것이라 추정하는데, 이런 부분은 어느 정도 고조선의 문화를 계승했음을 설명해준다고 한다. 고조선, 부여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물상은 동북 지역 예맥계 집단 대부분 영향을 받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부여 금동 가면은 청동에 금을 입혀 제작했는데, 금을 사용하는 기원은 북방초원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당시 중원 지역은 대부분 옥으로 제작한 가면을 사용했는데, 흉노 등 북방초원집단은 황금을 주로 활용했다는 것! 북방초원 민족에게 황금은 변치않는 영원불멸의 영험한 재료였다. 이것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무덤 부작용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황금이 북방민족의 특징 중 하나라니! 흥미롭기 그지없다. 이것으로 중원 문화와 구분이 가능하다니! 다만 제작방법이 북방초원지역의 금제 가면과 부여의 가면이 다르다. 북방초원 지역의 가면은 타출기법인반면, 부여는 거푸집을 이용한 주조방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부여의 현지 기술과 외래문화가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여와 고조선

저자는 고조선과 부여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 정세나 각 나라의 신화의 차이를 통해서도 그 뿌리를 유추해볼 수 있다. 북방초원지역에서는 주로 하늘의 빛, 천둥, 번개, 우박 등에 감응해 아이를 낳는 감응신화가 유행했다. 이것의 예시로 고구려 주몽신화, 신라의 박혁거세신화, 가야의 김수로왕신화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부여의 동명신화처럼 하늘의 감응을 바로 받아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아닌, 난생신화의 형태를 차용한다. 이것으로 미루어볼때 단군신화처럼 천손강림신화가 이른시기 시작되었고, 후에 동명신화같은 감응신화, 그 다음 난생신화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저자는 보고있다. 신화를 놓고 봤을 때 고조선과 부여의 건국신화는 그 계통이 다르다. 또한 예맥, 조선이 동이족으로 지칭되지만 부여의 시작인 색리국은 북이로 불리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그 계통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모두 夷로 불리는 점에서 범汎동이계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고조선과 부여 모두 상투를 틈)

부여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인식의 시작

고려 후기 이승휴의 제왕운기, 일연의 삼국유사에 이런 내용이 처음 나타났다. 이승휴는 동부여,북부여, 남옥저,북옥저까지 모두 단군의 후손이라 인식했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기를 인용해서 부여의 왕 해부루는 단군의 아들이라고 기록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부여의 풍습

부여인들은 자리를 양보할 때 읍을 하는 예절이 있었다고 한다. (두 손을 잡고 허리를 앞으로 구부렸다가 펴면서 경의를 표함) 부여인의 복장은 삼국지에 잘 나와있다. 부여인들은 흰 베로 저고리,도포,바지 등을 만들어 입고 가죽신을 신었다. 나라밖으로 나갈 땐 비단에 수를 놓아 입었고 대인은 여우, 살쾡이, 흑담비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금은으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고 한다. 우리 민족을 백의 민족이라고 부르는 그 시작은 어쩌면 부여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동북공정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필연적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다민족통일국가론의 입장에서 부여의 영역이 현재 중국 영토 범위에 포함된다는 것을 강조하여 중국의 변방사로 부여사를 기술한다. 즉 일개 소수민족이 건립한 중원 왕조의 지방 노예 정권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는 소리. 서구에서는 부여의 독자성을 강조하여 중국, 한국에 예속된 고대 국가가 아니라는 인식하에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한국에서의 부여 연구와 논문은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다. 국수주의에 빠져 연구하는 역사는 진정한 학문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특히 고대사에서는 그것이 부질없다생각한다. 다만, 21세기 자신들의 땅에 몇 천년전 국가의 도읍이 자리잡았었다하여 현재 자신들의 역사라고 이용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있다. 학문을 하나의 이데올로기와 국가간의 이익에 이용하는 세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얇은 한 권의 책이지만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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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환담 - 아홉 작가의 한국 설화 앤솔러지
곽재식 외 지음 / 달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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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었다가 신박한 소재와 재치있는 내용구성에 감탄하게된 책. 한국 설화 또는 역사적 인물을 작가들 만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모든 이야기가 다 재미있지만, 특히 단군신화와 선녀와 나무꾼을 모티브로 한 SF단편인 '파종선단', 단종과 세조의 이야기를 고양이 세계로 풀어낸 '단동이'(처음에 읽을 때 상상도 못했었다.) 권율과 이항복,장영실 그리고 신립의 민담 등을 섞어 만든 '구서담', 죽령 산신 다자구 할머니 설화를 바탕으로 풀어낸 '내가 만난 신의 모습은' 이라는 단편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특히 전혜진 작가의 '내가 만난 신의 모습은' 작품은 소재나 내용구성이 특히나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 관군을 도와 산적을 물리쳤던 다자구 할머니가 한국전쟁때에 나타났다면?'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단순히 설화만 반영한 것이 아닌 국가로부터 자행된 폭력, 식민지배와 해방 그리고 분단의 아픔, 격변기 속에서의 소시민들,주목받지 못한 죽음들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짚어주는 이야기였다. 다자구 할머니라는 산신을 통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역사 속에 휘말려 고통받던 이 땅의 생명들을 이야기 속에서나마 위로를 해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360페이지 남짓한 소설은 매우 흡입력이 있어 앉은자리에서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민화와 전설을 좋아하고, 새로운 이야기에 목마른 사람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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