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인코그니타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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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교수의 책은 내 관심사와 부합해서 인지 몰라도 늘 흥미롭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테라 인코그니타는 ‘미지의 땅’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이민족과 괴물이 사는 이질적인 곳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되어왔다. 인간은 잘 알지 못 하는 세계, 낯선 문화에 대해 배척하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아마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이 인류의 목숨을 부지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화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는 그리 도움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인류의 고고학의 발전에 있어 제국주의 시기에 자리잡은 고정관념이 너무나 뿌리깊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세계 4대문명’.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 개념이 사실은 19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각을 담고 있는 매우 차별적인 표현이라는 것. 


저자는 그동안 강대국의 시각에서 서술되어온 고대사에서 배제된 기억과 문화를 복원하고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 역사의 절반 이상이 기록이 시작되기 전의 역사거나 문자 기록문화가 없던 지역의 역사이기 때문에 인류 역사를 온전히 복원하기 위해선 고고학 자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저'야만적이다, 문화가 없다'라고 치부되어온 이 절반의 역사가 사실 현재 우리 사회를 만드는데 중요한 뿌리가 된다는 것이다.

1부 오랑캐로 치부된 사람들
구석기시대, 문명이 싹트다 / 아메리카 원주민은 어디에서 왔을까 / 전염병을 이겨낸 신석기시대 사람들 / 식인 풍습은 미개함의 상징인가 / ‘악마의 자손’이라 불리던 사람들 / 우리 역사 속의 서양인 / 일본열도의 진정한 주인

2부 우리 역사의 숨어 있는 진실, 그리고 오해
공자는 동이족인가 / 기자조선은 실제로 존재했을까 / 고대 중국인을 매혹시킨 고조선의 모피 / 상투를 튼 고조선 사람들 / 흉노가 애용한 우리의 온돌 / 신라인은 흉노의 후예인가 / 신라의 적석목곽분 미스터리

3부 상상의 나라를 찾아서
시베리아의 아틀란티스와 태양의 후예 / 겨울왕국은 어디에 있을까 / 외계인으로 오해받은 편두머리 귀족들 / 코로나를 쓴 샤먼 / 티베트고원의 숨겨진 나라 / 황금의 나라를 찾아서 / 냉전의 벽을 뛰어넘어 풀어낸 마야 문명의 비밀

4부 분쟁과 약탈의 고대사
인디애나 존스로 재탄생한 미국의 실크로드 약탈자 / 일본의 자기모순적 역사관과 기원 찾기 / 임나일본부, 일본이 만들어낸 모순된 역사 / 중국이 홍산문화에 열광하는 이유 / 극동의 변방에서 터키의 기원을 찾다 / 마약으로 쌓아올린 박물관

에필로그 영화 「기생충」의 오브제로 풀어보는 테라 인코그니타
글을 마치며 닫히는 빗장을 다시 여는 느낌으로
 

목차만 봐도 굉장히 흥미롭다.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중국의 동북공정 등 다양한 이슈도 함께 녹여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역사인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타국가의 문화도둑질을 방어한다고 우리도 똑같이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보인다. (물론 나 조차도 말이다) 역사, 문화라는 것은 누구의 것이라고 확정지어 소유권을 주장할 수없고, 그리 해서도 안된다. 공동체가 향유해온 기억과 역사를 존중하되 이것을 사사로운 이데올로기에 이용하는 것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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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부클래식 Boo Classics 48
토마스 만 지음, 윤순식 옮김 / 부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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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토마스 만'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 '마의 산', 그리고 정말 '무지막지하게 재미없고 어렵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요즘 다시 천천히 그의 작품을 읽는 데 도전하려고 단편 소설을 하나 집어들었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도대체 어떤 죽음인지,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과 매혹적인 느낌이 책을 펴기 전부터 호기심을 일게 만들었다.


책은 주인공인 저명한 작가 아쉔바흐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아쉔바흐는 휴양 차 머물게 된 베네치아에서 그리스 조각상같은 폴란드계 소년 타치오에게 반하게 된다. 소년을 묘사하는 장면과 아쉔바흐 의식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나는 토마스 만의 작품이 재미없고 지루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고쳐먹게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담백한 묘사와 서사 진행을 통해 머릿속에 자연스레 베네치아의 햇살과 소년의 아름다움, 그리고 몽환적으로 느껴질만큼 기묘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받았다. 타치오에 대한 사랑으로 아쉔바흐는 콜레라로 위협받는 베네치아에서 떠나라고 권고하는 소리조차 무시할 만큼 사랑에 이성조차 마비되어버린다. 해변가에서 발끝으로 젖은 모래에다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타치오를 멀리서 바라보며 아쉔바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홍성광 버전의 번역본인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특히 독일작품의 역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작품이 주는 느낌이 많이 달라지는 것같다. 실제 토마스 만의 양성애적 삶이 그의 작품해석에 많이 반영되는 것같은데, 이번에는 그런 모든 사실들을 떠나서 작품 자체로만 보고 싶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나에게 토마스 만의 작품은 무조건 어렵고 따분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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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저와 읍루 - 숨겨진 우리 역사 속의 북방민족 이야기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10
강인욱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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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저, 읍루, 동예...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 이름들은 모두 고대에 우리나라와 관련된 북방민족의 이름이다. '민며느리제 옥저, 서옥제 고구려, 동예 책화'... 옆구리를 찌르면 툭하고 튀어나오는 이 개념들은 모두 학창시절 주입식으로 배웠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들에 대한 나의 지식의 전부이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 위주의 수업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늘 옥저, 동예,숙신, 읍루 등 이름만 아련한 북방민족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왜 이들에 대한 역사는 더 알 수 없는 것일까? 이들도 우리 역사의 일부일텐데 왜 소홀하게 대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말이다. 


이 책은 그동안 도외시되었던 환동해지역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문화의 독자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목적을 두고 쓰여졌다. 즉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고대 문화 연구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동북아시아를 재조명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1. 

고대 중국의 역사 기록에서는 고조선을 포함한 만주 일대를 아울러 요동(遼東)이라고 통칭했다. 여기서 말하는 '요동'은 현대의 중국 랴오닝성의 동쪽을 의미하는 요동과는 다르다 한자 遼는 변방지역이라는 뜻도 있으니, 중국에서 바라볼 때 동쪽의 변방이라고 애매하게 부르는 의미였다. 물론 그들은 결코 하나의 집단이 아니었다. 고조선은 물론 고조선과 인접했던 흉노-동호, 고구려와 함께 등장하는 오환-선비, 고구려사의 일부로만 파악해왔던 옥저-동예, 한국사의 범주에서 제외되었던 읍루-말갈 등이 있었다. p.19


나는 '요동'의 의미를 당연히 랴오닝성 동쪽으로만 생각했고 그렇게 배워와서 다르게 생각할 줄 몰랐다. 요동이 단순히 랴오닝성 동쪽이 아닌 그 이상의 영역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나싶다.



2.

'온돌문화'는 동북공정의 중심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임을 구분짓는 증거 중 하나이다. 이것이 옥저에서 발명되었다니! 추운 곳에서는 온돌 비슷한것이 설치되거나 유지가 됐지만, 읍루에서 시작한 말갈인들은 같은 추운 지역에서 온돌을 쓰지 않아 이것이 옥저계와 읍루계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는 것도 흥미롭다.



3. 

...다만 삼강평원의 봉림 문화는 6세기 전후에 소멸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 지역에서는 읍루계 문화에서 기원한 말갈의 문화가 성장한다. 하지만 봉림 문화의 성터들이 밀집한 낮은 평야 지역에서 정작 말갈의 유적은 나오지 않는다. 말갈인들은 농사를 짓지 않았고 성도 쌓지 않았다. 대신에 사냥의 비중이 높은 호전적인 문화였다. 한마디로 봉림 문화와 말갈 문화인들은 서로 경쟁을 벌인 것이 아니라 기후가 바뀌면서 이 지역의 문화도 서로 교대하듯이 바뀐 것이었다. 그리고 삼강평원의 봉림 문화 지역은 저지대라서 범람하여 소택지가 되면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다.  p.85


옥저계문화가 자리한 지역이 기후에따라 자연스럽게 말갈계 문화로 대체된 것이 흥미롭다. 늘 문화의 이동과 대체는 전쟁을 필수불가결로 삼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기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었다니!



4.

...대부분의 학자들은 '숙신=읍루'라고 생각한다. (중략) 읍루로서도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변방의 고대 나라인 '숙신'으로 이름을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배경은 조금 다르지만 이렇게 과거의 이름을 새롭게 붙이는 과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을 때 국호를 고조선에서 유래한 조선이라고 붙인 것이 좋은 예다. p.149


역사서에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숙신과 읍루...북방민족은 문화적 특성때문에 남아있는 사료가 별로 없다보니 이렇게 혼돈을 주기도 하는구나 싶기도하고...숙신과 읍루는 그 계열이 다른데 다 거기서 거기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나뿐만 아닐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환동해권 역사를 더 연구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5. 

고고학이 밝히는 북방민족에 대한 이야기는 세부적인 역사의 증명이 아니다. 그보다는 민족 역사의 큰 흐름과 그들의 범위, 또한 지역 간 교류를 보여줄 수 있다. (중략) 고고학 자료를 성급하게 문헌의 민족에 대입해서는 안 된다. 옥저와 읍루는 중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이기 때문에 문헌 자료 자체가 매우 소략하다.  p.159~161


지금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민족', 민중들이 본격적으로 '민족'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구 한말이 다 되어서, 3.1운동 시점에서였다. 이 '민족'이라는 개념에 갇혀서, 국가나 개인의 사사로운 목적에 따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역사적 사료들이 유린당했는지...특히 중국에서 이러한 오류를 매우 심각하게 범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옥저와 읍루의 연구는 단순히 역사에 기록된 민족을 밝히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해로 이어지는 우리 고대사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가는 시작이라고 남긴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그동안 우린 알게모르게 세뇌당한 중국의 입장에서, 발해,고구려 등 지엽적인 부분에서만 고대사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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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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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는 신경숙의 신간이다. 

나의 십대와 이십대는 전경린, 신경숙의 작품이 늘 함께 했다. 어디론가 가고싶고,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고 싶던 미칠 것같은 시절 담백한 문체와 차분한 문장의 호흡이 나를 진정시켜주는 듯했다.


신경숙의 글은 읽고있으면 나도 모르게 서늘하고 포근한 솜털속에 침잠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하나하나 영화를 보는 것마냥 각 장면들이 습자지에 머금는 먹물처럼 머릿속에 스며든다.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라면 하나라고나 할까... 책을 펴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한 호흡에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몇 안되는 작가 중 하나이다.

일련의 여러 사건들로 인해 그동안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작가의 문체는 여전하다고 느꼈다.


작품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딸을 잃은 작가가 고향에 내려가 쇠약해진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아버지의 일생을 반추해보는 것으로 진행된다.




아버지가 울었다,는 말을 처음 들은 건 아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J시를 떠났을 때도 아버지는 사흘을 울었다. 나를 서울에 데려다주고 엄마가 집으로 내려와 보니 아버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는데 그 부은 눈이 사흘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나를 보내고 울었다는 얘기는 나를 망연하게 했다. 상상해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눈물. 엄마도 아버지가 우는 걸 그때 처음 봤다,고 했다. p.12


언젠가 엄마도 비슷한 말을 했다. 먼 타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떠나는 아침까지도 평범하게 나를 배웅했던 아빠가 나를 보내고 몇날 며칠을 내 방 침대에 엎드려 펑펑 울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 모습이 우습기도하고 동시에 애잔하기도 해서 평소에나 잘하라고 핀잔을 주었다는 말을 내게 전했다. '아빠의 울음'이란 것은 작가가 쓴 것처럼 말 그대로 나를 망연하게 했다. 아빠가 운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어떤 전설 속의 이야기같았다.



아버지의 유년시절, 아버지의 비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모든 비극에서 살아남았던, 살아남아야했던 아버지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딸의 시선에서 재구성된다. 읽는 내내 나의 아빠도 생각이 났지만, 그 윗세대인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이 떠올랐다. 가끔 술에 취한 아빠에게서 그들의 삶의 한 조각을 들을 뿐이었고, 그 조각맞추기로 어렴풋이나마 어떤 삶을 사셨겠구나 유추해볼 뿐이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동시에 나는 나의 아버지의 삶과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삶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삶에는 기습이 있다' 이 문장만큼 아버지와 그 아버지, 그 아버지들의 삶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없는 것같다. 우리네 삶도 나의 부모님도 모두 삶의 기습에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벌써 육년이 흘렀구나. 언진가 소 새끼 한마리가 젖을 빨다가 미끄러져 다리가 분질러지더니 주저앉아 걷는 법을 잊어버리고는 앉은뱅이가 되더라.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정신이 없어지먼 이 말을 안 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


나는 앞으로 쏟아지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손가락을 모아 콧등부터 이마까지 수십번을 쓸어내렸다. 탈진한 거서럼 보였던 아버지가 기운을 차려 겨우 들려준 말이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건 아니라고 해서.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면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라고 해서. 붙잡지 말고 흘러가게 놔주라고 해서. p.90


" 아주 어렸을 때 동네 피난민촌이 있었다. 20대때 구멍가게를 갔는데 웬 노인이 술 마시며 울고 있었다. 왜 다 큰 어른이 우시냐고 물었더니 북에 두고 온 우리 어머니가 너무 보고싶어 울고 계신다고 했다. 북에서 내려와 금방 다시 올라갈 줄만 아셨다고. 나 또한 어머니가 땅을 사자 하시면 아버지는 이북에 가면 내 땅이 얼마나 많은데, 이남에다 또 무슨 땅을 사냐고. 그렇게 살던 세대들이었다. 가진 거 하나 없이 넘어와 북녘땅만 바라보며 한 평생을 허비하며 살았던 세대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 아빠는 그의 부모 세대에 대해 말했다. 맥락도 연관도 없이 나의 아빠는 문득 문득 그들이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나에게 툭툭 이야기를 던졌다. 한 평생을 허비했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들 모두 고달프게 나아가는 삶 속에서 잠시나마 좋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머물렀던 게 아닐까



붙들고 있지마라, 흘러가게 둬라,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말은 나의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언젠가 외할머니께 사람은 왜 사는 걸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실없는 질문을 듣는다는 듯 나의 외할머니는 그냥 사는 거라고 했다. 그냥 살아지는 거라고 




살아냈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나의 할머니도, 아버지도 그 시절 우리네 부모님 세대는 다 자식들 덕분에 죽지않고 살아냈다고 말한다.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살아낸다는 것이 주는 무게와 울림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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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잔에 담긴 인문학 - 한 잔에 담긴 깊은 이야기를 마시다
황헌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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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인문학, 문학의 조합을 주제로 한 책들이 유독 최근 많이 출간된 것같다. 

음주독서가 취미라고는 하나 나는 와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내 입에 맞으면 맛있는 와인이라 생각하고 어쩌다 운좋게 입맛에 맞는 와인을 만나면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사진으로 남겨 놓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늘 뭔가 모자라고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내가 와인에 대해 잘 안다면 더 맛있는 와인과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텐데 하고 말이다.



무똥 카데 빈티지 에디션, 셀리에 데 프린스 꼬뜨뛰론 비에유빈유는 오랜 나의 '내 입맛에 맞는 와인 항해' 중 발견한 획득품이다. 밤 11시에서 자정시간 사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그 날의 기분과 어울리는, 와인과 어울리는 책을 골라 읽는 것이 나의 유일한 에너지 충전 방식이다.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을 읽으며 함께한 와인이다. 기대없이 저렴하게 구매했는데, 내 입맛에 맞아 기쁜 마음으로 책과 함께할 수 있었다. 좋은 술을 만나 술술 목구멍으로 술방울을 넘기면, 술처럼 책장도 술술 넘어간다. 


와인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포지엄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와인과 관련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함께 마시다'라는 뜻을 지닌 심포지엄에는 와인이 필수품이었다. 지식과 철학, 교양을 겨루는 사교의 장에서 와인은 하나의 증폭제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신과 인간을 물과 포도주의 관계로 대위법을 사용해 설명한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사랑해 마지 않는 와인을 통해 그의 작품과 사고에 날개를 달았다. 샤도 마고를 사랑한 헤밍웨이, 슬픔을 쫓는다는 의미를 지닌 샤토 샤스 스플린을 좋아한 보들레르...작가들이 어떤 술을 좋아했는지 미리 안다면 그리고 그 술을 구할 수 있다면, 그들의 작품을 그 술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작품을 체화하는 새로운 방법인 것같다. 이것은 최근에 조금 더 발달시킨 나의 음주 독서법인데,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작가가 평소 사랑해 마지 않던 술과 함께 그들의 작품을 읽는 것이다. 뭐랄까? 개인적인 느낌일수도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작가가 이 책을 쓸 때 어떤 기분을 썼는지, 좀 더 영혼으로 이해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 만난 책은 적절하게 와인의 역사와 함께 와인 생성방법, 좋은 와인을 고르는 법, 와인 보관법,디켄팅은 왜 하는지,와인등급은 언제 처음 생겼는지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나같은 와인 초심자가 읽기에 매우 적합했다. 마치 '초심자를 위한 와인 교과서'를 만난 느낌이랄까?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와인의 양조과정, 품종, 보관법, 역사, 그리고 중간에 들어있는 와인 여행기까지 '와인 테마 여행상품'이다. 책을 읽는 동안 다시 한번 와인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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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5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바로 위시 리스트에 넣습니다 ㅎㅎ

LilacWine 2021-06-07 10:08   좋아요 0 | URL
와인 좋아하신다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같습니다 ㅎㅎ

초딩 2021-06-05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추도 하고 갑니다~

LilacWine 2021-06-07 10:07   좋아요 1 | URL
으아닛 감사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