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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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는 신경숙의 신간이다. 

나의 십대와 이십대는 전경린, 신경숙의 작품이 늘 함께 했다. 어디론가 가고싶고,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고 싶던 미칠 것같은 시절 담백한 문체와 차분한 문장의 호흡이 나를 진정시켜주는 듯했다.


신경숙의 글은 읽고있으면 나도 모르게 서늘하고 포근한 솜털속에 침잠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하나하나 영화를 보는 것마냥 각 장면들이 습자지에 머금는 먹물처럼 머릿속에 스며든다.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라면 하나라고나 할까... 책을 펴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한 호흡에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몇 안되는 작가 중 하나이다.

일련의 여러 사건들로 인해 그동안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작가의 문체는 여전하다고 느꼈다.


작품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딸을 잃은 작가가 고향에 내려가 쇠약해진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아버지의 일생을 반추해보는 것으로 진행된다.




아버지가 울었다,는 말을 처음 들은 건 아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J시를 떠났을 때도 아버지는 사흘을 울었다. 나를 서울에 데려다주고 엄마가 집으로 내려와 보니 아버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는데 그 부은 눈이 사흘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나를 보내고 울었다는 얘기는 나를 망연하게 했다. 상상해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눈물. 엄마도 아버지가 우는 걸 그때 처음 봤다,고 했다. p.12


언젠가 엄마도 비슷한 말을 했다. 먼 타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떠나는 아침까지도 평범하게 나를 배웅했던 아빠가 나를 보내고 몇날 며칠을 내 방 침대에 엎드려 펑펑 울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 모습이 우습기도하고 동시에 애잔하기도 해서 평소에나 잘하라고 핀잔을 주었다는 말을 내게 전했다. '아빠의 울음'이란 것은 작가가 쓴 것처럼 말 그대로 나를 망연하게 했다. 아빠가 운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어떤 전설 속의 이야기같았다.



아버지의 유년시절, 아버지의 비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모든 비극에서 살아남았던, 살아남아야했던 아버지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딸의 시선에서 재구성된다. 읽는 내내 나의 아빠도 생각이 났지만, 그 윗세대인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이 떠올랐다. 가끔 술에 취한 아빠에게서 그들의 삶의 한 조각을 들을 뿐이었고, 그 조각맞추기로 어렴풋이나마 어떤 삶을 사셨겠구나 유추해볼 뿐이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동시에 나는 나의 아버지의 삶과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삶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삶에는 기습이 있다' 이 문장만큼 아버지와 그 아버지, 그 아버지들의 삶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없는 것같다. 우리네 삶도 나의 부모님도 모두 삶의 기습에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벌써 육년이 흘렀구나. 언진가 소 새끼 한마리가 젖을 빨다가 미끄러져 다리가 분질러지더니 주저앉아 걷는 법을 잊어버리고는 앉은뱅이가 되더라.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정신이 없어지먼 이 말을 안 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


나는 앞으로 쏟아지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손가락을 모아 콧등부터 이마까지 수십번을 쓸어내렸다. 탈진한 거서럼 보였던 아버지가 기운을 차려 겨우 들려준 말이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건 아니라고 해서.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면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라고 해서. 붙잡지 말고 흘러가게 놔주라고 해서. p.90


" 아주 어렸을 때 동네 피난민촌이 있었다. 20대때 구멍가게를 갔는데 웬 노인이 술 마시며 울고 있었다. 왜 다 큰 어른이 우시냐고 물었더니 북에 두고 온 우리 어머니가 너무 보고싶어 울고 계신다고 했다. 북에서 내려와 금방 다시 올라갈 줄만 아셨다고. 나 또한 어머니가 땅을 사자 하시면 아버지는 이북에 가면 내 땅이 얼마나 많은데, 이남에다 또 무슨 땅을 사냐고. 그렇게 살던 세대들이었다. 가진 거 하나 없이 넘어와 북녘땅만 바라보며 한 평생을 허비하며 살았던 세대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 아빠는 그의 부모 세대에 대해 말했다. 맥락도 연관도 없이 나의 아빠는 문득 문득 그들이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나에게 툭툭 이야기를 던졌다. 한 평생을 허비했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들 모두 고달프게 나아가는 삶 속에서 잠시나마 좋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머물렀던 게 아닐까



붙들고 있지마라, 흘러가게 둬라,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말은 나의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언젠가 외할머니께 사람은 왜 사는 걸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실없는 질문을 듣는다는 듯 나의 외할머니는 그냥 사는 거라고 했다. 그냥 살아지는 거라고 




살아냈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나의 할머니도, 아버지도 그 시절 우리네 부모님 세대는 다 자식들 덕분에 죽지않고 살아냈다고 말한다.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살아낸다는 것이 주는 무게와 울림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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