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와 읍루 - 숨겨진 우리 역사 속의 북방민족 이야기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10
강인욱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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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저, 읍루, 동예...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 이름들은 모두 고대에 우리나라와 관련된 북방민족의 이름이다. '민며느리제 옥저, 서옥제 고구려, 동예 책화'... 옆구리를 찌르면 툭하고 튀어나오는 이 개념들은 모두 학창시절 주입식으로 배웠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들에 대한 나의 지식의 전부이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 위주의 수업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늘 옥저, 동예,숙신, 읍루 등 이름만 아련한 북방민족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왜 이들에 대한 역사는 더 알 수 없는 것일까? 이들도 우리 역사의 일부일텐데 왜 소홀하게 대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말이다. 


이 책은 그동안 도외시되었던 환동해지역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문화의 독자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목적을 두고 쓰여졌다. 즉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고대 문화 연구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동북아시아를 재조명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1. 

고대 중국의 역사 기록에서는 고조선을 포함한 만주 일대를 아울러 요동(遼東)이라고 통칭했다. 여기서 말하는 '요동'은 현대의 중국 랴오닝성의 동쪽을 의미하는 요동과는 다르다 한자 遼는 변방지역이라는 뜻도 있으니, 중국에서 바라볼 때 동쪽의 변방이라고 애매하게 부르는 의미였다. 물론 그들은 결코 하나의 집단이 아니었다. 고조선은 물론 고조선과 인접했던 흉노-동호, 고구려와 함께 등장하는 오환-선비, 고구려사의 일부로만 파악해왔던 옥저-동예, 한국사의 범주에서 제외되었던 읍루-말갈 등이 있었다. p.19


나는 '요동'의 의미를 당연히 랴오닝성 동쪽으로만 생각했고 그렇게 배워와서 다르게 생각할 줄 몰랐다. 요동이 단순히 랴오닝성 동쪽이 아닌 그 이상의 영역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나싶다.



2.

'온돌문화'는 동북공정의 중심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임을 구분짓는 증거 중 하나이다. 이것이 옥저에서 발명되었다니! 추운 곳에서는 온돌 비슷한것이 설치되거나 유지가 됐지만, 읍루에서 시작한 말갈인들은 같은 추운 지역에서 온돌을 쓰지 않아 이것이 옥저계와 읍루계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는 것도 흥미롭다.



3. 

...다만 삼강평원의 봉림 문화는 6세기 전후에 소멸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 지역에서는 읍루계 문화에서 기원한 말갈의 문화가 성장한다. 하지만 봉림 문화의 성터들이 밀집한 낮은 평야 지역에서 정작 말갈의 유적은 나오지 않는다. 말갈인들은 농사를 짓지 않았고 성도 쌓지 않았다. 대신에 사냥의 비중이 높은 호전적인 문화였다. 한마디로 봉림 문화와 말갈 문화인들은 서로 경쟁을 벌인 것이 아니라 기후가 바뀌면서 이 지역의 문화도 서로 교대하듯이 바뀐 것이었다. 그리고 삼강평원의 봉림 문화 지역은 저지대라서 범람하여 소택지가 되면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다.  p.85


옥저계문화가 자리한 지역이 기후에따라 자연스럽게 말갈계 문화로 대체된 것이 흥미롭다. 늘 문화의 이동과 대체는 전쟁을 필수불가결로 삼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기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었다니!



4.

...대부분의 학자들은 '숙신=읍루'라고 생각한다. (중략) 읍루로서도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변방의 고대 나라인 '숙신'으로 이름을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배경은 조금 다르지만 이렇게 과거의 이름을 새롭게 붙이는 과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을 때 국호를 고조선에서 유래한 조선이라고 붙인 것이 좋은 예다. p.149


역사서에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숙신과 읍루...북방민족은 문화적 특성때문에 남아있는 사료가 별로 없다보니 이렇게 혼돈을 주기도 하는구나 싶기도하고...숙신과 읍루는 그 계열이 다른데 다 거기서 거기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나뿐만 아닐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환동해권 역사를 더 연구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5. 

고고학이 밝히는 북방민족에 대한 이야기는 세부적인 역사의 증명이 아니다. 그보다는 민족 역사의 큰 흐름과 그들의 범위, 또한 지역 간 교류를 보여줄 수 있다. (중략) 고고학 자료를 성급하게 문헌의 민족에 대입해서는 안 된다. 옥저와 읍루는 중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이기 때문에 문헌 자료 자체가 매우 소략하다.  p.159~161


지금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민족', 민중들이 본격적으로 '민족'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구 한말이 다 되어서, 3.1운동 시점에서였다. 이 '민족'이라는 개념에 갇혀서, 국가나 개인의 사사로운 목적에 따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역사적 사료들이 유린당했는지...특히 중국에서 이러한 오류를 매우 심각하게 범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옥저와 읍루의 연구는 단순히 역사에 기록된 민족을 밝히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해로 이어지는 우리 고대사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가는 시작이라고 남긴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그동안 우린 알게모르게 세뇌당한 중국의 입장에서, 발해,고구려 등 지엽적인 부분에서만 고대사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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