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
이토 준지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만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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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에를 대체할 인물이 나온 거 같은데, 뭐랄까 이전의 이토준지만의 신선한 기괴함이 줄어든 느낌이라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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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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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집어든 책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천진 시절이라니.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에 관련된 이야기일까?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할 수 없었다. 책 표지를 봐도 도무지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었다. 200페이지 남짓한 이 소설은 굉장히 흡입력 있고, 재미있었고, 그리고 가슴 아팠다.

 

소설은 1998년 중국을 배경으로 조선족 사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주제는 평소 접할 수 없는 부분이라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격변기의 조선족 청년의 시선으로 당대 중국사회의 변동 속에서 조선족 농촌사회, 젊은이들이 직면했던 문제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생동감 있게 반영하였다. 주인공 상아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1998년도 중국 천진으로 떠나 생활하게 된 젊은 시절 추억과 이야기는 흡사 얼마 전 유행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의 소설 버전 같기도 하고, 70~80년대 우리나라 노동자들에 대한 소설도 떠올리게 했다. 또한 중국 대륙을 떠나 홍콩으로 돈을 벌러 떠났던 청춘들의 군상을 그린 영화 첨밀밀같기도 했다. 그만큼 부담 없고 재미있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이 소설은 90년대 중국 산업화 시기, 도시 이주 노동자의 정체성 상실과 소외 문제라는 무거우면 무겁다 할 수 있는 주제를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어 돋보이는 작가의 역량을 엿볼 수 있었다.

 

주인공 상아는 천진에서 살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정숙이라는 인물과 우연히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면서 잊고 지냈던, 어쩌면 잊고 싶었던 젊은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고향을 떠나 펼쳐질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고향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조선족 처녀 상아는 어릴 적 친구인 무군과 어찌하다 보니 엮여서 같이 천진으로 떠나게 된다.

 

상아와 무군이 천진으로 떠났던 1998년이란 시절을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다가오는 2000년대에 대한 기대와 우려와 함께 IMF 직전으로 경제가 흔들리고, 사회적으로도 불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도 TV를 틀면 나오는 부도 소식과 가계부를 작성하며 깊은 한숨이 늘어가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모든 것이 무너져가던 우리나라와 달리 그 당시 중국은 자고 일어나면 고층빌딩이 우후죽순 대나무처럼 세워지고, 경제가 발전하며 이촌 향도 현상이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활기찬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혼돈의 시기 속에서 무군은 상아를 구슬처럼 아껴주며 천진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상아는 얼떨결에 무군과 사귀게 되고, 떠밀리듯 무군의 약혼자 신분으로 천진에서 일하면서 이런 게 사랑인지, 원래 다 이런 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나름 천진 생활에 즐겁게 적응한다. 그러다 어릴 적 친구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미스 신을 만나게 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삶의 어떤 변화, 질적으로 더 나은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내 욕망이 정당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욕망은 꿈이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때는

두 가지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오히려 춘란이나

미스 신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녀들은 욕망 앞에서 정직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상아는 다른 이들이 '평소 여자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부모님 세대가 바라던 모습과 다른, 욕망과 성공을 위해 기존의 도덕 관념을 저버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 나름의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야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약혼자를 보며, 그리고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영원히 이 자리에서 밑바닥 노동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한다.

 

황금만능주의가 극을 향해 치닫는 시절, 일해도일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과 지긋지긋한 가족들, 나아질 게 없는 살림살이는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그녀들의 욕망에 불을 지핀다. 성공하고자 해도 받을 수 있는 교육은 소수만을 위해 존재하고, 여자라는 존재는 도시에 나가려면 남자와 결혼을 하거나 약혼을 해야만 가능했던 시절. 억압받던 시절 그녀들 나름의 성공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선택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아는 혼자 육아를 하며, 한국에서 일하는 남편을 기다리고 정숙은 도박과 여자 문제를 일으켰던 남편과 이혼하고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더 나아질 것 없는 삶의 결과를 맞이했지만, 다시 젊은 시절의 상아와 정숙으로 돌아간다 해도 언제라도 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한다.



 

"언니, 언니는 후회 같은 거 해본 적 있어요? 만약이라는 게 없다는 거 아는데,

그래도 다시 한번 그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떨 것 같아요?"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얼굴이 좀 붉어졌다. 정숙은 잠깐 내 손을 바라보았다.

 

"글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아니, 후회하지 않을 거 같아.

다시 한 번 선택하라고 해도 그렇게 살았을 거야.“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소박한 고향 마을을 떠나 처음으로 시작한 개방 도시의 현란한 삶 속에서 사랑하는 희철을, 무군을 떠나기로 결단한 그녀들이 바로 정숙이었고 나였다.

다른 구실을 필요 없었다.

 

"언니, 그냥 그렇게 된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도시로의 이동은 여자의 몸으로는 자유롭지 못했던 고향에서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롭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나 현실은 도시에서 살아내기 위해 자신을 그저 상품으로 전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상아와 같은 청년들은 꿈을 가지고 도시로 이주했으나, 모든 노동자들이 그러하듯 기계의 부품과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천진에서의 생활은 상아와 같은 시골 출신의 노동자들의 자아정체성이 상실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도시인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성립하는 과정이었다. 각각의 유형에 속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시도는 처절하고 지독해서 돈을 위해서라면 사랑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상품과 같이 제물로 내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을 위한 선택은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지 못했다. 밑바닥에서 발버둥 치지만 정작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못한다. 쳇바퀴 돌 듯 계속 끊임없이 그 자리에서 맴돌며 겨우 생계만 유지하게 될 뿐이다.


누군가의 두 번째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 모습을 보면서 상황이 절박하고 간절할수록 근로 빈곤층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요구는 야비하고 강압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성적인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밑바닥에 몰린 여성들은 여자의 몸이 다른 자본재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처음에는 비참하고 슬프지만, 자신의 몸과 젊음이 상품으로 팔릴 수 있을 때 최대한 수익을 올려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쁘지 않다 위로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성은 상실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서도 변함없이 진행된다. 신자유주의하에서 모든 것은 상품이 되어 팔리고, 이윤 추구를 위해 점유된다. 이러한 논리는 평등, 정의, 사랑과 같은 이념을 무능력한 것으로 만들면서 구조적 불평등에 의해 초래되는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축소, 환원시킨다.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유일하게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방파제 같던 상아에 대한 무군의 사랑도, 순수하게 희망을 품었던 정숙을 향한 희철의 사랑도 거대한 신자유주의 앞에서는 모두 일장춘몽으로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부()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힘든 현실 속에서도 꿈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 다양한 인생의 목적이 존재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성실히 살아가면 그런 인생의 목적이 어느 정도 충족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신자유주의 체제가 중요한 경제적 관념으로 받아들여지고 경쟁이 더욱더 치열해지면서, ()가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되었다. 노동의 상품화를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파괴되고 도덕성은 상실되었다. 사회에서 가장 낮은 집단에 속한,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상아나 정숙의 입장이었으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90년대 도시라는 공간이 과연 상아와 다른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공간이었을까?‘하는 의문이 문득 든다. 주류 사회로의 편입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것이다. 해방 후 어느 날 갑자기 중국 조선족으로 편입된 그들의 조상이 빠르고 민첩하게 중국 공산당 정책에 반응하며 적응했던 것처럼 새로운 자본주의 물결에 휩쓸린 상아와 청년들 또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해야 했다. 여성, 그리고 소수민족, 노동자라는 지위를 가진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그것은 그들의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그들 삶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한 표현이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말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니까하는 체념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라는 껍질을 뒤집어쓴 강압이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선택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그녀들 스스로 결정한, 자신의 인생을 위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천진으로의 이동도 얼떨결에 휩쓸려 이루어진 것이므로 상아의 생각대로, 온전한 한 주체로서의 선택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존의 상식이 더 이상 상식이 되지 못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알려줄 길잡이의 부재 속에서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던져진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 그 시절, 그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천진 시절, 그들의 그 시절은 말 그대로 천진(天眞)했던 시절이며, 젊고 무모했고 배신과 아픔으로 얼룩졌던 시절인 반면 가장 찬란하고, 가슴 뜨거웠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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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11-07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LilacWine 2021-11-07 13:0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나를 위한 신화력 -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신화 수업
유선경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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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신화와 전설을 아우르는 작가의 지식에 놀라고, 또한 현생의 우리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들만 골라담은 통찰력에 놀란 책이다. 신화는 단순히 옛 이야기가 아닌 고대 인류의 지혜가 담겨있다. 우리의 먼 조상의 조상의 입에서 입을 거쳐 탄생한, 인류 지혜의 응축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되돌아보는데 도움을 주는 이야기란 소리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신화력'은 신화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할 것인지에 대한 희망을 주는 능력같다. 현생이 힘들고 고단할 때 우리 무의식 저편에 자리한 인류의 집단 지성을 통해 삶의 동력을 다시 한번 얻을 수 있는 능력.

나는 1장 중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내 현실이 달라졌을까?' 챕터를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시나 문학을 통해서도 위안과 위로를 받은 경험은 있지만, 인문서적을 통해 받는 위로라니 생소하기도하고 신기한 기분이 들기도 하다. 인간들이라면 늘 그렇듯이 '과거의 내가, 그때의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무언가 달라졌을까?'하는 미련이라면 미련인 덧없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유독 내가 선택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면 크게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내가 잘 살았더라면, 우리집이 부자였더라면, 내가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등등 수많은 번뇌와 미련이 늘 질척질척 발목을 붙잡는다. 이런 성격탓인지 어렸을 때 나는 선택지를 내가 정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내용의 책을 꽤 좋아했다. (영드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도 이런 모티브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와 더불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이휘재씨가 했던 프로그램도 좋아했다. 너무 어릴 때 본 것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찾아보니 1993년에 방영된 ‘MBC 인생극장’이란 프로그램으로 결말이 두 개로 나뉘는 단막극 예능이었다. '그래 결심했어!'라고 외치며 두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고 또한 이를 되돌릴 수 있단 설정이 어린마음에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이런 모티브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선택지를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결과를 얻게되지 않을까'하는 인간의 헛된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生)'이라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동안 생겨날 변수는 고작 세 개 정도가 아니라 그것의 열 배, 백배가 넘는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 초기조건을 내 마음에 맞게 설정할 수 있다 해도 이후 일어날 변수까지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면-이는 불가능하다-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 그러니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르게 행동했다면 지금 내 현실이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아니다'가 아니라 '예측불가능'이다.(중략) 대상과 대상, 대상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이 결과를 좌우한다. 그러니 승리의 여신이 약속한 대로 당신은 할 수 있지만, 당신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지 않다. 잘 된다 해도 온전히 당신 덕이 아니고 잘못된다 해도 오로지 당신 탓이 아니다. 세상은 너무나 변화무쌍해서 당장은 완벽한 초기 조건 같아도 내일은 아닐 수 있기에 우리는 미래를 두고 절대 정확한 답을 얻어낼 수 없다. 이런 미래를 두고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의지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라 다이몬의 몫이다.

p.87-88

잘 되든 못 되든 내 탓도 아니고 내 덕도 아니라는 이 말이 왜이렇게 고맙고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으로 풀어낼 수 있는, 하지만 정답이 없는 카오스같은 세상이 나름의 법칙과 우연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 된다. 그러니까 내가 금수저가 아니라고 해서, 내가 실수를 했다고 해서 괴로워하거나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의 민낯이 타인의 욕망과 인정을 얻기 위해서이고, 자본주의에 놀아나는 것이라면 수치스럽고 참담하다. 생의 끝에 우리를 기다리는 질문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가 아닐까. 방향이 잘못된 최선은 '나'를 지운다.

p.136

그리스 로마, 북유럽, 인도, 중국, 우리나라 등등 모든 신화에서는 결국 나의 다르마(존재하는 방식)를 찾는 법.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는 과정을 말하는 것같다. 나는 왜 사는지, 과연 나란 인간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문화권에서 생각하는 해답같다. 신화와 고전문학, 그림 등 전반적 내용을 아우르며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해보는 과정이 신선하고 재밌었다. 처음에는 나라별 신화에 대한 소개인가 싶었는데, 각 주제에 맞는 신화와 이에 맞는 철학적 물음을 통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책이었다.간만에 매력적인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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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공무원은 문장부터 다릅니다 - 공직자를 위한 말하기와 글쓰기
박창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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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라는 막연한 열망을 늘 가슴에 품고 있다가 만난 책. 글쓰기 능력은 엑셀만큼이나 직장인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학생때는 그리 절감하지 못하다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어느날 갑자기 뿅하고 나에게 멋진 글쓰기 능력과 창의력이 샘솟았으면 하는게 요즘 심정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단시간 내에 올릴 수있는 능력이 아니다. 꾸준히 읽고 쓰는 연습을 동반해야 한다. 그동안 여러 글쓰기 책을 보았지만, 이 책은 글을 잘 쓰고 싶으면 해야할 것들을 간결하게, 핵심만 담았다. 한 마디로 ‘직장생활에 필요한 말하기&글쓰기 입문서’이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먼저 말을 잘해야한다. 이 책에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상황에 맞는 말하기와 토론 방법, 설득방법까지 핵심요약되어 있다. 다양한 글쓰기 책에서 말하는 핵심은 여기서도 반복된다. ‘글은 쉽고 명료하게 써야한다’는 것. 이전에는 현학적이고 뭔가 있어보이는 미사여구가 가득한 글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흑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가면서 명료하고 단순하게 쓰는 것이 가장 잘 쓰여진 글이라는데 깊이 동감한다. 저자는 명료한 글쓰기를 하려면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말한다.

1.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어야 한다. 잘 모르는 것을 쓰려고 하면 문장이 배배 꼬이고 어려워진다.

2. 말하고 글쓰는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3.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하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이것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말하기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나는 주로 사람들앞에서 말하는 일이 많은 직업인지라 저자가 알려주는 방법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책 곳곳에서 계속 반복하는 메세지는 ‘중학생도 이해할만한 글을 써라’라는 것. 우리나라 방송 및 신문은 고등학생도 읽을 수 있는 수준에서 제작한다고 한다. 또한 박물관 전시물도 중학생이 이해할 수준에서 만든다고 들었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에서도 어려운 단어, 쓸떼없이 남발하는 한자 어휘 등으로 ‘굳이 이렇게까지 작성해야할까?’하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었다. 쉽게 쓴다고 그 글이 절대 질 떨어지거나 형편없는 글이 아님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여러 챕터의 내용이 모두 나에게 피가되고 살이 되는 듯했다. 상황에 맞는 말하기 힘 챕터에서 앞으로 회의 때 내가 가져야할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아부의 기술 편에서는 그동안 내가 너무 딱딱하게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상황에 맞게 이를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외에도 성차별 언어나 차별 및 혐오표현 지양에 대한 부분도 좋았다. 오랜시간 굳어져 당연하게 생각했던 차별 언어들을 하나씩 바꾸려 노력 중인데, 쉽지 않다. 

‘간결 명료하게, 핵심만, 군더더기 없이, 차별표현은 지양하는 글쓰기’ 이것이 앞으로 나의 글쓰기 목표가 되었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쓰는 연습을 하다보면 나도 언젠가는 저자처럼 글쓰기의 전문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소망한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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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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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한 두번씩 책을 시중 정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장터가 열렸었다. 어릴 때 꽤 다독가였던 나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그 날만을 기다리곤 했었다. 어느 날 나는 그곳에서 3권짜리 세트로 보라색 표지에 심플하게 그리스 용사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책에 마음을 빼앗겨 집으로 데려왔다. 다른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한니발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일대기에 홀린듯 빠져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로마 사회의 공직에 나설 젊은이들을 위해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평화로운 현재와 앞으로 닥칠 위기에서 지도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과서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1권에는 테세우스,로물루스,리쿠르코스,누마,솔론,푸블리콜라,테미스토클레스, 카밀루스, 아리스티데스, 카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인물평전과 같은 느낌으로 각 인물에게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진행되어 전혀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번 책의 장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이 내용을 작성한 사람 플루타르코스가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그 뒤로 어떤 인물들이 이 영웅전의 내용을 각색했는지를 먼저 해제에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해제 덕분에 내가 한니발을 알게된 것은 아미요와 노스 경 덕분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단순히 영웅들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삶에서 교훈을 얻어 체화할 줄 알았던 플루타르코스, 그가 다른 작가들과 다른 큰 장점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영웅들의 행적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고치면서 영웅들의 미덕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에는 이 책이 자기를 위한 것이 되었다'는 말이 인상깊다.



이 책은 '신화가 된 영웅'이 어떻게 신화가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웅을 영웅으로 남을 수 있게하는 기록, 바로 영웅을 신화로 만든 사람이 플루타르코스였다. 구전과 전설로만 알려졌던 역사적 인물을 실제 사건과 주장들을 대조하여 분석하는 면이 흥미로웠다. (ex) 미노스 왕, 미노타우로스



각 영웅들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대표 영웅 이야기가 끝난 후 그 둘을 비교하는 글을 통해 플루타르코스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집트나 여러 나라를 여행하여 견문을 넓히고,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플루타르코스에게 객관적으로 역사적 인물을 바라볼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스의 건국자는 테세우스라면 리쿠르고스는 그리스의 기틀을 잡았다. 흔히 쓰는 표현 중 '스파르타식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주인공은 바로 리쿠르고스. 그가 이 스파르타식 교육을 도입해 자신의 조국을 그리스 최강의 도시 국가로 만들었다. 그는 왕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자신의 왕위를 포기하고 적통인 어린 조카에게 왕위를 선위한다. 이런 모습은 마치 중국 주나라의 주공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느꼈다. 대리자로 본인의 업무에 충실했던 리쿠르고스에게서 사심없이 주나라를 정비하는 주공의 모습을 보았다. 이러한 지도자의 모습은 권력에 눈 먼 것이 아닌, 정의와 대의를 위해 행동했을 때 나오는 최고의 결과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또한 가장 지혜롭고 민주적인 정치를 했다는 솔론. 권력을 가졌음에도 이를 민주적으로 행사하고 정당하게 주어진 권력조차 남용하지 않은 점에서 솔론 못지않게 훌륭했다는 푸블리콜라도 인상깊다. 이 외에도 영웅들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흥미로우니 즐거운 독서를 위해 리뷰에 자세히 쓰진 않겠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라는 제목에 영웅들의 찬송가와 같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도덕론자로 그의 철학이 영웅전 전반을 관통한다. 그래서 영웅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도 가감없이 싣고 있다.



지도자는 정의롭게 삶으로써 신성을 구현해야 한다. 권력이 공의롭지 못한다면 짐승과 같다 p.500



또한 아무 기록이나 담지 않는다. 인물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싣고 있어 객관적인 판단을 하도록 돕는다. 헬레네를 겁탈한 테세우스에 대한 여러가지 상반된 주장이나 그에 대한 아테네 시민들의 입장, 그와 반대파인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 등 양쪽의 입장 모두 고루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영웅들의 내면세계와 성격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인물의 특징을 밝혀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위해 영웅들의 환경, 성격, 기질, 미덕, 업적 등 다양한 일화를 고루 다룬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 외에도 살라미스 해전, 플라타이아이 전투 등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술은 더욱 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단순히 한니발만 기억하고 있던 나는 이번에 다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읽기를 시작하면서 영웅들의 모습을 통해 다시 한번 내 생활과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회생활에서 내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인지, 만약 솔론이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만약 내가 아리스티데스였다면 어땠을지 등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뒷 이야기도 궁금하고 더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이 몇 천년 전 사람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놀랍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 했던가 동양에는 삼국지가 있다면 서양에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난세의 여러 인물의 모습을 현재의 거울로 삼는 삶, 고전은 시간의 세례를 받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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