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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ㅣ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평점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한 두번씩 책을 시중 정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장터가 열렸었다. 어릴 때 꽤 다독가였던 나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그 날만을 기다리곤 했었다. 어느 날 나는 그곳에서 3권짜리 세트로 보라색 표지에 심플하게 그리스 용사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책에 마음을 빼앗겨 집으로 데려왔다. 다른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한니발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일대기에 홀린듯 빠져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로마 사회의 공직에 나설 젊은이들을 위해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평화로운 현재와 앞으로 닥칠 위기에서 지도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과서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1권에는 테세우스,로물루스,리쿠르코스,누마,솔론,푸블리콜라,테미스토클레스, 카밀루스, 아리스티데스, 카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인물평전과 같은 느낌으로 각 인물에게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진행되어 전혀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번 책의 장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이 내용을 작성한 사람 플루타르코스가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그 뒤로 어떤 인물들이 이 영웅전의 내용을 각색했는지를 먼저 해제에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해제 덕분에 내가 한니발을 알게된 것은 아미요와 노스 경 덕분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단순히 영웅들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삶에서 교훈을 얻어 체화할 줄 알았던 플루타르코스, 그가 다른 작가들과 다른 큰 장점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영웅들의 행적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고치면서 영웅들의 미덕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에는 이 책이 자기를 위한 것이 되었다'는 말이 인상깊다.
이 책은 '신화가 된 영웅'이 어떻게 신화가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웅을 영웅으로 남을 수 있게하는 기록, 바로 영웅을 신화로 만든 사람이 플루타르코스였다. 구전과 전설로만 알려졌던 역사적 인물을 실제 사건과 주장들을 대조하여 분석하는 면이 흥미로웠다. (ex) 미노스 왕, 미노타우로스
각 영웅들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대표 영웅 이야기가 끝난 후 그 둘을 비교하는 글을 통해 플루타르코스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집트나 여러 나라를 여행하여 견문을 넓히고,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플루타르코스에게 객관적으로 역사적 인물을 바라볼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스의 건국자는 테세우스라면 리쿠르고스는 그리스의 기틀을 잡았다. 흔히 쓰는 표현 중 '스파르타식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주인공은 바로 리쿠르고스. 그가 이 스파르타식 교육을 도입해 자신의 조국을 그리스 최강의 도시 국가로 만들었다. 그는 왕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자신의 왕위를 포기하고 적통인 어린 조카에게 왕위를 선위한다. 이런 모습은 마치 중국 주나라의 주공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느꼈다. 대리자로 본인의 업무에 충실했던 리쿠르고스에게서 사심없이 주나라를 정비하는 주공의 모습을 보았다. 이러한 지도자의 모습은 권력에 눈 먼 것이 아닌, 정의와 대의를 위해 행동했을 때 나오는 최고의 결과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또한 가장 지혜롭고 민주적인 정치를 했다는 솔론. 권력을 가졌음에도 이를 민주적으로 행사하고 정당하게 주어진 권력조차 남용하지 않은 점에서 솔론 못지않게 훌륭했다는 푸블리콜라도 인상깊다. 이 외에도 영웅들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흥미로우니 즐거운 독서를 위해 리뷰에 자세히 쓰진 않겠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라는 제목에 영웅들의 찬송가와 같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도덕론자로 그의 철학이 영웅전 전반을 관통한다. 그래서 영웅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도 가감없이 싣고 있다.
지도자는 정의롭게 삶으로써 신성을 구현해야 한다. 권력이 공의롭지 못한다면 짐승과 같다 p.500
또한 아무 기록이나 담지 않는다. 인물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싣고 있어 객관적인 판단을 하도록 돕는다. 헬레네를 겁탈한 테세우스에 대한 여러가지 상반된 주장이나 그에 대한 아테네 시민들의 입장, 그와 반대파인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 등 양쪽의 입장 모두 고루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영웅들의 내면세계와 성격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인물의 특징을 밝혀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위해 영웅들의 환경, 성격, 기질, 미덕, 업적 등 다양한 일화를 고루 다룬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 외에도 살라미스 해전, 플라타이아이 전투 등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술은 더욱 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단순히 한니발만 기억하고 있던 나는 이번에 다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읽기를 시작하면서 영웅들의 모습을 통해 다시 한번 내 생활과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회생활에서 내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인지, 만약 솔론이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만약 내가 아리스티데스였다면 어땠을지 등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뒷 이야기도 궁금하고 더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이 몇 천년 전 사람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놀랍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 했던가 동양에는 삼국지가 있다면 서양에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난세의 여러 인물의 모습을 현재의 거울로 삼는 삶, 고전은 시간의 세례를 받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