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신화력 -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신화 수업
유선경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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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신화와 전설을 아우르는 작가의 지식에 놀라고, 또한 현생의 우리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들만 골라담은 통찰력에 놀란 책이다. 신화는 단순히 옛 이야기가 아닌 고대 인류의 지혜가 담겨있다. 우리의 먼 조상의 조상의 입에서 입을 거쳐 탄생한, 인류 지혜의 응축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되돌아보는데 도움을 주는 이야기란 소리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신화력'은 신화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할 것인지에 대한 희망을 주는 능력같다. 현생이 힘들고 고단할 때 우리 무의식 저편에 자리한 인류의 집단 지성을 통해 삶의 동력을 다시 한번 얻을 수 있는 능력.

나는 1장 중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내 현실이 달라졌을까?' 챕터를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시나 문학을 통해서도 위안과 위로를 받은 경험은 있지만, 인문서적을 통해 받는 위로라니 생소하기도하고 신기한 기분이 들기도 하다. 인간들이라면 늘 그렇듯이 '과거의 내가, 그때의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무언가 달라졌을까?'하는 미련이라면 미련인 덧없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유독 내가 선택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면 크게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내가 잘 살았더라면, 우리집이 부자였더라면, 내가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등등 수많은 번뇌와 미련이 늘 질척질척 발목을 붙잡는다. 이런 성격탓인지 어렸을 때 나는 선택지를 내가 정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내용의 책을 꽤 좋아했다. (영드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도 이런 모티브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와 더불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이휘재씨가 했던 프로그램도 좋아했다. 너무 어릴 때 본 것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찾아보니 1993년에 방영된 ‘MBC 인생극장’이란 프로그램으로 결말이 두 개로 나뉘는 단막극 예능이었다. '그래 결심했어!'라고 외치며 두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고 또한 이를 되돌릴 수 있단 설정이 어린마음에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이런 모티브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선택지를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결과를 얻게되지 않을까'하는 인간의 헛된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生)'이라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동안 생겨날 변수는 고작 세 개 정도가 아니라 그것의 열 배, 백배가 넘는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 초기조건을 내 마음에 맞게 설정할 수 있다 해도 이후 일어날 변수까지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면-이는 불가능하다-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 그러니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르게 행동했다면 지금 내 현실이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아니다'가 아니라 '예측불가능'이다.(중략) 대상과 대상, 대상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이 결과를 좌우한다. 그러니 승리의 여신이 약속한 대로 당신은 할 수 있지만, 당신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지 않다. 잘 된다 해도 온전히 당신 덕이 아니고 잘못된다 해도 오로지 당신 탓이 아니다. 세상은 너무나 변화무쌍해서 당장은 완벽한 초기 조건 같아도 내일은 아닐 수 있기에 우리는 미래를 두고 절대 정확한 답을 얻어낼 수 없다. 이런 미래를 두고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의지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라 다이몬의 몫이다.

p.87-88

잘 되든 못 되든 내 탓도 아니고 내 덕도 아니라는 이 말이 왜이렇게 고맙고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으로 풀어낼 수 있는, 하지만 정답이 없는 카오스같은 세상이 나름의 법칙과 우연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 된다. 그러니까 내가 금수저가 아니라고 해서, 내가 실수를 했다고 해서 괴로워하거나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의 민낯이 타인의 욕망과 인정을 얻기 위해서이고, 자본주의에 놀아나는 것이라면 수치스럽고 참담하다. 생의 끝에 우리를 기다리는 질문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가 아닐까. 방향이 잘못된 최선은 '나'를 지운다.

p.136

그리스 로마, 북유럽, 인도, 중국, 우리나라 등등 모든 신화에서는 결국 나의 다르마(존재하는 방식)를 찾는 법.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는 과정을 말하는 것같다. 나는 왜 사는지, 과연 나란 인간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문화권에서 생각하는 해답같다. 신화와 고전문학, 그림 등 전반적 내용을 아우르며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해보는 과정이 신선하고 재밌었다. 처음에는 나라별 신화에 대한 소개인가 싶었는데, 각 주제에 맞는 신화와 이에 맞는 철학적 물음을 통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책이었다.간만에 매력적인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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