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초등학교 5, 6학년에게 여러가지 책을 읽히고 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많이 빌려가는 책이 <피오리몬드 공주의 목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어 보지 않았던 나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느냐고 물었다. -무지 재미있어요. 그리고 무시무시해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일반적으로 '공주 이야기'는 호화롭게 태어난 공주가 어려움을 겪고 결국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이다. 공주는 아주 예뻐야 하고 왕자는 용감하고 똑똑할 뿐 아니라 잘생겨야 한다. 그런데 피오리몬드 공주의 이야기는 악당 공주의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공주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의 뒤에는 차갑고 거만한 가시가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현명한 왕자가 나타나서 공주의 잘못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공주는 자신을 악행으로 이끌었던 마녀를 벌 주고 새 사람으로 개과천선하여 왕자와 행복한 결혼으로 골인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피오리몬드 공주는 악녀 중에서도 악녀였고 남을 괴롭히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존재였다. 천성적으로 악당이어서인지, 너무나 나쁜 일을 해서인지, 이웃나라와의 외교적 관계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피오리몬드 공주에게는 회개의 기회도, 새 삶을 살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강한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은 자는 영원히 다이아몬드 안에 갇히는 형벌을 받으리라.
얼음처럼 차가운 조안 공주와 버드나무처럼 연약한 마이클 왕자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공주와 왕자 이야기의 과정을 밟는다. 그렇지만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다. 우선 마이클 왕자는 착하고 지혜롭지만 소심하고 눈물 많은 사람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약점 많은 왕자는 몇 번이나 실패할 뻔한 위기를 넘기면서 마침내 마녀의 저주를 푸는 데 성공한다. 기적이다. 그야말로 온실에서 자라난 왕자가 해냈다고 여겨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기적은 여기까지! 더이상의 기적은 없다. 왕자가 마녀의 저주를 풀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희생한 것은 되돌릴 수가 없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왕자가 다시 젊어지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간마저 되돌리는 기적은 없었던 것이다.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7년이라는 시간은 한 젊은이를 노인으로 만들 만큼 혹독한 시련이었다. 시련의 시간은 저주를 푼다. 시련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것은 그저 마술일 것이다.
인생의 진리인가? 모든 일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는 법. 희생의 대가로 조안 공주의 마음은 움직인다. 얼음같이 차가운 냉소를 마이클의 연약한 눈물이 녹여낸 것이다. 부드러워서 굽어질지언정 뿌리 뽑히지 않는 순박한 사랑의 버드나무가 얼음같이 차가운 이성의 대지에 봄을 틔워내듯이.
아라스몬과 크리시스의 사랑은 황무지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음악이다. 죽음과 이별을 함께하는 사랑의 영원한 신화가 피어 있다.
초등학생들이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그렇지만 작가의 뛰어난 이야기들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 어떤 씨앗으로 자라나서 언젠가 검은 새처럼, 옛날에 빛을 가져다 준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할 것이다. 황무지에 아름다운 시절을 열어주는 나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