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꽃 한 송이 심고 - 온몸으로 쓰고 그린 40년의 일기
이한순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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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순 님

(북스코프, 2007, 총 439쪽)


 

온몸으로 쓰고 그린 40년 일기/ 내 마음에 꽃 한 송이 심고

  방송에 소개된 분이라 해서 처음에는 가볍에 읽으려 들었다. 그 가벼운 마음에 지금 나는 이한순 님께 죄송해서 머리를 들 수가 없다. 어렵게 씌어진 글은 쉽게 읽히게 마련이라는데, <내 마음에 꽃 한송이 심고>는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가 없다.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까지 다 살펴가며 읽어야 했다. 

나는 목숨이 다 하는 날까지 쓰고 또 쓸 것입니다.

  1960년 11월 16일. 당시 이한순 님은 22세였다.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2007년 이한순 님은 자신의 일대기를 일기 형식을 빌어 우리에게 내보인다. 영롱한 보배와 같은 글이다. 손을 잃고 다리를 잃은 뒤 이한순 님이 느꼈을 절망은 이루 말 못할 것들이다.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생활하는 사람으로 살기까지가 얼마나 숱한 어려움과 자괴감, 그리고 외로움이 서리서리 맺혔을지 말하지 않아도, 캐묻지 않아도, 그 상흔을 들추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하지만 내가 이한순 님의 산문 <내 마음에 꽃 한송이를 심고>를 전율하며 읽은 까닭은 그의 불운이 아니다. 신길동 주인집 어른의 맵싸한 쓴소리, 고향으로 돌아와 누운 그를 구경거리 삼는 정다운 이웃사촌들이 <내 마음에  꽃 한송이를 심고>를 읽는 내 마음에까지 대못을 쾅쾅 들이박았다. 이한순 님의 불행에 대한, 사고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에 다각으로 제개를 당할 수 없는 데에 대한, 헐한 동정이 아니다.  

  사람들의 무리는 맹수의 세계처럼 비정하다. 우리는 곳곳에서 그와 같은 사정을 목격한다. 장애인을 위해 마련한 버스가 비장애인에게 불평을 자아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 버스에 일반인을 태우는 사회적 구조가 무심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태운 장애인 버스를 타면서 나는 곧잘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이한순 님은 그에 대해서 불평이 없다.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왜일까?
  나는 늘 가방을 무겁게 해서 다닌다. 불평은 나의 벗이라 내가 무모하게 챙겨넣은 물건은 생각도 않고 불평한다. 왜 이래 무겁노. 그러면서 이한순 님의 책을 넣는다. 그리고 낮게 읊는다. 고맙습니다. 

  <내 마음에 꽃 한송이를 심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 어떤 자기계발서, 고전보다 가치가 있다. '가치'로 한정시키기에 미심쩍다. 귀한 책이다. 행여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줄 것이다. 그리고 새로 한권 더 구입해야 하지 않을까. 충남 당진에 가면 이한순 님을 찾아뵈야 할 것 같다. 책을 읽고 누군가를 멀찍이서 뵙고 싶은 마음이 참으로 오랜만에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서, 당혹스럽다. 멀리서 이한순 님 계신 곳만 눈도장 찍고 돌아와야겠다. 행여 너무 늦어 안 계시다면 그 거리를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겠다. 

  <내 마음에 꽃 한송이를 심고>는 아름다운 마음이 빙벽에 핀 솜다리(에델바이스)이다. 절망의 구덩이에서 이한순 님을 구원하신 이한순님의 어머님.

  이제는 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는데도 어머니를 향한 마음은 전에 없이 더 두터워만 갑니다. 아니, 잊을 수가 없게 그리워만 갑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에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리움입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몹시 저려옵니다. 이따금씩 밀물처럼 서러움이 울컥울컥 밀려옵니다. 그러면 금방이라도 눈물보가 터질 것만 같습니다. 허공에다 대고 "어머니!" 하고 외치며 엉엉 울어버리고 싶어집니다. 
 

 어머니는 장에서 돌아오실 때마다 "옜다!" 하시며 먹을 것을 내주셨습니다. 그러면 나는 먹지 않아도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와 조카들에게 일일이 몫을 챙겨 나누어줄 때마다 한량없이 마음이 흡족하곤 했습니다. 내리사랑이라고...... 내게 쏟으신 어머니의 사랑과 정이 또 정을 낳아 가족이 하나가 되곤 했습니다.

  출타해서 돌아오시는 어머니,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금 뵙고 싶은 간절함에, "어머니...... 어머니......" 하고 수없이 뇌까려봅니다. 다시 한번 받아보고픈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그립습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전문)

   이한순 님의 힘겨운 삶이 사지 멀쩡한 나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한순 님께 죄송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한순님은 웃으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내가 드려야 할 말씀을 이한순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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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 - 개정판 나남창작선 58
박경리 / 나남출판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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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나남, 2006, 총 550쪽)

 

 

파시

 

 

 


  파시. 풍어기에 열리는 시장이라는 뜻의 '파시'. 1968년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장편소설이다.

 

  시간적 배경은 이북에서 피란 온 수옥이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나와 부산에서 머물다가 통영, 조만섭 씨의 집으로 가는 시점. 즉 휴전협정이 있기 얼마 전의 여름, 그러니까 휴전협정이 1953년 7월이니 1952년 여름부터 시작된다. 당시 한국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중부지방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지속되고 그외의 지역에서는 빈곤으로 허덕이고 있는 때이다. 소설 <파시>는 피란 온 수옥이 부산에서 강간을 당하고 통영으로 가게 되는 때부터 시작된다.

 

  박경리 선생의 작품은 읽기가 쉽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일상적인 언어로 서술되는 소설에서 왜 이해가 어려울까. 그 이유는 정확한 시점을 언급하지 않고 독자가 찾아 읽기를 바라는 서술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시> 역시 그러한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쟁중인데도 불구하고 전쟁의 폐허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파시> 읽으면서 계속 궁금해하게 된다. 하지만 소설 전반에 전쟁의 잔혹함이 담겨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때에 인간의 잔인성으로 다시금 전율을 하게 된다.

 

 

1.

 

 수옥은 전쟁에 쫓겨서 남한으로 피란을 오게 된다. 그는 순수하다. 그는 악에 대처할 힘이 없이 이리저리 치이게 되고 조만섭 씨의 후처 서울댁의 사욕에 다시금 희생당한다. 전쟁 속 '여성', 당시 후방인 통영에서 다시금 '여성'에게 인권을 유린당하게 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볼일이다. 전쟁으로 가족과 생일별을 한 수옥은 오히려 부산(영자네)에서, 통영(서울댁, 서영래)에서 더 큰 수모를 받게 된다.

 

  서울댁의 남동생 '문성재'가 봉화에서 얻은 여자 '선애'는 수옥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수옥'이 현실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내몰려 있다면 '선애'는 자의로 대처하고 있다. 장교로 군복무하면서 성재는 '선애'와 결혼한다. 하지만 성재의 누이들은 물론 성재 역시 그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재는 수시로 다른 여자(학자)를 탐하고 밀무역으로 횡령한 돈을 탕진한다. 그런 성재를 선애는 주인(남편)으로 생각하며 그가 가는 곳을 찾아다닌다. 억척스럽기까지 한 모습을 보이는 '선애'가 '수옥'과 마찬가지로 안쓰러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2.

 

  <파시>에서는 표면적으로 '명화'와 '응주'의 결혼 문제가 서사의 큰 중심을 이루고 있다.  조만섭 씨는 딸 '명화'가 '응주'와 결혼해서 가정을 잘 꾸리기를 내심 바라고 있지만 응주의 아버지 '박의사'의 반대는 만만찮다. 그러나 박의사의 반대보다 더 큰 걸림돌은 '명화'의 결벽증이다. 친모의 죽음이 '명화'에게는 족쇄로 남아 응주와의 결혼을 단행할 수가 없다. 이러한 '명화'의 행동이 <파시>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당시 역사적 관점에서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파악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명화가 왜 도일을 감행하는지에 대해서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명화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박의사(응주의 친부)가 결혼을 반대하고, 죽희와의 만남이 이어지는 것에 '응주'는 궁지에 몰리는 듯 난감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응주가 당시대 남성보다 여성을 배려하는 것도 아니다.  죽희를 대하는 행동, 술을 마시고 명화의 집에 찾아간 일 등 응주는 당시대 지식인이지만, 일반적 보편적인 남성상을 드러내고 있다. 응주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명화와의 결혼을 바라면서도 일면 박의사가 종용하는 죽희와의 결혼을 생각하기도 한다.

 

3.

  '응주'로 대변되는 남성상, 조만섭 씨, 박의사, 문성재, 서영래 등 <파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정상적이지 못하다. '명화'의 아버지로서, 정신병으로 죽은 아내를 두었던 조만섭씨는 박의사에게 비굴할 수밖에 없다. 박의사는 비정상적인 연애를 꿈꾸고 있다. 문성재는 많은 여성들을 희롱한다. 서영래는 자식을 얻기 위해서 젊은 처자를 능욕하는 비행을 저지른다. 그렇기 때문에 '학수'의 존재는 새롭고 <파시>에서는 희망적인 인물이다.

 

  '학수'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운이 기울어버린 집안의 장남이다. 그는 여동생 '학자'의 비행을 막고자 하지만 가세가 몰락한 집안, 귀한 딸로 자란 '학자'는 현실을 수긍하지 못하고 울분과 열등감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집에서 내놓은 자식으로, 통영에서는 손가락질, 부산에서는 술집 여급으로 일을 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한 동생과는 달리 '학수'는 '수옥'을 만나 울화를 다스리게 된다. 그리고 징집된다. '수옥'이 아이를 잉태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희망이다. 물론 서영래의 간악한 손아귀에서 '수옥'이 무사히 출산을 할지, 근심스럽다. 그러나 <파시>에서는 불안한 희망으로 여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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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윤성희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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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창비, 2007, 총273쪽)

 

 

감기

 

 



  윤성희 씨는 1974년생이다. 70년대 출생 작가중에 성실한 다작으로 유명하다고 한다(문학동네, 여름호). 나는 많은 책을 읽지 못하는 독서법 때문에 보통 문학지를 보고 최근 작가의 동향을 엿본다. 그래서 문학지에 소개된 글 편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신진작가들의 비평이 주를 이루는 문학동네에서 윤성희 씨의 글을 단편적으로 만났고, 그리고 소설집 <감기>를 사서 봤다. (읽었다기보다 보았다는 편이 옳을 것 같다. 그의 탁월한 문체는 사람을 자주 자빠뜨린다.)

 

 

☆ 아(我)와 타아(他我)의 유쾌하고 무심한 혼재

 

  2000년대 들어 신진작가들은 과감히 유머를 소설 전면에 부각시켰다. 그래서 그들의 책을 읽으면 웃습니다. 유머 뒤에 잠복하고 있는 상징이 무엇인지를 파헤칠 능력이 되지 못하지만, 책 읽기를 돕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감기>에 수록된 윤성희 씨의 단편소설 11편은 일상적이면서 엽기적인 유머를 사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처음 만나는 유머는 어머니가 딸을, 형이 동생의 등을 후려치는 것이다.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다. 그리고 맞는 사람은 맞은 이유에 대해서 꼬치꼬치 따져묻지 않는다. 멋쩍어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연상된다고 할까. 그리고 <감기>를 읽다보면 그들의 유머는 서로 관여치 않고 자신들의 세계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에게 고립된 인물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지의 모습이 <감기>에는 들어 있다.

 

  어떻게 서로 저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인간은 개인 소유의 공간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감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지 않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방을 부족해서 몰아넣고 생활하지만, 그들은 함부로 말을 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이미 상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나'는 세상에게 무심하면서도, 무심하기 때문에 세상과 밀접한 '부분'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고통의 세상을 사는 법을 소설집 <감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렇게도 살 수 있겠구나, 새로운 길을 열어놓고 있는 젊은 작가 '윤성희' 씨의 2007는 소설모음집, <감기>이다.

 

 

☆ 알 수 없는 암호의 혼재

 

  윤성희 씨의 작품을 처음 본다. 세상은 다양한 사조를 만들고 있지만, 나는 묵묵히 사실주의 소설을 탐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진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마냥 재미있다. 묵직하지 않은 소재, 소재의 다양화가 주는 발랄한 문체, 문체의 뒤편에 웅크리고 있는 암울함이 참 좋다. 방에서 책을 읽으면 벌러덩 자빠져 뒹굴기도 한다. 이기호 씨의 소설도 그러했고, 최근에 읽은 윤성희 씨의 소설도 그렇다.

 

  윤성희 씨의 소설, 그러나 역시 난해함은 무시할 수 없다. 소설집 <감기>에는 도마, 문자기호, 휴대전화, 리모콘, 잡동사니 등 많은 소품들이 등장한다.  상품명이 정화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익히 알다시피 사실성 획득에 있지만 다른 소품들은 한 편의 단편에 그치지 않고 여러 소설에 맞물려 있다. 그것을 알고서 읽으면 어렴풋이 윤성희 씨가 자주 사용하는 소품들을 주시할 수 있다. 과연 ㄱ,ㄴ 들이 무엇인지, 또 왜 그러한 암호성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난해하게 만들었을까. 암호들의 상관관계는? 그것이 어렵다. 하지만 돌려 생각하면 서로 무관한 것들이 밀접하게 어긋매껴져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이미 씌어진 새로운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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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돼지 도라는 발을 동동 그림책 도서관 37
프란치스카 비어만 글.그림, 배수아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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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카 비어만 (씀)/ 배수아 (옮김)

(주니어김영사, 2007, 총 12쪽)

 







꼬마돼지 도라는 발을 동동

 

 

 

 

   동화책이다. 특이한 점은 글쓴이와 삽화를 그린 이가 동일인물이라는 점이고, 소설가 배수아 씨가 옮겼다는 것. 그리고 책을 펼친다. 물감냄새가 아슴푸레 올라온다. 그리고 붓자국이 선연한 삽화에 낯선 돼지 한마리가 옷까지 챙겨 입고, 게다가 여자옷이다. 도라는 여자로구나. 도라가 무엇을 하는지, 할머니 댁에 무사히 당도하기까지 어떠한 일이 있는지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이 동화책은 재미있다.

 

   반복되는 문구는 리듬을 만든다. 그리고 유음이 많은 문장을 소리내어서 읽으면 묘한 중독에 빠지게 된다. <꼬마돼지 도라는 발을 동동>에서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 유난히 반복되는 문구가 있으니 그것이 곧

 

   "아이참, 어쩌면 좋지?"

 

   대수롭지 않은 문장 하나로 글쓴이는 아이의 사회성, 대인관계 등을 묘사하고 있다. 동화책도 양서가 있다. 어른에게 재미가 있어도 아이들이 외면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두 부류의 사람을 모두 만족시키는 책도 있다. 어느 책을 골라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어쨌든 동화책의 주인은 그들, 아이님이시다.

 

   "아이참, 어쩌면 좋지?"

라고 읽어줄 때 성연을 하듯이 재미나게, 웃으면서 아이와 눈을 마주칠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난다. 행복한 웃음이다.

 

   꼬마돼지 도라가 할머니댁에 무사히 도착해서 하는 말에는 '배려'가 숨어 있다. 도라의 여정이 별의별 일이 다 있었지만 도라는 웃으면서 말한다.

 

"아니에요, 할머니! 발을 동동 구를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하나도 없었다 한다. 이런 거짓말쟁이. 도라의 말을 듣고 우리는 비밀을 공유하는 느낌을 갖는다. 착한 공범자가 된다. ^^ 그리고 씨익 웃는다.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이도 함께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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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 원시의 자연습지, 그 생태 보고서
강병국 글, 성낙송 사진 / 지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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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국(글)/ 성낙송(사진)

(지성사, 2003, 총152쪽)

 

 

우포늪

 

 

 



  처음 우포를 찾은 것은 2003년이었고, 2006년은 자전거를 타고 줄창 찾아들었다. 그리고 2007년은 아직 한번도 가지 못했다. 다행히 주남저수지는 한번 다녀왔다. 주남에서 연꽃을 보며 우포늪의 가시연을 생각했다. 이곳에서 늘 저곳을 꿈꾸는 욕심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가 보다. 습관은 독약이라 죽을 줄 알면서도 싹둑 잘라내지 못한다.

 

  원시의 자연습지, 그 생태보고서

 

  나는 이런 것을 바라고 주남과 우포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곳이 좋았다. 그래서 몇 번 걸음에 책 두 권을 샀었는데, 책 이름이 "우포늪", "주남저수지"이다. 인터넷에서 구매하면 더 싸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휴게소에서 샀다. 그리고 한 번 읽고는 책장에서 눈에 띌 때마다 그 수면을 생각하는 것이다. 물 아래로 구름이 지나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다. 멀리 사람이 구름처럼 지나는 갈대밭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을 기약하는 마음이 구름처럼 내 마음을 지나는 것이다.

 

  이 책 '우포늪' 의 구성은 '주남저수지'보다 낫다, 생각한다. 사진도 비슷, 분량도 어슷비슷한데 왜 '우포늪'을 오른쪽에 두느냐 하면 우포와 관련된 시를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포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새, 수생식물, 야생동물 등에 대한 팍팍한 어조의 설명도 중요한 기록이다. 하지만 '우포늪'의 큰 장점은 무엇보다 수록된 사진과 시편이다.  우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달리 읽히는지, 그리고 우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었는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내년 봄 우포늪 왕버들 보러 한 번 가야겠다.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슬픔

 

백로는 물이 흐르는 가까운 곳, 집을 짓는다.

 

우포늪이 있는 우항산(牛項山) 솔숲, 한밤중에도

 

그것들은 목화솜처럼 희게 부풀어 오른다

 

날빛 들기 전 이른 새벽 소택지에 떠오른 가시연꽃들

 

불을 켜고, 둥둥둥 떠다니는 둥근 연잎새를 디딤돌로

 

통,통,통, 통통, 발굽을 차며 사뿐 내려앉는다

 

하얀 발가락들이 젖어 불빛에 환하다

 

불꺼진 다음에도 발목이 다 붓도록 디딤돌을 딛는다

 

망망대해를 건너 저것들에게도 이런 슬픔이 있다는 것

 

물안개 속에서도 통,통,통, 통통, 저 디딤돌 뛰는 소리

 

내 숨구멍까지 크게 열려 한 몸이 한 박자를 이룬다

 

내 몸 안에도 한 춤사위 한 장단 있음을 안다

 

                                                             <송수권,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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