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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윤성희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평점 :
윤성희
(창비, 2007, 총273쪽)
감기
윤성희 씨는 1974년생이다. 70년대 출생 작가중에 성실한 다작으로 유명하다고 한다(문학동네, 여름호). 나는 많은 책을 읽지 못하는 독서법 때문에 보통 문학지를 보고 최근 작가의 동향을 엿본다. 그래서 문학지에 소개된 글 편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신진작가들의 비평이 주를 이루는 문학동네에서 윤성희 씨의 글을 단편적으로 만났고, 그리고 소설집 <감기>를 사서 봤다. (읽었다기보다 보았다는 편이 옳을 것 같다. 그의 탁월한 문체는 사람을 자주 자빠뜨린다.)
☆ 아(我)와 타아(他我)의 유쾌하고 무심한 혼재
2000년대 들어 신진작가들은 과감히 유머를 소설 전면에 부각시켰다. 그래서 그들의 책을 읽으면 웃습니다. 유머 뒤에 잠복하고 있는 상징이 무엇인지를 파헤칠 능력이 되지 못하지만, 책 읽기를 돕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감기>에 수록된 윤성희 씨의 단편소설 11편은 일상적이면서 엽기적인 유머를 사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처음 만나는 유머는 어머니가 딸을, 형이 동생의 등을 후려치는 것이다.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다. 그리고 맞는 사람은 맞은 이유에 대해서 꼬치꼬치 따져묻지 않는다. 멋쩍어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연상된다고 할까. 그리고 <감기>를 읽다보면 그들의 유머는 서로 관여치 않고 자신들의 세계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에게 고립된 인물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지의 모습이 <감기>에는 들어 있다.
어떻게 서로 저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인간은 개인 소유의 공간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감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지 않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방을 부족해서 몰아넣고 생활하지만, 그들은 함부로 말을 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이미 상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나'는 세상에게 무심하면서도, 무심하기 때문에 세상과 밀접한 '부분'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고통의 세상을 사는 법을 소설집 <감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렇게도 살 수 있겠구나, 새로운 길을 열어놓고 있는 젊은 작가 '윤성희' 씨의 2007는 소설모음집, <감기>이다.
☆ 알 수 없는 암호의 혼재
윤성희 씨의 작품을 처음 본다. 세상은 다양한 사조를 만들고 있지만, 나는 묵묵히 사실주의 소설을 탐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진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마냥 재미있다. 묵직하지 않은 소재, 소재의 다양화가 주는 발랄한 문체, 문체의 뒤편에 웅크리고 있는 암울함이 참 좋다. 방에서 책을 읽으면 벌러덩 자빠져 뒹굴기도 한다. 이기호 씨의 소설도 그러했고, 최근에 읽은 윤성희 씨의 소설도 그렇다.
윤성희 씨의 소설, 그러나 역시 난해함은 무시할 수 없다. 소설집 <감기>에는 도마, 문자기호, 휴대전화, 리모콘, 잡동사니 등 많은 소품들이 등장한다. 상품명이 정화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익히 알다시피 사실성 획득에 있지만 다른 소품들은 한 편의 단편에 그치지 않고 여러 소설에 맞물려 있다. 그것을 알고서 읽으면 어렴풋이 윤성희 씨가 자주 사용하는 소품들을 주시할 수 있다. 과연 ㄱ,ㄴ 들이 무엇인지, 또 왜 그러한 암호성을 사용해서 이야기를 난해하게 만들었을까. 암호들의 상관관계는? 그것이 어렵다. 하지만 돌려 생각하면 서로 무관한 것들이 밀접하게 어긋매껴져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이미 씌어진 새로운 소설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