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한 그대
이혜화 지음 / 작가마을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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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화

(작가마을, 2004, 총116쪽)


열렬한 그대
 

   처음 제목을 보고는 흔한 사랑가일까 걱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읽을 때도 신뢰하지 않고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가 밤길에 바짓말 잡아당기는 섬칫함. 시 '꿈길', 그리고 '구룡포'를 읽고는 타성에 젖은 독법에 반성을 하고 처음부터 시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구룡포에서

이 나라에 해뜨면

가장 먼저 맞는 곳

구룡포는 동쪽바다

갯발람도 오징어회처럼

쫄깃하고 달큰하다

오늘이 일고여덟물일까

파도는 저만치서 노닥거리고

파래 입은 검바위에 굴깍지

따개비도 송송, 따갑다

아이야, 저 바다로 가고 또 가면

동해 너머 태평양, 태평한 수궁

서러운 우리나라 꼬랑지 떼고

용이 살아 트림질하는

구룡포에 배를 띄우자




   이혜화 님의 시는 읽을수록 서서히 침잠해가는, 차분해지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읽을수록 생각하게 하는, 쉬운 시들. 그의 시들은 모두 한결같이 열망하고 있습니다. 열렬한 그대,를. 열렬한 그대가 무엇인지 찾아낼 때 이혜화 님의 시는 새롭게 다가옵니다. 녹차 쌉쓰름한 맛이 혀끝에 남아 있을 때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렇듯 시집 <열렬한 그대>는 은은한 멋이 느껴집니다.

 










가비얍게 세상은 날아가는데

 

말씀들이 많은 책은 무겁다

할 말을 많이 한 책은

더 무겁다

갈피 갈피

열어보면 말씀마다

그물의 코가 좁아

이리 걸리고 저리 걸리고

 

도덕책 "도"에

ㄷ 하나 더하고 ㅇ 받치고

도덕책 "덕"에

또 ㄷ 하나 더해서

 

그 무거운 책이 "똥떡"이 되어

냄새 풍기며 굴러 댕긴다는데 

ㅋㄷㅋㄷ, ㅎㅎㅎ, ㅋㅋㅋ

랩처럼 단어가 깨지고

자음만이라도 말이 되는데

 

우리의 눈 안에 쏘옥 들고

덜커덩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며

저 깃털 구름처럼 햐~ 예쁘게

날아가는 시가 그립다

 

   열망하는, 갈망하는 무엇인가에 가닿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은 너무 무겁다. 공간감각이 무딘 어린 아이가 멀리 있는 물건을 잡으려고 뻗은 팔이 헛된 몸짓에 지나지 않듯이 우리는 잡을 수 없는 것, 결코 취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타까움에 수시로 절망하고 우울에 잠긴다. 열렬한 그대는 과연 누구일까. 내 몸이 너무 무겁다. 강 건너에 선 나무가 보인다. 금방 가 닿을 것만 같았는데, 자꾸 물살에 휩쓸려 멀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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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원리 - 개정판
차동엽 지음 / 동이(위즈앤비즈)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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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원리

 


  <무지개 원리>는 자기계발서이다. 개발이 물질적인 것인 반면에 계발은 정신적인 측면의 발전을 뜻한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 노력하는 우리에게 <무지개 원리>는 시커먼 어둠 속에서 길을 알리는 빛이다. 모든 삶은 근본적으로 '문제해결'라고 한 카를 포퍼의 말에 차동엽 신부님은 이렇게 덧붙인다.  
  "이 세상에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비 온 뒤 무지개가 뜬다. 하지만 함께 비를 맞더라도 모든 사람이 무지개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지개를 볼 만한 자격을 <무지개 원리>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현대사회의 우리는 문명의 이기 속에서 편리함과 함께 불안감을 얻었다. 불안감 때문에 피라니아 어의 비극처럼 학습된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다. 미신과 사주팔자에 귀 기울이는 현대인을 사회학자들은 ‘불확실한 현실과 미래, 무한한 정보 속에서의 선택의 문제, 속전속결주의, 운명론·숙명론에의 의탁, 대화상대의 부재’ 등을 원인으로 규명하고 있다. 병든 정신겅간으로 현대인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지개 원리>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들을 제시하며 우리가 어떻게 현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가를 가르쳐준다. 우리는 7가지 원리와 함께 <무지개 원리>가 소개하는 많은 위인과 사례, 실험 등을 통해서 삶의 지침을 배울 수 있다. 

  침팬지는 인간과 그 생김이 가장 가깝다. DNA구조는 98.7%가 동일하다. 하지만 뇌의 1.3%의 차이로 침팬지는 인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로 인해 침팬지는 인간의 구경거리로,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뇌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1.3%의 뇌를 잘 사용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위인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 또한 수없이 많다. 성공한 2%의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뇌를 사용하는 것일까? 

  뇌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블루오션이다. 뇌는 좌뇌, 우뇌, 그리고 좌우뇌를 이어주는 뇌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뇌가 지성을, 우뇌가 감성을 담당하고 뇌량은 통합적 사고를 수행한다. <무지개 원리>는 뇌의 기능적인 측면을 통해서 7가지 원리로써 성공한 2%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원리1,2는 지성을 담당하는 좌뇌의 영역에 포함된다. 긍정적인 사고와 그 사고를 뒷받침할 지혜의 씨앗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룬다. 긍정적인 사고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비롯된다. 긍정, 부정의 관점 차이가 만들어 내는 결과는 판이하다. 긍정적인 관점을 갖추기 위해서는 평소에 지혜의 씨앗을 뿌리는 성실한 투자가 필요하다. 지혜의 씨앗은 이른바 정보이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 

  원리 3,4는 우뇌의 감성적인 능력을 다룬다. 꿈과 이상 없이 살아가는 삶이란 생각없이 돌아가는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뇌를 통해서 미래를 본다. 우뇌의 잠재력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꿈을 실현시키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무지개 원리는 역할 모델, 이미지 트레이닝 등으로 잠에서 우뇌를 깨우는 법을 가르쳐준다. 우뇌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필요하다. 믿음이 약한 자는 자신의 능력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의심한다. 하지만 신실한 자는 믿고 힘차게 나아간다. 아울러 삶의 자세 역시 믿음만큼이나 중요하다. 의무감이 아니라 일을 ‘하고 싶은 놀이’로서 받아들이는 태도는 삶을 여유롭게 하고 당면과제를 소신껏 처리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원리 5,6은 뇌량의 역할이다. 뇌량은 좌·우뇌의 연결하고 통합한다. 인간의 의지와 관련된다. <무지개 원리>는 말과 습관의 단련을 통해서 뇌량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다. 말은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주어 β-엔돌핀을 만들어낸다. 칭찬, 격려, 좋은 말, 행복한 말, 승리의 말을 할 때에 우리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체험한다. 험악한 분위기에서도 재치 있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해소되는 것도 곧잘 목격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 한마디가 모두를 웃음 짓게 하고, 좋은 말은 더 나아가 우리를 지고경험에까지 이끌기도 한다. 무의식적이라는 측면에서 말과 습관은 서로 닮아 있다. 교육과 학습을 통해서 우리는 ‘습관들이기’를 할 수 있다. 탈무드에서는 원리교육, 베갯머리 교육, 현장교육, 대화교육, 배려, 감성교육 등을 들어 사회화에 적합한 습관을 체득하도록 돕고 있다. 

  마지막 원리7은 '실천'이다. 성공한 2%의 사람은 결코 미래를 위해 살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 생활하는 이곳이 천국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렇다. 지금 이곳,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여기가 천국이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하늘 아래 쓸모없는 생명이란 하나도 없다. 사랑하는 마음, 사랑을 옮기는 봉사와 나눔, 사랑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는 왜 살아가는지, 존재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 우리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무지개 원리>는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을 사랑하도록 7가지 무지개 원리로 희망의 길을 보여주며 현대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무지개 원리>의 행간에는 희망이 가득 차 있다. 긍정적인 언어를 읽는 동안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하지만 진정한 자기계발을 위해서는 단순히 읽는 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자기계발서를 읽더라도 우리는 벽 높은 현실에 좌절하고, 무력한 자신에게 실망만 느끼게 된다. 이러한 모순된 경험이 반복되면 될수록 우리는 ‘나는 해도, 해봤자 소용없다’ 심한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지혜의 씨앗, 말씀을 자양분 삼아 <무지개 원리>를 몸에 베도록 체득하고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거듭거듭 노력해야 한다. 무지개는 무지개를 찾는 자를 위해서 준비되어 있다. 무지개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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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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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명
(밀리언하우스, 2007, 전2권)

바람의 화원




우리는 우리것에 무식하다. 우리것을 알자, 하면 국수주의라 폄하한다. 여전히 사대주의적 감성과 논조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는 21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가시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 이전 우리의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분들은 선구자였다. 얼마나 많은 지성인의 숱한 노력이 있었는지, 우리는 그분들께 감사해야 한다.


'바람의 화원'은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처음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에는 한국의 예인들에 대해서 알겠구나, 막연히 그렇게 짐작했다. 그러나 예인들 역시 사회의 풍조, 정치에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한시대를 풍미한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중심으로 "바람의 화원"은 형상화되고 있다. 그들의 작품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풍요로운 소설 한 편이 탄생되었다. 게다가 정조, 김조년, 윤복의 형 영복, 악기 정향 등의 주변인물들은 조연에 머물고 있지 않다. 각각의 인물들이 구심점을 잃지 않고 제 삶을 드러내고 있다. 이정명 작가의 다원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 "바람의 화원"은 재미있으며 읽기에 유익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바람의 화원"은 무엇보다 예인들의 위치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수많은 화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름보다 그림으로 남고 말았다. 조선조의 관행과 악습에 눌려서 무참히 짓밟혔을 그들의 세계가 안타깝다. 그리고 그 틀을 깨기 위해서 "신윤복"이 "바람의 화원"에서 행하는 기이한(?) 행동들은 차라리 무모한 모습으로까지 비친다. '김홍도'에게서 비친 '신윤복'은 과거의 자신이었다. 제도권 도화서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김홍도'는 다시금 "창작열"에 몸을 정갈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의 화원"에서 '김홍도'가 신윤복에게 갖는 마음은 일면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이다.   
 

우리가 자주 만나온 작품들을 "바람의 화원"에서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상상력에 힘입어 모든 작품은 하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판 34점이 있기 때문에 "바람의 화원"은 여느 작품보다 흡입력이 크다. 그리고 단순히 그림과 당시대의 상황을 연관시킨 것뿐 아니라 "바람의 화원"은 화공들의 고민했을 세세한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영복이 동생 윤복을 위해서 색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훌륭한 예술가는 혼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천부의 재능이 만개하게 되리라는 것을 "바람의 화원"에서는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바람의 화원".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다. 곧 무엇인가를 찾아간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바람의 화원"에서는 그와 같은 열망과 갈구가 담겨 있다. '무엇'을 위해서 그들이 자신의 삶을 불태웠을까는 읽는이의 재해석에 달려 있다. 그것이 독자들의 권리이다. 나는 그들이 후한 대접을 받고자 그러한 열정을 보인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단지 하나, 사람 대접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그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21세기 단원과 혜원, 그들에게 최소한의 자유가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여전히 고달픈 예인들의 삶에 그 최소한의 자유가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

추리소설의 면모도 갖추고 있습니다. 정향과 윤복의 애정선도 괜찮고요. ^^ 소설 서평은 이래서 힘듭니다. 줄거리를 다 담아내면 좋겠는데, 그래서 책읽으면서 서평은 줄거리 요약해야지... 도화서에 들어가기까지 윤복에게 있었던 일, 정조와 관련된 두 화공들이 이야기들... 정향과의 서사구조. 그리고 김조년의 인물적 중요성 등... 생각했지만 막상 서평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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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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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고틀립 (씀)/ 이문재, 박명희 (옮김)
(문학동네, 2007, 총 254쪽)

샘에게 보내는 편지




  서른셋에 교통사고로 '대니얼 고틀립' 글쓴이는 전신마비를 앓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손자 샘은 자폐증을. 글쓴이는 세 번 크게 가슴으로 울었다. 전신마비인 자신을 돌본 딸이 자폐증을 앓는 손자를 키우게 된 데에 대해서, 그리고 자폐증을 앓으며 살아가는 손자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심하게 가슴앓이 한 사람은 세상을 넓게 볼 안목을 지니게 되는 걸까. 샘에게 보내는 서른 편의 편지는 한마디로 눈물겹다. 추천사의 내로라하는 위인들의 말한마디보다 이 책에 수록된 문장 하나하나가 눈물이라 하면 과장일까.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가슴 뜨거운 사람의 한숨이라 하면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장담한다. 

  글쓴이는 심리학자이다. 그러니 임상전문의, 가족문제치료전문가인 것은 교육과정의 수순을 잘 밟아 낸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서른셋에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했지만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휠체어에 의지한 삶이 낮은 곳을 볼 수 있는 기회로 전환시켰다. 나는 글쓴이 대니얼 고틀립을 영웅이라 부르고 싶다. 영웅은 혁명가보다는 대니얼 고틀립과 같은 사람에게 더 적합한 명칭이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는 손자 샘에게 전하는 말로써 씌어져 있다. 샘이 겪어야 할 편견과 좌절등을 두루 다루며 친절한 어조로 어떻게 세파를 헤쳐나갈지, 상세히 적고 있다.  실제 심리상담, 라디오 WHYY에서의 전화상담,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리'에서 칼럼을 연재하면서 독자들에게 받은 편지 등 글쓴이가 겪은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고찰과 심도 있는 인간관, 세계관이 문장 곳곳에서 드러난다. 심리상담을 하기 때문인지 그의 비유는 현실성 짙고, 문화가 다소 다른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샘에게 보내는 서른 편의 편지 가운데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한번은 생각해볼, 생각해야 할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샘은 글쓴이의 손자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이기도 하기 때문에 서른 편의 편지가 갖는 설득력은 실로 엄청나다. 그 가운데에서도, 너무나도 익히 알고 있는 '상처'가 아무는 과정('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네 안에 있다' p. 208)은 적어도 나에게는 유난히 가깝게 느껴진다. 

  "모든 아픔은 과거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 상처는 그 자체의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아무는 것이다. (...) 상처는 원래 스스로 아물게 되어 있다. 우리의 허기진 자아가' 고통아, 이제 그만 사라질 때도 되었잖니'하고 재촉하지만 않으면된다.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라고 믿기만 하면 된다. 고통도 감정이다. 어떤 감정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법이다. (p.211)" 


  글쓴이는 '자폐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폐증은 다른 사람과 만나고 친해지고 사랑할 기회를 빼앗는 도둑(p.33)'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Andrew Lloyd Webber)는 격언을 통해서, 샘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그리고 이 논거를 확장하여 '사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들에데 들려주고 있다. 나 역시 '자폐증'이다. 소통의 불능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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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여행
김영욱 / 참세상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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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참세상, 1991, 총 148쪽)

 

거지여행

 

 

 


  시인 김영옥 씨는 진짜 거지다. 전국을 떠돌며 역무원에게 냉대를 받고, 종교인에게 무시를 당하고, 경찰에 쫓기고 그런 모멸을 따뜻한 가슴으로 녹여낸 시를 써서 <거지여행>에 가득 채웠다. 따뜻하다. 하지만 안쓰럽지는 않다. 그가 왜 거지가 되어 전국을 떠도는지, 그리고 그가 목격한 농촌의 피폐상을 시집에 채웠는지에 대해서는 이루 말 못할 비인간적인 사회에 대한 대항이었던 것을 알게 될 때 십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사연 없는 인생이 없다.

 

  곡절 없는 사람이 없다. 전철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주머니 동전을 다 꺼내어 주고, 지폐 한 장을 넣어주는 마음을 갖자. 구걸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다. 감히 누가 구걸을 당당히 하겠는가. 내가 더 드릴 돈이 없으니 안타깝고, 내가 안쓰럽다. 나 역시 거지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옹성이라 믿는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틀이 견고하다고 확신하는가. 그렇다고 여긴다면, 그럴지도.

 

  부산형제복지원 사건이, 한 사회가 조직적으로 개인을 위협할 때 사회전반은 침묵하고 만다. 개인적인 항변으로 저항하면 광인으로 취급한다. 대부분의 안락한 일반인들은 구태여 그 항변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을 이기적인 동물, 맹수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일부분의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며 함께 슬퍼한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참한 줄 알면서도 희망을 생각한다.

 

  <거지여행>은 단순히 아름다운 서정시로만 읽힐 내용들이 아니다. 곳곳에 튀어나오는 성적인 농담에는 타당성이 있다. 인성이 인정받지 못할 때 사람은 본성으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1부에 연작시 "거지여행"은  65편과 "집을 떠나던 날", "내 방황의 시작인 이곳"은 부산형제복지원이 한 개인을 어떻게 종잇장 구기듯 함부로 대했고, 그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 속에서 비참하게 스러져야 했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시고 늦게 돌아가던 길, 그 인근 어디에서는 이런 비열한 일이 자행되고 있었다는 것, 세상이 무섭다. 그리고 그 무서운 세상에 사람을 위해 새벽을 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감사하다.

 

 

 







집을 떠나던 날.

 

그날은 눈이 내리는 겨울밤이었습니다

 

하염없이 눈을 맞으며

 

아무도 가지 않는 밤 눈길 위에

 

두 발자국을 찍으며 진고개를 넘어갔습니다

 

때때로 부옇게 날리는 눈보라에 휩싸여

 

길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땅에 엎드려 "하나님 맙소사"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눈을 헤치고 죽기살기로 진고개를 넘었을

 

때 허기진 몸뚱아리 녹여주던 진고개 독가촌

 

한 할아버지의 은혜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날부터 시작된 거지생활은

 

하늘을 이불 삼아 논두렁을 베개 삼아 들판에서

 

잘 때가 많았습니다.

 

영하 20'c내려가는 겨울날

 

들판에 쌓여져 있는 짚무덤 속에서

 

쥐와 함께 쉬기도 했던 그때의 일들ㅇ르 더듬다 보면

 

지금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옵니다

 

어떻게 그런 생활을 했는지 모릅니다

 

다시금 수만냥을 줄테니 거지생활을 하라고 해도

 

지금은 못할 것 같습니다

 

장대비 내리는 여름 장마철

 

비를 피해 교회에 들어갔다가 쫓겨나오기를

 

몇 차례 했는지 모릅니다

 

외진 산골에서는 간첩으로 몰리고

 

역전 대합실에서 자다가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깡패들에게 심지어 꼬지돈을 빼앗기고 두들겨 맞기까지

 

한 나의 거지생활

 

말이 3년이지

 

한없이 긴 3년이었습니다.

 

 

 

 

 

대도시 역전마다 밤이면 찾아드는

 

거지들과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거지가 된 이유들이

 

한결같이 순박한 양심 때문임이 슬펐습니다

 

사기를 당해 알거지가 된 사람

 

나처럼 허울뿐인 복지정책에 뒷덜미맞아 거지가 된 사람

 

그래서 서로 위로하여

 

꼬지돈 모아

 

두꺼비 잡아놓고 거지고고를 추기도 했습니다

 

거지고고

 

몇달씩 세수도 안하고 목욕도 안한 몸꼴

 

거기다가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너덜너덜한 옷차림으로

 

춤을 추다보면 어찌나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들었던지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아 저기봐라 거지들이 춤을 춘다

 

아 멋진 춤인데

 

저게 거지고고로구나"라는

 

찬사를받기도 했지만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오는 의경들에게

 

별짓거리 다 한다고 역전파출소로 끌려가며

 

멱살을 붙잡힌 때도 수없이 있었습니다

 

 

 

 

나는 흔히 집생각을 하며

 

가수 이미자씨가 불렀던 '기러기 아빠'를 부르며 눈물짓기도 했습니다

 

"엄마구름 애기구름 정답게 가는데

 

아빠는 어디 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

 

그 애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어

 

그저 '기러기 아빠'를 밤새도록 흥얼거리던

 

때도 많았습니다

 

그놈의 부산형제복지원 때문에

 

그놈의 기독교를 빙자하여 복지사업한다고

 

수많은 사람을 채석장에 몰아 강제노역을 시킨 박인근 때문에

 

팔자에 없는 거지생활

 

추위 배고픔......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정처없이 걸어서 누비리간

 

쉽지 않았고

 

열 발가락이 다 터져 피멍이 들고

 

사타구니가 옷에 시닥거려 살갗이 벗겨져

 

걸음조차 걸을 수 없던 아픔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거지생활을 그만 두게 된 이유

 

'이래선 안되겠다

 

집으로 돌아가 나를 둘러싸고 사회에 잔존해 있는

 

온갖 불의와 싸워야겠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신이상으로 보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보고

 

일가친척 할 것 없이 다 미친 놈으로 치부하기에

 

그 괴로움을 잊으려고 숨낳은 밤을 지새우며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깨진 건 내 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강릉지역문화운동단체 '새벽들'에 동참하여

 

시작 등 문화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수기로 썼습니다

 

때마침 상상도 못할 인권사각지대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기게 되었고

 

저도 그 수기를 '엔터프라이즈'에 기고했습니다

 

그 후 생지옥의 낮과 밤 '부산형제복지원'을 펴냈을 때야

 

비로소 정신병자로 취급하던

 

부모형제들이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고

 

마을사람들도 달라졌습니다

 

오랜 여정의 정신병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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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07-11-2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도 3년을 형제복지원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정말......더러운 추억...아니....값진...
사실 아직 잘모르겠습니다.....사건이 터진후 모든친구들과 뿔뿔이 헤이진것이 아쉽고..
다들 어찌 지내는지...궁금하네요...
그저....지금은...그냥 추억일 뿐이네요..^^

환상의시기 2007-12-05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 시집 우연찮게 읽고... 어떻게 형용을 못하겠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