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한 그대
이혜화 지음 / 작가마을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이혜화

(작가마을, 2004, 총116쪽)


열렬한 그대
 

   처음 제목을 보고는 흔한 사랑가일까 걱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읽을 때도 신뢰하지 않고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가 밤길에 바짓말 잡아당기는 섬칫함. 시 '꿈길', 그리고 '구룡포'를 읽고는 타성에 젖은 독법에 반성을 하고 처음부터 시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구룡포에서

이 나라에 해뜨면

가장 먼저 맞는 곳

구룡포는 동쪽바다

갯발람도 오징어회처럼

쫄깃하고 달큰하다

오늘이 일고여덟물일까

파도는 저만치서 노닥거리고

파래 입은 검바위에 굴깍지

따개비도 송송, 따갑다

아이야, 저 바다로 가고 또 가면

동해 너머 태평양, 태평한 수궁

서러운 우리나라 꼬랑지 떼고

용이 살아 트림질하는

구룡포에 배를 띄우자




   이혜화 님의 시는 읽을수록 서서히 침잠해가는, 차분해지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읽을수록 생각하게 하는, 쉬운 시들. 그의 시들은 모두 한결같이 열망하고 있습니다. 열렬한 그대,를. 열렬한 그대가 무엇인지 찾아낼 때 이혜화 님의 시는 새롭게 다가옵니다. 녹차 쌉쓰름한 맛이 혀끝에 남아 있을 때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렇듯 시집 <열렬한 그대>는 은은한 멋이 느껴집니다.

 










가비얍게 세상은 날아가는데

 

말씀들이 많은 책은 무겁다

할 말을 많이 한 책은

더 무겁다

갈피 갈피

열어보면 말씀마다

그물의 코가 좁아

이리 걸리고 저리 걸리고

 

도덕책 "도"에

ㄷ 하나 더하고 ㅇ 받치고

도덕책 "덕"에

또 ㄷ 하나 더해서

 

그 무거운 책이 "똥떡"이 되어

냄새 풍기며 굴러 댕긴다는데 

ㅋㄷㅋㄷ, ㅎㅎㅎ, ㅋㅋㅋ

랩처럼 단어가 깨지고

자음만이라도 말이 되는데

 

우리의 눈 안에 쏘옥 들고

덜커덩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며

저 깃털 구름처럼 햐~ 예쁘게

날아가는 시가 그립다

 

   열망하는, 갈망하는 무엇인가에 가닿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은 너무 무겁다. 공간감각이 무딘 어린 아이가 멀리 있는 물건을 잡으려고 뻗은 팔이 헛된 몸짓에 지나지 않듯이 우리는 잡을 수 없는 것, 결코 취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타까움에 수시로 절망하고 우울에 잠긴다. 열렬한 그대는 과연 누구일까. 내 몸이 너무 무겁다. 강 건너에 선 나무가 보인다. 금방 가 닿을 것만 같았는데, 자꾸 물살에 휩쓸려 멀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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