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 - 마음을 여는 감사의 발견
로버트 A. 이먼스 지음, 이창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총 340쪽)

 



    <Thanks>(이하 '고맙습니다')는 긍정심리학 책이다.  심리학 서적은 크게 두 분야로 구분할 수 있다.  전문적 심리학과 실용심리학, 그러한 구분은 역시 실험, 과학성 유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용심리학은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의 성격이 강해서 읽고 나면 감동은 받지만 어디서 연유했는지 모호할 경우가 많다. 거진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을 기저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과학이 인간 행동의 새로운 규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용심리학은 그러한 측면에서 좀 비켜난, 즉 변칙 심리학의 오명을 버릴 수가 없다. 실용심리학은 진즉부터 과학적 검증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고, 인과, 상관관계에 소홀하기 때문에 읽는 동안은 공감하고 무엇인가 배우나 싶지만 실지로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실용심리학은 잘 읽지 않고 책 제목만 언뜻 기억한다.  머리말에 심리학이 언뜻 비쳐 책장을 넘기며 <고맙습니다>는 어떠한 책일까 궁금해했다.

 

    심리학의 분야는 대부분이 이상행동을 다루고 있다. 치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병리적인 측면, 즉 인간이 어떻게 하면 사회적 일원으로서 그 기능을 원활히 해 낼 수 있도록 돕느냐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고맙습니다>는 출발부터 확연이 차이를 보인다.  다르다.  이상행동을 다루는 면도 있지만 그것은 심리의 긍정적인 측면을 서술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도구적인 가치이다.  책 전반, 대부분이 긍정심리학을 이루고 있다.  감사라는 것을 심리학적 측면에서 연구를 하겠다는 표명, 처음에는 반신반의, 과연 인간의 감정이 연구 대상으로, 그리고 쏟은 노력만큼이나 성과를 이루고 인정을 받고 각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의구심이 말끔히 가시지는 않았으나 <고맙습니다>는 단순히 실용심리학이라 부르기에는 부적절하다.  <고맙습니다>는 우선 과학적인 실험을 기저에 깔아두고 각계 인사들, 특출난 사례들, 고문서의 문구들을 사례로 언급하고 있다. (당연 실험만으로 340쪽의 방대한 분량에 '고마움'에 대해 상술하기란, 예사 벅찬 일이 아니다. 그러한 난제를 미리 받아들이고서 책을 읽노라면 로버트 A. 이먼스의 연구는 결코 폐기처분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고마움이란 무엇일까. <고맙습니다>에서는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으로 정의하고 있다. 나 혼자 이 세상에 존재할 때에는 유발되지 않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고마워할 줄 알아야지, 염치가 없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무수한 말이 있다. 고마움은 우리 사회에서는 인간된 도리라고 달리 표현이 가능하다.  인간된 도리,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깨달음이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현실(사람 관계, 업무, 생활 전반 등)이 어떻게 내게 주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인지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없는 경우에는 '고마움'이라는 감정을 누릴 수가 없다. "따라서 감사를 느끼려면 생각을 해야 한다"(25쪽).  무엇을 받았고, 왜 받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애초부터 '고마움'의 표현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큰 욕심일 수도 있다. 불교에서는 베풀되 바라지 말라는 말이 있다. <고맙습니다>는 이 문구를 심층적으로 파고든다는 생각이 든다.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인가 보다.  우리가 만나고 겪는 사람, 실제든 온라인이든지 그들은 나름의 반응을 표현한다. 그런데 <고맙습니다>는 몰염치한 사람들의 특성을 알고 그들을 수용할 줄 아는 포용력 함양의 마당을 마련해주고 있다.  즉 그들을 만나더라도 자극 받지 말고, 분노치 말며 평상심을 유지하라는 뜻이다.  그들이 세상 전부가 아니듯이 그들과의 겪은 순간적인 감정과 불쾌가 전부가 되어서도 절대 안 되는 것이다. 왜 우리가 <고맙습니다>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명백해진다.

 

    <고맙습니다>는 심리학의 특성상 사람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떻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래 느껴서 무슨 이득이 있는가에 대한 지극히 효용론적인 입장을 실험과 연구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인지적인 자각을 통해서 '고마움'을 느꼈다면 응당 그에 대한 결과의 도출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파장은 어디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에 대해서 <고맙습니다>는 모두 7개의 장(章)을 통해서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거진 전부를 언급하고 어떻게 '고마움'을 이용해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창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적 심리학의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글쓴이가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읽으며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속의 모든 내용은 '고마움'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고맙습니다>를 덮고 생각해보자. 무엇을 얻었는가. 없다면 다시 한 번 읽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막연한 이 느낌을 보다 명쾌하게 정의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한 번 책장을 펼쳐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나의 이상행동, 정신질환(?)을 언급하지 않고 긍정적인 측면을 다루면서 보다 나은 삶으로 통한 길을 열어주고 있는 <고맙습니다>는 완독으로 단순히 책을 덮어버리기에는 아쉽다. '고마움'을 느끼는 과정, 조건, '고마움'의 역할...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꼼꼼히 읽어야 할 책이다. 긍정심리학이라는, 아직 만나보지 못한 책을 읽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감사는 가슴으로 기억하는 것이다"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 사람의 정체성은 인생의 중요한 기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좋은 시절뿐 아니라 어려운 시절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감사는 과거에 겪은 고통의 증인이기도 하다. (297~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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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 - 아빠가 하면 더 좋은
장재선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총 224쪽)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과 관련해 대부분의 아빠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아이들이 5~6세가 될 때까지는 그림책을 좀 읽어주다가, (...)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이 시기의 일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읽어주게 도면 아이들은 아빠가 읽어준 책들을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40쪽)

 

    모든 일에는 적기가 있다.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놓치고 뒤늦게 후회하곤 한다.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는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기를, 아이의 인생에 초석을 놓는 중요한 역할로서의 아버지를 소개하고 있다. 참 좋은 조언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인자하고 합리적인 아버지상을 그려볼 수 있다.  한때는 아이였고, 또 한때는 청소년이었고 청년기를 거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바람막이 되고 비막이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지금 어른이 되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지금 아버지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새겨들어야 할 것으로 우선은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는 일차적인 집필의도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나는 단언한다.

 

    아이들은 읽은 책의 내용을 그링나 그림, 혹은 말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도 함께 담습니다. 아빠는 그때까지 기다려줘야 합니다. (64쪽)

    아빠가 글쓰기 중간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자존심이 강한 아이의 경우에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빠는 섭섭해서 아이에게 야단을 치게 되지요. 급기야 아빠와 아이가 감정 싸움을 벌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113쪽)

 

    좋은 양육자의 유형을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에서는 '민주적 권위형'으로 인용해서 들고 있다.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그러나 잘잘못을 가려 아이가 수긍할 만한 이유를 제시할 줄 아는 아버지상이다. '민주적'이라는 수사가 만능처럼 여겨져 불편할 수도 있지만 개념 정의는 일면 논리적이다. 이미 어른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만사형통 '민주적'이라는 말. 쉽게 쓰고 쉽게 말하고, 그래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또한 '민주적'인 것이기도 하다. 자녀 양육은 참으로 힘들다. 직접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 내가, 옆에서 지켜본 그들의 관계, 부모-자녀는 정말 전생의 악연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참으로 끈질긴 인연이다. 하지만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은, 채워가는 것은 또한 이생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임무요 책임이다.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에서는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고, 소개 역시 친절하다.

 

    글쓴이 장재선 씨는 출판 담당기자이다. 해서 '자녀를 키우는 아빠로서 읽어온 책들 중에 소개할 만하다고 생각된 것을 소개(프롤로그)'하고 있다고 머리글에서 밝히고 있다. 책과 글쓰기에 익숙한 생활을 했으리라, 역시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는 탄탄한 문장력과 다양한 어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선은 예상독자층이 성인이요 양육자이며 부모라는 사실, 그래서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울 내용들이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어른들이 읽기에는 무난한 내용이고 아이들의 글쓰기 흔적을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재미있게 읽힌다.  부록인 '아빠가 고른 책'까지 모두 여섯 단원으로 책은 구성되어 있다. 큰 얼개는 1부와 2부로 임의로 나누어 읽는데 1부는 4장까지 자녀를 대하는 양육자의 태도, 그리고 2부는 5장의 '장르별 글쓰기를 이끄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동용 책을 선호한다. 유치하다, 활자가 적다, 구태여 읽을 필요가 있을까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따로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그냥 한 번 읽어보라 건네고 싶지만 잘 읽지 않는다. 동화, 동요, 동시가 아니라 아동발달심리 쪽으로도 자주 힐끔거린다. 재미 없는 책을 왜 보냐 타박을 듣기도 하고, 애꿎은 시간을 허비한다 지청구를 받기도 한다. 유년기, 아동기, 청소년기가 정말 과거의 일부이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폐기 대상의 시간일까. 의문이다. 어느 시기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우리로서 그렇게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기괴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가해자가 되고, 때로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관계가 사람의 인연이 아닐까, 문득 그런 망상을 한다. 아동기의 충격이 장년기에 노인학대로 이어지는, 학대받는 노인 일부는 어느 때는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사실, 물론 극히 일부 사례에 지나지 않지만, 그리고 극단적인 논리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주장이지만 사실이다. 그러한 일들이 몇몇 있다. 사람 일은 비록 극히 드문 사례 사건일지라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극미한 배려일지라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겨듣는다.  이 책은 단지 아이들의 교육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아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 하는지를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는 낮은 목소리로 알차게 언급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독서를 하고 글쓰기 공부를 하다보면 그런(글쓰기) 두려움이 어느 정도 해소됩니다. 독서와 글쓰기의 기초를 새삼 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평소 아동용 책을 읽지 않습니다. 단순하고 유치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실제로 아동용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은 그런 생각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동용 책만 읽어도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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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이가 함께읽는 논리력.표현력 동화집 포롱포롱 그림동화 3
스테파니 테송 지음 / 세발자전거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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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사무용품 점에 가면 별의별 것들이 다 있다. 대형마트에도 물론 가짓수가 많기도 많지만 사무용품점은 일반 사무직에 이런 것을 쓸까 싶은 것들이, 그런데 다 쓸모가 있는 것들이 구비되어 있다. 동화책 이야기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뜬금없이 사무용품은 뭔고, 하겠지만 읽어보면 왜 이렇게 운을 떼는지 공감하게 될 것이다. <논리력 표현력 동화집>은 종합선물세트 성격을 띄고 있다. 읽기, 쓰기, 말하기, 만들기까지 참으로 책 하나, 이야기 하나로 많은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다섯가지 동화와 만들기, 동시, 수수께끼, 생각키우기, 그리고 논술. 이 문구가 이 책의 정체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책 구성이 그렇고, 요즘 민감한 화제 '논술'까지 언급하고 있다. 논술이 그리 쉽나, 동화책에서 무슨 논술까지 보강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일단 접어두고 펼쳐보자.

   먼저 이야기글을 만날 수 있다. 애벌레 전성기, 가장 영리한 생쥐, 대벌레가 된 잎사귀, 수다쟁이 기린 자라파, 물고기 삼형제. 총 5편의 이야기이다. 우화라고 장르를 규정할 수 있는 이 이야기들은 어쩌면 성인들에게는 한 번쯤 읽혔을 내용도, 어디선가 봤을 이야기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는 신선한 내용이다. 어른들이 읽기에는 좀 우스워 보이는 내용들도 자세히 살피면 간단히 넘겨볼 이야기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애벌레 전성기는 날벌레(나비)가 되려는 카미유, 가장 영리한 생쥐는 지혜를 써 종족을 구하는 영웅 제트, 대벌레가 된 잎사귀는 어원 생성(이름붙이기), 수다쟁이 기린 자라파는 모성, 물고기 삼형제는 인생을 말하고 있다. 각 이야기의 끝에는 다음 이야기로 곧바로 넘어가지 않고 동시, 수수께끼, 만들기, 생각을 키워요(이야기 구성), 논술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야기에서 뿌리를 두고 또다른 이야기가 읽는이의 사고, 적극성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책이라는 것이다.

    대형 사무용품점에서 유심히 본, 좀 무서웠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눈 모형이다. 몇 십 가지의 눈알들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는 그다지 비싸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눈알만 따로 판다는 것 자체가 사실 내가 보기에는 제법 엽기에, 괴상망측하기도 했다. 어릴 때는 생선 눈알을 잘도 빼먹던 녀석인데 다 커서는 눈의 중요성, 눈이 곧 하늘일 수 있다는 생각에, 죽었을지언정 생명에 대한 예의로 눈을 감싸준다. 붕어빵도 눈을 가리고 꼬리부터 먹으니 어쩌면 식습관이 더 엽기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때 본 눈알들이 이 책에서는 유용하게 쓰인다. 무엇인가 만든다는 것은 뒷수습, 뒤치다꺼리가 먼저 걱정되는 어른들에게는 버겁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온통 만드는 그 순간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안다. <논리력 표현력 동화집>은 아이와 함께할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는 양육자, 부모님의 몫일 것이다. 겨우 다섯 이야기라 여길지 모르지만 막상 책을 펼치고 아이와 함께 읽으면 적잖은 분량이고 <논리력 표현력 동화집>을 한 번 실천에 옮기는 것 역시 수월찮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잠시 번거로움으로 재미나서 웃는 아이의 낯을, 그리고 생각의 틀이 확장되는 유용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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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 자연아 자연아
이동진 지음 / 깊은책속옹달샘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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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판을 이용해서, 아니 목판을 보여주기 위해서 동요 '노을'을 끌어왔다는 생각이 더 든다. 그렇다고 우위 비교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좋다. 목판이 주는 질감에 오랜만에 듣는 노을. 잊고 지냈던 동요 노을도 듣고 책 <노을>은 어느 미술 화보보다도 아름답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며 또 넉넉한 그늘이 있다. 편하다. 동요 '노을'을 한 번 들으면서 책장을 넘긴다면 더 좋을 책, 그리고 목판의 숨결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편안함이 <노을> 속에 있다.  동요 노을이 창작가요 중 한국인들이 가장 애창하는 곡이라는 사실도 최근들어 알았다. 듣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다. 분명 여러 이유가 중첩된 결과일 것이다. 

    해질녘 붉게 달아오른 서녘 노을을 싫다 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노을을 좋아하는 이유야 노을이 머무는 시간이 짧다, 상념처럼 서린 붉은 빛깔이 곱다 등등 가지각색이겠지만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고 쉬러 돌아가는 집이 있다는 것, 안식처로 향하는 시간이 '노을'진 들녘이 아닐까. 동요 '노을'이 창작될 당시에는 적어도 농토박이가 많았던 때이고 많은 동심이 들로 산으로 뛰돌던 시기이기도 했다. 창작동요 '노을'은 당시대의 정서를 잘 반영한 노래이다. 
    지금 아이들에게 '노을'을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다. 80년대 초반의 정서와 지금의 정서를 비교 구분하지 않아도 요즘 아이들은 동요를 잘 듣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로지 어린 학생들이 입상을 하기 위해서 창작동요를 부르는 도구적 가치에 머물고 있지나 않은지, 입맛이 쓰다. 하지만 종국에는 동요의 가치를 아이들도 알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한다. 나 역시 어릴 때는 대중가요를 즐겨 부르고, 그러면 빨리 어른이 되는 줄로 착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동요가 더 좋다. 아슴푸레 기억나는 옛노래가 문득 콧노래로 흘러 나올 때, 무슨 노래였던가 알고 싶은 간절함은 추억 이상의 달콤함이다. 
    목판화와 동요가 함께 어우러지 <노을>은 참으로 아름다운 책이고 또한 고마운 책이다.  잊었던 노래 '노을', 그러나 또 언제고 콧노래로 흘러나와 아련한 추억을 되새김질할 동요 '노을'을 지금 이렇게 다시 만나 기분 좋게 흥얼거릴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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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키운 아이
칼라 모리스 지음, 이상희 옮김, 브래드 스니드 그림 / 그린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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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동화책이다.  한 아이가 도서관 사서 선생님 3분과 만나며 성장하는 성공기라 요약할 수 있겠다. 둥근 안경을 쓴 사내아이 멜빈은 리빙스턴 도서관을 좋아한다. 

    여러분이 어린이들에게 작은 친절을 베푼다면 그 어린이들도 자라서 다른 어린이들을 그렇게 도와줄 거에요. 온 세상의 어린이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께, 또프로보 시립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이안 퍼스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C.M

     글쓴이 칼라 모리스는 이렇게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다. <도서관이 키운 아이>는 어쩌면 도서관이라는 건물과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소장도서에 생명을 불어넣어준  '멜빈'이 얼마나 대단한 아이였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즉 호기심 많고, 열성적인 멜빈이 리빙스턴 도서관을 찾지 않았다면 도서관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그저 귀기스러운 건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멜빈이 없었다면 3분의 사서 선생님은 그저 문지기, 경비원으로서의 역할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서관에는 소장도서 열람실과 개인적인 공부를 하는 열람실이 별도로 나뉘어져 있다. 대부분은 학습 열람실을 나는 이용하기도 했지만 간혹 국내도서 대출 때문에도 도서관을 찾았다. 그러면 개인열람실에 자리가 없어서 쫓겨온 학생들, 어른들이 대출열람실에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시험 기간에는 이러한 진풍경이 자주 연출된다. 그러니 사서 선생님들은 무심히 앉아서 공부하는 그네들을 물끄러미 보기도 하고, 들고나는 사람들이 많으니 혹시라도 분실되는 책 없나 경보기 울타리를  살피는 정도. 결국은 문지기, 경비원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목격해온 도서관의 풍경은 그렇다. 그렇지만 내가 본 것이 세상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 인정한다. 내가 겪은 것이 세상 전부가 아니듯이, 아직 모르고 단정짓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안다. 가끔 다 저녁에 도서 반납 철상자에 책을 넣고 가는 초등학생을 보기도 한다. 그들은 사서 선생님과 얼마나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나는 친절한 사서 선생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리지 못했지만 분명 누군가는 멜빈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면 또 누군가는 친절한 사서 선생님의 임무를 다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도서관이 키운 아이>는 달리 말하자면 <도서관을 키운 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멜빈은 장성하여 도서관의 일부분이 된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행여 착각을 하지 않을까, 나는 그것에 중점을 두고 책을 읽었다.  멜빈이 여러 대회 나가서 남들이 한 번 타기도 어려운 상을 여러 번이나 획득하는 모습, 그건 중요하지 않다.  또 사서 선생님의 친절과 관심을 바라며 은근히 기대하는 모습도 옳지 않을 것 같다. 아이에게 말하자.  멜빈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멜빈과도 같은 아이가 있어서 도서관을 그렇게 이용했다고 말해주자. 그리고 멜빈은 특이하게도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구나. 보통 아이들은 들판에서 뛰놀고 그럴 때 멜빈은 정말 특이하게 책 읽는 것을 좋아했구나. 이런 친구도 있다는 것만 귀띔해주자.  강요는 아이에게 강박관념을 안기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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