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과 관련해 대부분의 아빠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아이들이 5~6세가 될 때까지는 그림책을 좀 읽어주다가, (...)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이 시기의 일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읽어주게 도면 아이들은 아빠가 읽어준 책들을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40쪽)
모든 일에는 적기가 있다.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놓치고 뒤늦게 후회하곤 한다.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는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기를, 아이의 인생에 초석을 놓는 중요한 역할로서의 아버지를 소개하고 있다. 참 좋은 조언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인자하고 합리적인 아버지상을 그려볼 수 있다. 한때는 아이였고, 또 한때는 청소년이었고 청년기를 거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바람막이 되고 비막이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지금 어른이 되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지금 아버지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새겨들어야 할 것으로 우선은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는 일차적인 집필의도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나는 단언한다.
아이들은 읽은 책의 내용을 그링나 그림, 혹은 말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도 함께 담습니다. 아빠는 그때까지 기다려줘야 합니다. (64쪽)
아빠가 글쓰기 중간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자존심이 강한 아이의 경우에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빠는 섭섭해서 아이에게 야단을 치게 되지요. 급기야 아빠와 아이가 감정 싸움을 벌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113쪽)
좋은 양육자의 유형을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에서는 '민주적 권위형'으로 인용해서 들고 있다.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그러나 잘잘못을 가려 아이가 수긍할 만한 이유를 제시할 줄 아는 아버지상이다. '민주적'이라는 수사가 만능처럼 여겨져 불편할 수도 있지만 개념 정의는 일면 논리적이다. 이미 어른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만사형통 '민주적'이라는 말. 쉽게 쓰고 쉽게 말하고, 그래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또한 '민주적'인 것이기도 하다. 자녀 양육은 참으로 힘들다. 직접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 내가, 옆에서 지켜본 그들의 관계, 부모-자녀는 정말 전생의 악연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참으로 끈질긴 인연이다. 하지만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은, 채워가는 것은 또한 이생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임무요 책임이다.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에서는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고, 소개 역시 친절하다.
글쓴이 장재선 씨는 출판 담당기자이다. 해서 '자녀를 키우는 아빠로서 읽어온 책들 중에 소개할 만하다고 생각된 것을 소개(프롤로그)'하고 있다고 머리글에서 밝히고 있다. 책과 글쓰기에 익숙한 생활을 했으리라, 역시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는 탄탄한 문장력과 다양한 어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선은 예상독자층이 성인이요 양육자이며 부모라는 사실, 그래서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울 내용들이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어른들이 읽기에는 무난한 내용이고 아이들의 글쓰기 흔적을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재미있게 읽힌다. 부록인 '아빠가 고른 책'까지 모두 여섯 단원으로 책은 구성되어 있다. 큰 얼개는 1부와 2부로 임의로 나누어 읽는데 1부는 4장까지 자녀를 대하는 양육자의 태도, 그리고 2부는 5장의 '장르별 글쓰기를 이끄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동용 책을 선호한다. 유치하다, 활자가 적다, 구태여 읽을 필요가 있을까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따로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그냥 한 번 읽어보라 건네고 싶지만 잘 읽지 않는다. 동화, 동요, 동시가 아니라 아동발달심리 쪽으로도 자주 힐끔거린다. 재미 없는 책을 왜 보냐 타박을 듣기도 하고, 애꿎은 시간을 허비한다 지청구를 받기도 한다. 유년기, 아동기, 청소년기가 정말 과거의 일부이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폐기 대상의 시간일까. 의문이다. 어느 시기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우리로서 그렇게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기괴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가해자가 되고, 때로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관계가 사람의 인연이 아닐까, 문득 그런 망상을 한다. 아동기의 충격이 장년기에 노인학대로 이어지는, 학대받는 노인 일부는 어느 때는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사실, 물론 극히 일부 사례에 지나지 않지만, 그리고 극단적인 논리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주장이지만 사실이다. 그러한 일들이 몇몇 있다. 사람 일은 비록 극히 드문 사례 사건일지라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극미한 배려일지라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겨듣는다. 이 책은 단지 아이들의 교육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아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 하는지를 <우리 아이 책읽기와 글쓰기>는 낮은 목소리로 알차게 언급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독서를 하고 글쓰기 공부를 하다보면 그런(글쓰기) 두려움이 어느 정도 해소됩니다. 독서와 글쓰기의 기초를 새삼 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평소 아동용 책을 읽지 않습니다. 단순하고 유치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실제로 아동용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은 그런 생각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동용 책만 읽어도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