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가르치는 기술
야스코치 테츠야 지음, 최대현 옮김 / 두리미디어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기술이다. 쉽게 가르치는 기술.   이 책을 읽고 그 기술은 터득할 수 있을까.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기술을 안내해주고 있다.   선택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수한 훈련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글쓴이가 제공하는 그 기술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가르치는 기술>은 쉽게 읽힌다.   그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읽기 쉽고, 글쓴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되는 것.   책에서 그보다 더 좋은 칭찬이 또 있을까.   읽어두면 피가 되고 뼈가 되는 책도 있다는 것, 다 읽었으니 내 키가 좀 더 커나가지 않을까 하는 맹랑한 생각도 해 본다.

 

          매일의 의사소통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우리 대화의 대부분이 가르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사람을 잘 가르치는'이들이다. (...) '교육학'이나 '교수법' 등의 전문서적에는 절대 실리지 않을 실생활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현장의 지혜'를 여러분께 전하고자 한다.  (머리글/ 우리는 가르치면서 살아간다. 5쪽)

 

          머리글에 있는 이 문장을 잘 살피면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가르침'을 전달로서 이해를 하면 어떨까.    그러면 이 책의 본뜻은 명확해진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곧 그것이다.   글쓴이가 바라는 것, 우리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은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니 '존경받는 사람'은, 쉽게 말하고, 명확한 뜻을 전달하고자 노력했고, 성과를 달성했다는 뜻이 된다.   실생활에 직접, 현장에서 직접 쓸 수 있는 기술.   그것이 이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이 책의 파급효과는 절대적이다.   읽는 동안 한순간도 곁눈 팔도록 허락을 않는다.   내 뜻을 곧게 전달하고, 명확히 이해시키고 싶다면 한 번쯤, 아니 그 이상 곁에 두고 읽으며 체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르치는 방법, 쉽게 가르치는 방법, 앉아서 배우는 사람들에게 쉽게 가르치는 법, 해서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방법, 그 무수한 방법을 우리는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가르치는 기술>은 내게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책이었다.         

 

          기술책 ^ ^ <쉽게 가르치는 기술>에서 내가 읽고자 한 것은 "쉽게 배우는 법",  그러나 읽는 동안 나는 "발표"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이 당신께 오해 없이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를 오해 마세요.   나는 당신께 위해를 가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속내를 그대로 전달하기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당신께 악의가 없습니다.   <쉽게 가르치는 기술>을 통해서 우선은 내 말하는 법, 그리고 나아가서 이 책의 본연의 의도 가르치는 법을 배웠다.    물론 나는 누구를 가르치고 교화에 변화까지 꿈꾸지 않는다.   다만 교단에 선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것을 파악하고 싶다.   <쉽게 가르치는 기술>은 쉽게 풀어쓴 글로 우리에게 가르침의 한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만화책이다. 오랜만에 읽는 만화책, 내 인생에 만화는 고등학교 때, 그러니까 박제동 화백의 <만화 내 사랑>을 읽고 난 뒤 감동을 받고 더는 만화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만화는, 놀이가 아니라는 생각. 소일거리로 보던 만화를 접어야 했다. 그만큼 박제동 화백의 만화에 대한 산문집 <만화 내 사랑>은 내게 인상 깊은 책이었다. 그리고 십년이 훌쩍 넘어서 지금 읽는 만화책, 그런데 예전에 무협만화, 괴기만화, 탐정만화와는 약간 다른 분야의 내용을 담고 있는 만화책, <바이 바이 베스파>이다.

 

        영문 표기 간판도 싫지만, 나는 우리글말이 아닌 외래어가 버젓이 사용되는 제목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서평을 남기기 전까지 이 책 제목이 이런 줄 몰랐다. 표지도 만화고, 내용도 그림체를 이용해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하나의 큰 이미지로 이 책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것이다. 바다로 오토바이?를 내몰고 있는 사나이는 자살을 꿈꾸는가. 그것은 알 바가 아니다. 다만 그 순간적인 형상은 참으로 낭만적이다. 낭만 그 자체이다. 그러나 낭만은 제삼자의 느낌일 때가 많다. 낭만은 그래서 절망과 맞닿아 있는 단어로 나는 이해한다. 띠지에, 책날개에 소개되는 박형동 만화가의 잘생긴 얼굴도 이 그림체의 이야기책을 한층 더 멋지게 해준다. 사람은 역시나 잘생기고 볼 일이다. 아, 이 속물. ^ ^ 영문 제목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만화가의 잘생긴 얼굴이 부럽고, 바다로 돌진해가는 오토바이 그림이 참으로 감각적이다. 역시 나는 퇴폐적 낭만주의의 전형인 듯, <바이 바이 베스파>는 내가 모르는 세계, 나도 앎직한 세계로 순식간에 나를 빨아당긴다. 빨래에 빨려 올라가는 당분만큼 내 삶은 달콤하지 못하지만, <바이 바이 베스파>에 함몰된 저녁 한 나절은 참으로 편안했다.

 

          몸은 어른이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의 일상이 <바이 바이 베스파>이다. 어른이 뭐냐, 그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그 순간, 그때부터 어른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종종 생각을 한다. 몸은 컸어도 아이가 없으면 아이라는 말. 아이를 낳아 길러도 아이 같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 심리적 미성숙이 성장기 어느 기간에 머물러 있으면 고착이라고 한다던가. 고착되어 있는 사람들, 병적이지만, 그래서 안쓰럽다. 누구에게나 있을 고착, 가슴앓이를 하는 인물들이 <바이 바이 베스파>에는 있다. 그냥 그대로 있다. 그들의 몸짓에 가슴 아파본 적이 있는 사람은 공감을 하고, 그 기억이 너무 낡아 잊은 사람에게는 동감을, 아직 겪지 않은 사람에게는 묘한 동경까지, 따라 해보고 싶은 모방심리까지 안겨주는 것이 청춘의 일순간이 아닐까. <바이 바이 베스파>는 살이 닿아 정겨운, 그러나 내 몸에서 떨어져나가야 했을 그 무엇에 대한 기억의 보고서일 것이다. 그 숱한 상처는 아물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생채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제는 괜찮다, 덤덤히 말하지만 괜찮다,는 말에서부터 우리는 괜잖지 않음을 적이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삶이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지 않을까.

 

          <바이 바이 베스파>를 덮으면서 나는 사고로 방치해 놓은 자전거가 자꾸 떠올랐다. 다시 타지 못할 자전거라 여기는가. 자전거에 다시 오를 수 있다면, 누적된 시간의 더께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두서없이 하게 되는 책, <바이 바이 베스파> 안녕. 아니 안녕히 계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문에 빠진 세계사 - 세상을 뒤흔든 뜻밖의 미스터리
치우커핑 지음, 이지은 옮김 / 두리미디어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역사는 선택이다,로 시작하는 머리글. <의문에 빠진 세계사>(이하 <세계사 의문>)는 세상에, 여기 지구에 살았던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 책, 세계사에 일획을 그었을 만한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책머리에는 "선택"이라는 강렬한 문장을 던지고 있다. 선택, 고로 의지로서의 역사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일까. <세계사 의문>은 강조된 단어 '선택'에 무게를 두고 책 읽기를 할까, 작정을 했지만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르는 거대한 물결, 그 위에 떠있는 토막토막 짧은 이야기들에 눈을 빼앗기고, 마음도 빼앗겨 결국 책 읽는 내도록 '선택'이라는 단어를 잊었다. 이 몹쓸 건망증은 늘 왕성한 활동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엉뚱하게 책을 읽었다, 자책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 나름의 장점은 느꼈고, 글쓴이가 중국인이라는 것도 잊지 않았으니 말이다. (중국인이 아니면 대략 난감 ^ ^;;)

 

          거대한 물결, 세계사의 두 축에 먼저 로마,가 나온다. 그리고 미국.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물론 통사론적 세계사를 언급하는 데에 아무 기준 없이 인물들만 나열하고 그들의 삶을 사건으로만 그려나가기에는 다소 무모하다시피 할, 그러면 책이 경박해지지 않을까. 글쓴이도 염두에 두고 집필을 했으리라. <세계사 의문>은 그래서 로마와 미국의 두 축에서 읽힌다. 그리고 글쓴이의 국적이 중국이라면 <세계사 의문>의 의문점은 쉬이 풀리게 된다. 여하튼 그러한 세계사적 태도와는 밀쳐두고 '의문'이라는 것, 과연 이 책에서 우리는 의문점, 청량음료처럼 톡톡 쏘는 자극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제목이 주는 연상 작용, 그것, 그것이 책 집어든 사람이 바라는 점일 것이다. 좀더 자극적이고, 더 명쾌하고, 기존 상식을 가차없이 뒤엎어 희롱하는 이야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아니다. <세계사 의문>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다지 충격적인 내용은 없었다. 다만 이런 일이 있었지, 있었고 말고, 그런 의구심들 나도 가졌지, 아니 언제 들었던 이야기는 아닐까... 그러면서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거만한 놈. 스스로에게 핀잔을 주는 둥, 등 치고 등 쓰다듬기도 몇 번, 혼자 놀기의 진수를 연출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웃었다. 그것이 내가 <세계사 의문>에서 얻은 가장 큰 이득이다. 짤막한 내용들, 그 내용들이 서로 무슨 연관이 있는지를 단박에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기존 알고 있던 세계사 토막토막을 다시금 확인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 나의 경박한 상식을 다시금 정리하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 그것이 <세계사 의문>의 큰 장점이다.

 

          글쓴이의 국적과 집필의도의 상관성, 그리고 세계사의 단편적인 내용, 내가 알아 왔던 세계사의 편린들을 <세계사 의문>은 그 세 가지를 내게 선물한 셈이다. 하나 더한다면 토막글은 책 읽는 속도를 굉장히 빨리, 촉진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빨리 읽힌다. 책 펼친 자리에서 시간 가는 것을 잊을 때가 많았다. 간략한 서술, 그리고 이미 알고 있던 인물들의 이야기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무엇인가를 다시금 발견하고, 내가 알던 대로 다시 읽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압박감 없이 책 읽기를 즐길 수 있는 <의문에 빠진 세계사>는 깊이 대신 넓이를 선택했지만, 그 선택은 결코 가볍다거나 부질없다는 수준은 아니다. <의문에 빠진 세계사>를 통해서, 세계사를 편안하게 만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학 패러독스 - 기발한 상상력과 통쾌한 해법으로 완성한 경제학 사용설명서!
타일러 코웬 지음, 김정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경제학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문학이라 할까, 자기계발서라 할까. <경제학 패러독스>를 읽으면서 다방면 인간의 지식은 결국 더 나은 삶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 말은 <경제학 패러독스>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난해한 경제학서적과는 다르다는 뜻. <경제학 패러독스>는 효용가치, 수요 공급 곡선 등 기초 경제학과는 달리 우리의 일상적인 측면에 밀착해 있다. 그래서 읽기가 수월하고, 흥미 유발도 솔솔찮다. 읽을수록 그 깊에 함쏙 빠져드는 책 <경제학 패러독스> 참으로 매력적인 서술방식을 구가하고 있다. 이 책의 매력에 빠졌다.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경제학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가 <경제학 패러독스> 머리글의 제목이다. 더 나은 삶, 그것은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아니 누구나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다. 내가 바라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바라지 않을까, 넘겨짚는다.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개혁이기도 하지만 수정, 보수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에서 삶은 때때로 활로를 제공하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는 현실이고 '활로를 모색하는 것' 그것이 곧 우리의 선택이다. 자의든, 인의든, 공으로 얻든 간에 '더 나은 삶'으로 향하는 모든 경우의 수, 그 기로에 우리의 일상은 운용되고 있다. 나의 선택은 늘 위태하지만,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가정법으로 '만약에 내가'라는 말을 애용한 것이 한때, 그러나 시침을 되돌려 놓아도 '역시 나는'이라고 푸념하고 말 현실을 안다. 비관론인가, 지나친 자기폄훼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만을 돌려놓고, 선택의 시점에 내가 놓인다 하더라도 습성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진즉에 알아버렸다. 지나친 비관은 곧 명철한 현실 직시일 수도 있다. <경제학 패러독스>에서는 그와 같은 인간의 면모를 핀셋으로 집어낸다. 눈앞에 들이밀면서 '너라 다를까' 면무안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부끄러움, 수치만을 안긴다면 그것은 좋은 책이, 조언을 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대안이 없는 충고는, 때때로 비난이 될 수 있다. <경제학 패러독스>는 좋은 책이다. 그 이유는 곧 이 책에서는 현실직시와 비판, 그 뒤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언급하고 있다. 그것도 굉장히 상세히 설명해준다. 과연 나는 어떻게 변할 것이고 변모한 모습에 당혹해하지는 않을까. 그것은 자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하나, 나의 선택은 곧 내 모습이라는 것.

 

          인센티브, 즉 유인동기를 중심으로 <경제학 패러독스>는 인간의 습성을 설명한다. 앞서 <경제학 패러독스>의 책 성격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고 했다. 그것은 이 책에서 다양한 이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그 가운데 자기계발서의 진취성, 대인관계의 유동성, 인간 사회에 관한 성찰까지 <경제학 패러독스>는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 8개의 대단원에는 철학을 엿보이기도 한다. 철학,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나'와 '세계'의 관계를 통찰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철학일 것이다. <경제학 패러독스>는 동기에 초점을 두고 어떻게 내가 움직일 것인가, 어떻게 해야 내가 옳은 선택을 하고, 나에게, 또 사회에 이로운 행동을 도모할 수 있는가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이타심'을 다루고 있는 것은, 그래서 납득이 간다. 우리가 현실, 일상 곳곳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 <경제학 패러독스>는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인센티브, 유인 동기, 유인 자극과 희소성의 규준, <경제학 패러독스>가 제공하고 있는 처세, 그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이윤(^^;;) 창출이 아니라 경제학은 사람을 위한,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것,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이 책에 서술한 사건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다. 그러나 이 사례들을 소개하는 것은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들의 태도와 병원의 상황에 대해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책머리에서/0쪽)

 

 

2.

     스캔들. 추문 또는 부정사건이라 국어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스캔들이라 하면 보통 연예인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추문은 성격상 입방아 찧기에 좋다. 재미있다. 카더라 식의 연예인 스캔들은 거진 대부분이 사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인 탓에 즐기는 부분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당사자가 되면 감당하기 힘들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스캔들, 그것도 의학 분야에서 횡행하는 스캔들, 추문이다. 부정사건이요 비리다. <메디컬 스캔들>은 연예인 가십거리보다 수위가 한층 높다. 왜냐, 그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겪었고 알고 있고 답답해하지만 <메디컬 스캔들>을 읽으면서 다시금 격분하게 된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맞아 응급실로 실려 간 사람들은 병원이라는 곳의 실체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구급차에서 환자가 내리자마자 실랑이가 벌어진다. 구급차는 무료가 아니라 차비를 내야 한다. 승강이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창구에서 접수를 마치고 응급실로 들어가면 환자는 여러 의사의 손을 거치게 된다. 보통 의학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응급환자는 환대?를 받지 못한다. 이 의사 저 의사가 환부를 집적거리다가 소독만 하고 환자는 오래 방치된다. 방치된 환자의 심정을 굳이 경험할 필요야 없지만 큰 병원 응급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친절한 곳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환자는 ...

 

 

3.

     <메디컬 스캔들>은 환부를 쑤시는 듯, 괴롭게 읽힌다.  그래서 글쓴이는 책머리에 '주의사항'을 남겼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여느 책과는 달리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재차 집필의도를 밝히고 있다. 글쓴이는 친절하지만 소재, 제재 자체의 특성상 불편한 책읽기를 할 수밖에 없다. 알아야 하고, 또 누구라도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이기 때문에 <메디컬 스캔들>은 필독서이다.

 

     "이 책은 여러분의 판단력을 고양시키고 통찰력을 키워줄 것입니다. (...) 증오는 엄청난 단어입니다. 이 책에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애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띄엄띄엄 읽으면 잠시 책을 덮었을 때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급하게 병원에 갈 일이 생겼다면, 이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합니다. " (주의사항, 가운데서)

 

     괴롭지만 <메디컬 스캔들>은 실용적이다. 실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일들, 그 사례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들끼리 쓰는 말들을 별도 부록을 첨부해서 환자들도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하나씩 알려주고 있고 그것은 목숨과 밀접하다.  '의사들의 태도와 병원의 상황에 대해 이해'를 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기까지 무엇을 알아야 하고,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지 <메디컬 스캔들>은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4.

     의사들의 생존을 위한 도움말(251쪽~256쪽)에서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반어로 들어야 할까.  아니면 글쓴이의 본디 생각일까. 그것에 혼란스러웠다.  황당하기까지 했다.  물론 글쓴이의 의도는 우리가 바라는 인간 존중에 있을 것을 굳이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읽기에 껄끄러운 문장들은 목에 가시가 박힌 듯 불편하다. 불편하지만 <메디컬 스캔들>은 오로지 의사들과 의료계를 비난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지 않는다. 의료계의 현실과 고객인 환자들의 비정상적인 행동, 의사의 신경을 거스르는 행동들까지 언급하고 있다. 물론 나는 이 책을 환자의 처지에서 바라보고 읽고 느꼈다.

 

     건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충분한 진찰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지요. (...) '환자'라는 말은 되도록 피하세요. 자기 의지로 여러분을 찾는 고객들은 건강관리에 관심을 가진 것뿐이니까요. 여러분이 고객을 진지하게 대한다는 인상을 줘야 합니다. (...) 리겔이 말했듯이 "종합병원은 적어도 5퍼센트의 명품 환자를 확보"하기 바랍니다. (...) 달랑 몸뚱이만 오는 환자들은 입원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 환자는 고객이 되고 건강은 상품이 된다. (...) 맞습니다. 바로 그게 목표지요. (의사들의 생존을 위한 도움말/ 251~25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