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패러독스 - 기발한 상상력과 통쾌한 해법으로 완성한 경제학 사용설명서!
타일러 코웬 지음, 김정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경제학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문학이라 할까, 자기계발서라 할까. <경제학 패러독스>를 읽으면서 다방면 인간의 지식은 결국 더 나은 삶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 말은 <경제학 패러독스>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난해한 경제학서적과는 다르다는 뜻. <경제학 패러독스>는 효용가치, 수요 공급 곡선 등 기초 경제학과는 달리 우리의 일상적인 측면에 밀착해 있다. 그래서 읽기가 수월하고, 흥미 유발도 솔솔찮다. 읽을수록 그 깊에 함쏙 빠져드는 책 <경제학 패러독스> 참으로 매력적인 서술방식을 구가하고 있다. 이 책의 매력에 빠졌다.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경제학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가 <경제학 패러독스> 머리글의 제목이다. 더 나은 삶, 그것은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아니 누구나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다. 내가 바라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바라지 않을까, 넘겨짚는다.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개혁이기도 하지만 수정, 보수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에서 삶은 때때로 활로를 제공하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는 현실이고 '활로를 모색하는 것' 그것이 곧 우리의 선택이다. 자의든, 인의든, 공으로 얻든 간에 '더 나은 삶'으로 향하는 모든 경우의 수, 그 기로에 우리의 일상은 운용되고 있다. 나의 선택은 늘 위태하지만,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가정법으로 '만약에 내가'라는 말을 애용한 것이 한때, 그러나 시침을 되돌려 놓아도 '역시 나는'이라고 푸념하고 말 현실을 안다. 비관론인가, 지나친 자기폄훼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만을 돌려놓고, 선택의 시점에 내가 놓인다 하더라도 습성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진즉에 알아버렸다. 지나친 비관은 곧 명철한 현실 직시일 수도 있다. <경제학 패러독스>에서는 그와 같은 인간의 면모를 핀셋으로 집어낸다. 눈앞에 들이밀면서 '너라 다를까' 면무안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부끄러움, 수치만을 안긴다면 그것은 좋은 책이, 조언을 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대안이 없는 충고는, 때때로 비난이 될 수 있다. <경제학 패러독스>는 좋은 책이다. 그 이유는 곧 이 책에서는 현실직시와 비판, 그 뒤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언급하고 있다. 그것도 굉장히 상세히 설명해준다. 과연 나는 어떻게 변할 것이고 변모한 모습에 당혹해하지는 않을까. 그것은 자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하나, 나의 선택은 곧 내 모습이라는 것.

 

          인센티브, 즉 유인동기를 중심으로 <경제학 패러독스>는 인간의 습성을 설명한다. 앞서 <경제학 패러독스>의 책 성격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고 했다. 그것은 이 책에서 다양한 이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그 가운데 자기계발서의 진취성, 대인관계의 유동성, 인간 사회에 관한 성찰까지 <경제학 패러독스>는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 8개의 대단원에는 철학을 엿보이기도 한다. 철학,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나'와 '세계'의 관계를 통찰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철학일 것이다. <경제학 패러독스>는 동기에 초점을 두고 어떻게 내가 움직일 것인가, 어떻게 해야 내가 옳은 선택을 하고, 나에게, 또 사회에 이로운 행동을 도모할 수 있는가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이타심'을 다루고 있는 것은, 그래서 납득이 간다. 우리가 현실, 일상 곳곳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 <경제학 패러독스>는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인센티브, 유인 동기, 유인 자극과 희소성의 규준, <경제학 패러독스>가 제공하고 있는 처세, 그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이윤(^^;;) 창출이 아니라 경제학은 사람을 위한,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것,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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