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다. 오랜만에 읽는 만화책, 내 인생에 만화는 고등학교 때, 그러니까 박제동 화백의 <만화 내 사랑>을 읽고 난 뒤 감동을 받고 더는 만화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만화는, 놀이가 아니라는 생각. 소일거리로 보던 만화를 접어야 했다. 그만큼 박제동 화백의 만화에 대한 산문집 <만화 내 사랑>은 내게 인상 깊은 책이었다. 그리고 십년이 훌쩍 넘어서 지금 읽는 만화책, 그런데 예전에 무협만화, 괴기만화, 탐정만화와는 약간 다른 분야의 내용을 담고 있는 만화책, <바이 바이 베스파>이다.
영문 표기 간판도 싫지만, 나는 우리글말이 아닌 외래어가 버젓이 사용되는 제목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서평을 남기기 전까지 이 책 제목이 이런 줄 몰랐다. 표지도 만화고, 내용도 그림체를 이용해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하나의 큰 이미지로 이 책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것이다. 바다로 오토바이?를 내몰고 있는 사나이는 자살을 꿈꾸는가. 그것은 알 바가 아니다. 다만 그 순간적인 형상은 참으로 낭만적이다. 낭만 그 자체이다. 그러나 낭만은 제삼자의 느낌일 때가 많다. 낭만은 그래서 절망과 맞닿아 있는 단어로 나는 이해한다. 띠지에, 책날개에 소개되는 박형동 만화가의 잘생긴 얼굴도 이 그림체의 이야기책을 한층 더 멋지게 해준다. 사람은 역시나 잘생기고 볼 일이다. 아, 이 속물. ^ ^ 영문 제목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만화가의 잘생긴 얼굴이 부럽고, 바다로 돌진해가는 오토바이 그림이 참으로 감각적이다. 역시 나는 퇴폐적 낭만주의의 전형인 듯, <바이 바이 베스파>는 내가 모르는 세계, 나도 앎직한 세계로 순식간에 나를 빨아당긴다. 빨래에 빨려 올라가는 당분만큼 내 삶은 달콤하지 못하지만, <바이 바이 베스파>에 함몰된 저녁 한 나절은 참으로 편안했다.
몸은 어른이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의 일상이 <바이 바이 베스파>이다. 어른이 뭐냐, 그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그 순간, 그때부터 어른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종종 생각을 한다. 몸은 컸어도 아이가 없으면 아이라는 말. 아이를 낳아 길러도 아이 같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 심리적 미성숙이 성장기 어느 기간에 머물러 있으면 고착이라고 한다던가. 고착되어 있는 사람들, 병적이지만, 그래서 안쓰럽다. 누구에게나 있을 고착, 가슴앓이를 하는 인물들이 <바이 바이 베스파>에는 있다. 그냥 그대로 있다. 그들의 몸짓에 가슴 아파본 적이 있는 사람은 공감을 하고, 그 기억이 너무 낡아 잊은 사람에게는 동감을, 아직 겪지 않은 사람에게는 묘한 동경까지, 따라 해보고 싶은 모방심리까지 안겨주는 것이 청춘의 일순간이 아닐까. <바이 바이 베스파>는 살이 닿아 정겨운, 그러나 내 몸에서 떨어져나가야 했을 그 무엇에 대한 기억의 보고서일 것이다. 그 숱한 상처는 아물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생채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제는 괜찮다, 덤덤히 말하지만 괜찮다,는 말에서부터 우리는 괜잖지 않음을 적이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삶이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지 않을까.
<바이 바이 베스파>를 덮으면서 나는 사고로 방치해 놓은 자전거가 자꾸 떠올랐다. 다시 타지 못할 자전거라 여기는가. 자전거에 다시 오를 수 있다면, 누적된 시간의 더께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두서없이 하게 되는 책, <바이 바이 베스파> 안녕. 아니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