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구급법 Outdoor Books 8
일본산악회 의료위원회 지음, 최종호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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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두 160쪽)

 

 



     응급상황에 둔감한 것이 사람인 모양이다. 나도 내가 다칠 줄을 몰랐다, 내가 가해자 될 줄도 몰랐다. 그런데 때때로 생각지 않은 상황에, 평소 잘 다니던 그 길인데도 심각하게 다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등산 구급법>은 무심코 산행을 했다가 기분 좋게 하산해야 하는데, 등산할 때 생각과는 달리 위험에 처하는 상황, 그 대처법들을 간단명료하게 알려주고 있다. 책 뒤편에는 비상연락처란이 있어서 실용적 측면을 보강하고 있다. 책 내용만해도 실용적인데, 쓰임 역시 긴박한 상황에 처할 경우 톡톡히 이 책 덕을 볼 것이라 예상된다.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등산 갔다가 벼락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기예보야 늘 확률에 의지하기 때문에 믿지 못할 것이고,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늘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불분명하지만 내 기억하기로는 당시 천둥벼락은 예보에 없었다. 산행한 사람들도 그냥 잠시 지나는 구름 내리는 비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사태는 엄청났다. 산에서 벼락을 맞을 것이란 생각, 누가 했을까. 분명 산에서 벼락 맞아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어왔다는 것, 그것을 지난해 사고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등산 구급법>은 그러한, 우리의 무지로 인해 생길 재난 들을 대비하도록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단박에 다 기억하고 체득할 수야 없으니, 그래서 소장이 용이하도록 가볍게 제작이 되었고, 휴대하다가 표지가 찢길 수도 있으니 단단한 겉표지를 배려하고 있다. 표지는 내구성이 좋고 속지는 가볍고 얇다. 등산 구급법이 목차대로 두 쪽 지면에 수록되어 있고 각 쪽에는 다단구성으로 서술, 해서 적은 지면에 많은 내용이 그림과 도표 등과 함께 어울려 읽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사고는 잦지 않다. 다만 단 한 번 사고로 우리는 운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잦다. 누구도 자신의 앞날을 장담하지 못한다. 지금 먹고 있는 사탕이 기도를 막아서 숨이 막힌다면, 그리고 5분 동안 질식 상태로 있게 된다면. 3분 동안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도 전신에 마비가 생기고 5분을 넘기면 숨이 끊긴다. 한데 우리는 단순 기도 막힘 상황에 대처할 방법, 정말 단순한데도 알고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아는 만큼 삶을 누린다고 한다. 적십자 심폐소생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은 '사고에 둔감한 일상'에 경각심을 주었다. <등산 구급법>은 심폐소생술을 배운 뒤에 읽었기 때문에 읽기는 수월했지만 과연 내가 사고 상황에 이처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불안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펼치고, 늘 가방에 휴대해야 옳지 않을까.

 

     사고 위험은 도처에 널려 있다. 하지만 하루이틀 일상에 쫓기다 보면 또 무뎌질 것이다. 플라스틱 물병에도 죽음이 깃들이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겠다. 등산 좋아하던 때에 이 책을 읽었다면, 다행히 등산으로 사고가 난 적은 없지만 참으로 유용했으리라. 게다가 한참 열심히 밑줄도 긋고 중얼거리면서 외우는 성의까지 보이지 않았을까, 막연히 상상해본다. 시간 허락하는 날 산행을 계획해야겠다. 물론 <등산 구급법>은 계속 열심히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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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 - 김기현의 재활일기
김기현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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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순 님의 이야기 <내 마음에 꽃 한 송이 심고>.  장애를 적응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2007년 가슴으로 읽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2008년 나는 김기현 님을 만났다. 처음 <마음의 눈으로 행복을 만지다>(이하 <마음의 눈>)를 차르르 훑어보면서 기독교, 종교서적인가 오해를 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가슴 아프다. 아니 이건 절대 연민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허술하게 짜여있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되어 가슴이 아팠다. 버스 손잡이를 장애인을 위해서 좀 더 길게 늘어뜨리자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인터넷 신문기사에 달렸던 덧글은, 가관이었다. 지금도 손잡이에 이마가 부딪히는 일이 곧잘 있는데 겨우 장애인을 위해서 손잡이를 늘이다니 말 될 소리냐는 둥 일부 장애인을 위해서 다수가 희생한다는 것은 안 될 소리라는 둥.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계단 턱을 없애자는 데에도 별의별 소리가 다 있다. 비용문제부터 시작해서 우는소리는 비장애인들의 거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 왜일까. 왜 이렇게 각박한가. 통탄할 노릇이다.

 

     <마음의 눈으로>는 중도 장애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도장애란 즉 후천성 장애이다. 만성장애와는 달리 인재이다. 대학 합격하고 턱 부정교합 수술이 잘못되어 사선을 넘나들다 회생한 김기현 님은 전신마비에 시각을 잃는, 생각지 못한 의료사고로 인생이 한순간 뭉개져버렸다. 세상이 다 내것으로 여겨졌을 20대 초반에 그가 느꼈을 절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구강내 출혈이 심해서 3분간 질식 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단이었다. 뇌에 5분 동안 산소 공급이 되지 않는다면 사망에 이른다. 하니 김기현 님이 겪은 3분간 질식 상태가 무엇을 뜻하는지 불보듯 뻔하다. 하지만 의료진은 대수롭잖게 대처, 해서 죽음의 문턱까지 내몬 결과를 초래한다. 병원에서 김기현 님과 그의 가족이 겪었을 고통은 상상하기 어렵잖다.

 

      놀란 어머니는 비상벨을 눌러 도움을 요청하고 정신없이 제 이름을 부르며 몸을 붙드셨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강하게 몸을 붙들어도 제가 떠는 극심한 경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는데 몸의 경련을 멈출 수가 없으니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나중엔 떨고 있는 어깨와 얼굴, 온몸이 심하게 아프고 무서워서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겁이 덜컥 들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까지도 병실 안에는 환자인 저와 의학지식이 전혀 없는 엄마, 단 둘 뿐이었습니다. (...)

     그리고 바로 그날이 제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았던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31~33쪽)

 

     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모른다. 하지만 막연히 느낀다. 눈을 감아보자,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동선이 낯설어질 것이다. 그리고 얼마 참지 못하고 눈을 뜨고는 싱겁게 웃을 것이다. 별짓을 다한다, 우스갯소리도 할지 모른다. 하지만 평생을 볼 수 없다면 그 순간부터 상황은 돌변한다. 볼 수 없다는 것, 사지육신 오장육부 어느 하나 덜하고 못한 것이 없다.

 

     실명 후 옷을 뒤집어 입은 줄도 모르고 외출한 이야기, 기름인줄 알고 식초를 모르고 넣어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 먹었던 일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에서 제가 시각장애인인 것을 눈치 챈 택시기사 아저씨가 잔돈을 안 거슬러 주고 엉뚱한 곳에 내려줬던 일, 버스를 타고 동전을 요금함에 넣는다는 것을 그만 요금함 바깥으로 쏟아놓고는 어쩔 줄 몰라 울던 일 등 가슴 아픈 에피소드들을 나누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들과 함께 우리 사회가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들을 솔직하게 전했습니다. (112쪽)

 

     김기현 님은 의료사고 있기 전 자신을 거만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지금은 같은 상황의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현실에 고맙다고 한다. 그가 부딪히고 견뎌야 했던, 앞으로 그래야 할 세상이라는 것이 문문하지 않다. 4장에서 '재활일기와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서는 "사회에 고하는 글"로 이름 붙일 수 있다.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일이다. 왜 김기현 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지는 진즉부터 우리는 알고 있다. 모른 체 외면하고만 있을 뿐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그러나 그 속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만이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김기현 님이 누구를 의지해 기댔는지, 그러나 정작 김기현 님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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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로부터 내 아이를 지키는 29가지 방법 - 각종 위험과 사고 및 범죄로부터 내 아이를 보호하라
고미야 노부오 지음, 김현희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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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은날 2008년 4월 23일~25일)

(모두 159쪽)

 


     우선 그림, 삽화가 재미있다. 귀염성이 있는 그림이라 할까. 눈이 즐겁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범죄로부터 내 아이를 지키는 29가지 방법>(이하 <범죄로부터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아동관련 기관에서 벌이는 성교육이 어떻게 실시되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범죄로부터 아이를>은 다방면에 탄력적으로 활용 가능한 서적이다. 양육은 물론이거니와 교육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준다.

 

     <범죄로부터 아이를>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하나씩 살펴가며 읽는다. 양육서이기도 하지만 일상에 산재해 있는 위험을 예리하게 건드리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비관적으로 현실을 보는 문학가들, 그들이 한때는 너무 팍팍하다, 생각했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 아닌가, 터무니없이 긍정적, 조증 상태로 그들을 비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오히려 그분들의 세계관이 옳지 않나 회의하게 된다. 나는 실종된 개구리 소년 세대이다. 개구리 잡으러 갔다가 한 동네 아이들이 행불명되는 사고. 연일 방송에서는 실종된 그들을 찾느니 어쩌니 경찰이 무능하니 어쩌니 하면서 북적댔지만 그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실종, 미아 사건은 매년 발생하고 있다. 다만 내 주변에 아직은 그런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책에서 "아이는 직접 보여줘야 실감한다"는 문구가 있다. 비단 아이에게만 해당할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재난은 방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건 아닌 게 너무 아니다. 군집생활을 하는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해서 아이들 마음껏 뛰놀게 할 수 없는 현실이 참담하다. 어느 시대고 아동에게 가혹하다. 그 속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성인들, 정말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이다. <범죄로부터 아이를>은 위험에 얼마나 무딘지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이 있다. 날벼락은 예보도 없다. 늘 조심해 조심을 해야 한다. <범죄로부터 아이를>은 어떻게 조심을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일러주며 사전예방과 사후대처까지,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 아이들 교육을 먼저 하는 방식으로 책은 구성되어 있다. 일상적인 위험, 보행 시 조심해야 할 점, 아이들 옷차림, 친구들과의 어울림(따돌림), 싸움, 성폭행 등 다양한 상황을 제시해주고 각기 적합한 대처법과 사후처방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재미난 그림과 간략한 문장이 <범죄로부터 아이를>의 큰 장점이요 매력이다.

 

     이 책의 본바탕은 양육자와 아이들 사이에 신뢰를 기반을 하고 있다. 애초부터 범죄 상황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범죄를 당했다면, 그렇다면 아이들이 거리낌없이 자신이 처한 곤경을 양육자에게 거리낌없이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애착과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 아이에게 나는 얼마나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의심된다면 앞으로 아이와의 애착관계 형성에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늘 조심, 조심해야 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생각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을 아이가 느끼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지만, 그러나 아이는 '사람'에 기대어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간다. 관계는 중요하다. 하지만 비극적인 관계도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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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연구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전기순 옮김 / 풀빛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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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한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었다. 스탕달의 <연애론>도 읽었다. 그런데 기억이 전연 나지가 않는다. 그런 책이 있어서 스탕달의 <연애론>을 후배에게 선물했던 기억은 있는데 그 책 내용은 전연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좋은 책이었던 듯, 읽으며 많은 구절을 옮겨적었던 것은 기억한다.

 

     <사랑에 관한 연구>는 스탕달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내가 선물로 한 그 책은 아마도 어느 헌책방에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든가 아니면 폐기처분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선물한 내 마음이야 이런데, 글쓰는이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사랑' 희한하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이 단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책이 <사랑에 관한 연구>이다. 스탕달이든 <사랑에 관한 연구>를 쓴 글쓴이든 '사랑'의 본질로 접근하고자 애썼고 용썼을 터, 감히 내가 왈가왈부 손가락을 놓네 마네 하는 소리는 부질없다. 다만 '사랑'이라는 것이 어떠어떠한 것이고, 삶에 있어서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만 어렴풋이 윤곽선을 긋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랑에 관한 연구>는 읽을 만하다. 좀 어렵지만 읽을 만한 책이다.

 

     <사랑에 관한 연구>는 1940년 초판이 등장한 이래, 오르테가의 가장 대중적인 인문서로서 명성을 누려왔다. 대중적이라고는 하지만 독서가 쉽지만은 않다. 어떤 개념들이 등장하면 본문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종횡으로 깊이 빠져들 때가 많다. 철학자인 오르테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글쓰기 형식이겠지만 우리 독자들에게는 독서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로 인해 번역은 철저하게 의역으로 이루어졌고, 적지 않은 부분이 생략과 수정의 운명을 겪어야 했다. 아무튼 번역된 결과물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옮긴이의 말, 가운데서)

 

     문장 하나하나 사이에서 멈칫하게 된다. 그래서 옮긴이는 후기에 이런 말을 첨가했는가 보다. '사랑'을 적극적인 행위로 글쓴이가 말하고 있고, 설득력도 있고, 다각도로 서술하고 있는 글쓰기는 납득이 가지만 책 전반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 이유를 옮긴이의 말,을 읽기 전까지도 나는 왜 그런지 딱히 짚어내지를 못했다. 나만 어렵게 읽는 것이 아니로구나. 동질감, 연대의식?을 느꼈다면 얼마나 속물적인가. 그런데도 어렵다. 도움이 되지만 좀더 쉽게 서술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철학에 겨우 면무식 수준에 있는, 그렇지만 외국 철학자의 이름 하나도 정확하게 읊지 못하는 내게는 글쓴이가 제시하는 문장들은 낯설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는 '사랑의 본질'을 서둘지 않고 천천히 파헤치는 것에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가 남성적 측면에서 서술되었듯이 <사랑에 관한 연구> 역시 같은 맥락을 보이고 있다. "사랑"에 관한 연구로 연애를 잘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가? 손사래를 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철학서이다. '사랑'을 본격적으로 파헤쳐 그 본질로 가 닿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책이다. 짧은 글읽기로 글쓴이가 제시하고 있는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좋은 책을 읽었다는 느낌,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포만감은 지적 허영심이었을까. 딱히 그렇게 잘라 말하기에는 뭔가가 미심쩍다. 언제 다시 이 책을 읽는 때가 있으면 아마도 나는 좀더 성장했거나 오히려 퇴행했을 수도 있다. 여하튼 지금은 좀 더 나은 '나'를 고대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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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 이덕무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9
이덕무 지음, 강국주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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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두 242쪽)

 

 

     출판사 돌베개를 신뢰한다. 다산시선집을 읽고 입안 가득 꽃향기가 번지는 듯, 기분 좋았다. 이덕무 시선집은 그래서 읽기를 고대했다. 참으로 좋은 만남이다. 다산 시선집은 그 나름으로 향기가 있다면 이덕무 시선집 역시 그 나름으로 향기가 있다. 독특한 멋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책 읽기를 즐기는 분, 바로앉아 차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원하는 분들께 이덕무 시선집을 권하고 싶다. 책 선물로 마땅한 책이 한 권 더 생겼다는 느낌, 나는 좋은 책 선물하는 것이 참 기분이 좋다. 좋은 책으로 이덕무 시선집을 추천, 선물로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1. 내 살에 닿는 글

     이덕무 선집은 시편 이외에도 산문이 들어 있다. <청장관장서>에 선생의 글이 모두 수록, 그 가운데 읽는데 무리 없는 글편들을 따로 엮어 낸 책이 <이덕무 선집>이다. 적은 분량이다. 그렇지만 울림은 웅혼하다.

     어느 책이든 '나'를 중심으로 읽게 마련이다. 그 많은 글편에서 유독 "어제와 오늘과 내일, 바로 이 3일!"이 나를 끄잡아당기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심이 유심이 되어버린 일상, 그 속에서 나는 시간개념을 상실한 채 하루하루 어제인듯, 오늘인듯, 내일도 어제일 듯 기대도 없이 무작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선생은 시간을 어떻게 여겨 단속을 해 왔을까. 그 글이 "어제와 오늘과 내일, 바로 이 3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습자지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스민다. 순식간이다. 이 글 역시 그렇게 순식간에 내 혀끝을 점령했다. <이덕무 선집>을 읽을 때 다른 책과 달리, 그러나 <다산 선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리내어 읽었다. 그래서 혀끝에 짜릿한 맛을 느끼지 않았을까. 탄산음료가 쏘아대는 그 자극과는 다르다. 물맛이라고 할까. 오염되지 않은 물맛이다. 상쾌하다.

 


     옛날과 지금의 차이도 따지고 보면 잠깐일 수 있고, 잠깐의 시간도 따지고 보면 옛날과 지금의 차이만큼 긴 시간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잠깐의 시간이 오래도록 쌓여 옛날과 지금이라는 긴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서로 교대하며 돌아가지만 늘 새롭다. 모두 이 세 가지 날 가운데 태어나고 이 세 가지 날 가운데 늙어간다.

     그러므로 군자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 바로 이 3일에 유념할 뿐이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 바로 이 3일/ 197쪽)


 

   하루이틀사흘나흘 할 때 그 '날'과 칼날의 '날'에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글 문맥과는 상관없이 '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문득 하게 되는 생각이다. 날이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다. 그러한 공통점 때문일까. 내 살을 지난 날은 칼날이었을까, 일수를 말하는 며칠이었을까. 생각해볼일이다.

 

2. 이덕무 선생

     시와 문(산문)으로 양분 구성이 되어 있다. 그리고 뒤편에서는 이덕무 선생의 삶과 작품 세계를 말하고 연보, 작품의 본디 제목 등, 그리고 색인까지 마련해 두고 있다. 친절한 구성이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덕무 선생은 잠시 접어두고, 다만 글로써 느껴지는 선생의 느낌은 결 고운 모시적삼이랄까. 곱지만 곱기 위해서는 많은 손을 필요로하는, 마치 그렇게 단련된 존재인 듯하다. 정련이라는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글 짧은 것을 탓해야지, 그리고 탓하며 앞으로 글 다듬기에 정성을 쏟아야겠다. 이덕무 선생을 내가 직접 선생의 글편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한 마디로 말하지 못하는 것에는 문제가 크다.

 







예스런 생김새에 마음 맑은 이형암

포부는 몹시 어리석다네.

담박하고 고요히 앉아 있느라

콩과 팥도 구분 못하네


(나를 조롱하다/ 21쪽)


 

     서얼 출신인 선생은 벼슬길이 막혀 있고, 그렇다고 몸이 좋아 막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잦은 병치레가 선생의 일평생을 벗으로 함께한 듯하다. 서얼의 길이 무엇인지 정확히 느끼지는 못한다. 나는 그들의 계급에 대해서 들어 알고만 있을 뿐 공감하지 못 한다. 다만 막막하지 않았을까 지독한 가난과 아무리 영민해도 기개를 떨칠 수 없는 당대 현실 속에서 가망없는 내일을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곧 형벌이 아니었을까. 그것만 아슴푸레 짐작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선비'로서의 삶을 이덕무 선생은 지향하고 있다. 한치 흐트러짐 없이, 벗들과의 교우 역시 귀중히 여기며 학문에 깊이를 더하는 날로 삶을 채우고 있다. 존경스럽다. 막막한 현실, 가망 없는 내일에도 그러한 성실을 보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선생은 말한다. "책만 보는 바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책에서 배우고 익히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며 생각을 넓히는 선생의 모습에서 하나의 모범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책을 대하는 자세. 나는 책을 소모품이라 생각하지만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을 확인케 해주시는 선생의 글들.


"도대체 글을 즐겨 하지 않는다면 (...) 나를 귀머거리와 장님으로 만들 작정이십니까?"

"너를 한 번 시험해 본 것일 뿐이다. "








(책만은 버릴 수 없어/ 174쪽)


 

3. 격리된 삶

 


낙숫물을 맞으면서 헌 우산을 깁고, 섬돌 아래 약 찧는 절구를 괴어 두고, 새들을 문생으로 삼고, 구름을 친구로 삼는다.

이런 형암의 일생을 두고 "그것 참, 편안한 생활이군"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니, 참으로 우습다, 참으로 우스워!

                                                                                                                 (나의 일생/ 176쪽)


     <이덕무 선집>에서 보기 드문 구절이다. 선생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슬픈이 지극하여 울음이 터지게 되면 그 참된 마음을 억제할 수 없다. (참된 정과 거짓된 정/ 199쪽)

조용히 관찰해 보면 그 속에 지극한 이치가 있음을 (저마다 신묘한 이치가/ 200쪽)

교활한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그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나를 공경하기 때문 (교활한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 201쪽)

 

내가 사랑해도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모든 것이 나의 좋은 친구인 것이다. (나의 친구/ 164쪽)

내 이처럼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았으니 다시 무슨 원망이 있을 것인가. (나 자신을 친구 삼아/ 161쪽)

 

     이덕무 선생의 글편에서 문득 자주 보이는 문구가 있다. 그것은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어다, 관찰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차분해진다. 원망이 사라지는 형상을 엿보게 된다. 다산 선생의 글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덕무 선생의 글은 그래서 다산 선생의 글과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선집이 더 낫다 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빛깔을 이렇게 영묘하게 간직한 글편들, 그것이 우리 선조의 멋이 아닐까. 다산 시선집을 다시 한 번 살펴 읽어야겠다.

 

     일생 동안 마음에 꼭 맞도록 처신할 수 있을까? 힘들 것이다. (복사나무 아래에서 한 생각/ 129쪽)

 

     이 문장 다음은 내가 새로 써넣어야 할 것이다. 아직음 붓방아만 찧고 있지만, 곧 써넣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날 선 삶의 단면을 이덕무 선생처럼 오래 관찰하고 눈 감아 깊이 생각하는 자세가 아닐까. "힘들 것이다" 이 다음 문장을 쓰기 위해서 나 역시 선생이 삶을 대하던 그 자세를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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