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연구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전기순 옮김 / 풀빛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한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었다. 스탕달의 <연애론>도 읽었다. 그런데 기억이 전연 나지가 않는다. 그런 책이 있어서 스탕달의 <연애론>을 후배에게 선물했던 기억은 있는데 그 책 내용은 전연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좋은 책이었던 듯, 읽으며 많은 구절을 옮겨적었던 것은 기억한다.

 

     <사랑에 관한 연구>는 스탕달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내가 선물로 한 그 책은 아마도 어느 헌책방에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든가 아니면 폐기처분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선물한 내 마음이야 이런데, 글쓰는이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사랑' 희한하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이 단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책이 <사랑에 관한 연구>이다. 스탕달이든 <사랑에 관한 연구>를 쓴 글쓴이든 '사랑'의 본질로 접근하고자 애썼고 용썼을 터, 감히 내가 왈가왈부 손가락을 놓네 마네 하는 소리는 부질없다. 다만 '사랑'이라는 것이 어떠어떠한 것이고, 삶에 있어서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만 어렴풋이 윤곽선을 긋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랑에 관한 연구>는 읽을 만하다. 좀 어렵지만 읽을 만한 책이다.

 

     <사랑에 관한 연구>는 1940년 초판이 등장한 이래, 오르테가의 가장 대중적인 인문서로서 명성을 누려왔다. 대중적이라고는 하지만 독서가 쉽지만은 않다. 어떤 개념들이 등장하면 본문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종횡으로 깊이 빠져들 때가 많다. 철학자인 오르테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글쓰기 형식이겠지만 우리 독자들에게는 독서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로 인해 번역은 철저하게 의역으로 이루어졌고, 적지 않은 부분이 생략과 수정의 운명을 겪어야 했다. 아무튼 번역된 결과물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옮긴이의 말, 가운데서)

 

     문장 하나하나 사이에서 멈칫하게 된다. 그래서 옮긴이는 후기에 이런 말을 첨가했는가 보다. '사랑'을 적극적인 행위로 글쓴이가 말하고 있고, 설득력도 있고, 다각도로 서술하고 있는 글쓰기는 납득이 가지만 책 전반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 이유를 옮긴이의 말,을 읽기 전까지도 나는 왜 그런지 딱히 짚어내지를 못했다. 나만 어렵게 읽는 것이 아니로구나. 동질감, 연대의식?을 느꼈다면 얼마나 속물적인가. 그런데도 어렵다. 도움이 되지만 좀더 쉽게 서술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철학에 겨우 면무식 수준에 있는, 그렇지만 외국 철학자의 이름 하나도 정확하게 읊지 못하는 내게는 글쓴이가 제시하는 문장들은 낯설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는 '사랑의 본질'을 서둘지 않고 천천히 파헤치는 것에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가 남성적 측면에서 서술되었듯이 <사랑에 관한 연구> 역시 같은 맥락을 보이고 있다. "사랑"에 관한 연구로 연애를 잘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가? 손사래를 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철학서이다. '사랑'을 본격적으로 파헤쳐 그 본질로 가 닿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책이다. 짧은 글읽기로 글쓴이가 제시하고 있는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좋은 책을 읽었다는 느낌,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포만감은 지적 허영심이었을까. 딱히 그렇게 잘라 말하기에는 뭔가가 미심쩍다. 언제 다시 이 책을 읽는 때가 있으면 아마도 나는 좀더 성장했거나 오히려 퇴행했을 수도 있다. 여하튼 지금은 좀 더 나은 '나'를 고대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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