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싸운 바다 한려수도 - 개정 증보판
이봉수 지음 / 새로운사람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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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전쟁을 놀이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맹수의 기질을 타고났단 말인가. 무서운 일이다. 50여년간 전쟁 없이, 대신 휴전으로 전쟁에 둔감해진 한민족은 늘 전쟁 위협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무뎌져 가고 있다. 이미 무뎌져 있다.

 

2.

    <이순신이 싸운 바다>. 한려수도를 기점으로 해서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살피는 책이다. 꼼꼼하게 씌어진 책이다. 이순신 장군 관련 역사서와 민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쓴이는 남해안을 두루 다니며 수집한 자료, 면담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잘 정리해 놓았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태어난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끼며 자랑스러운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08년 4월 이봉수)

 

    <이순신이 싸운 바다>를 읽는 묘미는 아무래도 현지명과 과거의 지명을 연결해두는 친절함일 것이다. 남해는 변방이다. 변방이라 함은 곧잘 압록강, 두만강 쪽으로 오해한다. 외침이 많았던 곳, 단일민족이라 주장하며 이민족을 배척하는 자세는 곧 자신의 역사 역시 냉혈차게 밀어내는 기괴한 행동을 보인다. 경상도 사람이 진주를 거점으로 북녘은 양반들 땅이고 남녘은 상놈들 세상이라 하시했던 것 역시, 어쩌면 외침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생명이 아닌 피를 우선시한 대중심리의 결과는 처참하다.

 

     나는 글쓴이가 쓴, 이순신 장군을 기리고자, 잊지 않고 기리고자 한 의도를 충분히 이해한다. 일본의 역사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치가 떨린다. 하지만 <이순신이 싸운 바다>에서는 내 눈에 비친 것은 이순신 장군보다는 그곳에서 살아남으려 저항했던, 이 땅의 생명들이었다. 눈 감으면 울분이 치솟고, 눈을 뜨면 하늘이 샛노래지는 생명들이다.

 

     이순신 장군이 누구를 위해서 싸워 승전했는지에 대해서 <이순신이 싸운 바다>에서는 자세히 다루고 있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 이순신 장군이 누구를 위해 싸웠는가는 내 관심 밖이다. 귀 따갑게 들어왔던 이야기고, 초등학교 강당에 쪼그려 앉아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만화를 보면서 몸으로 익혀 왔던 교훈은 이제 소용이 없다. 달갑지 않다.

 

3.

     목동 김천손 (119쪽), 기생 월이의 전설 (80쪽) 들과 같은 이야기는 <이순신이 싸운 바다>에서 얻은 값진 보화다. 양반님네들이 천시하고, 늘 곁에 두고 품고 자던 기생이 오히려 민족을 지키는 데에 더 큰 역할을 해낸다는 사실, 예부터 그러했고 지금도 역시 그럴 것이다.

 

     '비록 내가 기녀의 몸이지만 조선은 내가 태어난 땅이고 부모의 혼이 묻혀 있는 곳이 아닌가?' (82쪽)

 

     <이순신이 싸운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의 적은 왜군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와 같은 추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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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2013-05-29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ㅗㅕ뎐ㄷ
 
밀레니엄 1 - 하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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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모두 2권으로 395쪽, 350쪽으로 총 745쪽 분량의 책이다.  일반적으로 장편이 3권 분량이라는 것에 비한다면 그다지 많은 쪽수는 아니다.  내용면에서는 가독성이 있다.  지금은 생을 달리한 글쓴이는 분명 사람의 심리를 자극하는 방법에 도 통했을 것이라는 것, 짐작컨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는 쉽지가 않았다. 분량 때문도 아니고 내용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문화 차이와 번역한 출판사의 구성법 때문이다.

 

     분명 원서에는 그네들의 문화대로 이름을 표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와는 다른 이름, 그것뿐이 아니라 성과 이름이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매번 동일인을 다르게 받아들여 당혹감을 자주 느꼈다. 안타깝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문단이 바뀔 때, 내용상의 구분을 위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굵은 고딕체를 구절 단위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체에 익숙해지고 내용에 몰입되다가도 낯설고 굵은 고딕체를 만나면 몸이 경직된다.

 

     그것이 아쉽다. 글쓴이의 책이 연작으로 이루어져 있고, 11월경 다음 편이 번역될 것이라는 소식, 반갑고 고맙다. 한데 이러한 구성 때문에 난독을 해야 한다는 것이 미리부터 걱정이다.

 

2.

   프로데는 짧게 대답했지만 어조에는 짙은 불신이 풍기고 있었다.

   " 이 아가씨가 찾아냈다는 것을 내게 얘기해주겠소?"

   프로데 변호사는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유형의 인물인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확실한 상대인 아르만스키에게 질문을 한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옆에 있는 그녀를 완전히 무시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살란데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씹고 있던 풍선껌을 불어 커다란 풍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르만스키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를 돌아보더니, 역시 옆에 프로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했다.

   "이 고객분이 원하는 게 긴 설명인지 아니면 짧은 설명인지 확인해 줄래요?"

   프로데 변호사는 곧 자신이 실수를 범했음을 깨달았다. 방 안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변호사는 리스베트 살란데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이 범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짐짓 자상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살란데르는 잠시 디르크 프로데를 쏘아보았다. 마치 사바나의 잔혹한 먹잇감을 한입에 삼키려고 노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 눈빛이 너무도 강렬하고, 뜻밖의 증오로 가득 차 있어서 프로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곧 한순간 사나워졌던 눈빛이 이내 사라지고 표정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마치 브리핑하는 공무원 같은 어조였다.

"우선 이번 임무는 선생께서 적어놓으신 '조사 목표'가 매우 애매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특별히 복잡한 임무는 아니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생께서는 (...)."

 

3.

     <밀레니엄>에 쪽종이로 된 인물도표, 가계도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이 책을 중도에 놓아버렸을 것이다. 많은 인물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글이 난해해서가 아니다. 단지 하나 이름이 낯설고 성과 이름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문장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끝까지 붙잡아두고, 혼자 생각으로도 끈질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밀레니엄>을 탐독하게 된 것은, 글쓴이가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의 시선은 강렬하다. 주변 사소하게 지나칠 그 무엇에도 대수롭잖게 생각지 않고 있다. 글쓴이의 초점이 사람을 다루든, 사물을 다루든, 사건, 갈등을 다루든 한결같이 팽팽한 긴장감을 가진 문장을 써내고 있다.

 

     발문은 <밀레니엄>에서 내가 가장 매혹적이라 여기는 인물, 살란데르에 관한 이야기이다.  <밀레니엄> 초반에 등장한 인물 살란데르, 그는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에 관한 신변조사 의뢰를 받고 임무를 해낸다.  단순히 일을 해내는 데에 글쓴이는 묘사를 그치지 않고, 그와 관련된 주변인물의 심리상태, 갈등, 현실적인 사항 들에 대해서도 꼼꼼히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곧<밀레니엄>을 쓴 스티그 라르손의 매력이라 할 것이다.

 

4. 

   <밀레니엄>에는 부제가 있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다.  한 남자가 아니다.  남자들,로 복수, 여럿이다.  제목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그리고 실제 밀레니엄이라는 출판사에 대해서 염두에 두고, 그와 함께 부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읽어나갈 때 읽는 재미는 한층 더 높아진다.

 

     나는 지금 스티그 라르손의 다음 책, 이미 씌어졌지만 번역 출판되지 않은 다음 책을 기다린다.  아마 그때쯤 나는 스웨덴의 호칭법에 대해서, 서구권의 호칭, 지칭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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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물결과 늙은파도 이야기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공동저자 짐 발라드의 아껴둔 이야기
짐 발라드 지음, 안호종 옮김, 문정화 그림 / 씽크뱅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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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라마나 마하리쉬의 헌신자이며 나의 스승인 슈리 푼자는 파도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파도는 끊임없이 해변을 향해 질주하면서 구르고 부서진 뒤에 뒤로 물러서다가 다시 무리를 지어 구르고 부서진다. 파도마다 자신의 독특한 순간과 움직임과 크기와 파동이 있어 다른 파도와 달라 보인다.

어느 날 작은 파도는 저 멀리 다가오는 거대하고 나이 든 파도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작은 파도는 큰 파도에게 말했다.

     "당신은 거대하고 나이가 많고 현명한 파도 같습니다. 당신은 먼 길을 여행해서 많은 것을 보았겠지요. 그러니 제게 말해 줄 수 있겠군요. 바다라는 것이 정말 있나요?"

     그 나이 든 파도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글쎄, 바다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단다."

(엘리 잭슨 베어 : 영혼의 자유 에니어그램 / 24~25쪽)  

 

2.

    <어린 물결과 늙은 파도 이야기>는 발문한 책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분명 공통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생이요, 또 우리들의 이야기를 파도에 빗대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삶이라는 무엇인가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책들이 참으로 많다.  <어린왕자>가 나에게는 그저 싱겁고 어려운 이야기뿐일 때도 있었던 것처럼 <어린 물결과 늙은 파도 이야기>는 처음 읽고 난 뒤에는 고개만 갸웃거리고 말았다.

 

     어린 물결이, 늙은 파도에게 인생이란 뭣이오? 따져묻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과는 달리 이 책에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아름다움일 것이다.  빛 웅덩이에 빠져든 어린 물결과 동일시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인간사에서 '빛 웅덩이'란 또 무엇일까, 생각하는 재미 또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무엇일까, 빛처럼 매혹적이고 강렬한 수렁이......

 

     동화책으로 불러도 무방할, 그러나 이야기는 많은 것을 끌어안고 있다.  비유와 은유는 무겁지 않다.  곧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글쓴이는 아마도 기교보다는 우리의 삶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무엇을 느끼느냐는 아무래도 팔자소관 아니겠냐는 우스갯소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많이 보는 것보다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있다. 육지에 가서 물거품이 된다는 것, 그것이 죽음일 수도, 또 다른 시작일 수도...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3.

    글쓴이는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의 공동저자이다.  글쓴이 약력으로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예상하는 데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책으로 읽고 덮어둘, 오래 먼지 앉힐 책이라는 불안감이 든다면 일찌감치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읽는 것이 좋을 일이다.  한 번 책읽기로 감동이 적었다면 오래 두고 오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할까, 무척 고심했다.  결단은 보관이다.  우선은 보관하고, 좀더 깊이 읽기를 도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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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기술 - 21세기 생활의 신 패러다임 제시!
다츠미 나기사 지음, 김대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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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제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천천히 행동하는 편이 현명하다.

(파울로 코엘료/ <생각정리의 기술>에서)


 

1.

    집에 잡것들이 쌓여 간다. 욕을 듣는다. 왜 이런 것까지 사 모으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한다. 그러면 나는 입을 비쭉인다. 나중에 꼭 필요할 거다. 나중에 반드시 쓰일 데가 있을 거다. 분명히 그럴 거다. 내가 산 물건은 곧 나다. 나는 물건에 인성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내가 사 모은 물건들은 제대로 대접은 받고 있나, 자문해 본다. 고개를 숙인다. 미안하다. 나는 내 집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2.

     <버리는 기술>?

     물건을 버리라는 말인가, 아니면 기술을 버리라는 말인가.  물론 책을 펼치는 순간 의문은 순식간에 흩어진다.  명료해진다. 우리 주변에는 쓸데없는 물건이 널려 있다.  업무 중에 프린트 해서 읽는 것이 더 좋을 법한 것들 다 뽑아 화일에 철하고, 잊는다.  정리의 기술을 배워 익혀도 사실상 아무 소용이 없다.  쌓여가는 물건은 단순하지 않다.  사무용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쌓여가는 물건보다 더한 중압감은 아무래도 미련에서 비롯될 것이다.

 

     분명 나중에 필요해서 산 샤프심, 그것도 저렴하게 구입한 샤프심은 삼 년 동안 종이 상자에서 생매장되어 있다.   샤프심을 저렴하게 사고 난 뒤 나는 연필에 흥미를 가졌다.  그리고 연필을 사모으고, 연필은 또 샤프심만큼이나 늘었다.  연필이 필요했는데, 분명 그랬는데 지금은 색연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필기구는 또 라면상자만한 택배상자에 가득 들어차고 서랍장을 채우고 있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소비는 심리는 반영한다.  불안정한 심리상태, 낮은 자존감이 소비를 조장한다는 조사가 있다.  물건에 기대고 의지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얻기 힘든 만족감을 쉽게 획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연구가 옳고 그른지는 확신치 못하지만, 나는 소비를 하면서, 그 소비가 비록 적은 단위에 지나지 않는다 할 손치더라도 역시 '건강성'에 위해되는 행동인 것은 분명하다.

 

3.

     <버리는 기술>은 용기를 가지라 한다.  그 용기는 자신감이다.  왜 버리지 못하는가.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가를 생각하도록 돕는 책이다.  다양한 연구 사례로 논리를 얻고, 또 직접적인 행동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실용성을 얻어내고 있다. 

 

     물건은 사용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살아난다. (11쪽)

 

     모든 물건을 버리고, 다 버리고, 추억까지 버리라는 뜻으로 곡해할 필요는 없다. '지금 여기'에 초점을 둔다면 왜 버려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전부 갖췄다는 것에 '갖췄다'는 사실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에 가치를 느끼게 되면 이미 컬렉터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다. 갖춰놓지 않으면 안 돼, 하고 강박관념이 되어버리면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 (86쪽)

 

     <버리는 기술>은 마음가짐이다.  누구를 위해서 버리는가, 버려야 하는가, 버릴 수밖에 없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버리는 기술>은 인간심리를 다루고 있다.  우리의 삶은 누구의 것인가?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끊임없이 묻고 있다.  그래서 때때로 당혹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고 난 뒤에는 께름칙하기보다는 후련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지금 버리고 있다.  물건이 아니라 '미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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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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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듯 패리는 나를 사랑했다. (214쪽)

 

1.

     역자의 글에서 원제를 확인하다. enduring love. 한데 <이런 사랑>이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그러니 옮긴이의 의도가 제대로 적중한 셈이다. 참는다, 견딘다와 참사랑의 관계란 도대체 무엇일까, 순간 와닿지 않는 원제라 생각했는데 책을 덮는 순간, 아. 깨친다. <이런 사랑>이 있다면 '그런 사랑'도 있겠구나 하면서 읽었던 이언 매큐언의 장편은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다. 소설집은 잘 다듬어 반듯한 섬돌 같다면 장편소설은 자연석과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

 

2.

     좋은 점 우선 언급하고 나쁜 점을 나중에 다루는 것이 인간 도리요, 예의다.  하지만 <이런 사랑>은 달리 이야기하고 싶다. 좋은 점이 더 많으니, 먼저 나쁜 점, 아니 내게는 뭔가 아쉬운 점을 먼저 들어야겠다.

 

     서사의 추진력은 있으나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신선하지 않았던 이야기, 드 클레랑보 증후군은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지루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기대했던 이야기는, 끈적대는 종교 선도사들의 몰염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사 전반에 드러나는 '공기(헬륨 풍선) 기구 사고' 는  이미 널리 알려져서 그런지, 나는 전연 몰랐지만 의외로 아는 사람이 몇 있었고, 줄거리는 알려진 그 틀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서사의 두 축인 사고와 드 클레랑보 증후군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무난한 제재가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런 사랑>의 가치는 두 이야기 이외의 것에 있다.

 

     조 로스(기구 사고에 있던 당사자)가 <이런 사랑>의 주된 화자이다.  그렇지만 소설은 다양한 관점을 전개된다.  때때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풀어나가기도 하고, 편지체로 일목요연하게 각 인물의 심리를 표출하기도 한다.  사고 이후 조 로스가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과 괴로움이 참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패리(드 클레랑보 증후군을 가진)에게 지독히 시달리고, 동거녀 클라리사와의 갈등, 로건 부인 진 로건의 문제해결 등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서사구조가 내게는 평이했으나 심리 묘사나 전개에서는 역시 이언 매큐언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매끄럽다.

 

     가독성 있는 글이 이언 매큐언의 큰 강점이라 한다.  옳다.  그렇지만 엄청난,이라는 수식을 붙이기에는 어느 정도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가볍게 볼, 재미만 골라파먹을 작품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삼을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글이란, 특히 소설이란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 교훈이고 훈계고 그런 것은 나중에 혼자 앉은 자리에서 번개치듯 문득 떠오른다면 정말 좋은 소설이 아니겠나 싶다.  오래 기억될 이야기이다.  특히 조 로스와 클라리사 사이의 갈등은 참으로 탁월했고,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다.

 

3.

     <이런 사랑>은 두 개의 축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제1장을 읽는 동안 자꾸만 문장에서 버팅기는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제2장부터 읽는 데에 속도가 붙었다.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서는 청량고추맛을 느꼈다면, <이런 사랑>에서는 청국장의 깊은 맛을 탐닉했다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문으로 다가가면서 그(조니)는 속삭이듯 말했다. "자네가 고마워할 충고 하나 하지. 이 사람들 절대 놀리지 말게. 자네처럼 잘난 사람들도 아니고, 게다가 음, 좀 불안정하다고 할까." (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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