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듯 패리는 나를 사랑했다. (214쪽)
1.
역자의 글에서 원제를 확인하다. enduring love. 한데 <이런 사랑>이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그러니 옮긴이의 의도가 제대로 적중한 셈이다. 참는다, 견딘다와 참사랑의 관계란 도대체 무엇일까, 순간 와닿지 않는 원제라 생각했는데 책을 덮는 순간, 아. 깨친다. <이런 사랑>이 있다면 '그런 사랑'도 있겠구나 하면서 읽었던 이언 매큐언의 장편은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다. 소설집은 잘 다듬어 반듯한 섬돌 같다면 장편소설은 자연석과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
2.
좋은 점 우선 언급하고 나쁜 점을 나중에 다루는 것이 인간 도리요, 예의다. 하지만 <이런 사랑>은 달리 이야기하고 싶다. 좋은 점이 더 많으니, 먼저 나쁜 점, 아니 내게는 뭔가 아쉬운 점을 먼저 들어야겠다.
서사의 추진력은 있으나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신선하지 않았던 이야기, 드 클레랑보 증후군은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지루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기대했던 이야기는, 끈적대는 종교 선도사들의 몰염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사 전반에 드러나는 '공기(헬륨 풍선) 기구 사고' 는 이미 널리 알려져서 그런지, 나는 전연 몰랐지만 의외로 아는 사람이 몇 있었고, 줄거리는 알려진 그 틀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서사의 두 축인 사고와 드 클레랑보 증후군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무난한 제재가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런 사랑>의 가치는 두 이야기 이외의 것에 있다.
조 로스(기구 사고에 있던 당사자)가 <이런 사랑>의 주된 화자이다. 그렇지만 소설은 다양한 관점을 전개된다. 때때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풀어나가기도 하고, 편지체로 일목요연하게 각 인물의 심리를 표출하기도 한다. 사고 이후 조 로스가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과 괴로움이 참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패리(드 클레랑보 증후군을 가진)에게 지독히 시달리고, 동거녀 클라리사와의 갈등, 로건 부인 진 로건의 문제해결 등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서사구조가 내게는 평이했으나 심리 묘사나 전개에서는 역시 이언 매큐언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매끄럽다.
가독성 있는 글이 이언 매큐언의 큰 강점이라 한다. 옳다. 그렇지만 엄청난,이라는 수식을 붙이기에는 어느 정도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가볍게 볼, 재미만 골라파먹을 작품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삼을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글이란, 특히 소설이란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 교훈이고 훈계고 그런 것은 나중에 혼자 앉은 자리에서 번개치듯 문득 떠오른다면 정말 좋은 소설이 아니겠나 싶다. 오래 기억될 이야기이다. 특히 조 로스와 클라리사 사이의 갈등은 참으로 탁월했고,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다.
3.
<이런 사랑>은 두 개의 축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제1장을 읽는 동안 자꾸만 문장에서 버팅기는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제2장부터 읽는 데에 속도가 붙었다.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서는 청량고추맛을 느꼈다면, <이런 사랑>에서는 청국장의 깊은 맛을 탐닉했다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문으로 다가가면서 그(조니)는 속삭이듯 말했다. "자네가 고마워할 충고 하나 하지. 이 사람들 절대 놀리지 말게. 자네처럼 잘난 사람들도 아니고, 게다가 음, 좀 불안정하다고 할까." (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