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여행 1 : 그리움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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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그것은 운명일까. 스치는 바람일까. 무엇을 만났을까. 길 끝에서 다시 만날 기회를 얻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2.

   여행은 참으로 낭만적이다. 내 머릿속의 사진첩에 여행은 낭만인데, 현실과 어우러져 퇴폐성 짙은 낭만이 되어버린다. 퇴폐성을 정의하는 것이 먼저인데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명명하기를 주저한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가 허물어졌는가 싶은데 돌아오면 더 공고히 굳히고 마는 실재에 낙담하기도, 다시 떠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시브저기 웃기도 한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다시 돌아오기 위한 몸부림이다.

 

3.

   'KBS 1TV 영상포엠'을 책으로 만날 수 있다니, 정말 영광이다. 책장 펼치는 곳곳에 어느 구석에는 내가 눈으로 따라갔던 그 장소가 눈물처럼 고여 있었다. 아침 처마 끝의 고드럼처럼 세상을 포용하고 있었다. '주제가 보이는 색깔 있는 영상 에세이'에 사진과 함께 조화롭게 구성된 짧고 명확한 글귀들은 글과 사진의 상보적인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끔 사진 올리고 글을 쓸 때 전혀 별개의 이야기를 풀어놓아 읽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당황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즐거워하던 나의 행각이 떠오르고, 비교된다. <내 마음의 여행>은 친절하지만, 인간 본연에 가까이 다가들기 위한 '감성'으로 엮여 있다. 그래서 감상 측면으로 때때로 읽히는 것을 뭐라 하지 말아야 한다. 혼자 떠나는 길에 살아온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일이야 당연지사이다. 혼자 떠나 만나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볼썽사나운 욕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삶기 위한 몸부림이다. 다시 돌아와 열심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의 일상은 확장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4.

   머리말은 책임프로듀스 장기랑씨의 글이 고여 있다. '산 속 작은 연못의 고요함을 기원합니다'로 다른 문장보다 몇 포인터 더 크게 찍어놓은 문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산 속 작은 연못'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논배미 사이에 작은 저수지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 스치는 구름, 구름의 그늘이 떠오른다. 내게 이 책은 봄날의 구름 그늘과 같았다.

 

   한국, 남한땅을 다루고 있는 이야깃거리는 정겹다.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라 더욱 고맙고, 이야기로 들어 익힐 알고 있는 곳이라 반갑고, 이미 가 본 곳도 있어서 정겹다. 내가 있는 곳과 가까운 거제나 통영은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씌어진 그 풍광에 놀라웠다. 그리고 토지 속 구천이가 왔다던 '무주 구천동'이 말로만 듣던 곳에 이러한 일면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무엇에 그렇게 반가운지 모르게 그저 입을 헤 벌리고 앉아서 책장을 넘겼다.

 

5.

   눈 앞 시야가 뻥 뚤린 느낌이 든다. 한계령을 넘어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이 어디,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을 꿈꾸는지도 생각해본다. 생각을 감자 뿌리 뽑아 올리듯 자꾸 자꾸 연상시키는 책이다. <내 마음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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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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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완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도드라진 현상인 소외감의 발로인가 한다. 나는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키울 마음이 없다. 동물을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아이구 우리 아가, 엄마가 맘마 줄까. 마치 제 자식인 양 어르고 쭉쭉 빨면서 죽고 못 사는 사람들을 볼 때 그래서 나는 허, 마른 한숨을 폴폴 내뱉으며 지나쳤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좋은데, 늙고 병들어 짐이 된다 싶으면 짐짝 내던지 듯 유기하는 모양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고것들도 생명 있는 존재이다. 감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 주인에게 버려진 동물들은 난폭해지거나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먹는 것을 거부하여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흔하다고. 고것들에게도 애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애정 없이 살기 힘들다. 식물들도 자신을 돌보는 이의 손길을 알아챈다 하지 않는가.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기쁨을 누리며 평온해지고 싶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오랜 시간 입을 열지 않아 군내가 날 지경이 되면 사람은 벽 보고도 얘기를 하게 된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과 같은 존재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고립된 섬에 떨어진 주인공을 생존케 했던 것은 물도 불도 잠도 아닌 '윌슨'이었다. 모든 울분과 슬픔과 절망까지도 가만히 받아주었던 윌슨이 아니었더라면 주인공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내 존재를 긍정해주는 애정은 곧 생명력과도 직결된다 하면 비약일까. 비약이 아니다. 이러한 내 믿음을 공고히 해준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살았던 노란 고양이의 이야기이다. 고양이의 이름은 듀이다.

 

 

 

   미국 아이오와 북서부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 스펜서 공공 도서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반납함을 확인하던 도서관 직원 비키의 손끝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만져진다. 버려진 새끼 고양이였다. 엉클어지고 때묻은 털뭉치 속에 두 눈이 똥그랗던 새끼 고양이는 차가운 철제 반납함 속에서 밤을 버텨내었다. 두 발은 동상에 걸렸고, 추위로 온몸도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비키는 뜨거운 물을 받아 고양이를 녹여주었다. 고양이는 점점 활기를 되찾았다. 때묻어 새카맣던 털뭉치는 밝은 주황색을 띠었다. 비키는 이 작은 생명체에게서 애틋한 우정을 느꼈다. 비키는 고양이에게 '듀이 리드모어 북스(Dewey Readmore Books)'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첫 이름 듀이는 십진분류법을 철칙으로 알고 지내는 사서들을 위한 이름. 두 번째 이름은 어린이들을 위해. 마지막 이름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Read More Books. 도서관 고양이에게 마침맞은 이름이 아닌가. 여기까지가 스펜서 공공 도서관 침범 고양이 사건의 전말이다. 버려진 새끼 고양이 듀이는 도서관에서 새로 태어난 것이다.

 

 

 

   고양이는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동물이라 들었다. 골목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고양이들은 불공불손 그 자체이다. 사람의 앞길을 막아놓고도 흐트러짐이 없다.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부라려도 그쪽에서는 눈빛의 흔들림도 없다. 아예 무관심이다. 나는 고양이가 무섭다. 우리의 듀이는 고양이임에도 사람을 잘 따른다. 그 정도가 지나쳐 고양이의 탈을 쓴 개가 아닐까 의심해 볼 지경이다. 매일 아침 도서관 현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리고, 사람이 오면 냉큼 무릎으로 뛰어든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의 어깨에 뒤룽뒤룽 매달려 도서관을 산책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듀이는 확실히 고양이가 맞다. 목욕하는 것과 머리 빗질하는 것을 싫어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과 고무줄 씹는 것을 즐긴다. 건강하고 명랑한 수컷 고양이다.

 

 

 

 

   유달리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듀이의 출현으로 조그만 시골 마을 스펜서는 점점 활기를 띠어간다. 매일 아침 흔들의자에 앉아 쓸쓸히 신문을 넘기던 늙은 사람들은 무릎에 전해지는 듀이의 체온으로 포근해졌다. 스펜서 대부분의 가정은 블루칼라- 생산직 노동자 -들로 이루어져 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 많아 방과 후 아이들은 방치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도서관에 듀이가 나타나고부터 아이들의 도서관 출입이 잦아진다. 듀이와 함께 뛰어놀고 책을 보며 아이들은 행복해한다. 그저 눈인사 정도로만 스쳐지나던 마을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고 대화를 이어준 것 역시 듀이다. 의견이 맞지 않아 서름서름하던 도서관 직원들도 듀이 덕분에 화합하게 된다. 사춘기 딸 조디와 서투른 엄마 비키의 다리 역할도 듀이의 몫이었다. 듀이는 스펜서 마을 모두의 연인이자 친구, 가족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도서관의 차가운 반납함에 버려진 조그만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이토록 커다란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밤새 차가운 반납함에서 두려움과 추위를 견뎌낸 고양이에게서 사람들은 자신의 쓸쓸한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공감, 공간. 공감과 공간은 관계에서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소박한 애정이 아닐까. 삶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바람 빠진 낡은 공 - 윌슨 -도 경우에 따라서는 수많은 사람들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스펜서 마을 사람들에게 듀이는 특별한 고양이였다. 그렇지만 듀이는 작고 명랑한 길고양이였을 뿐이다. 다른 고양이들처럼 야옹,하고 울었다. 먹고 싸고 보고 느끼고 사랑하다 늙고 죽었다. 애정을 주고받는 관계라면 그 자체로 특별한 것이다. 지금 내 옆에, 나와 같은 장소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들을 둘러보자.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그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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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p Up 펌프 업 - 끊임없이 동기 불어넣기
서상훈 지음 / 지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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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펌프 업, 바람을 넣는다. 빵빵하게 공기를 주입하고 나면 곧 푸시시 빠지는 바람, 풍선은 쪼그라들고, 자전거 튜브는 때때로 구멍이 난다. 구멍난 튜브에 계속 바람을 넣고 있을 바보는 없다. 그렇지만 몇 번을 반복하면서 같은 실패에 짜증을 내는 인간은 있다. 여기 있다.

   빈 방에 자전거가 있다. 오래 된 자전거에는 사연도 많지만 비싸게 주고 산 녀석이라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고, 지금은 애물단지이다. 게다가 구멍이 났다. 봄날 즐겁게 타고 내버려둔 녀석은 그렇게 내게 앙갚음을 했다. 음, 한숨에, 음, 뉘우침이다.

 

2.

   <펌프 업>은 동기를 부여의 지침서이다. 의욕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 내가 의도한 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기술적 측면을 공고히 한 책이기를 바랐다. 그런 생각에서 펼쳐본 책은 초반부 추천서와 함께 간명한 자기 진단서, 즉 자아 찾기의 한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기대감을 한껏 부풀어놓았다. 그런데, 그런데 예상외로 책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내가 바란 것은 타자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킬 만한 화술이나 전략이었던 모양이다. <펌프 업>은 한국형 자기 계발서로 정의하는 것이 옳다. 내가 타자 계발의 측면에서 책 읽기를 시도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3.

   그러나 <펌프 업>는 한국형 자기계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바람을 넣어라, 내 삶에 살기 위한 의욕을 불어넣어라, 그러려면 생활을 탄탄하게 정비하라. 어떻게 정비하는가 하면... 포도에서 수박까지 각 장은 큼지막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펌프 업>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사례들은 많이 들고, 유명인의 격언, 경구를 제시하면서 글쓴이의 생각을 풀어나가고 있다. 큰 반향을 일으켰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읽는이의 집중을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각 장의 끄트머리에는 이야기의 핵심을 요약하는 색다른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글쓴이의 지식에 대해서, 감탄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가 성공적인 인생을 계획하고 실천하기 위한 방침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연히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펌프 업>에서는 전문가적인 분위기 이외에도 친숙한 이야기를 통한 일상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글쓴이의 이야기보다는 익숙한 사례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다시금 '왜 성공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4.

   먼저 '성공'이 무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늘 자기계발서를 펼치면 내게 성공이 무엇인가,보다는 오히려 수단적 가치에 모든 것을 앗기고 만다. <펌프 업>은 내게 새로운 시각을 안겨 주었다. 동기 부여,라는 딱딱하고 일면 지루한 어감에서 동기를 '불어 넣어' 일상을 터벅터벅 걸어가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한국형 자기 계발서로서 자리매김한 책의 의미에 대해서도 평온하게 자부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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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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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엽감는 새>를 연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말고도 공통점이라면 형식적인 면이나 내용적인 면에서 파악이 될 것이다. 형식상에서는 단편이 그렇고, 내용상에서는 태엽의 상징성일 것이다.

 

2.

  통증이 배인 손가락 하나를 공중으로 치켜올렸다. 빠질 듯 말 듯, 손끝에선 손톱이 덜렁거렸다. 흉측하게 부어오른 나의 손가락은 자갈 물려 빠져나온 개의 혀처럼 붉고 컸다. 나의 숨통을 옥죄는 고름덩어리 손가락, 차라리 잘려 나가 없어져 버려라! 나는 처마 밑으로 거세게 내리는 차가운 빗물에 팔을 내뻗었다. 뜨겁게 통증 배인 손가락이 서서히 서서히 오그라들고 귓바퀴로 비현실적인 비명이 희미하게 새어들었다. - 아프다 아파! 아프다 아파! <지금 그대로의 당신들(149쪽)> 중에서  




   "일순 터져 나오는 배설적이고도 함축적인 절규"

   인칭의 혼란이 빚어내는 기묘한 분위기. 나는 <태엽 감는 여자>를 읽으면서 자주 당혹감을 느낀다. 너, 나, 그, 님 등 흐릿한 인칭들은 비현실적이다. 몽상적이다. 존재들은 모두 허위이거나 허상이다. 허깨비를 만나는 느낌이다. 읽을수록 허방으로 빠져들어 결국에는 내가 거짓인 것처럼 느껴졌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들이 인위적으로 꾸며낸 허구적 인물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다시 말해, 책과는 전연 별개로 나는 나로, 책은 책으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방안엔 작은 벌레들이 진을 치고 있다. 천장엔 거미가 있고, 방바닥엔 바퀴벌레와 집게벌레, 그리고 쥐며느리가 서식하고 있다. 끈질기게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벌레들, 불시에 괴물로 변해 어느 순간를 꿀꺽 삼켜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삭제되지 않은 비망록(217쪽)> 중에서 




   인용된 문장에서와 같이 오락가락, 통일되지 않은 시점들은 읽는 이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글쓴이는 독자의 혼란을 의도했을까. 의도가 어떻든 문제는 기존의 틀, 즉 맞춤법까지 무시하면서까지 혼란을 의도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다.




  맞춤법 표기, 띄어쓰기 등에서 오류가 자주 눈에 띈다. 읽을수록 낭패해한다. 의도야 어떻든 간에 표기와 띄어쓰기의 오용은 글읽기에 방해가 된다. 안정적인 독서 흐름을 방해한다. 이런 부분에서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의문이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가. 새삼 생각해 보게 했던 소설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여러 요인을 <태엽 감는 여자>는 두루 갖추고 있다.  현실은 무겁고 무섭고 불안하다. 굳이 소설로 옮겨놓아 똑같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만으로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흉흉한 소식들에 마음은 또 다른 마음을 더 얹어놓았다. 돌덩이 같다. 아침마다 인륜을 저버리고, 몰염치를 실현하는 대범한 사건들. 마음이 무거운 요즘, 이토록 우울하고 혼란스러운 소설을 만나게 된 것이 안타깝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 소설에 반영된 ‘현실’이란 무엇일까. 그 현실이란 저마다 개체성을 띄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현실, 너의 현실, 우리의 현실. 누구에게나 삶의 거울 - 현실이 주어진다. 그렇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느끼는 눈은 제각각이다. 박경화의 눈으로 바라본 거울 속 현실은 무엇일까. 감지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태엽감는 여자>를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3.

  '태엽'의 상징성이 무엇일까. 아무래도 나는 박경화 씨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나만의 틀에서 책읽기를 감행했던 것 같다. 그것이 안타깝다. 절망적이고 우울한 인물들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내가 경험한 현실적인 세계만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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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 생활 속 지리 여행
이경한 지음 / 푸른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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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 산뜻한 책을 만났다.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지리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풀어내는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는 우선 재미있다. 읽는데, 전혀 지루한 감이 없다. 죽방렴과 같은 원시어업의 형태는 이미 다른 책에서 몇 번, 그리고 텔레비전 다큐에서도 몇 번 보았던 터라 반갑고, 다른 시각으로 문화를 탐색할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

 

   표지는 한눈에 봐도 강원도 어디쯤이겠다 싶은 사진을 사용하고 있다. 아니나다를까 '강원태 태백산맥 일대'라고 표지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한반도 동쪽에 낮게 형성되어 있던 평탄면이 신생대 융기운동을 거치면서 해발고도가 높아진 고위 평탄면'으로 소개를 하는데, 어렵다. 그렇지만 낙심할 일이 아니었다. 학문적 고찰이 없는 일반인에게 지리는, 그냥 하나의 풍경일 뿐이다.

 

   나는 내가 풍경으로서 지리를 다룬다는 데에 나는 절대 폄하하지 않는다. 지적인 안목이 없다고 해서 수용자의 수준이 천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존중에 힘입어 생명존중에까지 다다라야 비로소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가진자 못가진자의 잣대로 비교 평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너무 답답한 노릇이다. 지리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든, 있는 그대로 외양을 보고 다양한 형식으로 접근하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아끼고 소중히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나는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삽으로 땅을 파면, 그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무수한 생명들. 징그럽다고 밟아 뭉갠 적이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더 징그럽다. 때때로 사람이라는 학명을 지니고 하늘 아래를 활보한다는 것이 혐오스럽다.  

 

2.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는 제목이 현재형으로 씌어져 있다. 만나다, 만나다. 요즘 책을 읽으면 유독 제목에 신경이 곧잘 간다. 참 잘 지었다, 때로는 감성적이다, 때로는 냉철하니 분명 글 쓴 사람은 독단적인 행동을 자주 보이지 않을까, 혼자 또 망상을 풀어놓기도 한다.

 

   책장을 넘긴다. 표지가 태백 산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머리글에 이어 목차에 한동안 눈이 꽂힌다.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는 생활 속의 지리 여행,이라는 또다른 제목이 있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어감이,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는 6개의 큰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주제는 입지, 환경, 사회와 문화, 지형 경관, 기후와 식생, 경제활동으로 구분된다. 개론서를 읽었다면 분명 어렵고 난해해서 금방 책장 제일 아래, 눈에 안 뜨이는 곳에 처박아뒀음직한 분류항인데,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는 전연 그렇지가 않다. 아무래도 '일상'이, 현재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적인 요소의 작용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대 공신은 글쓴이의 문체와 첨부된 컬러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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