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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1.
<태엽감는 새>를 연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말고도 공통점이라면 형식적인 면이나 내용적인 면에서 파악이 될 것이다. 형식상에서는 단편이 그렇고, 내용상에서는 태엽의 상징성일 것이다.
2.
통증이 배인 손가락 하나를 공중으로 치켜올렸다. 빠질 듯 말 듯, 손끝에선 손톱이 덜렁거렸다. 흉측하게 부어오른 나의 손가락은 자갈 물려 빠져나온 개의 혀처럼 붉고 컸다. 나의 숨통을 옥죄는 고름덩어리 손가락, 차라리 잘려 나가 없어져 버려라! 나는 처마 밑으로 거세게 내리는 차가운 빗물에 팔을 내뻗었다. 뜨겁게 통증 배인 손가락이 서서히 서서히 오그라들고 귓바퀴로 비현실적인 비명이 희미하게 새어들었다. - 아프다 아파! 아프다 아파! <지금 그대로의 당신들(149쪽)> 중에서
"일순 터져 나오는 배설적이고도 함축적인 절규"
인칭의 혼란이 빚어내는 기묘한 분위기. 나는 <태엽 감는 여자>를 읽으면서 자주 당혹감을 느낀다. 너, 나, 그, 님 등 흐릿한 인칭들은 비현실적이다. 몽상적이다. 존재들은 모두 허위이거나 허상이다. 허깨비를 만나는 느낌이다. 읽을수록 허방으로 빠져들어 결국에는 내가 거짓인 것처럼 느껴졌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들이 인위적으로 꾸며낸 허구적 인물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다시 말해, 책과는 전연 별개로 나는 나로, 책은 책으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방안엔 작은 벌레들이 진을 치고 있다. 천장엔 거미가 있고, 방바닥엔 바퀴벌레와 집게벌레, 그리고 쥐며느리가 서식하고 있다. 끈질기게 내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벌레들, 불시에 괴물로 변해 어느 순간 너를 꿀꺽 삼켜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삭제되지 않은 비망록(217쪽)> 중에서
인용된 문장에서와 같이 오락가락, 통일되지 않은 시점들은 읽는 이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글쓴이는 독자의 혼란을 의도했을까. 의도가 어떻든 문제는 기존의 틀, 즉 맞춤법까지 무시하면서까지 혼란을 의도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다.
맞춤법 표기, 띄어쓰기 등에서 오류가 자주 눈에 띈다. 읽을수록 낭패해한다. 의도야 어떻든 간에 표기와 띄어쓰기의 오용은 글읽기에 방해가 된다. 안정적인 독서 흐름을 방해한다. 이런 부분에서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의문이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가. 새삼 생각해 보게 했던 소설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여러 요인을 <태엽 감는 여자>는 두루 갖추고 있다. 현실은 무겁고 무섭고 불안하다. 굳이 소설로 옮겨놓아 똑같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만으로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흉흉한 소식들에 마음은 또 다른 마음을 더 얹어놓았다. 돌덩이 같다. 아침마다 인륜을 저버리고, 몰염치를 실현하는 대범한 사건들. 마음이 무거운 요즘, 이토록 우울하고 혼란스러운 소설을 만나게 된 것이 안타깝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 소설에 반영된 ‘현실’이란 무엇일까. 그 현실이란 저마다 개체성을 띄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현실, 너의 현실, 우리의 현실. 누구에게나 삶의 거울 - 현실이 주어진다. 그렇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느끼는 눈은 제각각이다. 박경화의 눈으로 바라본 거울 속 현실은 무엇일까. 감지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태엽감는 여자>를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3.
'태엽'의 상징성이 무엇일까. 아무래도 나는 박경화 씨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나만의 틀에서 책읽기를 감행했던 것 같다. 그것이 안타깝다. 절망적이고 우울한 인물들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내가 경험한 현실적인 세계만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더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