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그것은 운명일까. 스치는 바람일까. 무엇을 만났을까. 길 끝에서 다시 만날 기회를 얻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2.
여행은 참으로 낭만적이다. 내 머릿속의 사진첩에 여행은 낭만인데, 현실과 어우러져 퇴폐성 짙은 낭만이 되어버린다. 퇴폐성을 정의하는 것이 먼저인데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명명하기를 주저한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가 허물어졌는가 싶은데 돌아오면 더 공고히 굳히고 마는 실재에 낙담하기도, 다시 떠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시브저기 웃기도 한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다시 돌아오기 위한 몸부림이다.
3.
'KBS 1TV 영상포엠'을 책으로 만날 수 있다니, 정말 영광이다. 책장 펼치는 곳곳에 어느 구석에는 내가 눈으로 따라갔던 그 장소가 눈물처럼 고여 있었다. 아침 처마 끝의 고드럼처럼 세상을 포용하고 있었다. '주제가 보이는 색깔 있는 영상 에세이'에 사진과 함께 조화롭게 구성된 짧고 명확한 글귀들은 글과 사진의 상보적인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끔 사진 올리고 글을 쓸 때 전혀 별개의 이야기를 풀어놓아 읽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당황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즐거워하던 나의 행각이 떠오르고, 비교된다. <내 마음의 여행>은 친절하지만, 인간 본연에 가까이 다가들기 위한 '감성'으로 엮여 있다. 그래서 감상 측면으로 때때로 읽히는 것을 뭐라 하지 말아야 한다. 혼자 떠나는 길에 살아온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일이야 당연지사이다. 혼자 떠나 만나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볼썽사나운 욕심으로 치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삶기 위한 몸부림이다. 다시 돌아와 열심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의 일상은 확장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4.
머리말은 책임프로듀스 장기랑씨의 글이 고여 있다. '산 속 작은 연못의 고요함을 기원합니다'로 다른 문장보다 몇 포인터 더 크게 찍어놓은 문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산 속 작은 연못'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논배미 사이에 작은 저수지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 스치는 구름, 구름의 그늘이 떠오른다. 내게 이 책은 봄날의 구름 그늘과 같았다.
한국, 남한땅을 다루고 있는 이야깃거리는 정겹다.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라 더욱 고맙고, 이야기로 들어 익힐 알고 있는 곳이라 반갑고, 이미 가 본 곳도 있어서 정겹다. 내가 있는 곳과 가까운 거제나 통영은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씌어진 그 풍광에 놀라웠다. 그리고 토지 속 구천이가 왔다던 '무주 구천동'이 말로만 듣던 곳에 이러한 일면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무엇에 그렇게 반가운지 모르게 그저 입을 헤 벌리고 앉아서 책장을 넘겼다.
5.
눈 앞 시야가 뻥 뚤린 느낌이 든다. 한계령을 넘어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이 어디,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을 꿈꾸는지도 생각해본다. 생각을 감자 뿌리 뽑아 올리듯 자꾸 자꾸 연상시키는 책이다. <내 마음의 여행>이다.